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현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의 회화는 묵직한 무게감 뒤로 묘한 역동성을 드러내 보인다. 신체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대표적인 예술론이 전개되는 「세잔의 회의」(논문 모음집 『의미와 무의미』에 수록)에는 이러한 세잔의 독특한 작업방식과 그에 따른 그의 고유한 작품의 특징이 현상학자의 섬세한 기술을 통해 다루어진다. 세잔은 하나의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100번을 작업했고, 하나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150번이나 앉혀놓았다고 전해진다. 세잔은 그만큼 철저히 보면서 작업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토록 고집스러우리만치 자연에 밀착하여 그려낸 그의 회화는 우리의 습관적인 시각에 불편함을 주었다. 동료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세잔의 자살행위”라 칭했던 세잔의 유명한 ‘형태 왜곡’ 기법은 순간적 감각도 아니고, 영원한 실재도 아닌 역동적으로 구현되는 생생한 지각을 충실히 드러내고자 한 결과였다.
고전본문
인상주의는 대상이 우리의 눈을 때리고 우리의 감각을 덮치는 방식 그 자체를 그림 안에 되돌려놓고자 했다. 인상주의는 대상들이 순간적으로 지각되는 대기 속에서 그 대상들을 확고한 윤곽 없이 빛과 공기 속에 의해 얽혀있는 것으로 재현했다. […] 그러나 대기의 회화와 색조의 분할은 그와 동시에 대상을 침몰시키고 그럼으로써 그 고유의 중량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세잔이 가진 팔레트의 구성을 보면, 우리는 세잔이 인상주의자들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거기에는 프리즘의 일곱 색상이 아니라 열여덟 가지의 색상, 즉 여섯 가지의 붉은색, 다섯 가지의 노란색, 세 가지의 푸른색, 세 가지의 녹색, 그리고 한 가지의 검은색이 있다. 세잔이 따뜻한 색상과 검은 색상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대상을 재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대기 뒤의 대상을 되찾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대상은 더 이상 반사광 속에 뒤덮인 것도, 대기 및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대상은 내부로부터 은밀하게 밝혀지는 듯했고, 그 빛은 대상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이로부터 대상의 견고하고 물질적인 인상이 나온다. 게다가 세잔은 따뜻한 색채들을 생생하게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파란색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색감을 획득했다.
세잔은 자연으로부터 모델을 취하는 인상주의 미학을 유지하면서 대상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 세잔은 인상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미술관의 그림처럼 견고한 무언가를” 만들기 원했다고 단언한다. 그의 그림은 역설일 것이다. (A) 감각을 떠나지 않고, 직접적인 인상 속에서 자연만을 지침으로 취하며, 윤곽을 그리지 않고, 원근법도 구성하지 않으면서 [그와 동시에] (B) 실재를 추구하는 것. 베르나르가 세잔의 자살이라 부른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실재를 겨냥하면서, 그에 도달하는 방법들은 금지한다.
테이블 위에서 측면으로 놓인 접시와 컵들은 타원이어야 했으나, 그 타원의 두 끝점은 팽창되고 부풀어 올라있다. 귀스타브 제프루아의 초상화에서 책상은 원근법 법칙을 위배하여 그림의 아래쪽까지 늘려져 있다. 윤곽을 사라지게 만들면서 세잔은 감각의 혼돈 속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 우리가 머리를 흔들 때 대상이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보게 되는 것처럼. 베르나르가 말하길, 세잔은 “무지 속에 그림을, 어둠 속에 그의 영혼을” 던져버렸다
-메를로 퐁티 「세잔의 회의」 중에서
# 인상주의: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사물의 순간적 인상에 주목한 사조.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대표적이다. 인상주의는 조화와 균형 등 정형화된 형식미를 강조한 고전주의에 반발하면서 나타났다. 엄격한 규율과 규칙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상주의는 자연을 직접 마주할 때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각에 주목했다.
