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베르그송은 『웃음』에서 웃음의 몇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웃음은 인간만의 고유한 현상이고, 그것은 감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웃음은 공동체적, 사회적 현상이다. 웃음에 대한 이런 분석 외에도 그는 반복되는 몸짓과 동작이 일으키는 웃음에 대해서도 분석했으며, 역시 인간의 성격적 특성 때문에 생기는 웃음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고전본문
연설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연설하는 이를 보면 몸짓과 말이 서로 경쟁하는 듯이 보입니다. 말을 시샘하는 듯 몸짓은 생각의 뒤를 따라서 달려가며 그에게 해석자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연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몸짓이 세부적인 내용에서 생각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각은 말을 시작할 때부터 끝이 날 때까지 성장하고, 싹트고, 무르익습니다. 절대로 생각은 멈추지 않습니다. 절대로 생각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매순간 그것은 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변하기를 멈추는 것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몸짓이란 생각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몸짓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 생명의 근본적인 법칙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팔과 머리의 특정한 움직임이 항상 같고,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합시다. 만일 내가 그것을 주목해서 보고, 그것이 나를 충분히 즐겁게 하고, 내가 그 몸짓을 연설 도중에 기대하고, 내가 기다리고 있던 일이 일어난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웃을 것입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지금 내 앞에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기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생명이 아닌 것, 그것은 생명 안에 자리를 잡고, 생명을 모방하고 있는 자동기계에 속합니다. 그것이 바로 희극적인 것입니다.
-앙리 베르그송, 『웃음』, 제1장 중
토론하기
(1) 베르그송이 생각하는 생명체의 가장 큰 특성은 무엇입니까?
(2) 윗글에서 자동기계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고, 그것과 웃음 사이의 관계를 말해 봅시다.
(3) 자신의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마치 자신이 죽어 있는 것처럼 느낀 적은 없습니까?
(4) 저자에 따르면 사회가 기계적이 되어 간다는 것은 웃음을 자아내는 현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이런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해설읽기
베르그송은 웃음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웃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함께 웃음으로써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모두가 웃을 때 혼자 웃지 않기 때문에 소외감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웃음은 인간적인 현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웃는가, 라는 질문을 베르그송에게 던진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그는 웃음은 생명의 생동성을 억압한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반항이라고 답할 것이다. 베르그송은 생명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서구의 전통적인 사상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대 문화에서는 육체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었다면, 근대 문화에서는 정신보다 물질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베르그송은 물질로 구성된 육체보다는 정신을 우선시하는 근대적인 경향과 싸운 사람 중 하나이다. 극단적인 근대 유물론 철학은 인간의 육체마저도 일종의 기계로 간주했다. 라 메트리(La Mettrie)라는 저술가는 『인간 기계론』(1748)이라는 책을 쓸 정도였다. 하지만 베르그송이 보기에 생명체는 기계와 다른 것이다. 기계는 무의미한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생명체는 변화와 성장을 특징으로 한다. 베르그송은 모든 존재가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잘 알려진 용어가 있다. 의식은 시간과 함께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어서, 어느 한 지점을 잡으려 하면 이미 흘러가고 없다.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이해하는 근대 과학에서는 변화와 생성하는 시간의 문제를 마치 공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근대 과학은 창조적으로 생성하는 세계를 보기 어렵다. 생성, 운동, 변화하는 것이 세계의 본질인데, 그것이 경직화되면 웃음이 알레르기처럼 반응하며 경직성이 주는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찰리 채플린의 반복적인 행동을 보고 웃는 것도 바로 이런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베르그송은 연설가의 연설과 몸짓은 연설이 진행되면서 차이를 나타내야 하지만, 단순한 반복이 생길 경우 웃음을 일으킨다고 기술한다. 그는 기계화되어 경직된 인간을 자동기계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인간이 자동기계가 되는 것에서 구출해 주는 것이 바로 웃음이다. 그렇다면, 웃음이란 살아 있는 인간의 징표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인간이란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해 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은 경직성과 기계적인 삶의 스타일에 반항한다. 그는 이 경직성 앞에서 웃음으로 그 경직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웃음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기계적인 삶에 이미 순응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서 웃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키워드
생명, 웃음, 자동기계, 지속
