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상하이 인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수입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린 사장은 만주사변(9∙18사변)으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국민당 당국의 판매 제재로 곤란에 처한다. 그는 국민당 사무실에 사백 위안의 뇌물을 건네고, ‘바겐세일’의 방법으로 매출을 올려보려 하지만, 지주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겹겹이 착취당해서 돈이 마른 시골 사람은 설 대목에도 좀처럼 주머니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상하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자(제1차 상하이사변=1∙28사변) 그의 거래처인 상하이 도매상은 수금을 독촉하며 더 이상 외상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하고, 돈놀이를 하는 헝위안전장(恒源錢莊)[1]에서도 빚 독촉을 하며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정작 본인은 시골과 읍내에 깔아 놓은 외상을 거둬들이기 요원하여 파산 직전에 몰린다. 정월 초나흗날 저녁, 린 사장은 종업원들을 위해 조촐한 술상을 준비하고 암울한 기분으로 새해 영업개시를 의논한다.
* 전장(錢莊)은 옛날 개인이 운영하던 금융 점포를 말한다.
고전본문
정월 초나흗날 저녁, 린 사장은 삼 위안을 겨우 쓸어 모아 술자리를 열고, 가게 사람들에게 늘 해오던 대로 재신주(財神酒)를 대접하며 이튿날 영업개시 방식에 대해 의논했다. 린 사장은 이미 이런저런 궁리를 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게를 계속 열자니 손해를 볼 것이 불을 보듯 뻔했고, 그렇다고 문을 닫자니 세 식구 생계가 막막했다. 게다가 받을 빚만도 사오백 위안이나 되는데, 일단 문을 닫으면 그 돈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지출을 줄이는 것인데, 그렇다고 세금이나 상납은 빠져나갈 수 없었고, ‘갈취’는 특히나 피할 수 없었다. 점원 한 두 사람을 줄이자니 종업원은 본래 세 사람뿐인데다가 서우성(壽生)은 그의 심복이었고 나머지 둘은 처지가 딱했다. 더구나 둘을 내보내면 장사할 일손이 부족했다. 집안 일을 거들던 우(吳) 씨 어멈도 진작에 내보내서 가계는 더 이상 줄일 것이 없었다. 그는 무리를 해서라도 가게를 계속 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보살님이 보우하사 시골 사람들의 봄누에치기가 잘 되면 그가 입은 적자도 메워질 수 있었다.
허나 영업개시를 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물건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현금을 상하이로 보내지 않는 이상 물건은 받을 수 없었다. 상하이는 전란이 더욱 심해져서 외상거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재고도 진작에 바닥이 나서 진열대 위의 메리야스 상자는 텅 빈 것을 장식으로 올려둔 것이었다. 가게에 남은 것이라곤 일용잡화 뿐으로, 세숫대야나 수건 같은 것들은 아직 많았다.
다들 답답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면서 머리를 쥐어짜보았지만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담을 나누기 시작하다가 한 종업원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사람 팔자가 개만도 못하네요! 상하이 자베이(閘北)가 불에 홀랑 타버려서 수십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맨몸뚱이로 도망쳐나왔대요. 훙커우(虹口) 일대는 아직 불이 나기도 전에 벌써 사람들이 다 도망갔는데 일본놈들이 어찌나 지독한지 아무것도 못 가지고 나가게 한대요. 상하이 집값은 몇 배나 뛰었대요. 피난 나온 사람들은 다 시골로 나오고 있는데 어제 우리 읍내에도 한 무리가 왔어요. 멀쩡한 사람들 같던데 이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린 사장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우성은 이 말을 듣더니 불현듯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놓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린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아쓰(阿四) 말 들으셨죠? 우리 가게에 있는 세숫대야, 수건, 비누, 양말, 치약, 칫솔 같은 것들을 다 팔아버릴 수 있게 됐어요.”
린 사장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서우성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장님,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예요. 상하이에서 피난 나온 사람이라면 수중에 얼마간의 돈은 있을 것이고, 어찌됐든 일용품은 사야 하지 않겠어요? 빨리 그 장사 준비를 해야 한다고요.”
서우성은 이어서 말하며 다시 술잔을 비웠는데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다른 두 종업원도 그제야 알아차리고는 하하하 크게 웃었다. 린 사장만 아직도 감을 잡지 못했다. 근래에 힘든 일을 겪다 보니 감이 떨어진 것이다. 그는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자신 있나? 세숫대야나 수건은 다른 집에도 있는데……”
“사장님, 잊으셨군요! 세숫대야나 수건 같은 것들은 우리 가게 재고가 가장 많아요! 위창샹(裕昌祥)에는 세숫대야가 열 개도 없을 것이고, 그나마도 좋은 것은 골라 팔고 남은 물건이라구요. 이번 장사는 우리 말고 다른 가게는 못해요. 어서 사방에 광고를 써 붙여야 해요,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 곳에다가요. 아, 아쓰 그 사람들이 어디 살지? 거기다 광고를 붙이자고.”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친척집으로 갔고,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서책(西柵) 누에공장의 빈방을 빌려서 묵고 있어요.”
