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정부인과 사이에 아들이 없던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은 부친의 첩인 제강과 간통해 신생申生을 낳았다. 융나라에서도 두 여자를 맞이하여 대융의 호희는 중이를 낳고, 소융의 여인은 이오를 낳았다. 또한 여융 군주의 딸 여희驪姬를 데려와서 여희는 해제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진헌공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다. 여희의 계략으로 헌공의 첫째 아들 신생이 죽자 중이는 변경 지역으로 도망하지만 아버지 헌공이 보낸 자객에 쫓겨 외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진나라를 벗어난 중이는 맨 먼저 적나라로 도망하여 오랜 세월을 보내고 강대국인 제나라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고전본문
[기원전 655년] 계모 여희가 꾸민 난을 피해 포성으로 달아났던 중이는 또 다시 아버지 헌공의 공격을 받고 적狄나라로 도망하였다. 당시 중이를 따른 사람은 호언狐偃, 조최趙衰, 전힐顚頡, 위무자魏武子, 사공계자司空季子 등이었다. 이때 적나라가 적족의 일파인 장구여廧咎如를 정벌하고, 숙외叔隗와 계외季隗 자매를 잡아와 중이에게 주었다. 중이는 계외를 아내로 삼아 백조伯鯈와 숙유叔劉를 낳고, 숙외는 조최에게 아내로 주었는데 이들에게서 조돈趙盾이 태어났다.
[기원전 644년] 중이가 적을 떠나 제나라로 향할 때 계외에게 말하였다.
“나를 기다리다가 25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거든 개가하시오.”
“제 나이 지금 스물다섯입니다. 25년 후라면 관에 들어갈 나이입니다. 그냥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중이는 적에서 12년을 머물고 떠났다.
중이 일행이 위衛나라를 지날 때 위 문공文公이 예우하지 않자 위나라를 떠나 오록五鹿에 이르렀다. 농부에게 음식을 구걸하니 농부가 중이에게 흙덩이를 주었다. 중이가 노하여 채찍으로 치려 하자 호언이 말하였다.
“하늘이 내리신 것입니다.”
중이는 머리를 조아리고 흙덩이를 받아 실었다.
제齊나라에 이르자 제 환공桓公이 자신의 딸을 중이의 아내로 삼게 하고 말 80필을 주었다. 이에 중이가 제나라 생활에 만족하며 안주하였지만, 중이를 따르는 자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느 날 중이를 따르는 자들이 제나라를 떠날 계획을 뽕나무 아래에서 몰래 모의하고 있었다. 그 때 누에치는 여자가 나무 위에 있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서 중이의 아내 강씨에게 일러바쳤다. 강씨는 그 여자를 죽여 입을 막고서 중이에게 말했다.
“당신이 천하를 경영할 원대한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엿들은 사람이 있어서 제가 죽였습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소.”
“그러지 말고 떠나십시오. 정에 연연해 안주한다면 이름을 떨칠 수 없습니다.”
중이가 말을 듣지 않자, 강씨는 호언과 상의하여 중이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수레에 싣고 제나라를 떠나보냈다. 술에서 깬 뒤에 중이가 크게 노하여 창을 들고 호언을 쫓아갔다.
<춘추좌전> 희공 23년
토론하기
(1) 적나라, 위나라, 제나라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중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가 가진 성격이나 기질은 장차 진나라를 춘추 5패의 하나로 만드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2) 중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소설과 영화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나 역사적 인물에서 찾아보고 어떤 점이 비슷한지 얘기해 보자.
(3) 내가 생각하는 영웅과 훌륭한 리더의 모습은 중이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
해설읽기
중이 일행이 아버지 헌공이 보낸 환관 피의 추격을 받으며 급히 포 땅을 떠나서 도착한 곳은 적나라였다. 경황없이 떠난 터라 멀리 가지 못하고 진나라에서 가까운 곳에서 여장을 풀어야 했다. 또한 중이 어머니가 적족 출신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중이가 진나라를 떠난 후 진나라에서는 아버지 진헌공이 죽고 여희의 아들 해제가 보위에 올랐지만, 곧 진나라 대부 이극이 일으킨 반란에 의해 해제와 탁자가 시해되는 등 정국은 혼란에 빠진다. 결국 반란 세력에 의해 중이와 마찬가지로 망명 중이던 중이의 동생 이오가 반란 세력과 손을 잡아 진나라 군주(혜공)가 된다.
