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간척지 공사장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법으로 정해진 임금 150원이 규정 대로 지급되지 않고, 임금 명목으로 발급되는 130원짜리 전표 역시 회사 서기와 십장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공모에 의해 대부분 가로채인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 일을 할수록 오히려 빚을 지고 마는 임금 착취 구조와 ‘감독조’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탄압 속에서 날품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다. 회사 측은 일부의 주체적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킬 것을 대비하여 몇몇 노동자들을 매수하여 거짓 파업을 선동한 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을 미리 해고해버리는 술책까지 꾸민다. 이와 같은 노동 환경을 가진 공사장에 ‘동혁’이 신참으로 들어오게 된다. 부당한 노동 조건을 알게 된 ‘동혁’은 ‘대위’를 비롯한 공사장의 고참 인부들과 함께 파업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당한 현실에 분노한 벙어리 ‘오가’가 화를 참지 못하고 감독조의 일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가’는 감독조에 의해 몰매를 맞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동혁의 주도로 파업을 벌인다. 때마침 며칠 뒤면 국회의원이 간석지 공사장에 시찰을 올 예정이므로 사측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빨리 무마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현장소장은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줄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고전본문
“소장이 무슨 말 없습디까? 남은 사람들에게 몇 마디 했을 텐데.”
“내일 저녁까지 농성을 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대요. 요구조건을 사정이 닿는 대루 받아들일 눈치요.”
“듣고 있던 인부들이 일시에 와글거리며 환성을 질렀다.”
“그거 봐. 우리가 이겼다. 이젠 밟지 못할걸.”
(…중략…)
“모래 오전에 국회 답사단이 오는데, 내일 저녁까지 내려오지 않는 인부들은 해고하고 경찰에서도 구속한다던데.”
“뚜렷한 보장이 서야만 내려갈 거 아닌가. 뭣 빨라고 산꼭대기서 노숙을 하며 고생하는 바에야…….”
“소장이 낼 아침에 각서를 써서 올려보낸대요.”
“그 새낄 어떻게 믿어?”
“저쪽에서 부드럽게 나온다면 내일 저녁때쯤에 슬슬 내려가봅시다. 여차하면 다시 올라오면 될 거 아닌가.”
(…중략…)
“한 번 내려가면 다신 못 올라올 겁니다. 사무실 측이 현재 꿀리는 건 모레 오전 때문이오. 그다음부터 칼자루는 저쪽이 쥐게 됩니다.”
(…중략…)
원하는 대로 모두 수걱수걱 들어주고 나면 길 잘못 들인 강아지 새끼처럼 또 무엇을 달라고 보챌지 몰라 불안할수록, 더욱 감독조는 필요했다. 그래서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보냈다가 인부들과는 낯선 다른 패들로 교대시킬 뿐이었다. 현재 노임도 올렸고 시간 노동제도 실시하고 있는 척할 수밖에 없지만, 우선 내일의 행사를 위해 숨 좀 돌려보자는 게 그의 속셈이었다. 그다음엔 주동자들을 먼저 아무도 모르게 경찰에 데려다가 책임을 물어 따끔하게 본때를 보인 후, 여비나 두둑이 주어 구슬리며 딴 지방으로 쫓아 보낼 작정이었다. 그의 손에는 쟁의에 참가했던 인부들의 명단이 저절로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그들 불평분자의 절반쯤은 3공사장 인부들과 교대시키고, 나머지는 남겨두되 각 함바에 뿔뿔이 흩어지게 배당할 거였다. 점차로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둘씩 해고해나갈 것이었다. 차츰차츰 작업량을 늘리고 작업장을 줄여가면 남는 인부가 많게 될 테니 열흘도 못 가서 감원할 구실이 생길 거였다. 따라서 인상되었던 노임을 차츰 낮추며 도급을 계속시키면 인부들이 모르는 사이에 전과 같이 만들 수 있을 게 뻔했다. 한편 감원시키고, 날마다 공사장을 찾아드는 뜨내기들을 한편 채용해나가면 어항에 물 갈아넣는 것처럼 인부들은 모두 새 사람으로 바뀔 것이었다.
황석영의 [객지] 중에서
토론하기
(1) 인용문들 따르면 회사 측과 노동자들 사이의 상호 신뢰 문제가 파업을 중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당신이 회사의 입장에 서 있다면, 어떻게 노동자들과의 상호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지 토론해보자.
(2) 대화와 타협만을 중요시하는 논리로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대립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혁’과 ‘대위’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이처럼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파업과 정치인의 도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다. 만약 동혁과 대위가 겪은 갈등 상황이 오늘날에도 발생한다고 가정할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강자에 맞서 자신의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겠는가?