# 세잔: 프랑스의 화가. 초기에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이로부터 탈피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하게 된다.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이 강조한 ‘감각’에 고전주의자들이 잡고자 했던 ‘실재’ 모두를 화폭에 구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인상주의 VS 고전주의’, ‘감각 vs 이성’의 이분법을 넘어선 회화의 이념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후 입체파(피카소)와 야수파(마티스)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토론하기
1) 인상주의는 대상이 우리의 일차적 감각에 드러난 바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고자 했다. 이들은 어떠한 방식을 통해 이를 구현했는가?
2) 반면, 세잔은 인상주의자들과 조금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어떠한 방식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는가?
3) 매순간 변화하는 감각 속에서도 사물의 단단한 무게감을 찾고자 했던 세잔의 회화의 역설적인 특징에 대해 동료 화가 베르나르는 ‘세잔의 자살행위’라 표현했다.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의 미학(A: 감각을 그림, 직접적 인상을 그림, 윤곽과 원근법 사라짐)을 따르면서, 동시에 이들과 정반대지점에 있었던 고전주의자들의 미학(B: 직접적 감각 너머의 영원불변한 실재를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귀스타프 제프루아의 초상화에서 세잔은 이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 세잔이 추구했던 바가 성공적으로 잘 드러나 보이는가?
해설읽기
세잔은 우리의 눈에 드러난 사물과 자연 세계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그가 자연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작업한 인상주의자들의 화풍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세잔은 곧 인상주의자들이 그려낸 자연이 사실상 “순간적인 지각”에 주목한 것으로서, 단지 “빛의 덮개”를 포착하는데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인상주의는 대상들이 순간적으로 우리의 감각을 엄습하는 바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잔은 우리에게 자연이 그러한 순간적인 인상 속에 구현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상주의자들은 우리의 순간적인 감각에 나타난 바의 사물의 ‘외관’에 주목했다. 그러나 세잔은 우리에게 사물들이 이러한 순간적 인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견고한 실재감을 아울러 가지고 있음을 포착한다. 감각을 가지고 견고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감각의 표면, 즉 외관에 머물지 않고 깊이를 가진 현상과 관계하고자 함을 의미했다. 세잔은 대상과 유리된 순수 주관의 지성적 구성물도, 순수한 경험의 이상에 기초한 순간적 인상도 아닌 것을 그리고자 했다. 그는 현상의 깊이를 놓치는 양극단의 개념 모두를 부정하고 곧바로 현상의 깊이를 가시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세잔의 역설은 ‘사태 자체로’라는 현상학의 이념이 주는 역설을 반복한다. 사태 자체는 바로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 외에 다른 곳을 가리키지 않는데 왜 그것은 ‘주의’가 되고 ‘운동’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사태 자체가 우리 일상의 의식적 차원에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세잔이 눈앞에 드러나는 바 그대로의 대상을 가시화시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시간을 대상 앞에 앉아있었던 까닭은 우리의 일상이고 세속적인 시각 속에 은폐되어 있는 지각적 깊이를 다시금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였다. 왜곡된 세속적 의식 속에서 그려진 회화는 습관적 시각에는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우리의 역동적인 지각적 실재의 깊이를 은폐한다.
현상학은 전통철학이 객관적 사고 양식에 머물면서 온갖 이분법들을 양산해냈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러한 이분법을 양산하는 우리의 모든 의식적 사고 작용 이전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다. 세잔도 마찬가지였다. 객관적 사고의 편견은 철학뿐만 아니라 회화의 전통에서도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이 고정되어버린 이분법 구도들, 즉 감각과 판단, 보는 화가와 사고하는 화가, 자연과 구성, 원시주의와 전통의 양자택일들을 피하려 노력했으며, “계속적으로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회화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기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력은 현상학자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 또한 세잔은 원초적 세계를 그리기를 원했는데,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원초적 세계를 그린다는 것이 “지성, 관념, 과학, 원근법, 그리고 전통 등을 자연의 세계와의 접촉에 되돌려놓는”행위였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세계와의 보다 근본적인 접촉을 하고자 하는 메를로-퐁티 현상학의 일관된 입장이 예술 속에 구체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키워드
감각, 고전주의, 세잔, 원근법, 인상주의, 현상학
전후맥락
‘현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의 회화는 묵직한 무게감 뒤로 묘한 역동성을 드러내 보인다. 신체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대표적인 예술론이 전개되는 「세잔의 회의」(논문 모음집 『의미와 무의미』에 수록)에는 이러한 세잔의 독특한 작업방식과 그에 따른 그의 고유한 작품의 특징이 현상학자의 섬세한 기술을 통해 다루어진다. 세잔은 하나의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100번을 작업했고, 하나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150번이나 앉혀놓았다고 전해진다. 세잔은 그만큼 철저히 보면서 작업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토록 고집스러우리만치 자연에 밀착하여 그려낸 그의 회화는 우리의 습관적인 시각에 불편함을 주었다. 동료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세잔의 자살행위”라 칭했던 세잔의 유명한 ‘형태 왜곡’ 기법은 순간적 감각도 아니고, 영원한 실재도 아닌 역동적으로 구현되는 생생한 지각을 충실히 드러내고자 한 결과였다.