적나라에 머문 처음 몇 년은 아버지의 용서 없이는 돌아갈 수 없었고, 이후 발생한 반란과 동생의 즉위로 또 다시 발이 묶였을 것이다. 그 사이 아내를 새로 맞이하고 또 두 아들도 얻어서 그 곳에 눌러 앉을까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중이가 적나라에 들어갔을 때가 43세 쯤 이었으니, 이미 50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그러던 중에 중이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는 재촉이 있었을 것이고, 중이 또한 더 이상 머문다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조바심도 생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패국인 제나라에서 최고의 실권 재상이던 관중이 죽고 제 환공 또한 노쇠한 상황이라, 제나라에 가면 자신들이 쓰일 여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중이의 본격적인 방랑 생활이 시작된다.
12년이나 머문 적나라를 떠나는 중이에 대해 <좌전>은 아내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중이는 자신은 지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25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른 데로 시집가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자신을 잊으라는 매정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당시 중이의 나이와 평균 수명을 고려한다면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말아달라는 부탁으로도 들린다. 또 자신이 무사히 진나라에 돌아간다면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계외 또한 이를 알고 25년 후면 어차피 죽어서 관 속에 들어가는 것 말고 갈 데도 없으니 그냥 기다리겠다고 응수한다. 중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반드시 기다리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어법이다. 어찌 보면 사소한 대화처럼 보이지만, 중이가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의 모습이며, 이런 모습은 이후에도 자주 보인다.
제나라를 향해 출발하지만, 그 여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도중에 위나라를 경유해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위문공에게 푸대접만 받았을 뿐이다. 허기가 져서 들판의 농부에게 먹을 것을 부탁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농부는 중이 일행에게 흙덩이를 집어 던졌다. 지금은 떠도는 신세이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공자인데 그런 대접을 받으니 중이는 위문공에게 받은 푸대접까지 더하여 농부에게 분풀이를 하려 채찍을 휘둘렀다. 이때 중이를 수행하던 호언이 그를 말리며, 흙덩이는 결국 땅과 나라를 이루는 것이니 중이가 장차 크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며 그 흙을 소중히 받도록 했다. <동주 열국지>에서는 심지어 중이가 수레에서 내려 농부에게 절을 하고 흙 한 덩이를 청해 받는다고 되어 있다. 이 일화는 중이의 분을 풀고 상황을 호전시키려는 호언의 과장된 의미 부여이지만, 어쨌든 이런 노력을 통해 중이 일행은 고생스러운 방랑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적나라에서 허송세월로 12년을 보낸 후 길을 떠나 도중에 들른 나라에서 푸대접을 받고 먹을 것도 없는 비참함 상황이지만 나는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심적 동력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제나라에서는 다행히 환대를 받았다. 제 환공은 자신의 딸을 중이에게 주고 말 80필을 주는 등 중이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러나 곧 제 환공이 죽고 그 아들들이 권력다툼을 하면서 제나라가 혼란에 빠져들어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다. 중이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의 안락한 생활에 빠져 자신이 일행을 이끌고 진나라를 떠나 십여 년 넘게 외국을 전전하는 이유도 잊어버렸다. 이에 호언 등 중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은밀히 모여 제나라를 떠나 큰일을 도모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것이 중이 아내 귀에 들어간다. 여기서 반전은 아내 제강이 그가 떠나는 것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중이가 천하를 경영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제나라를 떠나 큰일을 도모하도록 제안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 사실을 알려준 사람을 죽여서 말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중이는 안락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마지막에 중이가 술에서 깨어나 호언이 일을 꾸민 사실을 알고 창을 들고 뒤쫓아 가는 모습은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코믹하기까지 하다.
