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조선시대 문인이자 학자인 최립(崔岦, 1539~1612)의 「낭간권서(琅玕卷序)」는 대나무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에 쓴 서문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낭간이란 녹색 또는 청녹색의 반투명한 빛깔을 띄는 옥(玉)의 종류인데, 대나무를 지칭할 때 자주 쓰였다. 이 글은 당시에 묵죽화로 유명했던 석양군(石陽君) 이정(李霆, 1554~1626)의 작품에 쓴 것으로, 대나무와 같은 식물을 왜 감상할 필요가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직접 대나무 숲을 찾아가지 않아도 대나무를 그린 그림으로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음을 피력하여 예술 감상에 대해 이른바 ‘와유(臥遊)’의 가치로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고전본문
내가 어렸을 때는 감상할 만한 온갖 사물들에 대해 업신여기며 쓸모없게 여겨서 그다지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왕자유(王子猷)*가 대나무를 좋아해서 “어떻게 하루라도 이 친구[此君] 없이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나 소자첨(蘇子瞻)*이 이로 인해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만든다.”고 한 것을 듣고는 비웃으면서 “사람은 스스로 마음이 청량하지 못할까 근심해야지 어찌 외물에 의지하여 속하다느니 마느니 하는가.”하였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사물과 더불어 서로 절차탁마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어울릴만한 운치 있는 모든 것들이 비록 내 마음을 꼭 감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으로 마땅히 내 마음을 돕고 일으킬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성현(聖賢)의 말씀으로부터 이미 찾아볼 수 있는 것이어서, 예를 들어 아무 까닭없이 옥(玉)을 몸에서 떼어내지 않는다거나 금슬(琴瑟)과 같은 악기류를 항상 앞에 두고는 치우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무릇 대나무는 하나의 식물일 뿐이라서 사람의 마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으나 눈으로 보면 그 색이 옥(玉)과 같고, 귀로 들으면 그 소리가 금슬(琴瑟)과 같으니, 눈과 귀로 체득하여 그 마음을 기르는 것 또한 배우는 이가 날마다 새롭게 되는 방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옥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있고 금슬을 없앨 수 있게 된 연후에야 대나무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비웃어서는 아니 될 것을 비웃었음을 크게 깨쳤다.
그러나 대나무는 모름지기 많은 인력을 들인 연후에야 갖출 수 있다. 비록 왕자유와 같은 고상한 인물은 남의 집을 빌려 거처하면서도 대나무를 심었고, 남이 조성한 대나무 숲에 곧장 찾아가기도 했지만 돌아보건대 이 역시 잡다한 일을 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된다. 이에 문여가(文與可)*와 같은 분들이 먹의 오묘함으로 전신(傳神)*하여 그린 것을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얻게 된다면 눈으로 보이는 색은 바뀌었으나 옥과 같은 대나무 색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을 것이며, 귀로 들리는 소리는 없으나 금슬과 같은 대나무 소리가 본래 남아있는 것 같을 것이다. 혹은 대나무 그림을 네 벽에 가득 채워도 남아돈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며 혹은 손바닥 위에 두고 보아도 부족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또 왕자유 보다 한 수 더 높지 않겠는가.
-『간이집』 권3, 「낭간권서」 중에서
* 왕자유(王子猷) : 중국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 자유는 왕휘지의 자(字).
* 소자첨(蘇子瞻) : 북송(北宋)의 소식(蘇軾). 자첨은 소식의 자(字)
* 문여가(文與可) : 북송(北宋)의 문동(文同). 여가는 문동의 자(字).
* 전신(傳神) : 회화에서 대상에 내재된 정신 내지는 본질을 전달하는 것.
토론하기
(1) 본문에서는 대나무가 감상자로 하여금 날마다 새로워지며 마음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대나무의 어떤 속성이 감상자의 마음을 돕게 하는 것인지 얘기해보자. 더 나아가 그림과 같은 예술 감상이 감상자의 정서에 어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토론해보자.
(2) 본문에서는 직접 대나무를 보러 가지 않아도 대나무 그림을 통해 옥과 같은 색이나 금슬과 같은 대나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대나무 감상과 대나무 그림 감상의 효과를 동일시한 것이다. 직접 대나무를 감상하는 것 대신에 대나무 그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비슷한 효과를 이룰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시골 마을을 걷다보면 대나무 숲을 보게 될 때가 많다. 고택 뒤에 자리잡은 대나무 숲은 여전히 푸르게 우리를 반기곤 한다. 옛 사람들은 왜 대나무를 심어두고 대나무를 그림으로 그려 감상하길 좋아했을까?
