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정부인과 사이에 아들이 없던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은 부친의 첩인 제강과 간통해 신생申生을 낳았다. 융나라에서도 두 여자를 맞이하여 대융의 호희는 중이를 낳고, 소융의 여인은 이오를 낳았다. 또한 여융 군주의 딸 여희를 데려와서 여희는 해제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진헌공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다. 이를 위해 태자 신생을 곡옥으로 보내어 모략을 통해 죽게 만들었고, 중이와 이오도 변경으로 쫓아내고 외국으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결국 진헌공은 해제를 태자로 삼았고, 해제의 사부였던 순식에게 해제를 부탁했다. 진헌공 사후에 여희와 해제에 불만을 갖던 이극 무리는 반란을 일으킨다.
고전본문
당초 진헌공晉獻公은 순식荀息을 해제奚齊의 사부로 삼았다. 헌공이 병이 중해지자 순식을 불러 물었다.
“이 어린 아이를 그대에게 맡기려 하는데 그대는 장차 어찌 하려는가?”
순식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신은 온 힘을 쏟고 충정忠貞을 다하겠습니다. 일이 성공한다면 군주의 영령 덕분이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죽음으로써 뒤따르겠습니다.”
“무엇을 충정忠貞이라 말하는가?”
“공가公家에 이롭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하는 것이 충忠이고, 돌아가신 군주를 장사지내고 살아 있는 군주를 섬기는 일에 모두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정貞입니다.”
9월에 헌공이 세상을 떠나자, 대부 이극里克과 비정丕鄭이 외국에 나가 있는 헌공의 둘째 아들인 중이를 군주로 맞이하기 위해 신생과 중이, 이오 세 공자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이극이 해제를 죽이기 전에 먼저 순식에게 물었다.
“원한을 품은 세 공자의 무리들이 난을 일으키려 하고 있으며 친秦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돕고 있소. 그대는 장차 어찌 할 생각이시오”
“나는 해제를 따라 죽을 것이오.”
“죽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나는 선군이신 헌공과 약속하였으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소. 약속을 지키면서 어찌 몸을 아낄 수 있겠소. 비록 무익하다 해도 죽음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오. 또한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이 나보다 덜하지 않을 텐데, 나는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하면서 남들에게는 그리 하라고 말할 수 있겠소.”
10월에 이극은 상주가 머무는 처소에서 해제를 죽였다. <춘추>에 ‘군주의 아들을 죽였다’고 쓴 것은 아직 장례를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이 그를 따라 죽으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죽는 것은 해제의 동생인 탁자卓子를 옹립해 보좌하는 것만 못합니다.”
순식은 탁자를 군주로 세우고서 헌공을 장사 지냈다.
11월에 이극이 조정에서 탁자를 시해했다. 순식도 그를 따라 함께 죽임을 당했다.
군자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시경>에 ‘흰 옥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지만 한 번 뱉은 말의 티는 어찌할 수가 없네’라고 했다. 순식이 이런 경우이다.”
<춘추좌전> 희공 9년
토론하기
1. 순식이란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어떤 형용사로 그를 묘사할 수 있을까?
2.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했던 약속이 사회적 상식과 통념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설읽기
여희를 특별히 사랑했던 진헌공은 여희의 소생인 해제를 태자로 삼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또 자신이 죽은 후에 해제의 안위가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감했다. 그래서 대부 순식에게 해제의 안위를 부탁했다. 진헌공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어린 태자 해제는 선친이 죽은 지 한 달 만에 외국에 망명해 있는 형들을 따르는 세력인 이극 무리에 의해 살해된다. 목숨을 걸고 해제의 안위를 약속했던 순식은 해제를 따라 죽으려 하다가, 해제의 이복동생 탁자를 군주로 옹립해 보필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극이 탁자마저 시해하자 순식은 탁자를 따라 죽는 길을 선택했다.
진헌공이 병들어 죽어가는 순간에 순식을 불러 어린 해제를 부탁했다면, 순식은 평소에 충직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춘추좌전>의 외전外傳이라고 불리는 <국어>에도 순식의 ‘충직함’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진헌공이 태자 신생을 폐하고 해제를 태자로 세우고자 할 때 다른 대부들과의 논쟁에서 순식은 “나는 ‘신하가 군주를 섬길 때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 충성을 바치며 일해야 한다’고 들었소. 군주의 명을 어겨도 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소. 군주가 누구를 세우든 신하는 따를 뿐이오. 어찌 두 마음을 가질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즉 군주와 신하의 주어진 관계에 충실하고 신하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춘추좌전>에 인용된 <시경>의 시 구절을 보면 순식이 충직함으로만 평가되는 것 같지 않다. ‘말의 티’는 순식의 말을 탓하는 것으로 보인다. 순식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을 문제로 삼은 것일까? 그것보다는 순식이 온 마음을 바치기로 약속의 내용을 문제로 삼은 듯하다. 애초 해제는 태자 자리에 오르기 어려운 아들이었다. 해제가 태자가 된 것은 해제의 모친인 여희가 모략을 꾸며 진헌공의 아들들을 죽게 하거나 외국에 쫓아 보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신하의 도리란 진헌공이 그런 잘못된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간언하는 일이어야 하는데 순식은 도리어 그 잘못된 결정마저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끝까지 지켜주겠다며 약속을 했다. 말의 티란 바로 이 약속 자체를 빗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식은 충직함을 가장한 우둔함으로 평가받아야 할까? 뱉은 말을 삼키지 않은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할 수는 없을까? 즉 식언食言하지 않기 위해 죽음까지 무릅썼다면 높이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된다. 봉건시대라면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충직과 의리를 전제로 했고, 다른 두 마음을 품지 않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순식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헌공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 것을 폄하할 필요가 있을까?
