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여희의 계략으로 헌공의 첫째 아들 신생이 죽고, 중이와 이오는 망명길에 오른다. 여러 나라를 들른 끝에 강대국인 초나라와 진[秦]나라로 가서 자신의 귀국을 도울 수 있는 힘 있는 군주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고전본문
초楚나라에 이르자 초나라 군주가 잔치를 베풀어 중이를 대접하면서 말했다.
“공자가 만약 진[晉]나라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어떻게 보답하겠소?”
“미녀와 옥, 비단 같은 것이라면 임금께서 이미 갖고 계실 터이고, 좋은 깃털, 모피, 상아, 가죽들도 임금의 땅에서 생산됩니다. 우리 진나라에 흘러온 것들은 임금께서 쓰시고 남은 것들이니, 무엇으로 임금께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라도 보답할 것이 있지 않겠소?”
“만약 임금의 덕으로 진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진나라와 초나라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중원에서 만나 싸우게 될 때 임금을 위해 90리를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도 전쟁을 중지하자는 임금의 명이 없다면 그때는 왼손에 채찍과 활을 잡고 오른손에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임금과 한 판 겨루어 보겠습니다.”
이에 초나라 영윤 성득신成得臣이 중이를 죽여 없애자고 청하였다. 초나라 군주가 말했다.
“중이는 뜻이 크면서도 검소하고 문아하면서도 예를 갖추었소. 그를 따르는 이들은 엄숙하면서도 너그럽고, 충성스러운 데다가 힘껏 주군을 섬기고 있소. 현재의 진나라 임금인 혜공은 가까운 사람이 없고 안팎에서 그를 미워하고 있소. 내가 듣기로 희성姬姓을 가진 나라 중에 중에 당숙唐叔의 후손이 가장 뒤에 쇠할 것이라고 하였소, 아마도 장차 중이가 진나라의 임금이 되기 때문일 것이오. 하늘이 그를 흥하게 하려는데 누가 그를 폐할 수 있겠소? 하늘의 뜻을 어기면 반드시 큰 재앙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는 중이를 진[秦]나라로 보내 주기로 하였다.
당시 진[秦]나라 군주 목공穆公이 중이에게 다섯 명의 여자를 주었는데, 중이의 조카로서 진[晉]나라 군주가 된 어圉의 아내 회영懷嬴도 그 중에 끼어 있었다. 하루는 회영이 주전자에 물을 담아 들고 중이가 씻도록 대양에 물을 부어주었는데, 세수를 마친 중이가 젖은 손을 털어 물을 회영에게 뿌렸다. 회영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우리 진[秦]나라와 그대의 진[晉]나라는 대등한 나라인데 어찌하여 저를 업신여기십니까?”
중이가 두려워하며 상의를 벗고 꿇어 앉아 죄수처럼 빌었다.
어느 날 진[秦] 목공이 중이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호언이 말하였다.
“저는 조최만큼 문장이 뛰어나지 못하니 조최를 데리고 가십시오.”
잔치에서 중이가 ‘하수河水’ 시를 읊자 진목공은 ‘유월六月’ 시를 읊었다.
조최가 말하였다.
“중이 공자는 절을 하고 술잔을 받으십시오.”
중이가 뜰 아래로 내려가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자 목공도 한 계단을 내려가 절 받기를 사양하였다. 조최가 말하였다. “군주께서 천자를 보좌하는 일을 중이에게 명하시니 중이가 감히 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춘추좌전> 희공 23년
토론하기
1. 내가 중이라면 초성왕의 질문에 어떻게 답했을까?
2. 회영에게 즉각 사과한 중이의 태도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3. 초나라 성왕에게는 강한 모습을, 회영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인 중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중이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정나라에서 떠나온 중이의 다음 행선지는 초나라이다. 제나라와 패권을 다투며 강국으로 성장 중이던 초나라 성왕은 중이를 격하게 환영했다. 중이의 자질을 단번에 알아본 초성왕은 연회를 베풀며 중이에게 묻는다. 자신이 중이의 귀국을 돕는다면, 중이는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당신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현재의 중이는 오랜 기간 망명 생활로 타국의 군주에 의탁하며 지내온 신세이기에 선뜻 뭔가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초나라 군주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진 분이 더 필요한 것이 뭐가 있겠냐며
일단은 얼버무렸다.
