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여희는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奚齊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모략을 통해 태자 신생申生을 곡옥으로 보내 억울한 죽음을 맞게 했고, 중이와 이오도 변경으로 쫓아내 외국으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진헌공이 죽자 대부 순식荀息이 해제를 세웠지만, 신생의 죽음에 복수를 다짐하며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따르던 이극里克의 무리는 난을 일으켜 해제를 살해했다. 순식이 또 탁자를 세우자 이극은 탁자를 조정에서 시해하고 순식도 죽였다. 이로써 외국에 나가 있던 중이와 이오가 국내에 들어와 군위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전본문
9월에 진헌공晉惠公이 세상을 떠나자, 대부 이극里克과 비정丕鄭이 외국에 나가 있는 헌공의 둘째 아들인 중이重耳를 군주로 맞이하기 위해 신생申生과 중이, 이오夷吾 세 공자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
이극里克이 해제奚齊를 죽이기 전에 먼저 순식荀息에게 물었다.
“원한을 품은 세 공자의 무리들이 난을 일으킬 예정이고 외국 친秦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돕고 있소. 그대는 장차 어찌 할 생각이시오”
“나는 해제를 따라 죽을 것이오.”
“죽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나는 선군이신 헌공과 약속하였으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소. 약속을 지키면서 어찌 몸을 아낄 수 있겠소. 비록 무익하다 해도 죽음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오. 또한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이 나보다 덜하지 않을 텐데, 나는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하면서 남들에게는 그리 하라고 말할 수 있겠소.”
10월에 이극은 상주가 머무는 처소에서 해제를 죽였다. <춘추>에 ‘군주의 아들을 죽였다’고 쓴 것은 아직 장례를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이 그를 따라 죽으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죽는 것은 해제의 동생인 탁자卓子를 옹립해 보좌하는 것만 못합니다.”
순식은 탁자를 군주로 세우고서 헌공을 장사 지냈다.
11월에 이극이 조정에서 탁자를 시해했다. 순식도 그를 따라 함께 죽임을 당했다.
…
다음 해 4월에 이오가 진혜공으로 옹립되었다. 이오는 이극을 죽여 자신을 해명하고자 했다.
이극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낸 이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없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오. 비록 그렇더라도 그대는 두 명의 군주와 한 명의 대부를 죽였으니 그대의 군주가 되기는 실로 어렵지 않겠소?”
이극이 말했다.
“제가 해제와 탁자를 없애지 않았다면 군주께서 어떻게 일어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저에게 죄를 씌우고자 하신다면 어찌 핑계 댈 말이 없겠습니까? 신은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춘추좌전> 희공 9년
토론하기
1. 이극과 비슷한 인물을 기존의 역사적 인물이나 영화와 드라마 등의 대중매체 캐릭터에서 찾아보자.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2. 자기 신념을 집요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멋진 사람인가? 세상과 조화되지 못하는 편협한 사람인가?
