『뤼시스』는 사랑의 한 종인 필리아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는 플라톤의 대화편이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논박elenchos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다가 지적 난관aporia에 빠져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파장에 이르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플라톤 초기 대화편의 한 특징이다. 작품의 주제인 필리아는 정신적 차원의 사랑이고 우리의 ‘정情’과도 닮은 데가 있어서, 함께 지낸 시간에 비례하여 더 커지거나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필리아는 육체적 사랑이자 그것을 향한 욕구로서 짧은 시간동안 타오르다 소진되기를 반복하는 에로스와 대비를 이룬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지만, 친구 간의 사랑 등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되기 때문에 우리말로도 문맥에 따라서 ‘친애’, ‘애정’, ‘우정’과 같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뤼시스』가 필리아에 관한 담론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작품의 시작에서 필리아는 에로스와 예리하게 분리되어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뤼시스』는 소년 동성애paiderastia 관습 속에서 히포탈레스라는 성인 남성이 자신이 짝사랑하는 소년 애인 뤼시스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가 하는 에로스적 관심사에서 출발해 뤼시스와 그의 친구인 메넥세노스 간의 사랑이라는 필리아적 차원으로 진전되고 궁극적으로는 필리아의 참된 주체와 객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뤼시스』가 에로스와 필리아를 비롯하여 사랑에 관한 고대 희랍 철학의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도리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왔다고 이야기하는 쪽이 올바른 표현이다. 희랍 철학이 에로스와 필리아 각각에 대해 내세운 얼굴마담들의 존재감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이다. 에로스에 관해서라면 플라톤의 『향연』이나 『파이드로스』가 있고 필리아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있다. 하지만 『뤼시스』는 필리아를 주제로 삼는 최초의 철학서다. 이 작품이 필리아를 에로스와 명쾌하게 구분해서 취급하지 않는 것을 아직 사랑에 관한 당시의 사상이 무르익지 않아서 그렇다고 단정하기보다 플라톤이 왜 필리아를 에로스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고자 했는지 묻는 편이 한결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