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글은 조선시대 시험에서 출제된 질문에 대답을 작성하는 책문 형식으로 저술되었다. 질문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귀신에게 지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것이다. 질문에서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통념상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흩어지기 때문에 그에게 남은 기가 없는데, 어떻게 사후에 인격성을 유지하며 인간 세계에 개입하고 인간을 벌하거나 도울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고전본문
(…) 인간에게 형체가 있는 것은 몸이고 형체가 없는 것은 정신입니다. 형체는 그 소멸을 볼 수 있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그 모이거나 흩어짐을 볼 수 없으니, 죽은 뒤에 정신이 남았으리라 의심할 수는 있습니다. 정녕 정신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불교의 이른바 “몸은 전부 흩어져도 한 가지는 영원히 신령하다.”라는 말이 어찌 일리가 없겠습니까. (또한) 죽은 뒤에 정신도 사라진다고 한다면, 군자가 7일 동안 재계하거나 3일 동안 재계할 때 반드시 제사 지내는 대상을 보게 된다는 말은 무슨 이치입니까.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사람의 정신은 정기(精氣)에서 나옵니다. 눈과 귀가 밝은 것은 백(魄)의 신령한 작용이고 마음이 생각하는 것은 혼의 신령한 작용입니다. 이러한 밝음과 생각은 기(氣)이고 밝거나 생각하는 원인이 리(理)입니다. 리에는 정신이 없지만 기에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가 있어야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이 있어야 색을 볼 수 있으며, 마음이 있어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어서 정기가 한번 흩어지면 귀로는 들을 수 없고 눈으로는 볼 수 없으며, 마음으로는 생각할 수 없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죽은 사물 중 어떤 것에 무슨 정신이 있다는 말입니까. 시신은 몸의 일곱 구멍과 온몸이 흩어지지 않은 상태여도 오히려 정신이 없는데, 하물며 아득한 허공에 어찌 귀가 없이도 들을 수 있고 눈이 없이도 볼 수 있으며, 마음이 없어도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있겠습니까. 정신이 없다면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해도, 누가 그곳의 고통과 즐거움을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불교의 인과응보설은 유학에서 비판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질 것입니다.
(…) 옛날 상나라 풍속에서는 귀신을 믿었습니다. 반경이 화와 복을 내리는 일로 백성을 깨우쳐준 것은 옛 왕을 잊지 않아서입니다. 무왕이 병에 걸렸을 때 주공이 돌아가신 세 왕에게 그의 쾌유를 요청했던 것도 죽은 자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한 것입니다. 천리(天理)는 진실하여 거짓되지 않고 순수하게 선하여 악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군자가 리를 따르기에 복을 받고 소인은 그것을 거슬러서 화를 당합니다. 이는 전부 자연스러운 결과로, 어떤 자가 권한을 행사하여 화나 복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하늘인 이유와 사람이 사람인 이유, 선함이 복된 이유와 악이 화가 되는 이유는 전부 이 리 때문입니다. 리는 본래 주재함이 없지만 마치 주재하는 것과 같아 부득이 그것을 상제라고 불렀으니, 상제가 바로 리입니다.
–『율곡전서』의 「삶과 죽음, 귀신에 대한 답안」 중에서
토론하기
(1) 오늘날에는 귀신 혹은 영혼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이 주류이다. 그럼에도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에서 귀신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끊임없이 소재로서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이이와 같은 조선시대의 유학자는 귀신을 인간의 감각과 정신을 구성하고 일으키는 자연계의 물질이자 에너지로 보고, 그것의 인격성을 부정하였다. 그렇다면 그를 ‘미신을 타파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한 근대 지식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3) 정신은 인간의 사후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생명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 것일까?