아쓰라는 종업원이 대답했다. 뜻하지 않게 큰 공을 세운 것에 우쭐해지며 얼굴이 밝아졌다. 린 사장은 그제서야 완전히 이해했다. 기분이 좋아지자 두뇌회전도 빨라지면서 곧바로 광고 문구 초안을 만들고 가게에 있는 일용품을 골라보았다. 어림잡아 십여 종은 되는 듯싶었다. 그는 상하이의 큰 상점들이 ‘일 위안 세트’를 파는 것을 모방하여 세숫대야와 수건, 칫솔, 치약 등을 일 위안 짜리 한 세트로 만들고 광고에 ‘일 위안 세트 대 바겐세일’이라고 크게 썼다. 서우성이 가게에 남아있던 커다란 색지를 잘라서 붓으로 썼다. 다른 두 종업원과 견습생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세숫대야, 수건, 칫솔, 치약을 한 세트로 만들었다. 일손이 부족하자 린 사장은 딸을 불러 광고지를 쓰고 세트로 묶는 일을 돕게 했다. 그는 자잘한 일용필수품들로 다른 ‘일 위안 세트’를 몇 가지 더 만들었다.
토론하기
(1) 린 씨네 가게가 자금난에 빠지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린 사장은 어떤 방법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는가?
(2) 피난민을 상대로 ‘일 위안 세트’를 만들어 파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자. 이에 대해 “재난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할 수 있을까?
(3) 우리 주변에서(인물, 가게, 기업 등) 아이디어 혁신 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실패나 파산의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꾼 사례를 찾아보자.
해설읽기
주인공 린 사장은 상하이 인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부친에게 물려받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장사했지만 해가 갈수록 적자가 나고 비료장사를 하다가 사기까지 당해서 가게 물건이 죄다 남의 빚인 지경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1년 겨울, 여느 해 같았으면 설을 앞두고 설 대목 특수를 누렸겠지만, 극심한 불경기가 찾아오면서 린 씨네 가게는 개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는다.
장사가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주 고객층인 시골사람들의 주머니가 텅텅 비었기 때문이다. 불과 한달 전에 벼를 수확했지만 지주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탈탈 털리고, 오히려 비싼 값에 쌀을 한두 되씩 사다 먹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아무리 값싸고 질 좋은 일용품도 모조리 사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린 사장이 설 맞이 대 바겐세일을 해도 그들은 물건을 살 여력이 없었다. 이에 린 사장은 “자기 장사가 적어도 간접적으로 지주나 고리대금업자에게 박탈당했다고 느꼈다.” 밀린 외상값이라도 받고 적자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시골 사람들의 봄누에치기가 잘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장사는 안되는데 지출은 늘어만 갔다. 이는 린 사장에게 사치스러운 취미가 있거나 식구들이 호화롭게 지내서가 아니라 겹겹이 뜯기는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린 사장은 가게 종업원을 최소로 줄이고 가정부마저 내보냈다. 하지만 “세금이나 상납은 빠져나갈 수 없었고, ‘갈취’는 특히나 피할 수 없었다.” 정부 당국은 이런 저런 구실을 대며 상인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1931년은 일본이 만주사변(9∙18사변)을 일으키며 대륙 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해이다. 전쟁의 발발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선망의 대상이던 일본상품이 하루아침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중국 전역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다른 잡화점과 마찬가지로 린 씨네 가게에서도 일본물건을 취급하고 있었는데, 정부 당국의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정부 당국은 규정을 어긴 가게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며 거액의 상납금을 요구했다. 상납금만 바치면 일본상표를 떼고 물건을 판매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상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백 위안의 돈을 바쳤지만 경기가 좋지 않았기에 국산으로 둔갑한 일본물건은 할인을 해도 잘 팔리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뜯기는 돈은 가게들의 자금난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다.
