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간척지 공사장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법으로 정해진 임금 150원이 규정 대로 지급되지 않고, 임금 명목으로 발급되는 130원짜리 전표 역시 회사 서기와 십장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공모에 의해 대부분 가로채인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 일을 할수록 오히려 빚을 지고 마는 임금 착취 구조와 ‘감독조’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탄압 속에서 날품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다. 회사 측은 일부의 주체적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킬 것을 대비하여 몇몇 노동자들을 매수하여 거짓 파업을 선동한 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을 미리 해고해버리는 술책까지 꾸민다. 이와 같은 노동 환경을 가진 공사장에 ‘동혁’이 신참으로 들어오게 된다. 부당한 노동 조건을 알게 된 ‘동혁’은 ‘대위’와 함께 새로운 파업을 준비한다.
고전본문
대위와 함께 온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옆방인 2실 사람이 한 사람, 또다른 두 사람은 5함바*의 고참 인부들이었다. 대위는 날일조*로 교대된 이튿날부터 저녁마다 각 함바의 믿을 만한 고참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느라고 분주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대위를 회사측에서 보낸 떡밥이 아닌가 하여 믿질 않았으나, 차츰 그의 충실한 열성에 납득을 한 것 같았다. 각 함바의 몇몇 방에서는 이미 뒷전에서 날품들의 서명을 받는 일이 은밀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노임 인상에 관한 요구사항이 적힌 건의서 밑에 함바의 순서대로 서명만 하면 되는 일이라 그들은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서명을 받아 모은 다음에 그것을 근거로 쟁의를 일으키려는 계획이 대위와 고참 인부들을 중심으로 미리 짜여지고 있었다. 속임수라고 반대하는 3함바 고참의 주장은 이곳 인부들의 애로사항이나 알릴 겸, 일단 본사와 도청에 경고하는 뜻으로 건의서를 내는 데서 그치자는 것이었다. 동혁의 생각으로는 건의서를 본사에 보내는 경우엔 다시 현장사무소로 되돌려져 인부들 의견과 접해보라는 소극적인 대답이 고작일 테고, 따라서 서명자의 이름이 원활한 건설 행정에 지장을 주는 대상 분자로서 찍히는, 불리한 결과밖엔 남는 게 없을 것이었다. 또한 도청에 보낸다면 관이란 게 워낙 느림보에다 노사 분쟁 같은 사건에는 되도록 개입을 꺼리는 편이니까 미결 서류함이나 보류철에 끼워 썩을 테니 그야말로 벽에다 달걀 던지는 격이 될 거였다. 대위 역시 동혁의 사려 깊은 의견에 동의했다. 워낙에 닳아빠진 떨거지 인생들이 어느 결에 요령은 터득해가지고 남의 장단에 춤추며 손해보기는 싫다는 판국인지라 쟁의를 선동할 때에는 일단 속임수가 필요하고 그들을 억지로라도 가담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들 주동자들은 건의서와 연서장을 배짱으로 사무실측에 통고함과 동시에 파업으로 들어갈 테니까, 서명을 한 날품 인부들은 어차피 찍히는 몸이 될 테고 주저하다가도 막상 일이 터지면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을 함께할 것이 뻔했다.
(…중략…)
“1함바와 2함바 사람들은 의향이 어떻습디까?”
“아직 우리를 믿지 않고 있어요. 전번 일 때문인데, 당분간 그대로 내버려둘 작정이오.”
“감독조 애들이 횡포를 부릴수록 우린 이로워요. 비서를 통해 저쪽 놈들을 슬슬 자극시켜놓는 것두 좋겠지. 우리들 중 누군가를 묵사발 만들어주면 더욱 고맙고.”
“쟁의를 일으킬 시기는 서명을 반수 이상 받은 다음이 좋지 않겠소?”
라는 대위의 말에 동혁은 볼펜을 눌러 간간이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가 얘기했다.
“우리가 서명을 받는 건 동조해줄 사람들을 끌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겠죠. 그건 일을 터뜨린 다음부터 효력이 있는 거요.”
황석영의 [객지] 중에서
* 함바: ‘함바’란 일제 강점기의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등에서 노동자들이 숙식할 수 있도록 지은 가건물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간척지 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살고 있는 공사장 내의 숙소로 이해할 수 있다.
