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유명한 독서광이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25세 때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라는 산문집을 지었다. 글자 그대로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소품문 형식으로 쓴 것이다. 시문, 사회상, 인물, 활자, 신변잡기, 재정, 풍속, 사찰 등 박물지적 주제에 걸쳐 6권 2책으로 기록하였다. 인용한 첫번째 글은 1권 첫머리에, 두번째 글은 2권 중반부에 실려있다.
고전본문
지난 경진년(1760)과 신사년(1761) 겨울에 내 작은 초가가 너무 추워서 입김을 불면 성에가 되어 이불깃에서 와삭와삭 소리가 났다. 게으른 나의 성격에도 밤중에 일어나서 창졸간에 <한서(漢書)>* 한 질을 이불 위에 죽 덮어서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았으니,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거의 후산(後山)의 귀신*이 될 뻔하였다. 간밤에 집 안 서북쪽 구석에서 매서운 바람이 쏘아 들어와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논어> 한 권을 뽑아 세워 바람을 막았는데 스스로 이러한 경제적 활용에 어깨가 으쓱했다. 옛사람이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든 것은 기이함을 좋아해서다. 또 금은으로 상서로운 새와 짐승을 조각해 병풍을 만든 것은 너무 사치스러워 부러워할 것도 못된다. [옛사람의 갈대꽃 이불과 금은 병풍이,] 내가 급작스럽게 만들긴 했지만 경사(經史)로 만든 나의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만 하겠는가. 왕장(王章)*이 덮은 쇠덕석과, 두보(杜甫)*가 덮은 말안장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다. 을유년(1765) 겨울 11월 28일에 기록하다. (이덕무, <이목구심서> 권1)
가장 으뜸은 가난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安貧). 그 다음은 가난을 잊어버리는 것이다(忘貧). 가장 아래는 가난을 꺼리고(諱貧) 가난을 하소연하며(訴貧) 가난에 짓눌리고(壓於貧) 가난에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僕役於貧). 맨 밑바닥은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仇讐於貧) 가난 속에서 죽는 것이다(死於貧).
[출전] 이덕무,『이목구심서』 권2
往在庚辰辛巳冬。余小茅茨太冷。噓氣蟠成氷花。衾領簌簌有聲。以余懶性。夜半起。倉卒以漢書一帙。鱗次加於衾上。少抵寒威。非此。幾爲后山之鬼。昨夜屋西北隅。毒風射入。掀燈甚急。思移時。抽魯論一卷立障之。自詑其經濟手段。古人以蘆花爲衾。是好奇。又有以金銀鏤禽獸瑞應爲屛者。汰侈不足慕也。何如我漢書衾。魯論屛。造次必於經史者乎。亦勝於王章之卧牛衣。杜甫之設馬韉也。乙酉冬十一月二十有八日記。
*한서(漢書) : 반고(班固, 32-92)가 쓴 전한(前漢)의 역사서. 전한서라고도 한다.
*후산의 귀신: 얼어 죽는 것을 말한다. 후산은 송(宋)나라 사람 진사도(陳師道, ~)의 호이다. 소식(蘇軾)의 천거를 받아 여러 관직을 거쳤다. 추운 날 솜이 없는 옷을 입고 교사(郊祀)에 참여하였다가 한질(寒疾)에 걸려 죽었다.
*왕장이 덮은 쇠덕석 : 왕장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사람. 쇠덕석은 추울 때에 소의 등을 덮어 주는 멍석을 말한다.
*두보가 덮은 말안장 : 두보가 한뎃잠을 자다가 덮을 것이 없어 말안장을 덮고 잤다고 한다.
토론하기
(1) 이덕무가 분류한 가난한 사람이 취하는 행동 유형을 요즘 상황에 적용해서 얘기해 보자.
(2)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가난을 희화화하며 조롱하는 풍조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얘기해 보자.
