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정부인과 사이에 아들이 없던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은 부친의 첩인 제강과 간통해 신생申生을 낳았다. 융나라에서도 두 여자를 맞이하여 대융의 호희는 중이를 낳고, 소융의 여인은 이오를 낳았다. 또한 여융 군주의 딸 여희驪姬를 데려와서 여희는 해제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진헌공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다.
고전본문
당초, 진晉 헌공獻公이 여희驪姬를 부인으로 삼고자 거북점을 쳤더니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고 시초蓍草 점을 쳤더니 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헌공이 말하였다.
“시초 점을 따르겠다.”
점치는 자가 말하였다.
“시초 점은 영험함이 낮고 거북점은 영험함이 높으니, 거북점을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 게다가 거북점의 점괘에는 ‘오로지 그 사람만을 지나치게 총애하면 마음이 변하여 군주의 숫양을 빼앗을 것이다. 향기 나는 풀과 악취 나는 풀을 함께 두면 10년이 지나도 악취가 난다’고 하였으니 절대로 안됩니다.”
그러나 헌공이 이를 듣지 않고 여희를 부인으로 삼았다. 여희는 해제奚齋을 낳고 그녀의 누이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해제를 태자로 세우기 위해 중대부中大夫와 계략을 꾸미고, 태자 신생에게 말하였다.
“임금께서 꿈에 그대의 생모 제강齊姜을 보셨다고 하더이다. 그러니 어서 급히 서둘러 제강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십시오!”
신생은 어머니 사당이 있는 곡옥曲沃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와 제사고기를 아버지 헌공에게 바쳤다. 마침 헌공이 사냥을 나가 있었는데 여희는 고기를 엿새 동안이나 궁궐에 그대로 두었다. 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음식에 독을 가미해 올렸다. 헌공이 맛보기 전에 땅에 던지니 땅이 부풀어 오르고 개에게 주니 개가 그대로 죽었다. 다시 이를 소신小臣에게 주었더니 그 역시 쓰러져 죽었다. 여희가 울면서 말하였다.
“이 간악한 일은 태자의 짓입니다.”
태자는 신성新城으로 달아났다.
헌공은 신생의 스승인 두원관杜原款을 죽였다. 어떤 이가 신생에게 말하였다.
“태자께서 사실을 말씀하시면 임금께서 틀림없이 죄의 유무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여희가 없으면 편히 지내지 못하시고 식사도 잘 드시지 못한다. 내가 해명한다면 필시 여희의 죄가 드러날 것이다. 임금께서 이미 연로하시니 여희가 없으면 편치 않으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 또한 편치 않을 것이다.”
“태자께서는 외국으로 가시렵니까?”
태자가 말하였다.
“임금께서 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살피시지 못했으니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오명을 쓰고서 다른 나라에 간들 누가 나를 받아주겠습니까?”
12월 무신일에 신생이 신성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여희는 마침내 다른 두 공자까지 참소했다.
“그들 모두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중이는 포蒲(산서성 습현의 서북쪽) 땅으로 달아나고 이오는 굴屈(산서성 길현의 동북쪽) 땅으로 달아났다….
[여희가 꾸민] 난이 일어나자 헌공이 환관 피披를 보내 포를 토벌하게 하였다. 중이가 포 사람들에게 말했다.
“군부의 명에 맞서서는 안 된다. 거역하는 자는 나의 원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담을 넘어 달아났다. 이때 환관 피가 칼을 휘둘렀지만 중이의 소맷자락만을 잘랐다.
중이가 드디어 적 나라로 달아났다.
<춘추좌전> 희공 4년, 5년
토론하기
(1) 신생은 자살해야 했을까? 신생이 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2) 내가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보고, 나는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얘기해 보자.