초성왕은 집요하게 다시 묻는다. 그래도 뭔가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아마도 자신에 대한 중이의 충성을 시험하기 위한 질문일 수도 있고, 만약의 경우라도 초나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우회적으로 한 것인지 모른다. 초성왕의 질문의 의도를 몰랐을 리 없는 중이는 그러나 엉뚱한 답변을 한다. 나중에 자신의 진나라 군대와 성왕의 초나라 군대가 불가피하게 겨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를 피하기 위해 30리 씩 세 번을 물러나겠지만, 그래도 맞붙어야 한다면 그때 가서는 한 판 싸우겠다고 답한다.
기대치 않은 답변을 들은 초성왕은 흠칫 놀랐을 것이다. 외국을 떠돌며 기식하고 있는 중이에게서 그런 당돌한 답변이 나오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초나라가 전쟁을 할 경우 반드시 돕겠다는 말이 아니라, 초나라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세 차례의 회피나 양보는 하겠지만, 결국은 싸우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초나라에서 자신과 일행의 몸을 의탁하는 신세이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돌아가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것이기도 하다. 이런 당돌한 태도에 초나라의 재상 격인 성득신은 발끈하며 중이를 살려둬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초성왕은 중이는 하늘이 돕는 사람이므로 막을 수 없다고 하며 중이를 예우하였다.
중이가 초나라에 머무는 중에 진[晉]나라 상황은 여전히 불안했다. 중이의 동생 이오 즉 진혜공은 진[秦] 목공과 신의를 여러 번 저버리고, 전쟁에서도 크게 패배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었다. 풀려나기는 했지만 자신의 아들 어圉를 진[秦] 나라에 볼모로 억류시켜 두었다. 그런데 진[秦]에서 결혼까지 한 어가 진[秦]을 탈출해 진[晉]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괘씸하게 여기고 현재의 진[晉]나라를 단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진[秦] 목공은 그 방안으로 중이를 이용하기로 한다.
진[秦] 목공은 중이가 머물고 있던 초나라에 사람을 보내 진[秦]나라로 중이를 초청한다. <좌전>에는 이에 대해 두 개의 일화가 나오는데 첫 번째 것은 매우 흥미롭다. 중이를 극진히 대접하며 진[秦] 목공은 중이에게 5명의 여자를 주었는데 그 중에는 조카 어가 진[秦]나라에 억류되었을 때 아내로 삼았던 회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이로서는 얼마나 떨떠름한 상황이었을까? 그렇지만 진[秦]목공이 그렇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어느 날 세수를 하다가 세숫물을 회영에게 튀어가자 회영은 자신과 진[秦]나라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화를 냈다. 조금 어이없는 상황에서 중이는 곧장 웃옷을 벗어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회영은 아마도 나이도 많지 않았을 터인데, 이미 예순이 지난 중이가 세숫물 좀 튀었다고 자신이 아내로 맞이한 여자에게 죄인처럼 사죄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진[秦] 목공의 계획을 알아채었을 중이는 어서 빨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람은 진[秦] 목공이다. 그의 심기를 거슬리거나 눈 밖에 나는 행동은 자신의 진[晉] 나라로 돌아갈 기회를 줄이는 일이다. 때문에 진[秦] 목공이 준 회영과 같은 여자의 심기도 건드려서는 안된다. 이로부터 이제는 진[晉]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중이의 절박함을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일이 진[秦] 목공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진목공은 연회를 베풀고 중이를 한 나라의 군주로 예우하고, 중이는 진목공의 명을 받을 것을 언약한다. 이로써 19년의 방랑길을 마치고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전후맥락
여희의 계략으로 헌공의 첫째 아들 신생이 죽고, 중이와 이오는 망명길에 오른다. 여러 나라를 들른 끝에 강대국인 초나라와 진[秦]나라로 가서 자신의 귀국을 도울 수 있는 힘 있는 군주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고전본문
초楚나라에 이르자 초나라 군주가 잔치를 베풀어 중이를 대접하면서 말했다.