* 날일조: 낮에 일하는 조.
토론하기
(1) 아래 인용문에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맞선 항의의 두 가지 방식이 제시되어 있다. 각각을 비교해보고, 당신이라면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 설명해보자.
(2) 노동 조건의 부조리함에 맞서 벌이는 쟁의가 정당하다고 해도, 그 과정에 ‘속임수’를 동원하는 것은 정당할까? 당신이 주동자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해설읽기
작품의 배경인 간석지 공사장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자체가 법정 임금보다도 낮은 액수이지만, 그 낮은 액수마저도 중간 관리자인 ‘소장’, ‘서기’, ‘십장’, ‘감독조 무리들’에게 부당한 방식으로 강탈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위의 인용문에서 동혁과 대위를 주축으로 하여 몇몇 고참 노동자들이 파업을 준비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대위는 각 ‘함바’를 돌아 다니면서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고참 노동자를 찾아 쟁의 행위의 필요성을 설득한다. 그 동안 회사측은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을 사전에 색출해내어 쫓아내기 위해 노동자들이 현장에 불만을 가졌는지 아닌지 확인해보는 행동을 해왔기 때문에 고참 노동자들은 대위의 행동이 회사 측의 미끼(“떡밥”)이 아닐까 염려하지만, 결국엔 대위의 진심을 믿게 된다.
하지만 대위가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오롯이 다 밝힌 것은 아니었다. 대위는 노동자들에게 서명 운동만을 할 계획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서명 운동을 넘어서 파업까지 일으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대위의 계획을 알고 있는 고참 노동자 일부는 대위의 이와 같은 행동이 ‘속임수’에 불과하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동혁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서명 운동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서명을 담은 건의서를 본사에 보낸다면 본사에서는 ‘현장사무소와 논의하라’며 소극적인 대답만 내놓을 것이다. 도청에 보낸다고 해도 당시의 국가기관은 업무처리가 매우 느리고 노사분쟁에는 개입을 꺼렸기 때문에 서명 운동의 의미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대위와 동혁을 비롯한 고참 노동자 다수는 파업을 일으키는 편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 파업을 하면 노동자들 역시 손해를 보기가 쉽다. 어떤 전략을 택한다 해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파업에 동참했다가는 괜히 회사에 찍히기만 할 것 같아서다. 대위와 동혁이 파업 계획을 노동자에게 사실 그대로 알리지 않고 ‘속임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파업 찬성자들은 회사의 ‘감독조’ 무리들이 노동자들을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길 바라기까지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 사이에 분노가 불붙고 파업에 찬성하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우세헤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이와 같은 논의가 오가던 어느날, 부당한 현실에 분노한 벙어리 ‘오가’가 화를 참지 못하고 감독조의 일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가’는 감독조에 의해 몰매를 맞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동혁과 대위의 주도로 파업을 벌인다. 때마침 며칠 뒤면 국회의원이 간석지 공사장에 시찰을 올 예정이므로 사측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빨리 무마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국회의원이 노사 분규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회사 측을 강하게 문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소장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일단 잠잠하게 만들기 위해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줄 것처럼 거짓말을 하지만, 여기에 속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동혁’과 ‘대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멈추고 공사장으로 돌아가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객지」로부터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빈부격차와 양극화와 같은 사회 문제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성찰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성인이 된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의 입장에 서게 될 수도 있고 사용자의 입장에 서게 될 수도 있다. 후일 어떤 입장에 서건, 이 작품을 통해 노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살펴봄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의사결정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의 인용문이 시사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의 생존과 권리가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항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아울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똑같은 억압과 차별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항’에 대한 노동자들의 견해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파업을 통해서만 문제를 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반면, 또 어떤 이는 본사와 도청에 ‘건의서’를 내는 수준에서 저항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여러분이 노사 갈등의 상황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또, 만일 여러분이 회사 측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이와 같은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서, 「객지」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파업이 아니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혁과 대위는 속임수를 써서라도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본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관점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당시의 노동조건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당한 노동조건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견해라는 점에서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두 견해 중 어떤 것이 더 옳다고 여겨지는지 생각해봄으로써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키워드
노동자, 분쟁, 자본주의, 쟁의
전후맥락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간척지 공사장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법으로 정해진 임금 150원이 규정 대로 지급되지 않고, 임금 명목으로 발급되는 130원짜리 전표 역시 회사 서기와 십장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공모에 의해 대부분 가로채인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 일을 할수록 오히려 빚을 지고 마는 임금 착취 구조와 ‘감독조’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탄압 속에서 날품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다. 회사 측은 일부의 주체적인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킬 것을 대비하여 몇몇 노동자들을 매수하여 거짓 파업을 선동한 뒤, 여기에 참여한 사람을 미리 해고해버리는 술책까지 꾸민다. 이와 같은 노동 환경을 가진 공사장에 ‘동혁’이 신참으로 들어오게 된다. 부당한 노동 조건을 알게 된 ‘동혁’은 ‘대위’와 함께 새로운 파업을 준비한다.