해설읽기
이 글은 여희가 자신의 아들 해제가 왕위를 잇게 하려고 태자 신생을 무함해 결국 자살하게 만드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희에 의한 신생의 죽음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이를 계기로 중이와 이오가 위험에 처해 외국으로 달아나게 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중이가 19년 방랑생활을 시작하는 계기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언뜻 보면 나쁜 계모가 남편에게 정실부인의 자식을 모함하여 죽게 만든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여희가 자기 아들을 군주의 자리에 올리려 했던 것은 이해가 되지만, 헌공은 왜 신생과 중이, 이오를 미워하는데 동참했을까? 아무리 여희를 사랑한다고 해도 태자를 비롯한 여러 아들을 여희의 말만 듣고 쫓아내거나 죽게 만들 수 있을까? 당시 진나라의 상황과 연관시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헌공 집안은 여러 대에 걸쳐 곡옥 지역의 영주(曲玉 伯)였는데, 진헌공의 아버지 무공 때에 이르러 진나라 군주를 시해하고 자신이 직접 군주가 되었다. 무공의 뒤를 이은 헌공은 일가친척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며 진나라에서 군위의 안정을 일구어 냈다. 아버지의 군위 찬탈, 자신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작업을 거치면서 진헌공에게 최우선 과제는 군주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태자 신생은 일종의 출생의 비밀이 있다. 헌공이 자기 아버지 무공의 첩과 간통하여 낳았기 때문이다. 중이와 이오는 적족狄族 출신의 여자들에게서 태어났는데, 당시 진나라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적족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마 이런 점들이 헌공이 신생과 중이, 이오를 썩 내켜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배경 속에서 진헌공은 여희가 참소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희의 치밀한 계략에 걸려든 신생은 꼭 자살해야 했을까? <좌전>의 기록은 여희가 애초 ‘악취 나는 풀’로써 ‘향기 나는 풀’도 악취 나게 만드는 사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의 계략에 휘말려 아버지에게 모함을 받았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우선 본문에 나온 말처럼 아버지 헌공에게 사건의 내막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생은 이를 거부한다. 만약 사실이 밝혀지면 여희는 벌을 받을 것인데 아버지가 총애하는 여인이 벌을 받는다면 아버지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라는 이유이다. 요즘의 정서로는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태자 신생은 이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니면 그냥 진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도망가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오명을 쓴 상태에서 다른 나라에 간다 해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비관하며 이 또한 거부한다. 이런 심성의 소유자가 아버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즉 해명도, 도망도, 반란도 불가능하다면 남은 것은 그냥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다. 거북점이 예언한 바대로 여희는 헌공의 총애를 받아 결국 헌공에게서 숫양을 빼앗았고, 신생은 그 운명에 그대로 순응하여 자결했다.
그렇다면 중이와 이오는 어땠을까? 그들은 일단 이전에 쫓겨나듯이 파견되었던 지역으로 도망간다. 중이는 포, 이오는 굴 지역이다. 그러나 한 번 여희의 모략에 눈이 먼 헌공은 중이가 도망한 포 땅까지 사람을 보내 중이를 죽이려고 했다. 아버지가 보낸 사람과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가는 방법을 택했으며 포 사람들에게도 저항하지 못하게 했다. 환관 피에게 쫓겨 달아나면서 간발의 차이로 옷소매를 베였지만 다행히 적翟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형 신생처럼 아버지의 명을 적극적으로 거역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응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운명의 거부는 가혹했다. 이후 중이는 19년간 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결국 진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되고 진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패주가 된다. 기원전 7세기에 있었던 중이의 오딧세이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후맥락
정부인과 사이에 아들이 없던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은 부친의 첩인 제강과 간통해 신생申生을 낳았다. 융나라에서도 두 여자를 맞이하여 대융의 호희는 중이를 낳고, 소융의 여인은 이오를 낳았다. 또한 여융 군주의 딸 여희驪姬를 데려와서 여희는 해제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진헌공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다.
고전본문
당초, 진晉 헌공獻公이 여희驪姬를 부인으로 삼고자 거북점을 쳤더니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고 시초蓍草 점을 쳤더니 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헌공이 말하였다.
“시초 점을 따르겠다.”
점치는 자가 말하였다.
“시초 점은 영험함이 낮고 거북점은 영험함이 높으니, 거북점을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 게다가 거북점의 점괘에는 ‘오로지 그 사람만을 지나치게 총애하면 마음이 변하여 군주의 숫양을 빼앗을 것이다. 향기 나는 풀과 악취 나는 풀을 함께 두면 10년이 지나도 악취가 난다’고 하였으니 절대로 안됩니다.”
그러나 헌공이 이를 듣지 않고 여희를 부인으로 삼았다. 여희는 해제奚齋을 낳고 그녀의 누이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해제를 태자로 세우기 위해 중대부中大夫와 계략을 꾸미고, 태자 신생에게 말하였다.
“임금께서 꿈에 그대의 생모 제강齊姜을 보셨다고 하더이다. 그러니 어서 급히 서둘러 제강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십시오!”
신생은 어머니 사당이 있는 곡옥曲沃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와 제사고기를 아버지 헌공에게 바쳤다. 마침 헌공이 사냥을 나가 있었는데 여희는 고기를 엿새 동안이나 궁궐에 그대로 두었다. 헌공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음식에 독을 가미해 올렸다. 헌공이 맛보기 전에 땅에 던지니 땅이 부풀어 오르고 개에게 주니 개가 그대로 죽었다. 다시 이를 소신小臣에게 주었더니 그 역시 쓰러져 죽었다. 여희가 울면서 말하였다.
“이 간악한 일은 태자의 짓입니다.”
태자는 신성新城으로 달아났다.
헌공은 신생의 스승인 두원관杜原款을 죽였다. 어떤 이가 신생에게 말하였다.
“태자께서 사실을 말씀하시면 임금께서 틀림없이 죄의 유무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여희가 없으면 편히 지내지 못하시고 식사도 잘 드시지 못한다. 내가 해명한다면 필시 여희의 죄가 드러날 것이다. 임금께서 이미 연로하시니 여희가 없으면 편치 않으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 또한 편치 않을 것이다.”