유가 문화권에서 사대부 문사들은 자연물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고는 이를 애호하곤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 네 가지 식물을 사군자(四君子)로 통칭하거나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일러 세한삼우(歲寒三友), 혹은 삼청(三淸)으로 부르는 것은 이들 식물이 지니는 어떤 속성을 군자의 덕성에 비유하여 인문적인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매화나 대나무가 지니는 상징성에 깊이 공명하며 이를 애호하였다. 그 가운데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면서 곧게 뻗어나가는 모습, 늘 푸른 모습이 군자의 고고한 기상을 상징하게 되면서 이에 대한 감상과 창작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와 동시에 대나무의 좋은 감화력이 사람을 맑히고 바른 뜻을 세우게 하여 심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향유되었다. 최립이 쓴 이 글도 그런 배경 속에서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최립은 대나무가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마음을 기르는 측면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대나무를 눈으로 보면 그 색이 옥과 같고, 귀로 들으면 그 소리가 금슬과 같아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이 마음을 쇄신시켜 날마다 새로워지는 방도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대나무의 색을 옥으로 비유하고, 대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를 금슬로 비유하게 되는데, 이 옥과 금슬에 대한 의미를 담아놓은 『예기(禮記)』, 「옥조(玉藻)」의 “임금은 아무 까닭 없이 옥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으며, 대부는 아무 까닭 없이 걸어 놓은 악기를 치우지 않으며, 선비는 아무 까닭 없이 금슬을 없애지 않는다.”는 말과 연결시켜 대나무를 애호할 수 있는 이유로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최립은 대나무 그림의 가치를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기 종병(宗炳)이 말하였던 ‘와유(臥遊)’의 관점으로 피력해놓고 있다. 아무리 대나무를 애호하더라고 대나무를 심거나 찾아가는 일은 번거로울 수 있는데, 이를 그림으로 대신하면 대나무의 운치를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나무 그림으로 대나무가 지니는 옥빛을 떠올리고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금슬과 같은 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와유’는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종병이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 더 이상 유람을 할 수 없게 되자 그가 노닐었던 산을 벽에 그려 놓고 방안에서 그것을 감상하면서 노닐고자 하였던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대나무 그림 감상이 대나무 감상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신(傳神)’이란 말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즉, 문동과 같은 뛰어난 화가가 대나무의 본질(神)을 화폭에 형상으로 전달하면, 대나무에 내재한 정신이 그대로 옮겨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실제 대숲에 가지 않아도 대나무 그림으로 옥과 같은 대숲을 보고, 금슬과 같은 대숲의 소리를 듣는 ‘와유’의 효과로 자신을 쇄신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최립은 대나무 그림을 감상하는 것 역시 대나무가 지니는 그러한 맑고 곧은 품성이 자신의 정서를 쇄신시키고 심성을 도야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보고 있다.
키워드
대나무, 대나무 감상, 예술 감상, 예술 창작, 예술의 가치, 최립(崔岦)
전후맥락
조선시대 문인이자 학자인 최립(崔岦, 1539~1612)의 「낭간권서(琅玕卷序)」는 대나무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에 쓴 서문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낭간이란 녹색 또는 청녹색의 반투명한 빛깔을 띄는 옥(玉)의 종류인데, 대나무를 지칭할 때 자주 쓰였다. 이 글은 당시에 묵죽화로 유명했던 석양군(石陽君) 이정(李霆, 1554~1626)의 작품에 쓴 것으로, 대나무와 같은 식물을 왜 감상할 필요가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직접 대나무 숲을 찾아가지 않아도 대나무를 그린 그림으로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음을 피력하여 예술 감상에 대해 이른바 ‘와유(臥遊)’의 가치로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고전본문
내가 어렸을 때는 감상할 만한 온갖 사물들에 대해 업신여기며 쓸모없게 여겨서 그다지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왕자유(王子猷)*가 대나무를 좋아해서 “어떻게 하루라도 이 친구[此君] 없이 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나 소자첨(蘇子瞻)*이 이로 인해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만든다.”고 한 것을 듣고는 비웃으면서 “사람은 스스로 마음이 청량하지 못할까 근심해야지 어찌 외물에 의지하여 속하다느니 마느니 하는가.”하였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사물과 더불어 서로 절차탁마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어울릴만한 운치 있는 모든 것들이 비록 내 마음을 꼭 감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으로 마땅히 내 마음을 돕고 일으킬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성현(聖賢)의 말씀으로부터 이미 찾아볼 수 있는 것이어서, 예를 들어 아무 까닭없이 옥(玉)을 몸에서 떼어내지 않는다거나 금슬(琴瑟)과 같은 악기류를 항상 앞에 두고는 치우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무릇 대나무는 하나의 식물일 뿐이라서 사람의 마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으나 눈으로 보면 그 색이 옥(玉)과 같고, 귀로 들으면 그 소리가 금슬(琴瑟)과 같으니, 눈과 귀로 체득하여 그 마음을 기르는 것 또한 배우는 이가 날마다 새롭게 되는 방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옥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있고 금슬을 없앨 수 있게 된 연후에야 대나무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비웃어서는 아니 될 것을 비웃었음을 크게 깨쳤다.