설 대목이 쓸쓸하게 지나가고 읍내에 있는 크고 작은 가게 스물여덟 곳이 문을 닫았다. 그 중에는 린 사장에게 빚을 지고 있는 가게도 두 곳이나 포함되었고 린 사장은 빌려준 돈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금액만 간신히 건질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상하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이 작은 가게의 자금난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세가 불안하자 그의 가게에 물건을 대주는 상하이 도매상은 외상값을 독촉하며 현금거래만을 원했고, 그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는 원금까지 회수하며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도 있듯이, 린 씨네 가게 사람들은 힘을 모아 상하이 전쟁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린 씨네 가게는 줄도산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유능한 종업원의 기지로 하늘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서우성은 린 사장이 도제(徒弟: 직업에 필요한 지식‧기능을 배우기 위하여 스승의 밑에서 일하는 직공)로 데리고 있으면서 장사를 가르치는 심복이다. 서우성은 “일본군의 폭격을 받은 상하이 지역 주민들이 린 씨네 마을로 대거 피난을 왔다”는 팩트 속에서 “대도시의 피난민은 시골 사람들과는 달리 수중에 어느 정도 돈이 있고 생필품을 사야 할 것이다”라는 데 생각이 미치고, 마침 가게에 생필품 재고가 많으니 피난민들이 몰려 있는 곳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자고 제안한다. 린 사장은 상하이 큰 상점들의 마케팅 기법을 본떠 세숫대야와 수건, 칫솔, 치약 등 가게 재고들로 묶음 상품인 ‘일 위안 세트’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린 사장은 종업원 세 명 외에 자신의 딸까지 동원하여 밤새 생필품 키트를 포장하고 광고지를 쓰고 여기저기 붙였다.
피난민을 대상으로 한 생필품 키트 마케팅은 대박을 쳤고, 새해 문을 연 첫날 린 씨네 가게만 장사가 잘 되었다. 매출액은 읍내에서 근 십 년 동안 없었던 신기록을 찍었다. 하지만 린 씨네에게 “재난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많은 재고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묶음 상품’으로 판매했을 뿐 터무니없는 가격을 붙여 폭리를 취하지 않았다. 또한 인용문 바로 뒷부분에 린 씨 부인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관세음상에 치성을 올리며 모든 소원을 다 빌면서도 상하이의 전란이 더 커지고 길어져서 더 많은 피난민이 오게 해달라는 소원만은 빌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적어도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린 씨는 과연 생필품 키트 대박으로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키워드
기회, 마케팅, 만주사변, 상하이 사변, 위기, 위기 탈출, 장사의 달인, 전화위복
전후맥락
상하이 인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수입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린 사장은 만주사변(9∙18사변)으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국민당 당국의 판매 제재로 곤란에 처한다. 그는 국민당 사무실에 사백 위안의 뇌물을 건네고, ‘바겐세일’의 방법으로 매출을 올려보려 하지만, 지주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겹겹이 착취당해서 돈이 마른 시골 사람은 설 대목에도 좀처럼 주머니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상하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자(제1차 상하이사변=1∙28사변) 그의 거래처인 상하이 도매상은 수금을 독촉하며 더 이상 외상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하고, 돈놀이를 하는 헝위안전장(恒源錢莊)[1]에서도 빚 독촉을 하며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정작 본인은 시골과 읍내에 깔아 놓은 외상을 거둬들이기 요원하여 파산 직전에 몰린다. 정월 초나흗날 저녁, 린 사장은 종업원들을 위해 조촐한 술상을 준비하고 암울한 기분으로 새해 영업개시를 의논한다.
* 전장(錢莊)은 옛날 개인이 운영하던 금융 점포를 말한다.
고전본문
정월 초나흗날 저녁, 린 사장은 삼 위안을 겨우 쓸어 모아 술자리를 열고, 가게 사람들에게 늘 해오던 대로 재신주(財神酒)를 대접하며 이튿날 영업개시 방식에 대해 의논했다. 린 사장은 이미 이런저런 궁리를 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게를 계속 열자니 손해를 볼 것이 불을 보듯 뻔했고, 그렇다고 문을 닫자니 세 식구 생계가 막막했다. 게다가 받을 빚만도 사오백 위안이나 되는데, 일단 문을 닫으면 그 돈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지출을 줄이는 것인데, 그렇다고 세금이나 상납은 빠져나갈 수 없었고, ‘갈취’는 특히나 피할 수 없었다. 점원 한 두 사람을 줄이자니 종업원은 본래 세 사람뿐인데다가 서우성(壽生)은 그의 심복이었고 나머지 둘은 처지가 딱했다. 더구나 둘을 내보내면 장사할 일손이 부족했다. 집안 일을 거들던 우(吳) 씨 어멈도 진작에 내보내서 가계는 더 이상 줄일 것이 없었다. 그는 무리를 해서라도 가게를 계속 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보살님이 보우하사 시골 사람들의 봄누에치기가 잘 되면 그가 입은 적자도 메워질 수 있었다.