고전본문
인상주의는 대상이 우리의 눈을 때리고 우리의 감각을 덮치는 방식 그 자체를 그림 안에 되돌려놓고자 했다. 인상주의는 대상들이 순간적으로 지각되는 대기 속에서 그 대상들을 확고한 윤곽 없이 빛과 공기 속에 의해 얽혀있는 것으로 재현했다. […] 그러나 대기의 회화와 색조의 분할은 그와 동시에 대상을 침몰시키고 그럼으로써 그 고유의 중량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세잔이 가진 팔레트의 구성을 보면, 우리는 세잔이 인상주의자들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거기에는 프리즘의 일곱 색상이 아니라 열여덟 가지의 색상, 즉 여섯 가지의 붉은색, 다섯 가지의 노란색, 세 가지의 푸른색, 세 가지의 녹색, 그리고 한 가지의 검은색이 있다. 세잔이 따뜻한 색상과 검은 색상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대상을 재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대기 뒤의 대상을 되찾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대상은 더 이상 반사광 속에 뒤덮인 것도, 대기 및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대상은 내부로부터 은밀하게 밝혀지는 듯했고, 그 빛은 대상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이로부터 대상의 견고하고 물질적인 인상이 나온다. 게다가 세잔은 따뜻한 색채들을 생생하게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파란색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색감을 획득했다.
세잔은 자연으로부터 모델을 취하는 인상주의 미학을 유지하면서 대상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 세잔은 인상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미술관의 그림처럼 견고한 무언가를” 만들기 원했다고 단언한다. 그의 그림은 역설일 것이다. (A) 감각을 떠나지 않고, 직접적인 인상 속에서 자연만을 지침으로 취하며, 윤곽을 그리지 않고, 원근법도 구성하지 않으면서 [그와 동시에] (B) 실재를 추구하는 것. 베르나르가 세잔의 자살이라 부른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실재를 겨냥하면서, 그에 도달하는 방법들은 금지한다.
테이블 위에서 측면으로 놓인 접시와 컵들은 타원이어야 했으나, 그 타원의 두 끝점은 팽창되고 부풀어 올라있다. 귀스타브 제프루아의 초상화에서 책상은 원근법 법칙을 위배하여 그림의 아래쪽까지 늘려져 있다. 윤곽을 사라지게 만들면서 세잔은 감각의 혼돈 속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 우리가 머리를 흔들 때 대상이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보게 되는 것처럼. 베르나르가 말하길, 세잔은 “무지 속에 그림을, 어둠 속에 그의 영혼을” 던져버렸다
-메를로 퐁티 「세잔의 회의」 중에서
# 인상주의: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사물의 순간적 인상에 주목한 사조.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대표적이다. 인상주의는 조화와 균형 등 정형화된 형식미를 강조한 고전주의에 반발하면서 나타났다. 엄격한 규율과 규칙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상주의는 자연을 직접 마주할 때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각에 주목했다.