순식의 행동을 두 가지로 분리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진헌공의 잘못된 결정에는 간언하지 않은 채 진헌공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일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일. 이 두 가지 모두 잘못된 것일까? 자신의 군주를 바른 길로 이끌지는 못했다면, 그런 잘못된 군주와의 약속은 저버려도 되는 것일까? 제때 간언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군주의 명을 끝내 죽음으로 지킨 것을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의롭지는 않지만 약속과 신의를 지킨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순식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산 자가 그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전에 나눈 말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신의가 있다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에 비춰보아 죽은 헌공이 다시 살아와도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 또한 가능하다. 순식은 군주가 살아 있을 때에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군주가 죽었을 때에는 또 군주의 나쁜 뜻을 이루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했는데, 순식을 신의를 지키는 충직한 신하라고 한다면 도적에게 충성하고 사사로이 친한 자들을 위해서 죽는 자들도 모두 다 충신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의 경우라면 조폭 세계의 의리를 진정한 의리라고 칭송할 수 있을까? 조직폭력배들이 조직원의 잘못을 법정에서 말하지 않고, 다른 조직원과 보스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까지 잃는다면 이 또한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컨대 다시 <시경>의 시 구절로 돌아온 셈이다. 내 마음을 다하는 충직과 신의는 그 행위 자체 뿐 아니라 그 행위를 구성하는 실제적인 내용 또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뱉어낸 말에 대해 두 마음을 갖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책임을 지고 지키려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울러 뱉은 말이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는 일 또한 필요하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일이며, 충정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순식은 죽음 외에 선택의 길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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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과 사이에 아들이 없던 진헌공晉獻公 (기원전 676-651 재위)은 부친의 첩인 제강과 간통해 신생申生을 낳았다. 융나라에서도 두 여자를 맞이하여 대융의 호희는 중이를 낳고, 소융의 여인은 이오를 낳았다. 또한 여융 군주의 딸 여희를 데려와서 여희는 해제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여희는 진헌공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다. 이를 위해 태자 신생을 곡옥으로 보내어 모략을 통해 죽게 만들었고, 중이와 이오도 변경으로 쫓아내고 외국으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결국 진헌공은 해제를 태자로 삼았고, 해제의 사부였던 순식에게 해제를 부탁했다. 진헌공 사후에 여희와 해제에 불만을 갖던 이극 무리는 반란을 일으킨다.
고전본문
당초 진헌공晉獻公은 순식荀息을 해제奚齊의 사부로 삼았다. 헌공이 병이 중해지자 순식을 불러 물었다.
“이 어린 아이를 그대에게 맡기려 하는데 그대는 장차 어찌 하려는가?”
순식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신은 온 힘을 쏟고 충정忠貞을 다하겠습니다. 일이 성공한다면 군주의 영령 덕분이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죽음으로써 뒤따르겠습니다.”
“무엇을 충정忠貞이라 말하는가?”
“공가公家에 이롭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하는 것이 충忠이고, 돌아가신 군주를 장사지내고 살아 있는 군주를 섬기는 일에 모두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정貞입니다.”
9월에 헌공이 세상을 떠나자, 대부 이극里克과 비정丕鄭이 외국에 나가 있는 헌공의 둘째 아들인 중이를 군주로 맞이하기 위해 신생과 중이, 이오 세 공자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이극이 해제를 죽이기 전에 먼저 순식에게 물었다.
“원한을 품은 세 공자의 무리들이 난을 일으키려 하고 있으며 친秦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돕고 있소. 그대는 장차 어찌 할 생각이시오”
“나는 해제를 따라 죽을 것이오.”
“죽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나는 선군이신 헌공과 약속하였으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소. 약속을 지키면서 어찌 몸을 아낄 수 있겠소. 비록 무익하다 해도 죽음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오. 또한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이 나보다 덜하지 않을 텐데, 나는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하면서 남들에게는 그리 하라고 말할 수 있겠소.”
10월에 이극은 상주가 머무는 처소에서 해제를 죽였다. <춘추>에 ‘군주의 아들을 죽였다’고 쓴 것은 아직 장례를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이 그를 따라 죽으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죽는 것은 해제의 동생인 탁자卓子를 옹립해 보좌하는 것만 못합니다.”