해설읽기
(일부 수정 예정)
진헌공이 사망하자 군위 계승 문제에 말썽이 많았던 진나라는 큰 내란이 연이어 발생해 두 명의 군위 계승자가 시해되었다. 대부 이극은 먼저 상주인 태자 해제를 죽였다. 곧이어 국내에 남아 있던 탁자가 보위에 올랐지만, 이극은 탁자마저 죽이고 그들을 보필하던 대부 순식도 함께 죽였다. 이극의 무리는 외국에 나가있는 중이와 이오에게 사람을 보내 입국하여 보위를 잇는 문제를 상의했다. 이때 이오가 좀 더 약삭빠르게 대응하여 진나라 군주가 된다. 그런데 이오가 군주가 되자마자 한 일은 이극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극은 왜 죽어야 했을까, 혹은 이오가 이극을 죽인 것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앞서 이극이라는 인물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극은 순식과 함께 진헌공의 대부로서 전장을 누볐으며, 신생의 어릴 적 사부였지만 그가 여희의 책략에 걸려들 때 모른 척 하고 중립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신생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몸 바쳐 일군 진나라가 모략을 통한 어린 군주들의 등극으로 망쳐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이전의 중립적인 태도를 벗어나 진나라의 혼란을 바로 잡고 정통성 없는 군주를 대신해 외국에 망명해 있는 중이와 이오, 특히 중이를 군주로 모셔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런 마음속의 결심은 진헌공이 죽고 난 후 거침이 없었다. 진헌공이 태자로 삼은 어린 해제를 상주의 처소에서 살해했다. 이 일을 단행하기 전에 오랜 동료였던 순식에게 먼저 물었다. 조만간 나라에 반란이 일어날 텐데 지금처럼 계속 정통성 없는 어린 군주를 보필할 것이냐고? 아마 순식이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해서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함께 진나라를 지키고 전장에 싸우던 동료애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전에 귀 뜸을 해 준 것이리라. 순식 또한 이극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바꿔 먹을 수 없는데, 당신에게 두 마음을 가지라고 할 수 있겠냐는 자조적인 말로 답할 뿐이었다.
순식이 갖고 있는 한 마음은 선군인 진헌공과의 약속대로 어린 태자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그 약속은 신하의 도리는 군주의 명령과 부탁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이극이 갖고 있는 한 마음은 정의롭지 않은 권력에 대해서는 군주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거역해야 하며 정의로운 권력을 내가 세워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파행을 되돌리고 올바른 일은 한다는 믿음은 거리낌 없이 어린 예비 군주를 2명이나 죽였고 오랜 동료였던 순식도 죽게 만들었다. 이극은 해제와 탁자를 죽일 때에도 두 명의 어린 군주를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시 진나라 사람 모두가 미워하고 군주로 인정하지 않는 두 사람을 자신이 대표로 처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순식의 말대로 각자가 최선이라고 믿는 바대로 행동했고, 다른 차선을 돌아볼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것을 돌아보면 행여나 두 마음을 갖게 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이극의 손에 묻은 피 덕분에 이오는 외국에서 돌아와 진나라 군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오는 왜 이극을 죽였을까? 그는 무엇을 해명해야 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이극과 한 패가 아니라는 것, 즉 언뜻 보기에는 이오 자신이 진나라 군주가 되고 싶어서 선왕이 태자로 명한 어린 동생을 죽였다는 오명을 갖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명보다 더 큰 것은 죽음의 위협일지 모른다. 즉 “그대는 두 명의 군주와 한 명의 대부를 죽였으니”라는 말 뒤에는 ‘나 또한 죽일지도 모른다’라는 의심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이극은 이오보다는 중이에게 먼저 국내로 들어와 혼란을 수습할 것을 제안했지만, 중이가 거절했다. 이오를 반대한 것도 아니었고 이오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서는 군주든 동료든 상관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의 군주가 되는 것은 이오의 말대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극은 자신이 믿는 바에 온 마음을 다했지만, 이것이 도리의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결과가 되었다. 두 명의 군주와 한 명의 대부를 살해했다는 죄목이 아니라, 과도한 자기 신념이 타인을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춘추>는 그의 죽음을 기록하며 “진나라가 대부 이극을 죽였다”고 썼다. 나라 이름을 앞에 쓰고 죽였다殺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은 춘추의 필법에 따르면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극이 뚜렷한 명분 없이 이오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순식과 마찬가지로 이극은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서 두 마음을 갖지 않고 집요하게 밀고 나갔다. 순식의 어리석은 선택과 달리 자신은 정의를 실천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기 확신은 더욱 강화되었고, 집요한 편집증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믿는 바를 조금이라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할 개연성이 크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하고 눈치가 빨랐던 이오는 그것을 재빨리 간파했을 것이다. 요컨대 두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극단적 신념의 실천이 이극 자신의 덫이 되어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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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희는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奚齊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모략을 통해 태자 신생申生을 곡옥으로 보내 억울한 죽음을 맞게 했고, 중이와 이오도 변경으로 쫓아내 외국으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진헌공이 죽자 대부 순식荀息이 해제를 세웠지만, 신생의 죽음에 복수를 다짐하며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따르던 이극里克의 무리는 난을 일으켜 해제를 살해했다. 순식이 또 탁자를 세우자 이극은 탁자를 조정에서 시해하고 순식도 죽였다. 이로써 외국에 나가 있던 중이와 이오가 국내에 들어와 군위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전본문
9월에 진헌공晉惠公이 세상을 떠나자, 대부 이극里克과 비정丕鄭이 외국에 나가 있는 헌공의 둘째 아들인 중이重耳를 군주로 맞이하기 위해 신생申生과 중이, 이오夷吾 세 공자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
이극里克이 해제奚齊를 죽이기 전에 먼저 순식荀息에게 물었다.
