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상인회 회장이 서우성(壽生)에게 린 사장이 풀려날 방법을 귀띔해주고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건너편에서 동종업을 하는 위창샹(裕昌祥) 주인 우(吳) 사장이 찾아와 ‘일 위안 세트’ 재고를 넘겨달라고 한다. 서우성은 “린 사장이 돈을 싸들고 도망가려 한다”는 소문을 누가 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우성은 분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린 씨 부인을 설득하여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위창샹에 물건을 넘긴다. 그는 헝위안에서 가져가고 남은 이틀 간의 매출과 위창샹에 넘기고 받은 물건값을 들고 상인회 회장을 찾아간다. 일백 위안을 바치고서야 린 사장이 풀려난다.
고전본문
반시간쯤 지나 서우성과 린 사장이 함께 돌아왔다. 안채로 들어서자 린 씨 부인이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린 사장이 살아 돌아온 것을 알고는 자기(瓷器)로 된 관세음상 앞으로 황급히 기어가 머리를 조아렸다. 바닥에 머리를 찧는 소리가 딸꾹질소리보다 더 크게 울렸다. 린 씨 딸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치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서우성이 품에서 종이 꾸러미를 꺼내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남은 돈 팔십 위안입니다.”
린 사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잠시 후에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서 죽게 내버려두지 왜 또 돈을 써서 꺼내왔어! 돈이 없으면 다같이 죽은 목숨인 걸!”
린 씨 부인이 갑자기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지만 딸꾹질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린 씨 딸은 소리를 죽이고 훌쩍훌쩍 울었다. 린 사장은 울지 않았지만 또 다시 한숨을 쉬더니 목이 메인 소리로 말했다.
“팔 물건이 하나도 없이 텅텅 비었구나! 가게 문은 열 수도 없는데 빚 독촉은 성화이니……”
“사장님!”
서우성이 사장을 부르더니 손가락에 찻물을 찍어 탁자에 ‘달릴 주(走: 도망치세요)’ 자를 써 보였다.
린 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는 부인을 한 번 쳐다보고, 딸을 한 번 쳐다보더니 또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사장님, 이 길 밖에 없습니다. 가게의 돈을 긁어모으면 일백 위안 가량 됩니다. 그걸 가지고 가십시오. 한두 달이면 될 겁니다. 여기 일은 제가 다른 종업원들과 처리하겠습니다.”
서우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린 씨 부인도 다 듣고 말았다. 그녀가 딸꾹질을 억누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너희들도 가거라! 아슈(딸 밍슈의 애칭), 너도. 여기는 나 혼자 남겨두면 된다. 내가 사생결단을 낼 게야. 딸꾹!”
린 씨 부인은 별안간 씩씩해지더니 몸을 돌려 위층으로 뛰어갔다. 린 씨 딸이 “엄마!”를 부르며 따라서 올라갔다. 린 씨는 멍하니 계단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고 느꼈지만 심란하고 뒤숭숭해서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우성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사장님, 따님도 데리고 가시지요. 따님이 여기 있으면 사모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실 겁니다. 그자들이 데려갈까봐서요.”
린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서우성도 끝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탁자를 돌아 나갔다.
갑자기 린 씨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린 사장과 서우성은 깜짝 놀랐다. 그들이 계단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방에서 나오는 린 씨 부인의 손에 종이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린 사장과 서우성이 계단 앞에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다들 들어오세요. 내게 생각이 있어요.” 그녀는 린 사장과 서우성 앞에 그 종이 꾸러미를 내놓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모아둔 비상금이에요. 딸꾹. 이백 위안이 넘을 거에요. 당신이 반을 나눠 가져가요. 딸꾹! 아슈 일은 제 뜻에 따라주세요. 서우성에게 줍시다. 딸꾹, 내일 아슈는 아버지하고 같이 떠나거라. 딸꾹, 나는 안 가련다! 서우성은 나와 며칠 같이 있다가 다시 얘기를 하고. 딸꾹,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내가 잘 안다. 딸꾹, 너희들은 지금 바로 내 앞에서 절을 올리거라. 그래야 마음이 놓이겠구나! 딸꾹…….”
린 씨 부인은 한 손으로는 딸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서우성을 잡으며 두 사람에게 절을 시켰다.
절을 마치고 난 두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서우성이 슬며시 린 씨 딸을 훔쳐보니 그녀의 눈물자국 속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서우성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떨어뜨렸다.
린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 이렇게 하자고. 하지만 서우성, 여기 남아서 저들을 상대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하네!”