해설읽기
황석영의 「객지」에서 발췌한 위의 두 인용문은 ‘동혁’과 ‘대위’가 주도하여 파업을 시작한 뒤, 노동자들과 사측이 각각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인용문에는 노동자들 각자가 파업 이후의 집단 행동을 어떻게 끌어가는 편이 좋을지에 대한 상이한 입장이 나타난다. 우선 회사 측 직원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듣고 온 한 노동자는 사측이 곧 꼬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일 저녁 전에 노동자들의 농성이 중단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이틀 후 간석지 공사장으로 방문할 국회의원에게 회사 측의 부당 대우가 들키고 말 것이므로 군말 없이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사측을 이겼다는 생각에 기뻐하지만, ‘동혁’을 비롯한 몇몇 노동자들은 여전히 경계하는 눈치다. 그동안 회사 측이 노동자들을 대해온 반인권적인 태도를 잘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거짓 파업을 꾸며 불만분자를 색출해낸 전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어떤 노동자들은 ‘각서’를 받으면 해결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동혁은 회사 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레 오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레 오전, 국회의원이 간석지 공사장을 방문할 때까지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풀지 않으면 이를 목격한 정치인이 사측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 대우를 철회하게끔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혁의 관점에 반대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회사 측이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호의를 보이는 만큼, 노동자들 역시 사측이 국회의원 앞에서 문책을 당하지 않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을 보이는 노동자들은 회사를 적대시하기보다 상생의 길을 찾으려 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갈등을 일으키면서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으로 요구를 관철시키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국회의원이 올 때까지 파업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동혁의 입장은 지나친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 회사가 잘못한 일이 많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파업을 통해 요구조건도 이미 충분히 관철시켰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모두가 윈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장소장은 다시 한 번 노동자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사실 현장소장의 계획은 노동자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잠시 동안만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는 것이었다.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문제가 되었던 감독조도 다시 배치하고, 임금도 원래대로 낮출 것이며, 파업의 주동자들은 쫓아낼 것이다. 이와 같은 현장소장의 생각은 파업이 무마된 이후에도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객지」에 드러나는 이와 같은 노사 갈등의 양상은 강자와 약자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자아낸다. 우리는 흔히 ‘현실적인 힘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대화와 타협만으로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객지」에 나타나는 회사처럼, 강자는 말로만 한 약속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회사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 한 명을 해고하는 일은 회사의 입장에선 간단한 일이고, 「객지」에서처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노동의 경우엔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기도 쉽다. 회사의 입장에선 불만을 가진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이 훨씬 쉬운 것이다. 이처럼 힘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대화와 타협’도 중요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현실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조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객지」의 동혁은 지속적인 파업과 정치인의 도움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동혁이 살았던 1960년대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날엔 어떨까?
키워드
갈등, 노동자, 노사관계, 대화, 쟁의,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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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배경이 되는 간척지 공사장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법으로 정해진 임금 150원이 규정 대로 지급되지 않고, 임금 명목으로 발급되는 130원짜리 전표 역시 회사 서기와 십장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공모에 의해 대부분 가로채인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 일을 할수록 오히려 빚을 지고 마는 임금 착취 구조와 ‘감독조’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탄압 속에서 날품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다. 회사 측은 일부의 주체적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킬 것을 대비하여 몇몇 노동자들을 매수하여 거짓 파업을 선동한 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을 미리 해고해버리는 술책까지 꾸민다. 이와 같은 노동 환경을 가진 공사장에 ‘동혁’이 신참으로 들어오게 된다. 부당한 노동 조건을 알게 된 ‘동혁’은 ‘대위’를 비롯한 공사장의 고참 인부들과 함께 파업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당한 현실에 분노한 벙어리 ‘오가’가 화를 참지 못하고 감독조의 일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가’는 감독조에 의해 몰매를 맞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동혁의 주도로 파업을 벌인다. 때마침 며칠 뒤면 국회의원이 간석지 공사장에 시찰을 올 예정이므로 사측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빨리 무마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현장소장은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줄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고전본문
“소장이 무슨 말 없습디까? 남은 사람들에게 몇 마디 했을 텐데.”
“내일 저녁까지 농성을 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대요. 요구조건을 사정이 닿는 대루 받아들일 눈치요.”
“듣고 있던 인부들이 일시에 와글거리며 환성을 질렀다.”
“그거 봐. 우리가 이겼다. 이젠 밟지 못할걸.”
(…중략…)
“모래 오전에 국회 답사단이 오는데, 내일 저녁까지 내려오지 않는 인부들은 해고하고 경찰에서도 구속한다던데.”
“뚜렷한 보장이 서야만 내려갈 거 아닌가. 뭣 빨라고 산꼭대기서 노숙을 하며 고생하는 바에야…….”
“소장이 낼 아침에 각서를 써서 올려보낸대요.”
“그 새낄 어떻게 믿어?”
“저쪽에서 부드럽게 나온다면 내일 저녁때쯤에 슬슬 내려가봅시다. 여차하면 다시 올라오면 될 거 아닌가.”
(…중략…)
“한 번 내려가면 다신 못 올라올 겁니다. 사무실 측이 현재 꿀리는 건 모레 오전 때문이오. 그다음부터 칼자루는 저쪽이 쥐게 됩니다.”