# 세잔: 프랑스의 화가. 초기에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이로부터 탈피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하게 된다.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이 강조한 ‘감각’에 고전주의자들이 잡고자 했던 ‘실재’ 모두를 화폭에 구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인상주의 VS 고전주의’, ‘감각 vs 이성’의 이분법을 넘어선 회화의 이념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후 입체파(피카소)와 야수파(마티스)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토론하기
1) 인상주의는 대상이 우리의 일차적 감각에 드러난 바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고자 했다. 이들은 어떠한 방식을 통해 이를 구현했는가?
2) 반면, 세잔은 인상주의자들과 조금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어떠한 방식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는가?
3) 매순간 변화하는 감각 속에서도 사물의 단단한 무게감을 찾고자 했던 세잔의 회화의 역설적인 특징에 대해 동료 화가 베르나르는 ‘세잔의 자살행위’라 표현했다.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의 미학(A: 감각을 그림, 직접적 인상을 그림, 윤곽과 원근법 사라짐)을 따르면서, 동시에 이들과 정반대지점에 있었던 고전주의자들의 미학(B: 직접적 감각 너머의 영원불변한 실재를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귀스타프 제프루아의 초상화에서 세잔은 이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 세잔이 추구했던 바가 성공적으로 잘 드러나 보이는가?
해설읽기
세잔은 우리의 눈에 드러난 사물과 자연 세계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그가 자연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작업한 인상주의자들의 화풍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세잔은 곧 인상주의자들이 그려낸 자연이 사실상 “순간적인 지각”에 주목한 것으로서, 단지 “빛의 덮개”를 포착하는데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인상주의는 대상들이 순간적으로 우리의 감각을 엄습하는 바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잔은 우리에게 자연이 그러한 순간적인 인상 속에 구현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상주의자들은 우리의 순간적인 감각에 나타난 바의 사물의 ‘외관’에 주목했다. 그러나 세잔은 우리에게 사물들이 이러한 순간적 인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견고한 실재감을 아울러 가지고 있음을 포착한다. 감각을 가지고 견고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감각의 표면, 즉 외관에 머물지 않고 깊이를 가진 현상과 관계하고자 함을 의미했다. 세잔은 대상과 유리된 순수 주관의 지성적 구성물도, 순수한 경험의 이상에 기초한 순간적 인상도 아닌 것을 그리고자 했다. 그는 현상의 깊이를 놓치는 양극단의 개념 모두를 부정하고 곧바로 현상의 깊이를 가시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세잔의 역설은 ‘사태 자체로’라는 현상학의 이념이 주는 역설을 반복한다. 사태 자체는 바로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 외에 다른 곳을 가리키지 않는데 왜 그것은 ‘주의’가 되고 ‘운동’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사태 자체가 우리 일상의 의식적 차원에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세잔이 눈앞에 드러나는 바 그대로의 대상을 가시화시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시간을 대상 앞에 앉아있었던 까닭은 우리의 일상이고 세속적인 시각 속에 은폐되어 있는 지각적 깊이를 다시금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였다. 왜곡된 세속적 의식 속에서 그려진 회화는 습관적 시각에는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우리의 역동적인 지각적 실재의 깊이를 은폐한다.
현상학은 전통철학이 객관적 사고 양식에 머물면서 온갖 이분법들을 양산해냈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러한 이분법을 양산하는 우리의 모든 의식적 사고 작용 이전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다. 세잔도 마찬가지였다. 객관적 사고의 편견은 철학뿐만 아니라 회화의 전통에서도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세잔이 고정되어버린 이분법 구도들, 즉 감각과 판단, 보는 화가와 사고하는 화가, 자연과 구성, 원시주의와 전통의 양자택일들을 피하려 노력했으며, “계속적으로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회화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기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력은 현상학자의 노력과 맞닿아 있다. 또한 세잔은 원초적 세계를 그리기를 원했는데,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원초적 세계를 그린다는 것이 “지성, 관념, 과학, 원근법, 그리고 전통 등을 자연의 세계와의 접촉에 되돌려놓는”행위였다고 평가한다. 이것은 세계와의 보다 근본적인 접촉을 하고자 하는 메를로-퐁티 현상학의 일관된 입장이 예술 속에 구체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키워드
감각, 고전주의, 세잔, 원근법, 인상주의, 현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