허나 영업개시를 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물건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현금을 상하이로 보내지 않는 이상 물건은 받을 수 없었다. 상하이는 전란이 더욱 심해져서 외상거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재고도 진작에 바닥이 나서 진열대 위의 메리야스 상자는 텅 빈 것을 장식으로 올려둔 것이었다. 가게에 남은 것이라곤 일용잡화 뿐으로, 세숫대야나 수건 같은 것들은 아직 많았다.
다들 답답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면서 머리를 쥐어짜보았지만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담을 나누기 시작하다가 한 종업원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사람 팔자가 개만도 못하네요! 상하이 자베이(閘北)가 불에 홀랑 타버려서 수십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맨몸뚱이로 도망쳐나왔대요. 훙커우(虹口) 일대는 아직 불이 나기도 전에 벌써 사람들이 다 도망갔는데 일본놈들이 어찌나 지독한지 아무것도 못 가지고 나가게 한대요. 상하이 집값은 몇 배나 뛰었대요. 피난 나온 사람들은 다 시골로 나오고 있는데 어제 우리 읍내에도 한 무리가 왔어요. 멀쩡한 사람들 같던데 이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린 사장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우성은 이 말을 듣더니 불현듯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놓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린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아쓰(阿四) 말 들으셨죠? 우리 가게에 있는 세숫대야, 수건, 비누, 양말, 치약, 칫솔 같은 것들을 다 팔아버릴 수 있게 됐어요.”
린 사장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서우성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장님,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예요. 상하이에서 피난 나온 사람이라면 수중에 얼마간의 돈은 있을 것이고, 어찌됐든 일용품은 사야 하지 않겠어요? 빨리 그 장사 준비를 해야 한다고요.”
서우성은 이어서 말하며 다시 술잔을 비웠는데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다른 두 종업원도 그제야 알아차리고는 하하하 크게 웃었다. 린 사장만 아직도 감을 잡지 못했다. 근래에 힘든 일을 겪다 보니 감이 떨어진 것이다. 그는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자신 있나? 세숫대야나 수건은 다른 집에도 있는데……”
“사장님, 잊으셨군요! 세숫대야나 수건 같은 것들은 우리 가게 재고가 가장 많아요! 위창샹(裕昌祥)에는 세숫대야가 열 개도 없을 것이고, 그나마도 좋은 것은 골라 팔고 남은 물건이라구요. 이번 장사는 우리 말고 다른 가게는 못해요. 어서 사방에 광고를 써 붙여야 해요,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 곳에다가요. 아, 아쓰 그 사람들이 어디 살지? 거기다 광고를 붙이자고.”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친척집으로 갔고,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서책(西柵) 누에공장의 빈방을 빌려서 묵고 있어요.”
아쓰라는 종업원이 대답했다. 뜻하지 않게 큰 공을 세운 것에 우쭐해지며 얼굴이 밝아졌다. 린 사장은 그제서야 완전히 이해했다. 기분이 좋아지자 두뇌회전도 빨라지면서 곧바로 광고 문구 초안을 만들고 가게에 있는 일용품을 골라보았다. 어림잡아 십여 종은 되는 듯싶었다. 그는 상하이의 큰 상점들이 ‘일 위안 세트’를 파는 것을 모방하여 세숫대야와 수건, 칫솔, 치약 등을 일 위안 짜리 한 세트로 만들고 광고에 ‘일 위안 세트 대 바겐세일’이라고 크게 썼다. 서우성이 가게에 남아있던 커다란 색지를 잘라서 붓으로 썼다. 다른 두 종업원과 견습생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세숫대야, 수건, 칫솔, 치약을 한 세트로 만들었다. 일손이 부족하자 린 사장은 딸을 불러 광고지를 쓰고 세트로 묶는 일을 돕게 했다. 그는 자잘한 일용필수품들로 다른 ‘일 위안 세트’를 몇 가지 더 만들었다.
토론하기
(1) 린 씨네 가게가 자금난에 빠지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린 사장은 어떤 방법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는가?
(2) 피난민을 상대로 ‘일 위안 세트’를 만들어 파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자. 이에 대해 “재난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할 수 있을까?
(3) 우리 주변에서(인물, 가게, 기업 등) 아이디어 혁신 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실패나 파산의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꾼 사례를 찾아보자.
해설읽기
주인공 린 사장은 상하이 인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부친에게 물려받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장사했지만 해가 갈수록 적자가 나고 비료장사를 하다가 사기까지 당해서 가게 물건이 죄다 남의 빚인 지경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1년 겨울, 여느 해 같았으면 설을 앞두고 설 대목 특수를 누렸겠지만, 극심한 불경기가 찾아오면서 린 씨네 가게는 개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는다.