중이가 진나라를 떠나오기 전부터 원대한 뜻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계모에 의한 형의 죽음을 목도하고 또 아버지가 보낸 자객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망명길에 올랐을 것이다. 외국에서의 망명 생활이 그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편안한 곳이 있다면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오랑캐 출신의 아내와는 돈독한 정을 나누었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농담을 한다. 자신을 하대하는 시골 촌부에 발끈하면서도 참모진의 말에 곧장 수긍하며 자신의 소명 앞에서 근엄해진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패업을 이루겠다는 목표는 안락한 생활에 빠져 잊어버리기도 한다. 요컨대 비장한 영웅과 지도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 좋고 거칠고 힘든 것이 싫은 보통 사람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다시는 힘든 길을 떠나기 싫다는 중이에게 술을 먹여 억지로 떠나게 만드는 모습은 확실히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과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미완성’의 중이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중이를 수행하는 집단이 오래도록 결속을 유지하고 19년의 방랑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진나라로 돌아가 진나라를 패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함께 하는 사람들 덕택일 것이다. 호언은 앞서 위나라 농부가 던진 흙덩이를 하늘의 명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하여 중이에게 정치적 소명의식을 심어주었으며, 제나라에서는 싫다는 중이를 억지로 떠나게 만들었다. 호언은 중이를 수행하는 신하이지만 중이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이에게 허물없이 조언하고 보좌할 수 있었다. 좀 더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의 아버지 호돌은 아들 호언이 중이를 따른다는 이유로 진회공(이오의 아들, 중이의 조카)에게 죽임을 당한다. 위 인용문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최 또한 뛰어난 보좌진의 한 명으로 끝까지 중이와 진나라를 위해 일했다. 적나라, 제나라에서 맞이한 아내들은 모두 중이와 잘 지냈고 중이가 큰 뜻을 펼치도록 적극 도왔다.
그렇다면 중이가 끝내 뜻을 이루고 춘추시대 초기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운 좋게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왜 끝까지 중이 옆에 남아 있었을까? 위에서 본 것처럼 중이는 누구보다 앞서서 알고 행동하는 완성된 인격체가 아니라, 어설프고 정에 약하고 좋은 게 좋은 보통 사람의 성정性情을 가졌다. 그런 그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로부터 배워나갔다. 이는 그의 정치적 경쟁자이던 동생 이오(진 혜공)와는 다른 자질이다. 위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오는 늘 적극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춘추좌전>은 중이와 이오가 신하들과 나누는 대화를 짧지만 일관된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중이가 주변 사람들의 말에 ‘聽’으로 응대한 반면, 이오는 늘 ‘不聽’으로 응대했다. <춘추좌전>의 저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이와 이오의 대비를 본다면 좌구명 또한 중이의 특징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던 듯하다.
전후맥락
정부인과 사이에 아들이 없던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은 부친의 첩인 제강과 간통해 신생申生을 낳았다. 융나라에서도 두 여자를 맞이하여 대융의 호희는 중이를 낳고, 소융의 여인은 이오를 낳았다. 또한 여융 군주의 딸 여희驪姬를 데려와서 여희는 해제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진헌공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다. 여희의 계략으로 헌공의 첫째 아들 신생이 죽자 중이는 변경 지역으로 도망하지만 아버지 헌공이 보낸 자객에 쫓겨 외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진나라를 벗어난 중이는 맨 먼저 적나라로 도망하여 오랜 세월을 보내고 강대국인 제나라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고전본문
[기원전 655년] 계모 여희가 꾸민 난을 피해 포성으로 달아났던 중이는 또 다시 아버지 헌공의 공격을 받고 적狄나라로 도망하였다. 당시 중이를 따른 사람은 호언狐偃, 조최趙衰, 전힐顚頡, 위무자魏武子, 사공계자司空季子 등이었다. 이때 적나라가 적족의 일파인 장구여廧咎如를 정벌하고, 숙외叔隗와 계외季隗 자매를 잡아와 중이에게 주었다. 중이는 계외를 아내로 삼아 백조伯鯈와 숙유叔劉를 낳고, 숙외는 조최에게 아내로 주었는데 이들에게서 조돈趙盾이 태어났다.
[기원전 644년] 중이가 적을 떠나 제나라로 향할 때 계외에게 말하였다.
“나를 기다리다가 25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거든 개가하시오.”
“제 나이 지금 스물다섯입니다. 25년 후라면 관에 들어갈 나이입니다. 그냥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중이는 적에서 12년을 머물고 떠났다.
중이 일행이 위衛나라를 지날 때 위 문공文公이 예우하지 않자 위나라를 떠나 오록五鹿에 이르렀다. 농부에게 음식을 구걸하니 농부가 중이에게 흙덩이를 주었다. 중이가 노하여 채찍으로 치려 하자 호언이 말하였다.
“하늘이 내리신 것입니다.”
중이는 머리를 조아리고 흙덩이를 받아 실었다.