해설읽기
집 안에 있기는 하지만 입김이 곧바로 성에가 되어 얇은 이불에서 서거서걱 소리가 날 정도이니 이덕무 또한 도성 밖에서 지내는 제사에 참석하면서 옷이 얇아 한질에 걸려 죽은 후산 진사도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뭔가 추위를 막을 방도를 강구하지 않으면 혹한의 밤을 무사히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수가 <논어> 한 권을 머리 맡에 병풍처럼 세워 놓아 조금이라도 바람을 막아보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4-5년 전 몹시 추웠던 겨울에도 아예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늘어 놓은 적이 있었다. <한서> 한 질은 판본에 따라 대략 25~30책으로 이루어졌으니 이불 위에 덮어 찬바람의 기세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들거나 금은으로 수를 놓아 병풍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호사스런 취미는 어차피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게다가 그것들이 아무리 기이하고 화려한들 경서로 만든 나의 <논어> 이불과 역사서로 만든 <한서> 병풍보다 나을 리 없다. 기껏해야 한나라 왕장이 길에서 덮은 쇠덕석이나 당나라 두보가 노숙하며 덮은 말안장에 비해 나은 정도일 것이다.땔감이 충분치 않고 집을 수리할 여력도 되지 않으니, 추운 겨울을 날 수 밖에 없다. 한밤중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방에서 홑이불 하나 덮고 누웠으려니 잠은 오지 않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처지에 있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런 궁상스런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諱貧)를 고민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곤궁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호소할 것이다(訴貧). 또는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하고 가난 자체에 짓눌려서(壓於貧) 가난 때문에, 가난의 부림을 받으며 가난이 시키는 일을 억지로 한다(僕役於貧). 이는 가장 아래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이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가난함을 증오하고 비난하며(仇讐於貧) 덩달아 자신과 주변 사람들마저 원망하고, 결국에는 삶의 기운을 모두 소진하고 죽어간다(仍死於貧). 요컨대 대다수는 가난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가난에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이덕무는 별명이 ‘간서치(看書癡, 책만 보는 바보)’일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을 때가 가장 즐겁고,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일을 평생하면서 살 수 있다면 가난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혹한을 막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집과 이불, 병풍이 없어 밤 사이 얼어죽을 수도 있는 궁핍한 처지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비관하며 돈 버는 일에 골몰하지 않았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갔다. 가난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갖고 있는 책 몇 권으로 추위를 막아보겠다고 이불과 병풍인양 하는 것을 두고 혹자는 궁상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들에게는 고통스럽고 비루해 보이는 삶에서도 여유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이는 자기 세계를 추구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의 경지일 것이다.대신 이 즐거움은 희희락락의 즐거움이 아니다. 즉 단순한 취미 생활 같은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절차탁마한 연후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어떤 어려움이나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만이 그 길 위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다. 그것의 결과는 자신의 즐거움에 그치지 않았다. 책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당대의 사람들은 이덕무를 찾아야 했고, 결국 당시 차별받던 신분인 서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규장각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가 일찌감치 책읽는 즐거움을 가난과 바꾸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이다. 이덕무가 묘사한 가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난의부림을 받는 일은 바뀌지 않고, 더욱 심해졌다. ‘상대적 가난’이라는 개념은 가난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을 늘 가난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난 때문에 다른 일을 시도하거나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가난의 부림을 받아 돈이 되는 일에 몰두하여 가난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더라도, 또 다시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느낀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삶만이 남게 된다.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거나 이웃을 돌보는 삶이 아니라 오직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과 맞물리며 악순환된다. 가난에 대한 공포가 내 삶을 지배하며, 돈을 향한 열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더라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 아닐까? 이덕무는 아마 이런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키고 가꿔 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그것을 돌보느라 사실 가난을 극복하거나 불평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어버리고(忘貧) 심지어 가난 자체가 별로 신경쓰이지 않고 편안하기(安貧) 때문이다.
