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여희의 계략으로 헌공의 첫째 아들 신생이 죽고, 중이는 망명길에 오른다. 진[秦]나라 목공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자신의 고국인 진[晉]나라로 돌아와 진나라의 군주가 된다.
고전본문
BC636년 봄, 주왕력 정월, 진秦 목공이 중이를 진나라로 들여보냈다… 중이가 황하에 이르렀을 때 호언이 지니고 있던 구슬을23 중이에게 바치며 말하였다.
“신이 군의 말고삐를 잡고 천하를 돌아다니는 사이에 지은 죄가 매우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데 군께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여기서 이만 떠나겠습니다.”
“만약 내가 외삼촌과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나는 벌을 받을 것입니다. 황하의 신이 증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구슬을 황하에 던졌다.
중이 일행은 황하를 건너 영호令狐(산서성 임의현 서쪽)를 포위하고 상천桑泉(상서성 임의현*)으로 들어가 구최臼衰(산서성 해주진 서북쪽)를 점령하였다. 2월 갑오일에 진[晉]나라 군대가 여류廬柳에 주둔했다. 진[秦] 목공이 공자 집縶을 진나라 군영에 보내자 진나라 군대가 물러나 순郇(임의현 서남쪽)에 주둔하였다. 신축일(7일 후)에 호언과 진[秦], 진[晉]의 대부들이 순에서 결맹하였다. 임인일에 중이가 진[晉] 나라 군영으로 들어갔다. 병오일(4일 후)에 곡옥으로 입성하고, 다음날 정미일에 할아버지인 진 무공武公의 사당인 무궁武宮을 참배했다. 무신일(다음날)에 고량高梁(산서성 임분시 동북쪽)으로 사람을 보내 진 회공懷公을 죽였다.
<춘추좌전> 희공 24년
토론하기
1. 19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서 호언이 중이에게 자기는 이제 떠나겠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2. 19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중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해설읽기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형의 죽음 이후 아버지가 보낸 사람에 의해 쫓겨 죽을 뻔 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져 20년 가까이 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심정이란. 비록 진[秦] 목공의 도움을 받아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나중에 은혜를 갚으면 될 일이다. <좌전>은 중이의 귀국길에 관해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외삼촌이자 19년간 중이를 옆에서 충직하게 보좌한 호언과의 대화이다.
진[秦] 나라를 떠나 진[晉]나라로 돌아가면서 황하에 이르렀다. 이제 황하만 건너면 진[晉] 나라이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걱정과 기대와 함께 지난 19년에 대한 회한이 물밀 듯 밀려왔을 것이다. 이 때 그 시간들을 함께 버텨준 가장 가까운 참모 그룹의 한 명인 호언이 자신은 이제 주군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껏 함께 고생했으니 앞으로는 진[晉] 나라에 들어가서는 중이를 진나라 군주로 모시면서 최고 관직을 맡아 국정을 다스리고 싶다는 포부와 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떠나야겠다니, 호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중이의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 19년은 망명자, 방랑자, 떠돌이로서의 세월이었다. 아무리 진나라 공자였다고는 하지만, 남의 나라를 전전하며 음식과 처소를 의탁하면서 차마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비루하고 곤란한 상황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부의 결속력을 강고해졌을지 모르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도 많을 것이다. 이제 황하를 건너 진나라로 들어가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런 기억과 단절하고 완전히 새롭게 위엄과 품격을 갖춘 군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새로운 일을 할 때 주저되는 바가 생길 것이다.
중이를 오랫동안 수행해 온 명민한 호언은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알아서 자신이 떠나겠다고 제안했을지 모른다. 호언은 등장할 때마다 이렇게 멋진 모습이다. 물론 이것을 호언이 혹시 나중에 팽 당할 것을 염려해 미리 선수를 친 제스처라고 폄하해 볼 수도 있지만, <좌전>의 기록에 나타난 호언은 늘 멋지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중이 또한 떠나겠다는 호언을 그대로 떠나보낼 사람이 아니다. 그는 황하의 물결 앞에서 나를 지금껏 지켜준 외삼촌과 함께 끝까지 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맹세하며 호언과의 믿음을 더욱 돈독히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중이 일행은 드디어 황하를 건너 진나라에 군대를 주둔했다. 현재 군주인 진 회공의 군대와 충돌도 없이 진[秦] 목공의 중재로 진[晉]나라 대부들을 회유해 결맹하고 진[晉]나라 군대를 접수했다. 예전에 중이 집안의 근거지였던 곡옥으로 가서 할아버지인 무공의 사당을 참배하고 자신이 진나라에 돌아왔음을 신고하고 다음 날 회공을 주살하는 것으로써 중이의 진나라 입국식이 무사히 끝났다.