제齊나라에 이르자 제 환공桓公이 자신의 딸을 중이의 아내로 삼게 하고 말 80필을 주었다. 이에 중이가 제나라 생활에 만족하며 안주하였지만, 중이를 따르는 자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느 날 중이를 따르는 자들이 제나라를 떠날 계획을 뽕나무 아래에서 몰래 모의하고 있었다. 그 때 누에치는 여자가 나무 위에 있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서 중이의 아내 강씨에게 일러바쳤다. 강씨는 그 여자를 죽여 입을 막고서 중이에게 말했다.
“당신이 천하를 경영할 원대한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엿들은 사람이 있어서 제가 죽였습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소.”
“그러지 말고 떠나십시오. 정에 연연해 안주한다면 이름을 떨칠 수 없습니다.”
중이가 말을 듣지 않자, 강씨는 호언과 상의하여 중이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수레에 싣고 제나라를 떠나보냈다. 술에서 깬 뒤에 중이가 크게 노하여 창을 들고 호언을 쫓아갔다.
<춘추좌전> 희공 23년
토론하기
(1) 적나라, 위나라, 제나라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중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가 가진 성격이나 기질은 장차 진나라를 춘추 5패의 하나로 만드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2) 중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소설과 영화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나 역사적 인물에서 찾아보고 어떤 점이 비슷한지 얘기해 보자.
(3) 내가 생각하는 영웅과 훌륭한 리더의 모습은 중이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
해설읽기
중이 일행이 아버지 헌공이 보낸 환관 피의 추격을 받으며 급히 포 땅을 떠나서 도착한 곳은 적나라였다. 경황없이 떠난 터라 멀리 가지 못하고 진나라에서 가까운 곳에서 여장을 풀어야 했다. 또한 중이 어머니가 적족 출신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중이가 진나라를 떠난 후 진나라에서는 아버지 진헌공이 죽고 여희의 아들 해제가 보위에 올랐지만, 곧 진나라 대부 이극이 일으킨 반란에 의해 해제와 탁자가 시해되는 등 정국은 혼란에 빠진다. 결국 반란 세력에 의해 중이와 마찬가지로 망명 중이던 중이의 동생 이오가 반란 세력과 손을 잡아 진나라 군주(혜공)가 된다.
적나라에 머문 처음 몇 년은 아버지의 용서 없이는 돌아갈 수 없었고, 이후 발생한 반란과 동생의 즉위로 또 다시 발이 묶였을 것이다. 그 사이 아내를 새로 맞이하고 또 두 아들도 얻어서 그 곳에 눌러 앉을까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중이가 적나라에 들어갔을 때가 43세 쯤 이었으니, 이미 50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그러던 중에 중이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는 재촉이 있었을 것이고, 중이 또한 더 이상 머문다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조바심도 생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패국인 제나라에서 최고의 실권 재상이던 관중이 죽고 제 환공 또한 노쇠한 상황이라, 제나라에 가면 자신들이 쓰일 여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중이의 본격적인 방랑 생활이 시작된다.
12년이나 머문 적나라를 떠나는 중이에 대해 <좌전>은 아내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중이는 자신은 지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25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른 데로 시집가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자신을 잊으라는 매정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당시 중이의 나이와 평균 수명을 고려한다면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말아달라는 부탁으로도 들린다. 또 자신이 무사히 진나라에 돌아간다면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계외 또한 이를 알고 25년 후면 어차피 죽어서 관 속에 들어가는 것 말고 갈 데도 없으니 그냥 기다리겠다고 응수한다. 중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반드시 기다리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어법이다. 어찌 보면 사소한 대화처럼 보이지만, 중이가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의 모습이며, 이런 모습은 이후에도 자주 보인다.