(…중략…)
원하는 대로 모두 수걱수걱 들어주고 나면 길 잘못 들인 강아지 새끼처럼 또 무엇을 달라고 보챌지 몰라 불안할수록, 더욱 감독조는 필요했다. 그래서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보냈다가 인부들과는 낯선 다른 패들로 교대시킬 뿐이었다. 현재 노임도 올렸고 시간 노동제도 실시하고 있는 척할 수밖에 없지만, 우선 내일의 행사를 위해 숨 좀 돌려보자는 게 그의 속셈이었다. 그다음엔 주동자들을 먼저 아무도 모르게 경찰에 데려다가 책임을 물어 따끔하게 본때를 보인 후, 여비나 두둑이 주어 구슬리며 딴 지방으로 쫓아 보낼 작정이었다. 그의 손에는 쟁의에 참가했던 인부들의 명단이 저절로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그들 불평분자의 절반쯤은 3공사장 인부들과 교대시키고, 나머지는 남겨두되 각 함바에 뿔뿔이 흩어지게 배당할 거였다. 점차로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둘씩 해고해나갈 것이었다. 차츰차츰 작업량을 늘리고 작업장을 줄여가면 남는 인부가 많게 될 테니 열흘도 못 가서 감원할 구실이 생길 거였다. 따라서 인상되었던 노임을 차츰 낮추며 도급을 계속시키면 인부들이 모르는 사이에 전과 같이 만들 수 있을 게 뻔했다. 한편 감원시키고, 날마다 공사장을 찾아드는 뜨내기들을 한편 채용해나가면 어항에 물 갈아넣는 것처럼 인부들은 모두 새 사람으로 바뀔 것이었다.
황석영의 [객지] 중에서
토론하기
(1) 인용문들 따르면 회사 측과 노동자들 사이의 상호 신뢰 문제가 파업을 중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당신이 회사의 입장에 서 있다면, 어떻게 노동자들과의 상호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지 토론해보자.
(2) 대화와 타협만을 중요시하는 논리로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대립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혁’과 ‘대위’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이처럼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파업과 정치인의 도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다. 만약 동혁과 대위가 겪은 갈등 상황이 오늘날에도 발생한다고 가정할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강자에 맞서 자신의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겠는가?
해설읽기
황석영의 「객지」에서 발췌한 위의 두 인용문은 ‘동혁’과 ‘대위’가 주도하여 파업을 시작한 뒤, 노동자들과 사측이 각각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인용문에는 노동자들 각자가 파업 이후의 집단 행동을 어떻게 끌어가는 편이 좋을지에 대한 상이한 입장이 나타난다. 우선 회사 측 직원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듣고 온 한 노동자는 사측이 곧 꼬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일 저녁 전에 노동자들의 농성이 중단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이틀 후 간석지 공사장으로 방문할 국회의원에게 회사 측의 부당 대우가 들키고 말 것이므로 군말 없이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사측을 이겼다는 생각에 기뻐하지만, ‘동혁’을 비롯한 몇몇 노동자들은 여전히 경계하는 눈치다. 그동안 회사 측이 노동자들을 대해온 반인권적인 태도를 잘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거짓 파업을 꾸며 불만분자를 색출해낸 전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어떤 노동자들은 ‘각서’를 받으면 해결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동혁은 회사 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레 오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레 오전, 국회의원이 간석지 공사장을 방문할 때까지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풀지 않으면 이를 목격한 정치인이 사측으로 하여금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 대우를 철회하게끔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혁의 관점에 반대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회사 측이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호의를 보이는 만큼, 노동자들 역시 사측이 국회의원 앞에서 문책을 당하지 않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을 보이는 노동자들은 회사를 적대시하기보다 상생의 길을 찾으려 한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갈등을 일으키면서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으로 요구를 관철시키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국회의원이 올 때까지 파업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동혁의 입장은 지나친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 회사가 잘못한 일이 많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파업을 통해 요구조건도 이미 충분히 관철시켰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모두가 윈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장소장은 다시 한 번 노동자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사실 현장소장의 계획은 노동자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잠시 동안만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는 것이었다.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문제가 되었던 감독조도 다시 배치하고, 임금도 원래대로 낮출 것이며, 파업의 주동자들은 쫓아낼 것이다. 이와 같은 현장소장의 생각은 파업이 무마된 이후에도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객지」에 드러나는 이와 같은 노사 갈등의 양상은 강자와 약자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무엇이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자아낸다. 우리는 흔히 ‘현실적인 힘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대화와 타협만으로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객지」에 나타나는 회사처럼, 강자는 말로만 한 약속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회사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 한 명을 해고하는 일은 회사의 입장에선 간단한 일이고, 「객지」에서처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노동의 경우엔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기도 쉽다. 회사의 입장에선 불만을 가진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이 훨씬 쉬운 것이다. 이처럼 힘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대화와 타협’도 중요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현실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조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객지」의 동혁은 지속적인 파업과 정치인의 도움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동혁이 살았던 1960년대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날엔 어떨까?
키워드
갈등, 노동자, 노사관계, 대화, 쟁의, 타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