“공자가 만약 진[晉]나라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어떻게 보답하겠소?”
“미녀와 옥, 비단 같은 것이라면 임금께서 이미 갖고 계실 터이고, 좋은 깃털, 모피, 상아, 가죽들도 임금의 땅에서 생산됩니다. 우리 진나라에 흘러온 것들은 임금께서 쓰시고 남은 것들이니, 무엇으로 임금께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라도 보답할 것이 있지 않겠소?”
“만약 임금의 덕으로 진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진나라와 초나라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중원에서 만나 싸우게 될 때 임금을 위해 90리를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도 전쟁을 중지하자는 임금의 명이 없다면 그때는 왼손에 채찍과 활을 잡고 오른손에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임금과 한 판 겨루어 보겠습니다.”
이에 초나라 영윤 성득신成得臣이 중이를 죽여 없애자고 청하였다. 초나라 군주가 말했다.
“중이는 뜻이 크면서도 검소하고 문아하면서도 예를 갖추었소. 그를 따르는 이들은 엄숙하면서도 너그럽고, 충성스러운 데다가 힘껏 주군을 섬기고 있소. 현재의 진나라 임금인 혜공은 가까운 사람이 없고 안팎에서 그를 미워하고 있소. 내가 듣기로 희성姬姓을 가진 나라 중에 중에 당숙唐叔의 후손이 가장 뒤에 쇠할 것이라고 하였소, 아마도 장차 중이가 진나라의 임금이 되기 때문일 것이오. 하늘이 그를 흥하게 하려는데 누가 그를 폐할 수 있겠소? 하늘의 뜻을 어기면 반드시 큰 재앙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는 중이를 진[秦]나라로 보내 주기로 하였다.
당시 진[秦]나라 군주 목공穆公이 중이에게 다섯 명의 여자를 주었는데, 중이의 조카로서 진[晉]나라 군주가 된 어圉의 아내 회영懷嬴도 그 중에 끼어 있었다. 하루는 회영이 주전자에 물을 담아 들고 중이가 씻도록 대양에 물을 부어주었는데, 세수를 마친 중이가 젖은 손을 털어 물을 회영에게 뿌렸다. 회영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우리 진[秦]나라와 그대의 진[晉]나라는 대등한 나라인데 어찌하여 저를 업신여기십니까?”
중이가 두려워하며 상의를 벗고 꿇어 앉아 죄수처럼 빌었다.
어느 날 진[秦] 목공이 중이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호언이 말하였다.
“저는 조최만큼 문장이 뛰어나지 못하니 조최를 데리고 가십시오.”
잔치에서 중이가 ‘하수河水’ 시를 읊자 진목공은 ‘유월六月’ 시를 읊었다.
조최가 말하였다.
“중이 공자는 절을 하고 술잔을 받으십시오.”
중이가 뜰 아래로 내려가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자 목공도 한 계단을 내려가 절 받기를 사양하였다. 조최가 말하였다. “군주께서 천자를 보좌하는 일을 중이에게 명하시니 중이가 감히 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춘추좌전> 희공 23년
토론하기
1. 내가 중이라면 초성왕의 질문에 어떻게 답했을까?
2. 회영에게 즉각 사과한 중이의 태도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3. 초나라 성왕에게는 강한 모습을, 회영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인 중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중이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정나라에서 떠나온 중이의 다음 행선지는 초나라이다. 제나라와 패권을 다투며 강국으로 성장 중이던 초나라 성왕은 중이를 격하게 환영했다. 중이의 자질을 단번에 알아본 초성왕은 연회를 베풀며 중이에게 묻는다. 자신이 중이의 귀국을 돕는다면, 중이는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당신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현재의 중이는 오랜 기간 망명 생활로 타국의 군주에 의탁하며 지내온 신세이기에 선뜻 뭔가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초나라 군주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진 분이 더 필요한 것이 뭐가 있겠냐며
일단은 얼버무렸다.