전후맥락
베르그송은 『웃음』에서 웃음의 몇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웃음은 인간만의 고유한 현상이고, 그것은 감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웃음은 공동체적, 사회적 현상이다. 웃음에 대한 이런 분석 외에도 그는 반복되는 몸짓과 동작이 일으키는 웃음에 대해서도 분석했으며, 역시 인간의 성격적 특성 때문에 생기는 웃음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고전본문
연설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연설하는 이를 보면 몸짓과 말이 서로 경쟁하는 듯이 보입니다. 말을 시샘하는 듯 몸짓은 생각의 뒤를 따라서 달려가며 그에게 해석자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연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몸짓이 세부적인 내용에서 생각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각은 말을 시작할 때부터 끝이 날 때까지 성장하고, 싹트고, 무르익습니다. 절대로 생각은 멈추지 않습니다. 절대로 생각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매순간 그것은 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변하기를 멈추는 것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몸짓이란 생각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몸짓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 생명의 근본적인 법칙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팔과 머리의 특정한 움직임이 항상 같고,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합시다. 만일 내가 그것을 주목해서 보고, 그것이 나를 충분히 즐겁게 하고, 내가 그 몸짓을 연설 도중에 기대하고, 내가 기다리고 있던 일이 일어난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웃을 것입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지금 내 앞에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기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생명이 아닌 것, 그것은 생명 안에 자리를 잡고, 생명을 모방하고 있는 자동기계에 속합니다. 그것이 바로 희극적인 것입니다.
-앙리 베르그송, 『웃음』, 제1장 중
토론하기
(1) 베르그송이 생각하는 생명체의 가장 큰 특성은 무엇입니까?
(2) 윗글에서 자동기계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고, 그것과 웃음 사이의 관계를 말해 봅시다.
(3) 자신의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마치 자신이 죽어 있는 것처럼 느낀 적은 없습니까?
(4) 저자에 따르면 사회가 기계적이 되어 간다는 것은 웃음을 자아내는 현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이런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해설읽기
베르그송은 웃음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웃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함께 웃음으로써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모두가 웃을 때 혼자 웃지 않기 때문에 소외감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웃음은 인간적인 현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웃는가, 라는 질문을 베르그송에게 던진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그는 웃음은 생명의 생동성을 억압한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반항이라고 답할 것이다. 베르그송은 생명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서구의 전통적인 사상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대 문화에서는 육체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었다면, 근대 문화에서는 정신보다 물질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베르그송은 물질로 구성된 육체보다는 정신을 우선시하는 근대적인 경향과 싸운 사람 중 하나이다. 극단적인 근대 유물론 철학은 인간의 육체마저도 일종의 기계로 간주했다. 라 메트리(La Mettrie)라는 저술가는 『인간 기계론』(1748)이라는 책을 쓸 정도였다. 하지만 베르그송이 보기에 생명체는 기계와 다른 것이다. 기계는 무의미한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생명체는 변화와 성장을 특징으로 한다. 베르그송은 모든 존재가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잘 알려진 용어가 있다. 의식은 시간과 함께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어서, 어느 한 지점을 잡으려 하면 이미 흘러가고 없다.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이해하는 근대 과학에서는 변화와 생성하는 시간의 문제를 마치 공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근대 과학은 창조적으로 생성하는 세계를 보기 어렵다. 생성, 운동, 변화하는 것이 세계의 본질인데, 그것이 경직화되면 웃음이 알레르기처럼 반응하며 경직성이 주는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찰리 채플린의 반복적인 행동을 보고 웃는 것도 바로 이런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베르그송은 연설가의 연설과 몸짓은 연설이 진행되면서 차이를 나타내야 하지만, 단순한 반복이 생길 경우 웃음을 일으킨다고 기술한다. 그는 기계화되어 경직된 인간을 자동기계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인간이 자동기계가 되는 것에서 구출해 주는 것이 바로 웃음이다. 그렇다면, 웃음이란 살아 있는 인간의 징표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인간이란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해 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은 경직성과 기계적인 삶의 스타일에 반항한다. 그는 이 경직성 앞에서 웃음으로 그 경직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웃음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기계적인 삶에 이미 순응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서 웃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키워드
생명, 웃음, 자동기계, 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