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관직에서 물러나 불행이 겹으로 닥쳤던 이 년 전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이다. 베이징에서 공부하던 나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쉬저우(徐州)로 내려가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실직으로 어려워진 살림에 장례를 치르느라 빚까지 지게 된다. 장례를 마친 뒤 아버지는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난징으로 가고, 나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돌아간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난징으로 갔다가 친구를 만나고 이튿날 오전 베이징으로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탄다. 아버지는 잘 아는 여관 심부름꾼에게 아들의 배웅을 부탁하며 시시콜콜 당부를 거듭하다가 결국 못 미덥고 불안해서 직접 배웅을 나선다. 아버지는 기차역에 도착해서 짐꾼들과 흥정하고, 기차 안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아 주며, 열차 안내원에게 잘 봐 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아들은 스무 살이 넘었고 초행길도 아닌데 제 한 몸 건사하지 못 할까봐 ‘오버’하시는 아버지의 고지식함을 속으로 비웃는다.
고전본문
“아버지, 이제 그만 가세요.”
아버지가 창밖을 내다보며 말씀하셨다.
“귤을 좀 사올 테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라.”
맞은편 플랫폼 너머 철책 바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장사꾼이 보였다. 그런데 그리로 가려면 철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이쪽 플랫폼에서 내려가 다시 저쪽 플랫폼으로 올라가야 했다. 몸이 뚱뚱한 아버지로서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내가 가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당신이 가겠다며 나를 자리에 앉혔다.
검정 전통 모자를 쓰고 검정 마고자와 남색 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뒤뚱거리며 걸어가 천천히 몸을 내밀어 철길로 내려서는 모습이 모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철길을 건너 맞은편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일은 힘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플랫폼 바닥을 누른 채 두 다리를 위쪽으로 움츠려 뛰었다. 뚱뚱한 몸이 왼쪽으로 살짝 기우뚱하자 힘겨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왈칵 눈물이 솟았다. 혹시 아버지나 다른 사람에게 보일까봐 얼른 눈물을 닦았다. 다시 밖을 내다봤을 때 아버지는 이미 주황색 귤을 한 아름 앉고 몸을 돌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귤을 플랫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철길로 내려온 다음 다시 귤을 집어 철길을 건너오셨다. 이쪽 플랫폼으로 오셨을 때는 내가 얼른 부축해드렸다. 객차까지 올라오신 아버지는 귤을 모두 내 외투에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셨는지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말씀하셨다.
“이만 갈 테니 도착하면 편지해라!”
나는 아버지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몇 걸음 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씀하셨다.
“들어가거라. 안에 아무도 없잖아.”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기차역을 오가는 인파에 섞여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열차로 돌아왔다. 또 눈물이 흘러나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버지와 나는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살았지만 집안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아버지는 젊을 때 외지로 나가 생계를 꾸리며 독립적으로 꽤 많은 성과를 거두셨다. 그때 당신의 노년이 이렇게 쇠락할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걱정하다 보니 자연히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어지고, 가슴에 감정이 쌓이다 보니 자연히 밖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에 자주 화를 내셨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 달라졌다. 하지만 최근 두어 해 동안 못 만나면서 내 미덥지 못한 부분을 잊으셨는지 나를 걱정하고 손자를 염려하실 뿐이었다.
베이징에 도착한 뒤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잘 지낸다. 다만 어깨가 많이 결려서 젓가락이나 붓을 들기가 힘들구나. 아무래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나보다…….”
거기까지 읽었을 때 반짝이는 눈물 속에서 또다시 남색 두루마기와 검정 마고자를 입은 아버지의 뚱뚱한 뒷모습이 보였다. 아, 언제 다시 아버지를 뵐 수 있을까!
1925년 10월, 베이징에서
토론하기
(1) 나는 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나?
(2) 작품 속에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을 말해보자.
해설읽기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과 가르침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장성한 자식은 올챙이 시절을 잊고 때때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오히려 성가셔하곤 한다. 하지만 팔순 아버지 눈에는 환갑 아들도 언제나 어린아이이다.
고지식한 아버지를 답답해하는 아들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또다시 아들이 기차 안에서 먹을 귤을 사러 나간다. 귤을 사려면 맞은편 플랫폼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나이 들고 뚱뚱한 몸으로 플랫폼을 오르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아들은 자신이 사 오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본인이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직접 배웅을 나가서 아들이 차표를 사러 간 사이 짐을 지키고, 플랫폼을 넘어 귤을 사 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집안과 자식을 지키고 돌보려는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투박하지만 은근한 자식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두 번 눈물을 흘린다. 아들에게 귤을 사다 주기 위해 맞은편 기차 플랫폼에 오르다가 힘에 부쳐 기우뚱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나는 왈칵 눈물이 솟는다. 그리고 귤을 건네고서야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 기차역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들이 눈물을 흘린 까닭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한꺼번에 느끼며 감정이 복받쳤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의 고달픈 삶과 그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를 이해하기 시작했음 의미한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실직으로 인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 속에서도 의연하게 아들을 안심시키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타지로 직장을 구하러 간다. 형편상 짐꾼들에게 팁도 두둑하게 주지 못해서 억척스럽게 가격을 흥정하고, 열차 안내원에게도 ‘맨입’으로 부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아버지는 최선을 다한다.
