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에 발표된 염상섭의 「윤전기」는 계급문학이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던 시점에 등장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문사 인쇄공장의 직공들은 몇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윤전기 가동을 중지하고, 임금 지급을 요구한다. 신문사 측에서도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여, 밤 10시가 되면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몇 달 째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회사에 신뢰를 가질 수 없었으므로 거듭하여 A를 닦달한다. A는 신문사 편집국원으로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A는 신문사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노동자들을 설득하려 애쓴다.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은 식민지의 열악한 조건에서 어렵사리 신문사를 경영해야 하는 입장에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일이므로, 신문사와 노동자들이 서로 갈등하기보다는 서로 협조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내 두 입장은 갈등을 보이지만, 마침내 노동자들에게 반 달치의 임금이 지불될 수 있게 되고 노동자들과 A는 서로 감격하며 화해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도 사회주의 담론이 크게 유행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은 식민지 해방의 문제를 사회주의 이론과 결부지어 사고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과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급문학 역시 이러한 지적 토양 위에서 탄생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인간 참상 및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농촌에서, 공장에서 벌어지는 민중들의 혁명적 봉기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계급문학적 입장에 서 있던 작가들의 문학적 지향이었다. 그러다 보니 계급문학을 따르던 작가들은 자본가들 및 회사 측의 입장을 대단히 악마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염상섭은 계급문학의 문제 제기에 일정 부분 동조하면서도 민족주의적인 시각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관찰을 통해 당대의 계급문학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했으므로, 민족 자본을 적대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 염상섭의 입장이었다.
「윤전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출현한 작품이다. 작품이 발표된 이후 프롤레타리아트 문학의 입장에 선 평론가인 박영희는 「윤전기」가 무산계급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작품이라고 비난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기진이라는 평론가는 민족주의적 시각에 선 지식인이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면서 노자협조를 이끌어내는 「윤전기」의 서사 전개를 감상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두 비평가의 시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만이 식민지 현실과 자본주의 현실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회주의적 관점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염상섭이 보기에는 오히려 김기진·박영희를 비롯한 프로문학 비평가들이야말로 현실의 무산자 계급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생각은 계급운동에도 민족운동에도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이 염상섭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