고전본문
대위와 함께 온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옆방인 2실 사람이 한 사람, 또다른 두 사람은 5함바*의 고참 인부들이었다. 대위는 날일조*로 교대된 이튿날부터 저녁마다 각 함바의 믿을 만한 고참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느라고 분주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대위를 회사측에서 보낸 떡밥이 아닌가 하여 믿질 않았으나, 차츰 그의 충실한 열성에 납득을 한 것 같았다. 각 함바의 몇몇 방에서는 이미 뒷전에서 날품들의 서명을 받는 일이 은밀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노임 인상에 관한 요구사항이 적힌 건의서 밑에 함바의 순서대로 서명만 하면 되는 일이라 그들은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서명을 받아 모은 다음에 그것을 근거로 쟁의를 일으키려는 계획이 대위와 고참 인부들을 중심으로 미리 짜여지고 있었다. 속임수라고 반대하는 3함바 고참의 주장은 이곳 인부들의 애로사항이나 알릴 겸, 일단 본사와 도청에 경고하는 뜻으로 건의서를 내는 데서 그치자는 것이었다. 동혁의 생각으로는 건의서를 본사에 보내는 경우엔 다시 현장사무소로 되돌려져 인부들 의견과 접해보라는 소극적인 대답이 고작일 테고, 따라서 서명자의 이름이 원활한 건설 행정에 지장을 주는 대상 분자로서 찍히는, 불리한 결과밖엔 남는 게 없을 것이었다. 또한 도청에 보낸다면 관이란 게 워낙 느림보에다 노사 분쟁 같은 사건에는 되도록 개입을 꺼리는 편이니까 미결 서류함이나 보류철에 끼워 썩을 테니 그야말로 벽에다 달걀 던지는 격이 될 거였다. 대위 역시 동혁의 사려 깊은 의견에 동의했다. 워낙에 닳아빠진 떨거지 인생들이 어느 결에 요령은 터득해가지고 남의 장단에 춤추며 손해보기는 싫다는 판국인지라 쟁의를 선동할 때에는 일단 속임수가 필요하고 그들을 억지로라도 가담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들 주동자들은 건의서와 연서장을 배짱으로 사무실측에 통고함과 동시에 파업으로 들어갈 테니까, 서명을 한 날품 인부들은 어차피 찍히는 몸이 될 테고 주저하다가도 막상 일이 터지면 관철시키기 위해 행동을 함께할 것이 뻔했다.
(…중략…)
“1함바와 2함바 사람들은 의향이 어떻습디까?”
“아직 우리를 믿지 않고 있어요. 전번 일 때문인데, 당분간 그대로 내버려둘 작정이오.”
“감독조 애들이 횡포를 부릴수록 우린 이로워요. 비서를 통해 저쪽 놈들을 슬슬 자극시켜놓는 것두 좋겠지. 우리들 중 누군가를 묵사발 만들어주면 더욱 고맙고.”
“쟁의를 일으킬 시기는 서명을 반수 이상 받은 다음이 좋지 않겠소?”
라는 대위의 말에 동혁은 볼펜을 눌러 간간이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가 얘기했다.
“우리가 서명을 받는 건 동조해줄 사람들을 끌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겠죠. 그건 일을 터뜨린 다음부터 효력이 있는 거요.”
황석영의 [객지] 중에서
* 함바: ‘함바’란 일제 강점기의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등에서 노동자들이 숙식할 수 있도록 지은 가건물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간척지 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살고 있는 공사장 내의 숙소로 이해할 수 있다.