토론하기
(1) 작품을 다 읽은 후 성실하고 양심적이었던 린 사장이 파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해보자.
(2) 서우성은 린 사장에게 “이 길 밖에 없습니다”라며 부도를 내고 도주할 것을 권한다. 내가 만약 린 사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이야기해보자.
(3)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양심과 도덕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해설읽기
상하이 인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부친에게 물려받은 수입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린 사장은 별 다른 취미도 없이 올곧게 장사만 하는 사람이다. 그는 돈을 헤프게 써본 적도 없고 남에게 해코지를 한 적도 없다.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에서라면 타고난 근면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착실히 돈을 벌었겠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초 중국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몹시 혼란한 시기였다. 1928년 북벌*의 성공으로 국민당이 베이양군벌을 몰아내고 중국을 통일하는 형국이 되었지만 지방 군벌들의 세력은 여전히 강했고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로 쏠린 국제사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풍요로운 중국 동남 연해안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1932년 1월 제1차 상하이사변을 일으켰다. 상하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린 씨네 가게가 있는 인근의 작은 마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상하이가 철시(撤市: 시장, 가게 따위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아니함)를 하고 은행과 사채업자들이 문을 닫았으며 상하이와 인근 마을을 오가는 교통편이 두절되었다. 시국이 어수선해지니 상하이의 도매상은 외상값을 독촉하며 현금 거래만을 원했고, 사채업자는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서 앞서 빌려준 돈을 서둘러 거두어들이려 했다. 군대는 전쟁을 빌미로 상인회에 돈을 요구하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것이 강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극심한 불경기가 찾아와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이 말랐는데, 부패한 국민당 관료는 사사건건 갖은 구실을 붙여가며 돈을 뜯어갔다. 자금 융통이 어려워 이웃들에게까지 돈을 빌린 린 사장은 정작 자신이 받아야 할 외상값은 떼이고 말았다.
린 사장은 위기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맨 처음 아이디어는 그의 도제(徒弟)인 서우성이 낸 것이다. 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생필품 키트 마케팅” 참조) 상하이에서 온 피난민들에게 생필품 키트인 ‘일 위안 세트’를 만들어 팔아 대박을 치지만, 사채업자가 빚 독촉을 하며 매일 물건 판 돈의 80%를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 이를 시샘한 경쟁업자가 중상모략을 하여 국민당 사무소에 끌려가는 고초까지 치른다. 서우성은 린 사장을 빼내어 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 재고를 경쟁업자에게 넘기고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국민당 사무소에 뇌물로 바친다.
린 사장은 무사히 풀려났지만 집에 돌아와 “팔 물건이 하나도 없이 텅텅 비어”있는 가게를 보고는 망연자실한다. 서우성은 그런 린 사장에게 “이 길 밖에 없습니다”라며 가게에 남은 돈을 챙겨서 한두 달 피신할 것을 권한다. 그가 부도를 내고 잠적해버린다면 그동안 악의적으로 돌았던 헛소문을 사실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금이 원활하게 융통되어 자신이 빌려준 빚을 80% 정도 거둬들일 수 있고 갚아야 할 돈을 80% 정도만 갚아도 된다면 이 어려운 고비를 어떻게든 넘겨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고 나니 린 사장으로서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린 사장이 직접적으로 파산에 이르게 된 원인은 ‘돈맥경화’였지만, 돈줄이 막히게 된 데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혼란과 국민당 관료의 착취와 압박이 있었으며, 장사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유언비어를 퍼트린 경쟁업자, 나아가 그의 주 고객층이었던 시골사람들의 주머니를 텅 비게 만든 지주와 고리대금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한편 린 씨 부인이 불안해하며 남편에게 딸 밍슈도 데리고 가라고 하는 까닭은 국민당의 부(卜) 국장이 린 사장의 외동딸을 세 번째 첩으로 눈독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셀 “호시탐탐하는 포식자들에 둘러싸인 린 씨네 가게” 참조). 딸을 남겨둔 채 린 사장이 사라졌다가는 그들이 무슨 핑계를 대며 끌고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일이 마음에 걸린 린 씨 부인은 린 사장에게 딸도 함께 데려가라고 하면서 딸의 배필로 서우성을 점찍는다. 딸과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난다는 것 말고는 나무랄 데 없는 사윗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이 절을 올리게 하는 것으로 ‘약혼식’을 대신한다.