초성왕은 집요하게 다시 묻는다. 그래도 뭔가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아마도 자신에 대한 중이의 충성을 시험하기 위한 질문일 수도 있고, 만약의 경우라도 초나라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우회적으로 한 것인지 모른다. 초성왕의 질문의 의도를 몰랐을 리 없는 중이는 그러나 엉뚱한 답변을 한다. 나중에 자신의 진나라 군대와 성왕의 초나라 군대가 불가피하게 겨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를 피하기 위해 30리 씩 세 번을 물러나겠지만, 그래도 맞붙어야 한다면 그때 가서는 한 판 싸우겠다고 답한다.
기대치 않은 답변을 들은 초성왕은 흠칫 놀랐을 것이다. 외국을 떠돌며 기식하고 있는 중이에게서 그런 당돌한 답변이 나오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초나라가 전쟁을 할 경우 반드시 돕겠다는 말이 아니라, 초나라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세 차례의 회피나 양보는 하겠지만, 결국은 싸우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초나라에서 자신과 일행의 몸을 의탁하는 신세이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돌아가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것이기도 하다. 이런 당돌한 태도에 초나라의 재상 격인 성득신은 발끈하며 중이를 살려둬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초성왕은 중이는 하늘이 돕는 사람이므로 막을 수 없다고 하며 중이를 예우하였다.
중이가 초나라에 머무는 중에 진[晉]나라 상황은 여전히 불안했다. 중이의 동생 이오 즉 진혜공은 진[秦] 목공과 신의를 여러 번 저버리고, 전쟁에서도 크게 패배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었다. 풀려나기는 했지만 자신의 아들 어圉를 진[秦] 나라에 볼모로 억류시켜 두었다. 그런데 진[秦]에서 결혼까지 한 어가 진[秦]을 탈출해 진[晉]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괘씸하게 여기고 현재의 진[晉]나라를 단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진[秦] 목공은 그 방안으로 중이를 이용하기로 한다.
진[秦] 목공은 중이가 머물고 있던 초나라에 사람을 보내 진[秦]나라로 중이를 초청한다. <좌전>에는 이에 대해 두 개의 일화가 나오는데 첫 번째 것은 매우 흥미롭다. 중이를 극진히 대접하며 진[秦] 목공은 중이에게 5명의 여자를 주었는데 그 중에는 조카 어가 진[秦]나라에 억류되었을 때 아내로 삼았던 회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이로서는 얼마나 떨떠름한 상황이었을까? 그렇지만 진[秦]목공이 그렇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어느 날 세수를 하다가 세숫물을 회영에게 튀어가자 회영은 자신과 진[秦]나라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화를 냈다. 조금 어이없는 상황에서 중이는 곧장 웃옷을 벗어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회영은 아마도 나이도 많지 않았을 터인데, 이미 예순이 지난 중이가 세숫물 좀 튀었다고 자신이 아내로 맞이한 여자에게 죄인처럼 사죄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진[秦] 목공의 계획을 알아채었을 중이는 어서 빨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람은 진[秦] 목공이다. 그의 심기를 거슬리거나 눈 밖에 나는 행동은 자신의 진[晉] 나라로 돌아갈 기회를 줄이는 일이다. 때문에 진[秦] 목공이 준 회영과 같은 여자의 심기도 건드려서는 안된다. 이로부터 이제는 진[晉]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중이의 절박함을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일이 진[秦] 목공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진목공은 연회를 베풀고 중이를 한 나라의 군주로 예우하고, 중이는 진목공의 명을 받을 것을 언약한다. 이로써 19년의 방랑길을 마치고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