전후맥락
여희의 계략으로 헌공의 첫째 아들 신생이 죽고, 중이는 망명길에 오른다. 진[秦]나라 목공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자신의 고국인 진[晉]나라로 돌아와 진나라의 군주가 된다.
고전본문
BC636년 봄, 주왕력 정월, 진秦 목공이 중이를 진나라로 들여보냈다… 중이가 황하에 이르렀을 때 호언이 지니고 있던 구슬을23 중이에게 바치며 말하였다.
“신이 군의 말고삐를 잡고 천하를 돌아다니는 사이에 지은 죄가 매우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데 군께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여기서 이만 떠나겠습니다.”
“만약 내가 외삼촌과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나는 벌을 받을 것입니다. 황하의 신이 증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구슬을 황하에 던졌다.
중이 일행은 황하를 건너 영호令狐(산서성 임의현 서쪽)를 포위하고 상천桑泉(상서성 임의현*)으로 들어가 구최臼衰(산서성 해주진 서북쪽)를 점령하였다. 2월 갑오일에 진[晉]나라 군대가 여류廬柳에 주둔했다. 진[秦] 목공이 공자 집縶을 진나라 군영에 보내자 진나라 군대가 물러나 순郇(임의현 서남쪽)에 주둔하였다. 신축일(7일 후)에 호언과 진[秦], 진[晉]의 대부들이 순에서 결맹하였다. 임인일에 중이가 진[晉] 나라 군영으로 들어갔다. 병오일(4일 후)에 곡옥으로 입성하고, 다음날 정미일에 할아버지인 진 무공武公의 사당인 무궁武宮을 참배했다. 무신일(다음날)에 고량高梁(산서성 임분시 동북쪽)으로 사람을 보내 진 회공懷公을 죽였다.
<춘추좌전> 희공 24년
토론하기
1. 19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서 호언이 중이에게 자기는 이제 떠나겠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2. 19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중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해설읽기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형의 죽음 이후 아버지가 보낸 사람에 의해 쫓겨 죽을 뻔 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져 20년 가까이 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심정이란. 비록 진[秦] 목공의 도움을 받아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나중에 은혜를 갚으면 될 일이다. <좌전>은 중이의 귀국길에 관해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외삼촌이자 19년간 중이를 옆에서 충직하게 보좌한 호언과의 대화이다.
진[秦] 나라를 떠나 진[晉]나라로 돌아가면서 황하에 이르렀다. 이제 황하만 건너면 진[晉] 나라이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걱정과 기대와 함께 지난 19년에 대한 회한이 물밀 듯 밀려왔을 것이다. 이 때 그 시간들을 함께 버텨준 가장 가까운 참모 그룹의 한 명인 호언이 자신은 이제 주군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껏 함께 고생했으니 앞으로는 진[晉] 나라에 들어가서는 중이를 진나라 군주로 모시면서 최고 관직을 맡아 국정을 다스리고 싶다는 포부와 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떠나야겠다니, 호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중이의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 19년은 망명자, 방랑자, 떠돌이로서의 세월이었다. 아무리 진나라 공자였다고는 하지만, 남의 나라를 전전하며 음식과 처소를 의탁하면서 차마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비루하고 곤란한 상황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부의 결속력을 강고해졌을지 모르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도 많을 것이다. 이제 황하를 건너 진나라로 들어가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런 기억과 단절하고 완전히 새롭게 위엄과 품격을 갖춘 군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새로운 일을 할 때 주저되는 바가 생길 것이다.
중이를 오랫동안 수행해 온 명민한 호언은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알아서 자신이 떠나겠다고 제안했을지 모른다. 호언은 등장할 때마다 이렇게 멋진 모습이다. 물론 이것을 호언이 혹시 나중에 팽 당할 것을 염려해 미리 선수를 친 제스처라고 폄하해 볼 수도 있지만, <좌전>의 기록에 나타난 호언은 늘 멋지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중이 또한 떠나겠다는 호언을 그대로 떠나보낼 사람이 아니다. 그는 황하의 물결 앞에서 나를 지금껏 지켜준 외삼촌과 함께 끝까지 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맹세하며 호언과의 믿음을 더욱 돈독히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중이 일행은 드디어 황하를 건너 진나라에 군대를 주둔했다. 현재 군주인 진 회공의 군대와 충돌도 없이 진[秦] 목공의 중재로 진[晉]나라 대부들을 회유해 결맹하고 진[晉]나라 군대를 접수했다. 예전에 중이 집안의 근거지였던 곡옥으로 가서 할아버지인 무공의 사당을 참배하고 자신이 진나라에 돌아왔음을 신고하고 다음 날 회공을 주살하는 것으로써 중이의 진나라 입국식이 무사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