“원한을 품은 세 공자의 무리들이 난을 일으킬 예정이고 외국 친秦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돕고 있소. 그대는 장차 어찌 할 생각이시오”
“나는 해제를 따라 죽을 것이오.”
“죽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나는 선군이신 헌공과 약속하였으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소. 약속을 지키면서 어찌 몸을 아낄 수 있겠소. 비록 무익하다 해도 죽음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오. 또한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이 나보다 덜하지 않을 텐데, 나는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하면서 남들에게는 그리 하라고 말할 수 있겠소.”
10월에 이극은 상주가 머무는 처소에서 해제를 죽였다. <춘추>에 ‘군주의 아들을 죽였다’고 쓴 것은 아직 장례를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이 그를 따라 죽으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죽는 것은 해제의 동생인 탁자卓子를 옹립해 보좌하는 것만 못합니다.”
순식은 탁자를 군주로 세우고서 헌공을 장사 지냈다.
11월에 이극이 조정에서 탁자를 시해했다. 순식도 그를 따라 함께 죽임을 당했다.
…
다음 해 4월에 이오가 진혜공으로 옹립되었다. 이오는 이극을 죽여 자신을 해명하고자 했다.
이극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낸 이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없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오. 비록 그렇더라도 그대는 두 명의 군주와 한 명의 대부를 죽였으니 그대의 군주가 되기는 실로 어렵지 않겠소?”
이극이 말했다.
“제가 해제와 탁자를 없애지 않았다면 군주께서 어떻게 일어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저에게 죄를 씌우고자 하신다면 어찌 핑계 댈 말이 없겠습니까? 신은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춘추좌전> 희공 9년
토론하기
1. 이극과 비슷한 인물을 기존의 역사적 인물이나 영화와 드라마 등의 대중매체 캐릭터에서 찾아보자.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2. 자기 신념을 집요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멋진 사람인가? 세상과 조화되지 못하는 편협한 사람인가?