해설읽기
우리가 사람을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것은 몸이고, 볼 수 없는 것은 정신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몸이 없어도 정신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정신이 남는다면 ‘육체의 소멸 후에 정신이 남는다’는 불교의 주장도 일리가 있으며, ‘군자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제사를 지내면 그 대상을 볼 수 있다’는 유교의 주장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달리 생각해보면 인간 사후에 보고 듣고 생각하는 귀신이 남는다는 말에는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제반 정신 활동은 인간을 구성하는 혼과 백이라는 정기의 활동이다. 정기는 자연계의 물질이자 에너지인 기 중에서도 가장 정미한 것으로, 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법칙이 바로 천리이다. 하지만 인간이 죽은 뒤에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혼과 백이 분리되고 정기가 흩어진다. 정기가 분산되면 보고 듣고 느끼는 백의 활동은 물론, 감각 기관의 정보를 종합하여 추론하고 예측하는 혼의 활동 역시 중지된다. 이처럼 인간의 사후에 그 육신은 빈껍데기에 불과하고, 정신 역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격성을 가진 귀신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귀신이 없는 이상 천당과 지옥이 존재한들 고통을 느끼거나 즐거움을 맛볼 주체가 없기 때문에, 천당지옥설 역시 성립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사후에 귀신이 있어 천당이나 지옥에 간다는 불교의 주장은 유학에서 격파하지 않아도 그 논리적 모순으로 무너질 것이다. 물론 『시경』과 『서경』 같은 고대 성왕의 언행을 기록한 유교 경전을 보면, 귀신을 섬긴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상나라에서는 귀신을 숭상하였는데, 상나라 군주들은 자신의 선조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현세 사람들에게 화나 복을 내린다고 믿었다. 때문에 상나라의 왕인 반경도 자신의 선조인 탕왕이 귀신이 되어 선한 이에게 상을 악한 이에게 복을 내린다고 주장하며,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계도하였다. 상나라의 다음 왕조인 주나라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였다. 예컨대 무왕이 병에 걸리자 그의 동생인 주공이 옛 조상에게 그의 완쾌를 기원한 것도, 조상이 죽은 뒤에 귀신이 되어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위의 경전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이 기록은 비유에 불과하다. 선행에 복을 내리고 악행에 화를 내린다는 것은 사실상 응보 법칙의 작용이며, 이 법칙이 바로 천리이다. 천리는 천지와 만물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자연법칙이자 보편법칙으로, 누구의 개입이나 주관 없이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것을 ‘상제’라고 부르는 이유도 리라는 법칙의 작용이 마치 인격적 존재인 상제가 화복을 내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의 귀신이 화나 복을 내린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보이지 않는 인격적 존재가 자연과 인간을 관장하고 보살핀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이처럼 이이는 인간의 행동에 따라 화복과 같은 상벌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천리라는 응보 법칙이 실현되기 때문이며, 그 법칙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자연계의 에너지가 바로 귀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귀신을 자연법칙의 하나인 응보 법칙을 세상에 실현하는 에너지로 보았고, 여기에 어떠한 인격성도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그가 귀신을 동아시아의 오랜 통념과 달리 인격성을 철저히 제거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로 보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키워드
귀신, 기, 리, 물질, 생사귀신책, 에너지, 율곡 이이, 자연, 정신, 화복
전후맥락
이 글은 조선시대 시험에서 출제된 질문에 대답을 작성하는 책문 형식으로 저술되었다. 질문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귀신에게 지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것이다. 질문에서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통념상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흩어지기 때문에 그에게 남은 기가 없는데, 어떻게 사후에 인격성을 유지하며 인간 세계에 개입하고 인간을 벌하거나 도울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고전본문
(…) 인간에게 형체가 있는 것은 몸이고 형체가 없는 것은 정신입니다. 형체는 그 소멸을 볼 수 있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그 모이거나 흩어짐을 볼 수 없으니, 죽은 뒤에 정신이 남았으리라 의심할 수는 있습니다. 정녕 정신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불교의 이른바 “몸은 전부 흩어져도 한 가지는 영원히 신령하다.”라는 말이 어찌 일리가 없겠습니까. (또한) 죽은 뒤에 정신도 사라진다고 한다면, 군자가 7일 동안 재계하거나 3일 동안 재계할 때 반드시 제사 지내는 대상을 보게 된다는 말은 무슨 이치입니까.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사람의 정신은 정기(精氣)에서 나옵니다. 눈과 귀가 밝은 것은 백(魄)의 신령한 작용이고 마음이 생각하는 것은 혼의 신령한 작용입니다. 이러한 밝음과 생각은 기(氣)이고 밝거나 생각하는 원인이 리(理)입니다. 리에는 정신이 없지만 기에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가 있어야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이 있어야 색을 볼 수 있으며, 마음이 있어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어서 정기가 한번 흩어지면 귀로는 들을 수 없고 눈으로는 볼 수 없으며, 마음으로는 생각할 수 없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죽은 사물 중 어떤 것에 무슨 정신이 있다는 말입니까. 시신은 몸의 일곱 구멍과 온몸이 흩어지지 않은 상태여도 오히려 정신이 없는데, 하물며 아득한 허공에 어찌 귀가 없이도 들을 수 있고 눈이 없이도 볼 수 있으며, 마음이 없어도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있겠습니까. 정신이 없다면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해도, 누가 그곳의 고통과 즐거움을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불교의 인과응보설은 유학에서 비판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질 것입니다.