그러나 대나무는 모름지기 많은 인력을 들인 연후에야 갖출 수 있다. 비록 왕자유와 같은 고상한 인물은 남의 집을 빌려 거처하면서도 대나무를 심었고, 남이 조성한 대나무 숲에 곧장 찾아가기도 했지만 돌아보건대 이 역시 잡다한 일을 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된다. 이에 문여가(文與可)*와 같은 분들이 먹의 오묘함으로 전신(傳神)*하여 그린 것을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얻게 된다면 눈으로 보이는 색은 바뀌었으나 옥과 같은 대나무 색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을 것이며, 귀로 들리는 소리는 없으나 금슬과 같은 대나무 소리가 본래 남아있는 것 같을 것이다. 혹은 대나무 그림을 네 벽에 가득 채워도 남아돈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며 혹은 손바닥 위에 두고 보아도 부족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또 왕자유 보다 한 수 더 높지 않겠는가.
-『간이집』 권3, 「낭간권서」 중에서
* 왕자유(王子猷) : 중국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 자유는 왕휘지의 자(字).
* 소자첨(蘇子瞻) : 북송(北宋)의 소식(蘇軾). 자첨은 소식의 자(字)
* 문여가(文與可) : 북송(北宋)의 문동(文同). 여가는 문동의 자(字).
* 전신(傳神) : 회화에서 대상에 내재된 정신 내지는 본질을 전달하는 것.
토론하기
(1) 본문에서는 대나무가 감상자로 하여금 날마다 새로워지며 마음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대나무의 어떤 속성이 감상자의 마음을 돕게 하는 것인지 얘기해보자. 더 나아가 그림과 같은 예술 감상이 감상자의 정서에 어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토론해보자.
(2) 본문에서는 직접 대나무를 보러 가지 않아도 대나무 그림을 통해 옥과 같은 색이나 금슬과 같은 대나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대나무 감상과 대나무 그림 감상의 효과를 동일시한 것이다. 직접 대나무를 감상하는 것 대신에 대나무 그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비슷한 효과를 이룰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시골 마을을 걷다보면 대나무 숲을 보게 될 때가 많다. 고택 뒤에 자리잡은 대나무 숲은 여전히 푸르게 우리를 반기곤 한다. 옛 사람들은 왜 대나무를 심어두고 대나무를 그림으로 그려 감상하길 좋아했을까?
유가 문화권에서 사대부 문사들은 자연물에 어떤 상징성을 부여하고는 이를 애호하곤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 네 가지 식물을 사군자(四君子)로 통칭하거나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일러 세한삼우(歲寒三友), 혹은 삼청(三淸)으로 부르는 것은 이들 식물이 지니는 어떤 속성을 군자의 덕성에 비유하여 인문적인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매화나 대나무가 지니는 상징성에 깊이 공명하며 이를 애호하였다. 그 가운데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면서 곧게 뻗어나가는 모습, 늘 푸른 모습이 군자의 고고한 기상을 상징하게 되면서 이에 대한 감상과 창작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와 동시에 대나무의 좋은 감화력이 사람을 맑히고 바른 뜻을 세우게 하여 심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향유되었다. 최립이 쓴 이 글도 그런 배경 속에서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최립은 대나무가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마음을 기르는 측면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대나무를 눈으로 보면 그 색이 옥과 같고, 귀로 들으면 그 소리가 금슬과 같아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이 마음을 쇄신시켜 날마다 새로워지는 방도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대나무의 색을 옥으로 비유하고, 대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를 금슬로 비유하게 되는데, 이 옥과 금슬에 대한 의미를 담아놓은 『예기(禮記)』, 「옥조(玉藻)」의 “임금은 아무 까닭 없이 옥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으며, 대부는 아무 까닭 없이 걸어 놓은 악기를 치우지 않으며, 선비는 아무 까닭 없이 금슬을 없애지 않는다.”는 말과 연결시켜 대나무를 애호할 수 있는 이유로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최립은 대나무 그림의 가치를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기 종병(宗炳)이 말하였던 ‘와유(臥遊)’의 관점으로 피력해놓고 있다. 아무리 대나무를 애호하더라고 대나무를 심거나 찾아가는 일은 번거로울 수 있는데, 이를 그림으로 대신하면 대나무의 운치를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나무 그림으로 대나무가 지니는 옥빛을 떠올리고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금슬과 같은 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와유’는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종병이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 더 이상 유람을 할 수 없게 되자 그가 노닐었던 산을 벽에 그려 놓고 방안에서 그것을 감상하면서 노닐고자 하였던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대나무 그림 감상이 대나무 감상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신(傳神)’이란 말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즉, 문동과 같은 뛰어난 화가가 대나무의 본질(神)을 화폭에 형상으로 전달하면, 대나무에 내재한 정신이 그대로 옮겨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실제 대숲에 가지 않아도 대나무 그림으로 옥과 같은 대숲을 보고, 금슬과 같은 대숲의 소리를 듣는 ‘와유’의 효과로 자신을 쇄신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최립은 대나무 그림을 감상하는 것 역시 대나무가 지니는 그러한 맑고 곧은 품성이 자신의 정서를 쇄신시키고 심성을 도야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보고 있다.
키워드
대나무, 대나무 감상, 예술 감상, 예술 창작, 예술의 가치, 최립(崔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