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공리주의자 벤담은 사회 전체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다. 벤담이 고안해 낸 건축물 ‘일망 감시시설’은 벤담의 이상을 투영시킨 건축물이다. 지하감옥에서 권력은 수감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방치되어 있는 흐릿한 대상에 불과했다. 반면 ‘일망 감시시설’에서 수감자는 어둠에서 빠져나와 환한 조명을 받고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의 삶은 과연 나아진 것일까? 다음 글에서 푸코는 ‘일망 감시시설’의 형태를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이것이 권력의 새로운 작동방식에 대한 의미심장한 상징임을 밝힌다.
고전본문
벤담(Bentham)의 ‘일망(一望) 감시시설’(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 그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주위는 원형의 건물이 에워싸고 있고, 그 중심에는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원형건물의 안쪽으로 향해 있는 여러 개의 큰 창문들이 뚫려 있다. 주위의 건물은 독방들로 나누어져 있고, 독방 하나하나는 건물의 앞면에서부터 뒷면까지 내부의 공간을 모두 차지한다. 독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을 향하여 탑의 창문에 대응하는 위치에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면해 있어서 이를 통하여 빛이 독방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중앙의 탑 속에는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각 독방 안에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 등 누구든지 한 사람씩 감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역광선의 효과를 이용하여 주위 건물의 독방 안에 있는 수감자의 윤곽이 정확하게 빛 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탑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완전히 개별화되고 항상 밖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한 사람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무대들이자 수많은 감방이다. 일망 감시의 이 장치는 끊임없이 대상을 바라볼 수 있고, 즉각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그러한 공간적 단위들을 구획 정리한다. 요컨대 이곳에서는 지하감옥의 원리가 전도되어 있다. 아니 오히려 지하감옥의 세 가지 기능 – 감금하고, 빛을 차단하고, 숨겨두는 – 중에서 첫 번째 것만 남겨 놓고 뒤의 두 가지를 없애버린 형태이다. 충분한 빛과 감시자의 시선이, 결국 보호의 구실을 하던 어둠의 상태보다 훨씬 수월하게 상대를 포착할 수 있다. 가시성의 상태가 바로 함정인 것이다.
*벤담 :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를 주창
*일망(一望) : 한눈에 바라봄
*전도(顚倒) : 원래와 달리 거꾸로 됨 또는 그렇게 만듦
*가시성(可視性) : 눈으로 볼 수 있는 특성 또는 성격
『감시와 처벌』, 제3부 규율 제3장 일망 감시방법 중에서
토론하기
(1) 감시인이 수감자를 바라보는 시점과 수감자가 감시인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일망 감시시설’의 모습을 간략히 그려봅시다.
(2) 마지막 문장 “가시성의 상태가 바로 함정인 것이다”를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일망 감시시설’은 감옥의 특정한 건축형태를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망 감시시설’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의 사례를 찾아보고 그 이유를 설명해봅시다.
해설읽기
감시탑에서 수감자의 모습은 잘 보여지지만 수감자는 감시탑의 내부를 볼 수 없다. 그는 간수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만, 스스로 정보를 소통할 수 있는 주체는 되지 못한다. 또한 수감자를 둘러싸고 있는 양쪽의 벽은 갇혀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차단시키는 효과가 있다. 과거 지하감옥에서 수감자들은 어두컴컴한 공간에 그저 방치되어 있었다. 수감자들은 좋든 싫든 끼리끼리 어울려 지낼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에서 끔찍하게 잔인한 일도 예측을 벗어나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발생해서 그 일부는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져오기도 한다. 사회를 개혁하려던 벤담은 이 새로운 시설에서 엄청난 혁신을 발견했다. 수감자들끼리의 음모나, 집단 탈옥의 시도, 출감 후의 범죄계획 모의 등의 나쁜 영향이 발생할 염려가 사라진 것이다. 일망 감시시설에서는 밀집한 군중들과 다양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소멸되는 대신 그 자리에 분리된 개인들이 들어섰다. 간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군중 대신 통제가 가능한 다수가 들어선 것이었고, 죄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고립된 격리상태가 된 것이었다.
다시 일망 감시시설로 돌아가보자. 주위를 둘러싼 원형의 건물 안에서 수감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완전히 보이기만 하고, 중앙부의 탑 속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결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가리켜 푸코는 일망 감시장치는 ‘봄-보임을 분리시키는 장치’라고 말했다. 일망 감시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수감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탑에서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게 된다. 이제 실제로 중앙에서 감시하는 인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건축물이 낳는 효과 덕분에 사람이 없어도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이 보장된다. 풀어서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가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수감자는 권력을 알아서 내면화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일망 감시시설이라는 건축물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는 권력관계라는 새로운 권력관계를 창출해내고 유지시킨다. 통상 우리는 권력을 힘 있는 인물이 행사하는 강제력과 같은 것으로 단순하게 정의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고나면 우리는 더 이상 권력에 대해서 전과 같이 사고하기 힘들어진다. 권력은 일망 감시시설과 같은 건축물을 통해서 사회 곳곳에 배치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권력의 근원은 인격이 아니라 장치 속에 존재한다. 이제 권력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굳이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일망 감시시설 속에 있는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권력을 내면화하게 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강자와 약자, 혹은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에서 작동한다는 통념을 넘어선다. 현대 사회의 권력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않으며 강제성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의식을 갖기 힘든, 내면화된 권력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키워드
감시, 감옥, 규율, 일망, 감시시설, 처벌, 판옵티콘, 훈육
전후맥락
공리주의자 벤담은 사회 전체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데 관심이 있었다. 벤담이 고안해 낸 건축물 ‘일망 감시시설’은 벤담의 이상을 투영시킨 건축물이다. 지하감옥에서 권력은 수감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방치되어 있는 흐릿한 대상에 불과했다. 반면 ‘일망 감시시설’에서 수감자는 어둠에서 빠져나와 환한 조명을 받고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의 삶은 과연 나아진 것일까? 다음 글에서 푸코는 ‘일망 감시시설’의 형태를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이것이 권력의 새로운 작동방식에 대한 의미심장한 상징임을 밝힌다.