그로부터 2년이 더 흐른 지금,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과 손자 걱정뿐이다.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 젊어서 외지로 나가 적잖은 큰일들을 해냈는데, 이렇게 초라한 노년을 맞이한 심경이 어떠할까?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에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키워드
가장, 부성애, 아버지와 아들
전후맥락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관직에서 물러나 불행이 겹으로 닥쳤던 이 년 전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이다. 베이징에서 공부하던 나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쉬저우(徐州)로 내려가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실직으로 어려워진 살림에 장례를 치르느라 빚까지 지게 된다. 장례를 마친 뒤 아버지는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난징으로 가고, 나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돌아간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난징으로 갔다가 친구를 만나고 이튿날 오전 베이징으로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탄다. 아버지는 잘 아는 여관 심부름꾼에게 아들의 배웅을 부탁하며 시시콜콜 당부를 거듭하다가 결국 못 미덥고 불안해서 직접 배웅을 나선다. 아버지는 기차역에 도착해서 짐꾼들과 흥정하고, 기차 안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아 주며, 열차 안내원에게 잘 봐 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아들은 스무 살이 넘었고 초행길도 아닌데 제 한 몸 건사하지 못 할까봐 ‘오버’하시는 아버지의 고지식함을 속으로 비웃는다.
고전본문
“아버지, 이제 그만 가세요.”
아버지가 창밖을 내다보며 말씀하셨다.
“귤을 좀 사올 테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라.”
맞은편 플랫폼 너머 철책 바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장사꾼이 보였다. 그런데 그리로 가려면 철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이쪽 플랫폼에서 내려가 다시 저쪽 플랫폼으로 올라가야 했다. 몸이 뚱뚱한 아버지로서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내가 가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당신이 가겠다며 나를 자리에 앉혔다.
검정 전통 모자를 쓰고 검정 마고자와 남색 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뒤뚱거리며 걸어가 천천히 몸을 내밀어 철길로 내려서는 모습이 모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철길을 건너 맞은편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일은 힘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플랫폼 바닥을 누른 채 두 다리를 위쪽으로 움츠려 뛰었다. 뚱뚱한 몸이 왼쪽으로 살짝 기우뚱하자 힘겨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왈칵 눈물이 솟았다. 혹시 아버지나 다른 사람에게 보일까봐 얼른 눈물을 닦았다. 다시 밖을 내다봤을 때 아버지는 이미 주황색 귤을 한 아름 앉고 몸을 돌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귤을 플랫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철길로 내려온 다음 다시 귤을 집어 철길을 건너오셨다. 이쪽 플랫폼으로 오셨을 때는 내가 얼른 부축해드렸다. 객차까지 올라오신 아버지는 귤을 모두 내 외투에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셨는지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말씀하셨다.
“이만 갈 테니 도착하면 편지해라!”
나는 아버지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몇 걸음 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씀하셨다.
“들어가거라. 안에 아무도 없잖아.”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기차역을 오가는 인파에 섞여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열차로 돌아왔다. 또 눈물이 흘러나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버지와 나는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살았지만 집안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아버지는 젊을 때 외지로 나가 생계를 꾸리며 독립적으로 꽤 많은 성과를 거두셨다. 그때 당신의 노년이 이렇게 쇠락할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상황을 지켜보면서 걱정하다 보니 자연히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어지고, 가슴에 감정이 쌓이다 보니 자연히 밖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에 자주 화를 내셨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 달라졌다. 하지만 최근 두어 해 동안 못 만나면서 내 미덥지 못한 부분을 잊으셨는지 나를 걱정하고 손자를 염려하실 뿐이었다.
베이징에 도착한 뒤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잘 지낸다. 다만 어깨가 많이 결려서 젓가락이나 붓을 들기가 힘들구나. 아무래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나보다…….”
거기까지 읽었을 때 반짝이는 눈물 속에서 또다시 남색 두루마기와 검정 마고자를 입은 아버지의 뚱뚱한 뒷모습이 보였다. 아, 언제 다시 아버지를 뵐 수 있을까!
1925년 10월, 베이징에서
토론하기
(1) 나는 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나?
(2) 작품 속에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을 말해보자.
해설읽기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과 가르침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장성한 자식은 올챙이 시절을 잊고 때때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오히려 성가셔하곤 한다. 하지만 팔순 아버지 눈에는 환갑 아들도 언제나 어린아이이다.
고지식한 아버지를 답답해하는 아들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또다시 아들이 기차 안에서 먹을 귤을 사러 나간다. 귤을 사려면 맞은편 플랫폼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나이 들고 뚱뚱한 몸으로 플랫폼을 오르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아들은 자신이 사 오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본인이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직접 배웅을 나가서 아들이 차표를 사러 간 사이 짐을 지키고, 플랫폼을 넘어 귤을 사 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집안과 자식을 지키고 돌보려는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투박하지만 은근한 자식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두 번 눈물을 흘린다. 아들에게 귤을 사다 주기 위해 맞은편 기차 플랫폼에 오르다가 힘에 부쳐 기우뚱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나는 왈칵 눈물이 솟는다. 그리고 귤을 건네고서야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 기차역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들이 눈물을 흘린 까닭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한꺼번에 느끼며 감정이 복받쳤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의 고달픈 삶과 그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를 이해하기 시작했음 의미한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실직으로 인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 속에서도 의연하게 아들을 안심시키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타지로 직장을 구하러 간다. 형편상 짐꾼들에게 팁도 두둑하게 주지 못해서 억척스럽게 가격을 흥정하고, 열차 안내원에게도 ‘맨입’으로 부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아버지는 최선을 다한다.
그로부터 2년이 더 흐른 지금,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과 손자 걱정뿐이다.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 젊어서 외지로 나가 적잖은 큰일들을 해냈는데, 이렇게 초라한 노년을 맞이한 심경이 어떠할까?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에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키워드
가장, 부성애, 아버지와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