(…) 옛날 상나라 풍속에서는 귀신을 믿었습니다. 반경이 화와 복을 내리는 일로 백성을 깨우쳐준 것은 옛 왕을 잊지 않아서입니다. 무왕이 병에 걸렸을 때 주공이 돌아가신 세 왕에게 그의 쾌유를 요청했던 것도 죽은 자를 산 사람 섬기듯이 한 것입니다. 천리(天理)는 진실하여 거짓되지 않고 순수하게 선하여 악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군자가 리를 따르기에 복을 받고 소인은 그것을 거슬러서 화를 당합니다. 이는 전부 자연스러운 결과로, 어떤 자가 권한을 행사하여 화나 복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하늘인 이유와 사람이 사람인 이유, 선함이 복된 이유와 악이 화가 되는 이유는 전부 이 리 때문입니다. 리는 본래 주재함이 없지만 마치 주재하는 것과 같아 부득이 그것을 상제라고 불렀으니, 상제가 바로 리입니다.
–『율곡전서』의 「삶과 죽음, 귀신에 대한 답안」 중에서
토론하기
(1) 오늘날에는 귀신 혹은 영혼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이 주류이다. 그럼에도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에서 귀신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끊임없이 소재로서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이이와 같은 조선시대의 유학자는 귀신을 인간의 감각과 정신을 구성하고 일으키는 자연계의 물질이자 에너지로 보고, 그것의 인격성을 부정하였다. 그렇다면 그를 ‘미신을 타파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한 근대 지식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3) 정신은 인간의 사후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생명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 것일까?
해설읽기
우리가 사람을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것은 몸이고, 볼 수 없는 것은 정신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몸이 없어도 정신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정신이 남는다면 ‘육체의 소멸 후에 정신이 남는다’는 불교의 주장도 일리가 있으며, ‘군자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제사를 지내면 그 대상을 볼 수 있다’는 유교의 주장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달리 생각해보면 인간 사후에 보고 듣고 생각하는 귀신이 남는다는 말에는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제반 정신 활동은 인간을 구성하는 혼과 백이라는 정기의 활동이다. 정기는 자연계의 물질이자 에너지인 기 중에서도 가장 정미한 것으로, 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법칙이 바로 천리이다. 하지만 인간이 죽은 뒤에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혼과 백이 분리되고 정기가 흩어진다. 정기가 분산되면 보고 듣고 느끼는 백의 활동은 물론, 감각 기관의 정보를 종합하여 추론하고 예측하는 혼의 활동 역시 중지된다. 이처럼 인간의 사후에 그 육신은 빈껍데기에 불과하고, 정신 역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격성을 가진 귀신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귀신이 없는 이상 천당과 지옥이 존재한들 고통을 느끼거나 즐거움을 맛볼 주체가 없기 때문에, 천당지옥설 역시 성립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사후에 귀신이 있어 천당이나 지옥에 간다는 불교의 주장은 유학에서 격파하지 않아도 그 논리적 모순으로 무너질 것이다. 물론 『시경』과 『서경』 같은 고대 성왕의 언행을 기록한 유교 경전을 보면, 귀신을 섬긴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상나라에서는 귀신을 숭상하였는데, 상나라 군주들은 자신의 선조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현세 사람들에게 화나 복을 내린다고 믿었다. 때문에 상나라의 왕인 반경도 자신의 선조인 탕왕이 귀신이 되어 선한 이에게 상을 악한 이에게 복을 내린다고 주장하며,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계도하였다. 상나라의 다음 왕조인 주나라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였다. 예컨대 무왕이 병에 걸리자 그의 동생인 주공이 옛 조상에게 그의 완쾌를 기원한 것도, 조상이 죽은 뒤에 귀신이 되어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위의 경전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이 기록은 비유에 불과하다. 선행에 복을 내리고 악행에 화를 내린다는 것은 사실상 응보 법칙의 작용이며, 이 법칙이 바로 천리이다. 천리는 천지와 만물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자연법칙이자 보편법칙으로, 누구의 개입이나 주관 없이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것을 ‘상제’라고 부르는 이유도 리라는 법칙의 작용이 마치 인격적 존재인 상제가 화복을 내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의 귀신이 화나 복을 내린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보이지 않는 인격적 존재가 자연과 인간을 관장하고 보살핀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이처럼 이이는 인간의 행동에 따라 화복과 같은 상벌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천리라는 응보 법칙이 실현되기 때문이며, 그 법칙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자연계의 에너지가 바로 귀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귀신을 자연법칙의 하나인 응보 법칙을 세상에 실현하는 에너지로 보았고, 여기에 어떠한 인격성도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그가 귀신을 동아시아의 오랜 통념과 달리 인격성을 철저히 제거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로 보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키워드
귀신, 기, 리, 물질, 생사귀신책, 에너지, 율곡 이이, 자연, 정신, 화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