* 날일조: 낮에 일하는 조.
토론하기
(1) 아래 인용문에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맞선 항의의 두 가지 방식이 제시되어 있다. 각각을 비교해보고, 당신이라면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 설명해보자.
(2) 노동 조건의 부조리함에 맞서 벌이는 쟁의가 정당하다고 해도, 그 과정에 ‘속임수’를 동원하는 것은 정당할까? 당신이 주동자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해설읽기
작품의 배경인 간석지 공사장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자체가 법정 임금보다도 낮은 액수이지만, 그 낮은 액수마저도 중간 관리자인 ‘소장’, ‘서기’, ‘십장’, ‘감독조 무리들’에게 부당한 방식으로 강탈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위의 인용문에서 동혁과 대위를 주축으로 하여 몇몇 고참 노동자들이 파업을 준비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대위는 각 ‘함바’를 돌아 다니면서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고참 노동자를 찾아 쟁의 행위의 필요성을 설득한다. 그 동안 회사측은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을 사전에 색출해내어 쫓아내기 위해 노동자들이 현장에 불만을 가졌는지 아닌지 확인해보는 행동을 해왔기 때문에 고참 노동자들은 대위의 행동이 회사 측의 미끼(“떡밥”)이 아닐까 염려하지만, 결국엔 대위의 진심을 믿게 된다.
하지만 대위가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오롯이 다 밝힌 것은 아니었다. 대위는 노동자들에게 서명 운동만을 할 계획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서명 운동을 넘어서 파업까지 일으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대위의 계획을 알고 있는 고참 노동자 일부는 대위의 이와 같은 행동이 ‘속임수’에 불과하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동혁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서명 운동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서명을 담은 건의서를 본사에 보낸다면 본사에서는 ‘현장사무소와 논의하라’며 소극적인 대답만 내놓을 것이다. 도청에 보낸다고 해도 당시의 국가기관은 업무처리가 매우 느리고 노사분쟁에는 개입을 꺼렸기 때문에 서명 운동의 의미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대위와 동혁을 비롯한 고참 노동자 다수는 파업을 일으키는 편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 파업을 하면 노동자들 역시 손해를 보기가 쉽다. 어떤 전략을 택한다 해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파업에 동참했다가는 괜히 회사에 찍히기만 할 것 같아서다. 대위와 동혁이 파업 계획을 노동자에게 사실 그대로 알리지 않고 ‘속임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파업 찬성자들은 회사의 ‘감독조’ 무리들이 노동자들을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길 바라기까지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 사이에 분노가 불붙고 파업에 찬성하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우세헤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이와 같은 논의가 오가던 어느날, 부당한 현실에 분노한 벙어리 ‘오가’가 화를 참지 못하고 감독조의 일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가’는 감독조에 의해 몰매를 맞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동혁과 대위의 주도로 파업을 벌인다. 때마침 며칠 뒤면 국회의원이 간석지 공사장에 시찰을 올 예정이므로 사측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빨리 무마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국회의원이 노사 분규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회사 측을 강하게 문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소장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일단 잠잠하게 만들기 위해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줄 것처럼 거짓말을 하지만, 여기에 속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동혁’과 ‘대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멈추고 공사장으로 돌아가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객지」로부터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빈부격차와 양극화와 같은 사회 문제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성찰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성인이 된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의 입장에 서게 될 수도 있고 사용자의 입장에 서게 될 수도 있다. 후일 어떤 입장에 서건, 이 작품을 통해 노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살펴봄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의사결정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의 인용문이 시사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의 생존과 권리가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항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아울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똑같은 억압과 차별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항’에 대한 노동자들의 견해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파업을 통해서만 문제를 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반면, 또 어떤 이는 본사와 도청에 ‘건의서’를 내는 수준에서 저항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여러분이 노사 갈등의 상황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또, 만일 여러분이 회사 측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이와 같은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서, 「객지」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파업이 아니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혁과 대위는 속임수를 써서라도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본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두 사람의 관점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당시의 노동조건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당한 노동조건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견해라는 점에서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두 견해 중 어떤 것이 더 옳다고 여겨지는지 생각해봄으로써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키워드
노동자, 분쟁, 자본주의, 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