*북벌: 1926년부터 1928년까지 중국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의 협력을 받아 중국에 있던 군벌을 타도하기 위해 벌인 군사작전
키워드
도주, 만주사변, 부도, 상하이사변, 양심, 파산
전후맥락
상인회 회장이 서우성(壽生)에게 린 사장이 풀려날 방법을 귀띔해주고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건너편에서 동종업을 하는 위창샹(裕昌祥) 주인 우(吳) 사장이 찾아와 ‘일 위안 세트’ 재고를 넘겨달라고 한다. 서우성은 “린 사장이 돈을 싸들고 도망가려 한다”는 소문을 누가 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우성은 분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린 씨 부인을 설득하여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위창샹에 물건을 넘긴다. 그는 헝위안에서 가져가고 남은 이틀 간의 매출과 위창샹에 넘기고 받은 물건값을 들고 상인회 회장을 찾아간다. 일백 위안을 바치고서야 린 사장이 풀려난다.
고전본문
반시간쯤 지나 서우성과 린 사장이 함께 돌아왔다. 안채로 들어서자 린 씨 부인이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린 사장이 살아 돌아온 것을 알고는 자기(瓷器)로 된 관세음상 앞으로 황급히 기어가 머리를 조아렸다. 바닥에 머리를 찧는 소리가 딸꾹질소리보다 더 크게 울렸다. 린 씨 딸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치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서우성이 품에서 종이 꾸러미를 꺼내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남은 돈 팔십 위안입니다.”
린 사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잠시 후에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서 죽게 내버려두지 왜 또 돈을 써서 꺼내왔어! 돈이 없으면 다같이 죽은 목숨인 걸!”
린 씨 부인이 갑자기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지만 딸꾹질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린 씨 딸은 소리를 죽이고 훌쩍훌쩍 울었다. 린 사장은 울지 않았지만 또 다시 한숨을 쉬더니 목이 메인 소리로 말했다.
“팔 물건이 하나도 없이 텅텅 비었구나! 가게 문은 열 수도 없는데 빚 독촉은 성화이니……”
“사장님!”
서우성이 사장을 부르더니 손가락에 찻물을 찍어 탁자에 ‘달릴 주(走: 도망치세요)’ 자를 써 보였다.
린 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는 부인을 한 번 쳐다보고, 딸을 한 번 쳐다보더니 또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사장님, 이 길 밖에 없습니다. 가게의 돈을 긁어모으면 일백 위안 가량 됩니다. 그걸 가지고 가십시오. 한두 달이면 될 겁니다. 여기 일은 제가 다른 종업원들과 처리하겠습니다.”
서우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린 씨 부인도 다 듣고 말았다. 그녀가 딸꾹질을 억누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너희들도 가거라! 아슈(딸 밍슈의 애칭), 너도. 여기는 나 혼자 남겨두면 된다. 내가 사생결단을 낼 게야. 딸꾹!”
린 씨 부인은 별안간 씩씩해지더니 몸을 돌려 위층으로 뛰어갔다. 린 씨 딸이 “엄마!”를 부르며 따라서 올라갔다. 린 씨는 멍하니 계단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고 느꼈지만 심란하고 뒤숭숭해서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우성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사장님, 따님도 데리고 가시지요. 따님이 여기 있으면 사모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실 겁니다. 그자들이 데려갈까봐서요.”
린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서우성도 끝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탁자를 돌아 나갔다.
갑자기 린 씨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린 사장과 서우성은 깜짝 놀랐다. 그들이 계단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방에서 나오는 린 씨 부인의 손에 종이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린 사장과 서우성이 계단 앞에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다들 들어오세요. 내게 생각이 있어요.” 그녀는 린 사장과 서우성 앞에 그 종이 꾸러미를 내놓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모아둔 비상금이에요. 딸꾹. 이백 위안이 넘을 거에요. 당신이 반을 나눠 가져가요. 딸꾹! 아슈 일은 제 뜻에 따라주세요. 서우성에게 줍시다. 딸꾹, 내일 아슈는 아버지하고 같이 떠나거라. 딸꾹, 나는 안 가련다! 서우성은 나와 며칠 같이 있다가 다시 얘기를 하고. 딸꾹,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내가 잘 안다. 딸꾹, 너희들은 지금 바로 내 앞에서 절을 올리거라. 그래야 마음이 놓이겠구나! 딸꾹…….”
린 씨 부인은 한 손으로는 딸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서우성을 잡으며 두 사람에게 절을 시켰다.
절을 마치고 난 두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서우성이 슬며시 린 씨 딸을 훔쳐보니 그녀의 눈물자국 속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서우성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떨어뜨렸다.
린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 이렇게 하자고. 하지만 서우성, 여기 남아서 저들을 상대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하네!”