키워드
가난, 간서치, 논어, 한서
전후맥락
유명한 독서광이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25세 때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라는 산문집을 지었다. 글자 그대로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소품문 형식으로 쓴 것이다. 시문, 사회상, 인물, 활자, 신변잡기, 재정, 풍속, 사찰 등 박물지적 주제에 걸쳐 6권 2책으로 기록하였다. 인용한 첫번째 글은 1권 첫머리에, 두번째 글은 2권 중반부에 실려있다.
고전본문
지난 경진년(1760)과 신사년(1761) 겨울에 내 작은 초가가 너무 추워서 입김을 불면 성에가 되어 이불깃에서 와삭와삭 소리가 났다. 게으른 나의 성격에도 밤중에 일어나서 창졸간에 <한서(漢書)>* 한 질을 이불 위에 죽 덮어서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았으니,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거의 후산(後山)의 귀신*이 될 뻔하였다. 간밤에 집 안 서북쪽 구석에서 매서운 바람이 쏘아 들어와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논어> 한 권을 뽑아 세워 바람을 막았는데 스스로 이러한 경제적 활용에 어깨가 으쓱했다. 옛사람이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든 것은 기이함을 좋아해서다. 또 금은으로 상서로운 새와 짐승을 조각해 병풍을 만든 것은 너무 사치스러워 부러워할 것도 못된다. [옛사람의 갈대꽃 이불과 금은 병풍이,] 내가 급작스럽게 만들긴 했지만 경사(經史)로 만든 나의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만 하겠는가. 왕장(王章)*이 덮은 쇠덕석과, 두보(杜甫)*가 덮은 말안장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다. 을유년(1765) 겨울 11월 28일에 기록하다. (이덕무, <이목구심서> 권1)
가장 으뜸은 가난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安貧). 그 다음은 가난을 잊어버리는 것이다(忘貧). 가장 아래는 가난을 꺼리고(諱貧) 가난을 하소연하며(訴貧) 가난에 짓눌리고(壓於貧) 가난에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僕役於貧). 맨 밑바닥은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仇讐於貧) 가난 속에서 죽는 것이다(死於貧).
[출전] 이덕무,『이목구심서』 권2
往在庚辰辛巳冬。余小茅茨太冷。噓氣蟠成氷花。衾領簌簌有聲。以余懶性。夜半起。倉卒以漢書一帙。鱗次加於衾上。少抵寒威。非此。幾爲后山之鬼。昨夜屋西北隅。毒風射入。掀燈甚急。思移時。抽魯論一卷立障之。自詑其經濟手段。古人以蘆花爲衾。是好奇。又有以金銀鏤禽獸瑞應爲屛者。汰侈不足慕也。何如我漢書衾。魯論屛。造次必於經史者乎。亦勝於王章之卧牛衣。杜甫之設馬韉也。乙酉冬十一月二十有八日記。
*한서(漢書) : 반고(班固, 32-92)가 쓴 전한(前漢)의 역사서. 전한서라고도 한다.
*후산의 귀신: 얼어 죽는 것을 말한다. 후산은 송(宋)나라 사람 진사도(陳師道, ~)의 호이다. 소식(蘇軾)의 천거를 받아 여러 관직을 거쳤다. 추운 날 솜이 없는 옷을 입고 교사(郊祀)에 참여하였다가 한질(寒疾)에 걸려 죽었다.
*왕장이 덮은 쇠덕석 : 왕장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사람. 쇠덕석은 추울 때에 소의 등을 덮어 주는 멍석을 말한다.
*두보가 덮은 말안장 : 두보가 한뎃잠을 자다가 덮을 것이 없어 말안장을 덮고 잤다고 한다.
토론하기
(1) 이덕무가 분류한 가난한 사람이 취하는 행동 유형을 요즘 상황에 적용해서 얘기해 보자.
(2)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가난을 희화화하며 조롱하는 풍조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얘기해 보자.