해설읽기
(일부 수정 예정)
진헌공이 사망하자 군위 계승 문제에 말썽이 많았던 진나라는 큰 내란이 연이어 발생해 두 명의 군위 계승자가 시해되었다. 대부 이극은 먼저 상주인 태자 해제를 죽였다. 곧이어 국내에 남아 있던 탁자가 보위에 올랐지만, 이극은 탁자마저 죽이고 그들을 보필하던 대부 순식도 함께 죽였다. 이극의 무리는 외국에 나가있는 중이와 이오에게 사람을 보내 입국하여 보위를 잇는 문제를 상의했다. 이때 이오가 좀 더 약삭빠르게 대응하여 진나라 군주가 된다. 그런데 이오가 군주가 되자마자 한 일은 이극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극은 왜 죽어야 했을까, 혹은 이오가 이극을 죽인 것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앞서 이극이라는 인물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극은 순식과 함께 진헌공의 대부로서 전장을 누볐으며, 신생의 어릴 적 사부였지만 그가 여희의 책략에 걸려들 때 모른 척 하고 중립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신생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몸 바쳐 일군 진나라가 모략을 통한 어린 군주들의 등극으로 망쳐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이전의 중립적인 태도를 벗어나 진나라의 혼란을 바로 잡고 정통성 없는 군주를 대신해 외국에 망명해 있는 중이와 이오, 특히 중이를 군주로 모셔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런 마음속의 결심은 진헌공이 죽고 난 후 거침이 없었다. 진헌공이 태자로 삼은 어린 해제를 상주의 처소에서 살해했다. 이 일을 단행하기 전에 오랜 동료였던 순식에게 먼저 물었다. 조만간 나라에 반란이 일어날 텐데 지금처럼 계속 정통성 없는 어린 군주를 보필할 것이냐고? 아마 순식이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해서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함께 진나라를 지키고 전장에 싸우던 동료애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전에 귀 뜸을 해 준 것이리라. 순식 또한 이극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바꿔 먹을 수 없는데, 당신에게 두 마음을 가지라고 할 수 있겠냐는 자조적인 말로 답할 뿐이었다.
순식이 갖고 있는 한 마음은 선군인 진헌공과의 약속대로 어린 태자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그 약속은 신하의 도리는 군주의 명령과 부탁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이극이 갖고 있는 한 마음은 정의롭지 않은 권력에 대해서는 군주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거역해야 하며 정의로운 권력을 내가 세워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파행을 되돌리고 올바른 일은 한다는 믿음은 거리낌 없이 어린 예비 군주를 2명이나 죽였고 오랜 동료였던 순식도 죽게 만들었다. 이극은 해제와 탁자를 죽일 때에도 두 명의 어린 군주를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시 진나라 사람 모두가 미워하고 군주로 인정하지 않는 두 사람을 자신이 대표로 처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순식의 말대로 각자가 최선이라고 믿는 바대로 행동했고, 다른 차선을 돌아볼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것을 돌아보면 행여나 두 마음을 갖게 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이극의 손에 묻은 피 덕분에 이오는 외국에서 돌아와 진나라 군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오는 왜 이극을 죽였을까? 그는 무엇을 해명해야 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이극과 한 패가 아니라는 것, 즉 언뜻 보기에는 이오 자신이 진나라 군주가 되고 싶어서 선왕이 태자로 명한 어린 동생을 죽였다는 오명을 갖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명보다 더 큰 것은 죽음의 위협일지 모른다. 즉 “그대는 두 명의 군주와 한 명의 대부를 죽였으니”라는 말 뒤에는 ‘나 또한 죽일지도 모른다’라는 의심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이극은 이오보다는 중이에게 먼저 국내로 들어와 혼란을 수습할 것을 제안했지만, 중이가 거절했다. 이오를 반대한 것도 아니었고 이오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서는 군주든 동료든 상관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의 군주가 되는 것은 이오의 말대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극은 자신이 믿는 바에 온 마음을 다했지만, 이것이 도리의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결과가 되었다. 두 명의 군주와 한 명의 대부를 살해했다는 죄목이 아니라, 과도한 자기 신념이 타인을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춘추>는 그의 죽음을 기록하며 “진나라가 대부 이극을 죽였다”고 썼다. 나라 이름을 앞에 쓰고 죽였다殺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은 춘추의 필법에 따르면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극이 뚜렷한 명분 없이 이오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순식과 마찬가지로 이극은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서 두 마음을 갖지 않고 집요하게 밀고 나갔다. 순식의 어리석은 선택과 달리 자신은 정의를 실천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기 확신은 더욱 강화되었고, 집요한 편집증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믿는 바를 조금이라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할 개연성이 크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하고 눈치가 빨랐던 이오는 그것을 재빨리 간파했을 것이다. 요컨대 두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극단적 신념의 실천이 이극 자신의 덫이 되어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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