토론하기
(1) 작품을 다 읽은 후 성실하고 양심적이었던 린 사장이 파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해보자.
(2) 서우성은 린 사장에게 “이 길 밖에 없습니다”라며 부도를 내고 도주할 것을 권한다. 내가 만약 린 사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이야기해보자.
(3)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양심과 도덕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해설읽기
상하이 인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부친에게 물려받은 수입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린 사장은 별 다른 취미도 없이 올곧게 장사만 하는 사람이다. 그는 돈을 헤프게 써본 적도 없고 남에게 해코지를 한 적도 없다.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에서라면 타고난 근면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착실히 돈을 벌었겠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초 중국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몹시 혼란한 시기였다. 1928년 북벌*의 성공으로 국민당이 베이양군벌을 몰아내고 중국을 통일하는 형국이 되었지만 지방 군벌들의 세력은 여전히 강했고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로 쏠린 국제사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풍요로운 중국 동남 연해안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1932년 1월 제1차 상하이사변을 일으켰다. 상하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린 씨네 가게가 있는 인근의 작은 마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상하이가 철시(撤市: 시장, 가게 따위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아니함)를 하고 은행과 사채업자들이 문을 닫았으며 상하이와 인근 마을을 오가는 교통편이 두절되었다. 시국이 어수선해지니 상하이의 도매상은 외상값을 독촉하며 현금 거래만을 원했고, 사채업자는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서 앞서 빌려준 돈을 서둘러 거두어들이려 했다. 군대는 전쟁을 빌미로 상인회에 돈을 요구하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것이 강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극심한 불경기가 찾아와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이 말랐는데, 부패한 국민당 관료는 사사건건 갖은 구실을 붙여가며 돈을 뜯어갔다. 자금 융통이 어려워 이웃들에게까지 돈을 빌린 린 사장은 정작 자신이 받아야 할 외상값은 떼이고 말았다.
린 사장은 위기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맨 처음 아이디어는 그의 도제(徒弟)인 서우성이 낸 것이다. 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생필품 키트 마케팅” 참조) 상하이에서 온 피난민들에게 생필품 키트인 ‘일 위안 세트’를 만들어 팔아 대박을 치지만, 사채업자가 빚 독촉을 하며 매일 물건 판 돈의 80%를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 이를 시샘한 경쟁업자가 중상모략을 하여 국민당 사무소에 끌려가는 고초까지 치른다. 서우성은 린 사장을 빼내어 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 재고를 경쟁업자에게 넘기고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국민당 사무소에 뇌물로 바친다.
린 사장은 무사히 풀려났지만 집에 돌아와 “팔 물건이 하나도 없이 텅텅 비어”있는 가게를 보고는 망연자실한다. 서우성은 그런 린 사장에게 “이 길 밖에 없습니다”라며 가게에 남은 돈을 챙겨서 한두 달 피신할 것을 권한다. 그가 부도를 내고 잠적해버린다면 그동안 악의적으로 돌았던 헛소문을 사실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금이 원활하게 융통되어 자신이 빌려준 빚을 80% 정도 거둬들일 수 있고 갚아야 할 돈을 80% 정도만 갚아도 된다면 이 어려운 고비를 어떻게든 넘겨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고 나니 린 사장으로서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린 사장이 직접적으로 파산에 이르게 된 원인은 ‘돈맥경화’였지만, 돈줄이 막히게 된 데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혼란과 국민당 관료의 착취와 압박이 있었으며, 장사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유언비어를 퍼트린 경쟁업자, 나아가 그의 주 고객층이었던 시골사람들의 주머니를 텅 비게 만든 지주와 고리대금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한편 린 씨 부인이 불안해하며 남편에게 딸 밍슈도 데리고 가라고 하는 까닭은 국민당의 부(卜) 국장이 린 사장의 외동딸을 세 번째 첩으로 눈독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셀 “호시탐탐하는 포식자들에 둘러싸인 린 씨네 가게” 참조). 딸을 남겨둔 채 린 사장이 사라졌다가는 그들이 무슨 핑계를 대며 끌고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일이 마음에 걸린 린 씨 부인은 린 사장에게 딸도 함께 데려가라고 하면서 딸의 배필로 서우성을 점찍는다. 딸과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난다는 것 말고는 나무랄 데 없는 사윗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이 절을 올리게 하는 것으로 ‘약혼식’을 대신한다.
*북벌: 1926년부터 1928년까지 중국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의 협력을 받아 중국에 있던 군벌을 타도하기 위해 벌인 군사작전
키워드
도주, 만주사변, 부도, 상하이사변, 양심, 파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