해설읽기
집 안에 있기는 하지만 입김이 곧바로 성에가 되어 얇은 이불에서 서거서걱 소리가 날 정도이니 이덕무 또한 도성 밖에서 지내는 제사에 참석하면서 옷이 얇아 한질에 걸려 죽은 후산 진사도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뭔가 추위를 막을 방도를 강구하지 않으면 혹한의 밤을 무사히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수가 <논어> 한 권을 머리 맡에 병풍처럼 세워 놓아 조금이라도 바람을 막아보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4-5년 전 몹시 추웠던 겨울에도 아예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늘어 놓은 적이 있었다. <한서> 한 질은 판본에 따라 대략 25~30책으로 이루어졌으니 이불 위에 덮어 찬바람의 기세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갈대꽃으로 이불을 만들거나 금은으로 수를 놓아 병풍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호사스런 취미는 어차피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게다가 그것들이 아무리 기이하고 화려한들 경서로 만든 나의 <논어> 이불과 역사서로 만든 <한서> 병풍보다 나을 리 없다. 기껏해야 한나라 왕장이 길에서 덮은 쇠덕석이나 당나라 두보가 노숙하며 덮은 말안장에 비해 나은 정도일 것이다.땔감이 충분치 않고 집을 수리할 여력도 되지 않으니, 추운 겨울을 날 수 밖에 없다. 한밤중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방에서 홑이불 하나 덮고 누웠으려니 잠은 오지 않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처지에 있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런 궁상스런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諱貧)를 고민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곤궁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호소할 것이다(訴貧). 또는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하고 가난 자체에 짓눌려서(壓於貧) 가난 때문에, 가난의 부림을 받으며 가난이 시키는 일을 억지로 한다(僕役於貧). 이는 가장 아래의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이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가난함을 증오하고 비난하며(仇讐於貧) 덩달아 자신과 주변 사람들마저 원망하고, 결국에는 삶의 기운을 모두 소진하고 죽어간다(仍死於貧). 요컨대 대다수는 가난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가난에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이덕무는 별명이 ‘간서치(看書癡, 책만 보는 바보)’일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을 때가 가장 즐겁고,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일을 평생하면서 살 수 있다면 가난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혹한을 막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집과 이불, 병풍이 없어 밤 사이 얼어죽을 수도 있는 궁핍한 처지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비관하며 돈 버는 일에 골몰하지 않았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갔다. 가난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갖고 있는 책 몇 권으로 추위를 막아보겠다고 이불과 병풍인양 하는 것을 두고 혹자는 궁상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들에게는 고통스럽고 비루해 보이는 삶에서도 여유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이는 자기 세계를 추구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의 경지일 것이다.대신 이 즐거움은 희희락락의 즐거움이 아니다. 즉 단순한 취미 생활 같은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절차탁마한 연후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어떤 어려움이나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만이 그 길 위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다. 그것의 결과는 자신의 즐거움에 그치지 않았다. 책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당대의 사람들은 이덕무를 찾아야 했고, 결국 당시 차별받던 신분인 서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규장각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가 일찌감치 책읽는 즐거움을 가난과 바꾸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이다. 이덕무가 묘사한 가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난의부림을 받는 일은 바뀌지 않고, 더욱 심해졌다. ‘상대적 가난’이라는 개념은 가난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을 늘 가난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난 때문에 다른 일을 시도하거나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가난의 부림을 받아 돈이 되는 일에 몰두하여 가난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더라도, 또 다시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느낀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삶만이 남게 된다.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거나 이웃을 돌보는 삶이 아니라 오직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과 맞물리며 악순환된다. 가난에 대한 공포가 내 삶을 지배하며, 돈을 향한 열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더라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 아닐까? 이덕무는 아마 이런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키고 가꿔 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그것을 돌보느라 사실 가난을 극복하거나 불평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어버리고(忘貧) 심지어 가난 자체가 별로 신경쓰이지 않고 편안하기(安貧) 때문이다.
키워드
가난, 간서치, 논어, 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