장사가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주 고객층인 시골사람들의 주머니가 텅텅 비었기 때문이다. 불과 한달 전에 벼를 수확했지만 지주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탈탈 털리고, 오히려 비싼 값에 쌀을 한두 되씩 사다 먹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아무리 값싸고 질 좋은 일용품도 모조리 사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린 사장이 설 맞이 대 바겐세일을 해도 그들은 물건을 살 여력이 없었다. 이에 린 사장은 “자기 장사가 적어도 간접적으로 지주나 고리대금업자에게 박탈당했다고 느꼈다.” 밀린 외상값이라도 받고 적자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시골 사람들의 봄누에치기가 잘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장사는 안되는데 지출은 늘어만 갔다. 이는 린 사장에게 사치스러운 취미가 있거나 식구들이 호화롭게 지내서가 아니라 겹겹이 뜯기는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린 사장은 가게 종업원을 최소로 줄이고 가정부마저 내보냈다. 하지만 “세금이나 상납은 빠져나갈 수 없었고, ‘갈취’는 특히나 피할 수 없었다.” 정부 당국은 이런 저런 구실을 대며 상인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1931년은 일본이 만주사변(9∙18사변)을 일으키며 대륙 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해이다. 전쟁의 발발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선망의 대상이던 일본상품이 하루아침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중국 전역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다른 잡화점과 마찬가지로 린 씨네 가게에서도 일본물건을 취급하고 있었는데, 정부 당국의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정부 당국은 규정을 어긴 가게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며 거액의 상납금을 요구했다. 상납금만 바치면 일본상표를 떼고 물건을 판매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상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백 위안의 돈을 바쳤지만 경기가 좋지 않았기에 국산으로 둔갑한 일본물건은 할인을 해도 잘 팔리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뜯기는 돈은 가게들의 자금난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다.
설 대목이 쓸쓸하게 지나가고 읍내에 있는 크고 작은 가게 스물여덟 곳이 문을 닫았다. 그 중에는 린 사장에게 빚을 지고 있는 가게도 두 곳이나 포함되었고 린 사장은 빌려준 돈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금액만 간신히 건질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상하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이 작은 가게의 자금난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세가 불안하자 그의 가게에 물건을 대주는 상하이 도매상은 외상값을 독촉하며 현금거래만을 원했고, 그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는 원금까지 회수하며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도 있듯이, 린 씨네 가게 사람들은 힘을 모아 상하이 전쟁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린 씨네 가게는 줄도산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유능한 종업원의 기지로 하늘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서우성은 린 사장이 도제(徒弟: 직업에 필요한 지식‧기능을 배우기 위하여 스승의 밑에서 일하는 직공)로 데리고 있으면서 장사를 가르치는 심복이다. 서우성은 “일본군의 폭격을 받은 상하이 지역 주민들이 린 씨네 마을로 대거 피난을 왔다”는 팩트 속에서 “대도시의 피난민은 시골 사람들과는 달리 수중에 어느 정도 돈이 있고 생필품을 사야 할 것이다”라는 데 생각이 미치고, 마침 가게에 생필품 재고가 많으니 피난민들이 몰려 있는 곳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자고 제안한다. 린 사장은 상하이 큰 상점들의 마케팅 기법을 본떠 세숫대야와 수건, 칫솔, 치약 등 가게 재고들로 묶음 상품인 ‘일 위안 세트’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린 사장은 종업원 세 명 외에 자신의 딸까지 동원하여 밤새 생필품 키트를 포장하고 광고지를 쓰고 여기저기 붙였다.
피난민을 대상으로 한 생필품 키트 마케팅은 대박을 쳤고, 새해 문을 연 첫날 린 씨네 가게만 장사가 잘 되었다. 매출액은 읍내에서 근 십 년 동안 없었던 신기록을 찍었다. 하지만 린 씨네에게 “재난을 돈벌이 기회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많은 재고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묶음 상품’으로 판매했을 뿐 터무니없는 가격을 붙여 폭리를 취하지 않았다. 또한 인용문 바로 뒷부분에 린 씨 부인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관세음상에 치성을 올리며 모든 소원을 다 빌면서도 상하이의 전란이 더 커지고 길어져서 더 많은 피난민이 오게 해달라는 소원만은 빌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적어도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린 씨는 과연 생필품 키트 대박으로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키워드
기회, 마케팅, 만주사변, 상하이 사변, 위기, 위기 탈출, 장사의 달인, 전화위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