고전본문
벤담(Bentham)의 ‘일망(一望) 감시시설’(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 그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주위는 원형의 건물이 에워싸고 있고, 그 중심에는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원형건물의 안쪽으로 향해 있는 여러 개의 큰 창문들이 뚫려 있다. 주위의 건물은 독방들로 나누어져 있고, 독방 하나하나는 건물의 앞면에서부터 뒷면까지 내부의 공간을 모두 차지한다. 독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하나는 안쪽을 향하여 탑의 창문에 대응하는 위치에 나 있고,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면해 있어서 이를 통하여 빛이 독방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중앙의 탑 속에는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각 독방 안에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 등 누구든지 한 사람씩 감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역광선의 효과를 이용하여 주위 건물의 독방 안에 있는 수감자의 윤곽이 정확하게 빛 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탑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완전히 개별화되고 항상 밖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한 사람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무대들이자 수많은 감방이다. 일망 감시의 이 장치는 끊임없이 대상을 바라볼 수 있고, 즉각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그러한 공간적 단위들을 구획 정리한다. 요컨대 이곳에서는 지하감옥의 원리가 전도되어 있다. 아니 오히려 지하감옥의 세 가지 기능 – 감금하고, 빛을 차단하고, 숨겨두는 – 중에서 첫 번째 것만 남겨 놓고 뒤의 두 가지를 없애버린 형태이다. 충분한 빛과 감시자의 시선이, 결국 보호의 구실을 하던 어둠의 상태보다 훨씬 수월하게 상대를 포착할 수 있다. 가시성의 상태가 바로 함정인 것이다.
*벤담 :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를 주창
*일망(一望) : 한눈에 바라봄
*전도(顚倒) : 원래와 달리 거꾸로 됨 또는 그렇게 만듦
*가시성(可視性) : 눈으로 볼 수 있는 특성 또는 성격
『감시와 처벌』, 제3부 규율 제3장 일망 감시방법 중에서
토론하기
(1) 감시인이 수감자를 바라보는 시점과 수감자가 감시인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일망 감시시설’의 모습을 간략히 그려봅시다.
(2) 마지막 문장 “가시성의 상태가 바로 함정인 것이다”를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일망 감시시설’은 감옥의 특정한 건축형태를 가리키는 이름이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망 감시시설’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의 사례를 찾아보고 그 이유를 설명해봅시다.
해설읽기
감시탑에서 수감자의 모습은 잘 보여지지만 수감자는 감시탑의 내부를 볼 수 없다. 그는 간수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만, 스스로 정보를 소통할 수 있는 주체는 되지 못한다. 또한 수감자를 둘러싸고 있는 양쪽의 벽은 갇혀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차단시키는 효과가 있다. 과거 지하감옥에서 수감자들은 어두컴컴한 공간에 그저 방치되어 있었다. 수감자들은 좋든 싫든 끼리끼리 어울려 지낼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에서 끔찍하게 잔인한 일도 예측을 벗어나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발생해서 그 일부는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져오기도 한다. 사회를 개혁하려던 벤담은 이 새로운 시설에서 엄청난 혁신을 발견했다. 수감자들끼리의 음모나, 집단 탈옥의 시도, 출감 후의 범죄계획 모의 등의 나쁜 영향이 발생할 염려가 사라진 것이다. 일망 감시시설에서는 밀집한 군중들과 다양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소멸되는 대신 그 자리에 분리된 개인들이 들어섰다. 간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군중 대신 통제가 가능한 다수가 들어선 것이었고, 죄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고립된 격리상태가 된 것이었다.
다시 일망 감시시설로 돌아가보자. 주위를 둘러싼 원형의 건물 안에서 수감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완전히 보이기만 하고, 중앙부의 탑 속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결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가리켜 푸코는 일망 감시장치는 ‘봄-보임을 분리시키는 장치’라고 말했다. 일망 감시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수감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탑에서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게 된다. 이제 실제로 중앙에서 감시하는 인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건축물이 낳는 효과 덕분에 사람이 없어도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이 보장된다. 풀어서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가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수감자는 권력을 알아서 내면화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일망 감시시설이라는 건축물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는 권력관계라는 새로운 권력관계를 창출해내고 유지시킨다. 통상 우리는 권력을 힘 있는 인물이 행사하는 강제력과 같은 것으로 단순하게 정의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고나면 우리는 더 이상 권력에 대해서 전과 같이 사고하기 힘들어진다. 권력은 일망 감시시설과 같은 건축물을 통해서 사회 곳곳에 배치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권력의 근원은 인격이 아니라 장치 속에 존재한다. 이제 권력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굳이 폭력적인 수단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일망 감시시설 속에 있는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권력을 내면화하게 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강자와 약자, 혹은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에서 작동한다는 통념을 넘어선다. 현대 사회의 권력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않으며 강제성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의식을 갖기 힘든, 내면화된 권력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키워드
감시, 감옥, 규율, 일망, 감시시설, 처벌, 판옵티콘, 훈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