제나라를 향해 출발하지만, 그 여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도중에 위나라를 경유해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위문공에게 푸대접만 받았을 뿐이다. 허기가 져서 들판의 농부에게 먹을 것을 부탁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농부는 중이 일행에게 흙덩이를 집어 던졌다. 지금은 떠도는 신세이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공자인데 그런 대접을 받으니 중이는 위문공에게 받은 푸대접까지 더하여 농부에게 분풀이를 하려 채찍을 휘둘렀다. 이때 중이를 수행하던 호언이 그를 말리며, 흙덩이는 결국 땅과 나라를 이루는 것이니 중이가 장차 크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며 그 흙을 소중히 받도록 했다. <동주 열국지>에서는 심지어 중이가 수레에서 내려 농부에게 절을 하고 흙 한 덩이를 청해 받는다고 되어 있다. 이 일화는 중이의 분을 풀고 상황을 호전시키려는 호언의 과장된 의미 부여이지만, 어쨌든 이런 노력을 통해 중이 일행은 고생스러운 방랑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적나라에서 허송세월로 12년을 보낸 후 길을 떠나 도중에 들른 나라에서 푸대접을 받고 먹을 것도 없는 비참함 상황이지만 나는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심적 동력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제나라에서는 다행히 환대를 받았다. 제 환공은 자신의 딸을 중이에게 주고 말 80필을 주는 등 중이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러나 곧 제 환공이 죽고 그 아들들이 권력다툼을 하면서 제나라가 혼란에 빠져들어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다. 중이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의 안락한 생활에 빠져 자신이 일행을 이끌고 진나라를 떠나 십여 년 넘게 외국을 전전하는 이유도 잊어버렸다. 이에 호언 등 중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은밀히 모여 제나라를 떠나 큰일을 도모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것이 중이 아내 귀에 들어간다. 여기서 반전은 아내 제강이 그가 떠나는 것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중이가 천하를 경영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제나라를 떠나 큰일을 도모하도록 제안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 사실을 알려준 사람을 죽여서 말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중이는 안락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마지막에 중이가 술에서 깨어나 호언이 일을 꾸민 사실을 알고 창을 들고 뒤쫓아 가는 모습은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코믹하기까지 하다.
중이가 진나라를 떠나오기 전부터 원대한 뜻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계모에 의한 형의 죽음을 목도하고 또 아버지가 보낸 자객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망명길에 올랐을 것이다. 외국에서의 망명 생활이 그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편안한 곳이 있다면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오랑캐 출신의 아내와는 돈독한 정을 나누었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농담을 한다. 자신을 하대하는 시골 촌부에 발끈하면서도 참모진의 말에 곧장 수긍하며 자신의 소명 앞에서 근엄해진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패업을 이루겠다는 목표는 안락한 생활에 빠져 잊어버리기도 한다. 요컨대 비장한 영웅과 지도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 좋고 거칠고 힘든 것이 싫은 보통 사람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다시는 힘든 길을 떠나기 싫다는 중이에게 술을 먹여 억지로 떠나게 만드는 모습은 확실히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과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미완성’의 중이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중이를 수행하는 집단이 오래도록 결속을 유지하고 19년의 방랑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진나라로 돌아가 진나라를 패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함께 하는 사람들 덕택일 것이다. 호언은 앞서 위나라 농부가 던진 흙덩이를 하늘의 명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하여 중이에게 정치적 소명의식을 심어주었으며, 제나라에서는 싫다는 중이를 억지로 떠나게 만들었다. 호언은 중이를 수행하는 신하이지만 중이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이에게 허물없이 조언하고 보좌할 수 있었다. 좀 더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의 아버지 호돌은 아들 호언이 중이를 따른다는 이유로 진회공(이오의 아들, 중이의 조카)에게 죽임을 당한다. 위 인용문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최 또한 뛰어난 보좌진의 한 명으로 끝까지 중이와 진나라를 위해 일했다. 적나라, 제나라에서 맞이한 아내들은 모두 중이와 잘 지냈고 중이가 큰 뜻을 펼치도록 적극 도왔다.
그렇다면 중이가 끝내 뜻을 이루고 춘추시대 초기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운 좋게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왜 끝까지 중이 옆에 남아 있었을까? 위에서 본 것처럼 중이는 누구보다 앞서서 알고 행동하는 완성된 인격체가 아니라, 어설프고 정에 약하고 좋은 게 좋은 보통 사람의 성정性情을 가졌다. 그런 그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로부터 배워나갔다. 이는 그의 정치적 경쟁자이던 동생 이오(진 혜공)와는 다른 자질이다. 위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오는 늘 적극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춘추좌전>은 중이와 이오가 신하들과 나누는 대화를 짧지만 일관된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중이가 주변 사람들의 말에 ‘聽’으로 응대한 반면, 이오는 늘 ‘不聽’으로 응대했다. <춘추좌전>의 저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이와 이오의 대비를 본다면 좌구명 또한 중이의 특징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