“태자께서는 외국으로 가시렵니까?”
태자가 말하였다.
“임금께서 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살피시지 못했으니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오명을 쓰고서 다른 나라에 간들 누가 나를 받아주겠습니까?”
12월 무신일에 신생이 신성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여희는 마침내 다른 두 공자까지 참소했다.
“그들 모두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중이는 포蒲(산서성 습현의 서북쪽) 땅으로 달아나고 이오는 굴屈(산서성 길현의 동북쪽) 땅으로 달아났다….
[여희가 꾸민] 난이 일어나자 헌공이 환관 피披를 보내 포를 토벌하게 하였다. 중이가 포 사람들에게 말했다.
“군부의 명에 맞서서는 안 된다. 거역하는 자는 나의 원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는 담을 넘어 달아났다. 이때 환관 피가 칼을 휘둘렀지만 중이의 소맷자락만을 잘랐다.
중이가 드디어 적 나라로 달아났다.
<춘추좌전> 희공 4년, 5년
토론하기
(1) 신생은 자살해야 했을까? 신생이 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2) 내가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보고, 나는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얘기해 보자.
해설읽기
이 글은 여희가 자신의 아들 해제가 왕위를 잇게 하려고 태자 신생을 무함해 결국 자살하게 만드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희에 의한 신생의 죽음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이를 계기로 중이와 이오가 위험에 처해 외국으로 달아나게 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중이가 19년 방랑생활을 시작하는 계기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언뜻 보면 나쁜 계모가 남편에게 정실부인의 자식을 모함하여 죽게 만든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여희가 자기 아들을 군주의 자리에 올리려 했던 것은 이해가 되지만, 헌공은 왜 신생과 중이, 이오를 미워하는데 동참했을까? 아무리 여희를 사랑한다고 해도 태자를 비롯한 여러 아들을 여희의 말만 듣고 쫓아내거나 죽게 만들 수 있을까? 당시 진나라의 상황과 연관시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헌공 집안은 여러 대에 걸쳐 곡옥 지역의 영주(曲玉 伯)였는데, 진헌공의 아버지 무공 때에 이르러 진나라 군주를 시해하고 자신이 직접 군주가 되었다. 무공의 뒤를 이은 헌공은 일가친척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며 진나라에서 군위의 안정을 일구어 냈다. 아버지의 군위 찬탈, 자신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작업을 거치면서 진헌공에게 최우선 과제는 군주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태자 신생은 일종의 출생의 비밀이 있다. 헌공이 자기 아버지 무공의 첩과 간통하여 낳았기 때문이다. 중이와 이오는 적족狄族 출신의 여자들에게서 태어났는데, 당시 진나라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적족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마 이런 점들이 헌공이 신생과 중이, 이오를 썩 내켜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배경 속에서 진헌공은 여희가 참소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희의 치밀한 계략에 걸려든 신생은 꼭 자살해야 했을까? <좌전>의 기록은 여희가 애초 ‘악취 나는 풀’로써 ‘향기 나는 풀’도 악취 나게 만드는 사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의 계략에 휘말려 아버지에게 모함을 받았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우선 본문에 나온 말처럼 아버지 헌공에게 사건의 내막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생은 이를 거부한다. 만약 사실이 밝혀지면 여희는 벌을 받을 것인데 아버지가 총애하는 여인이 벌을 받는다면 아버지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라는 이유이다. 요즘의 정서로는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태자 신생은 이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니면 그냥 진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도망가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오명을 쓴 상태에서 다른 나라에 간다 해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비관하며 이 또한 거부한다. 이런 심성의 소유자가 아버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즉 해명도, 도망도, 반란도 불가능하다면 남은 것은 그냥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다. 거북점이 예언한 바대로 여희는 헌공의 총애를 받아 결국 헌공에게서 숫양을 빼앗았고, 신생은 그 운명에 그대로 순응하여 자결했다.
그렇다면 중이와 이오는 어땠을까? 그들은 일단 이전에 쫓겨나듯이 파견되었던 지역으로 도망간다. 중이는 포, 이오는 굴 지역이다. 그러나 한 번 여희의 모략에 눈이 먼 헌공은 중이가 도망한 포 땅까지 사람을 보내 중이를 죽이려고 했다. 아버지가 보낸 사람과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가는 방법을 택했으며 포 사람들에게도 저항하지 못하게 했다. 환관 피에게 쫓겨 달아나면서 간발의 차이로 옷소매를 베였지만 다행히 적翟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형 신생처럼 아버지의 명을 적극적으로 거역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응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운명의 거부는 가혹했다. 이후 중이는 19년간 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결국 진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되고 진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패주가 된다. 기원전 7세기에 있었던 중이의 오딧세이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