순식은 탁자를 군주로 세우고서 헌공을 장사 지냈다.
11월에 이극이 조정에서 탁자를 시해했다. 순식도 그를 따라 함께 죽임을 당했다.
군자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시경>에 ‘흰 옥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지만 한 번 뱉은 말의 티는 어찌할 수가 없네’라고 했다. 순식이 이런 경우이다.”
<춘추좌전> 희공 9년
토론하기
1. 순식이란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어떤 형용사로 그를 묘사할 수 있을까?
2.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했던 약속이 사회적 상식과 통념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설읽기
여희를 특별히 사랑했던 진헌공은 여희의 소생인 해제를 태자로 삼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또 자신이 죽은 후에 해제의 안위가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감했다. 그래서 대부 순식에게 해제의 안위를 부탁했다. 진헌공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어린 태자 해제는 선친이 죽은 지 한 달 만에 외국에 망명해 있는 형들을 따르는 세력인 이극 무리에 의해 살해된다. 목숨을 걸고 해제의 안위를 약속했던 순식은 해제를 따라 죽으려 하다가, 해제의 이복동생 탁자를 군주로 옹립해 보필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극이 탁자마저 시해하자 순식은 탁자를 따라 죽는 길을 선택했다.
진헌공이 병들어 죽어가는 순간에 순식을 불러 어린 해제를 부탁했다면, 순식은 평소에 충직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춘추좌전>의 외전外傳이라고 불리는 <국어>에도 순식의 ‘충직함’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진헌공이 태자 신생을 폐하고 해제를 태자로 세우고자 할 때 다른 대부들과의 논쟁에서 순식은 “나는 ‘신하가 군주를 섬길 때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 충성을 바치며 일해야 한다’고 들었소. 군주의 명을 어겨도 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소. 군주가 누구를 세우든 신하는 따를 뿐이오. 어찌 두 마음을 가질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즉 군주와 신하의 주어진 관계에 충실하고 신하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춘추좌전>에 인용된 <시경>의 시 구절을 보면 순식이 충직함으로만 평가되는 것 같지 않다. ‘말의 티’는 순식의 말을 탓하는 것으로 보인다. 순식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을 문제로 삼은 것일까? 그것보다는 순식이 온 마음을 바치기로 약속의 내용을 문제로 삼은 듯하다. 애초 해제는 태자 자리에 오르기 어려운 아들이었다. 해제가 태자가 된 것은 해제의 모친인 여희가 모략을 꾸며 진헌공의 아들들을 죽게 하거나 외국에 쫓아 보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신하의 도리란 진헌공이 그런 잘못된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간언하는 일이어야 하는데 순식은 도리어 그 잘못된 결정마저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끝까지 지켜주겠다며 약속을 했다. 말의 티란 바로 이 약속 자체를 빗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식은 충직함을 가장한 우둔함으로 평가받아야 할까? 뱉은 말을 삼키지 않은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할 수는 없을까? 즉 식언食言하지 않기 위해 죽음까지 무릅썼다면 높이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된다. 봉건시대라면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충직과 의리를 전제로 했고, 다른 두 마음을 품지 않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순식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헌공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 것을 폄하할 필요가 있을까?
순식의 행동을 두 가지로 분리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진헌공의 잘못된 결정에는 간언하지 않은 채 진헌공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일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일. 이 두 가지 모두 잘못된 것일까? 자신의 군주를 바른 길로 이끌지는 못했다면, 그런 잘못된 군주와의 약속은 저버려도 되는 것일까? 제때 간언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군주의 명을 끝내 죽음으로 지킨 것을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의롭지는 않지만 약속과 신의를 지킨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순식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산 자가 그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전에 나눈 말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신의가 있다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에 비춰보아 죽은 헌공이 다시 살아와도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 또한 가능하다. 순식은 군주가 살아 있을 때에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군주가 죽었을 때에는 또 군주의 나쁜 뜻을 이루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했는데, 순식을 신의를 지키는 충직한 신하라고 한다면 도적에게 충성하고 사사로이 친한 자들을 위해서 죽는 자들도 모두 다 충신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의 경우라면 조폭 세계의 의리를 진정한 의리라고 칭송할 수 있을까? 조직폭력배들이 조직원의 잘못을 법정에서 말하지 않고, 다른 조직원과 보스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까지 잃는다면 이 또한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컨대 다시 <시경>의 시 구절로 돌아온 셈이다. 내 마음을 다하는 충직과 신의는 그 행위 자체 뿐 아니라 그 행위를 구성하는 실제적인 내용 또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뱉어낸 말에 대해 두 마음을 갖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책임을 지고 지키려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울러 뱉은 말이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는 일 또한 필요하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일이며, 충정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순식은 죽음 외에 선택의 길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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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순식, 시해, 이극, 중이, 진문공, 진헌공, 탁자,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