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고전본문]
맹자의 제자 도응桃應이 물었다. “순이 천자가 되시고 고요皐陶가 판관이 되었는데,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맹자: “고요는 법대로 집행했을 것이네.”
도응: “순임금이 그렇게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맹자: “순임금이 어떻게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고요의 법은 전수받은 곳이 있네.”
도응: “그렇다면 순임금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맹자: “순임금은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 신발을 버리듯이 하고서,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바닷가에 살면서 종신토록 즐거워하며 천하를 잊으셨을 것이네.” (盡心 中)
토론하기
1. 내가 순임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2. 아버지를 위해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것은 과연 좋은 삶일까?
해설읽기
이 글은 고대 중국의 훌륭한 군주인 순임금이 아버지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를 가상하여 맹자의 제자가 묻고 맹자가 답한 내용이다. 순임금은 훌륭한 군주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인 ‘성인聖人’의 면모를 갖춘 인물로 간주된다. 순임금이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지만 의연히 대처한 이야기, 생업에 종사하며 이웃들과 잘 지내고 공동체를 윤택하게 만든 이야기, 그로 인해 요임금으로부터 나라를 물려받은 이야기 등은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
순의 아버지 고수는 순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새 부인을 맞이했고 그 사이에 아들 상象을 낳았다. 고수가 새로 맞이한 가족은 순을 못살게 굴고 괴롭혔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순의 아버지 고수에 대한 다음처럼 쓰고 있다. “고수가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 흙을 바르게 하고 자신은 아래에서 불을 놓아 창고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순은 두 개의 삿갓으로 몸을 가리고 내려와 죽지 않았다. 그 후 또 고수가 순에게 우물을 파게 하니, 순은 우물을 파면서 옆으로 나올 수 있는 숨은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순이 깊이 들어가자 고수는 상과 함께 흙을 내리부어 우물을 메웠지만 순은 숨겨놓은 구멍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전처소생의 아들 순을 미워하여 두 번이나 죽이려 했던 고수는 그야말로 패륜적인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패악스런 행동을 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보통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순에 관한 여러 일화는 그런 경우에도 순이 지혜롭고 어질게 행동해 부자간의 의를 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가 나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하여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이 문제와 관련해 맹자의 제자 도응은 순과 같은 성인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했을까를 스승 맹자에게 묻고 있다.
자기를 죽이려고도 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무 일 없는 듯 잘 지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런 아버지가 살인죄로 판결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버지를 위로하거나 재판관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일 아닐까? 도응은 당시 순이 군주의 지위에 있었으니 재판관이 법대로 처리하는 것을 막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특혜를 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판관 고요 또한 임금의 아버지에게 벌을 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맹자는 재판관 고요도, 임금 순도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임금이 공적인 군주로서 자신의 아버지에게만 사사로운 정을 베풀지 않고 모든 살인자에게 적용되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결정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대답은 전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순임금은 밤에 몰래 아버지를 업고 아는 사람이 없는 먼 곳으로 도망하여 살았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상의 설정이지만 여기서는 아버지가 죄를 지었지만 아버지를 처벌받아 죽게 둘 수 없다는 아들의 심정과, 법을 집행하는 재판관 고요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공적인 정의(公義)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군주의 태도가 충돌하고 있다. 아들의 심정을 사적 영역의 것, 군주의 태도를 공적 영역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적인 정을 위해 공적인 정의를 해쳐서는 안 되지만 한 개인에게 사적인 정이 공적인 정의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적인 정과 공적인 정의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맹자는 순임금이 군주로서의 지위를 버림으로써 사적인 정과 공적인 정의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과연 이런 선택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 밤에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갔다면 이것은 공적인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닌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 진정한 효라고 할 수 있나? 자기를 의지하는 신하들과 백성들을 놔두고 군주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그것은 책임 있는 군주의 모습인가? 등 여러 질문이 가능하다. 또한 맹자가 성인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대답한 당시와 오늘날과 책임윤리에 대한 인식이 같지 않다. 예컨대 현대 사회는 사적 영역보다 공적 영역에서의 윤리를 준수하는 데 더 엄격한 잣대를 세운다. 그러나 당시에 맹자는 사적인 부자간의 정을 지극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천리天理이며 공적인 것과 비교해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사적인 영역에서의 정과 도리를 잘 실천하여 그것을 점차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공적인 윤리가 안정적으로 확립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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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본문]
맹자의 제자 도응桃應이 물었다. “순이 천자가 되시고 고요皐陶가 판관이 되었는데,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맹자: “고요는 법대로 집행했을 것이네.”
도응: “순임금이 그렇게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맹자: “순임금이 어떻게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고요의 법은 전수받은 곳이 있네.”
도응: “그렇다면 순임금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맹자: “순임금은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 신발을 버리듯이 하고서,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바닷가에 살면서 종신토록 즐거워하며 천하를 잊으셨을 것이네.” (盡心 中)
토론하기
1. 내가 순임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2. 아버지를 위해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것은 과연 좋은 삶일까?
해설읽기
이 글은 고대 중국의 훌륭한 군주인 순임금이 아버지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를 가상하여 맹자의 제자가 묻고 맹자가 답한 내용이다. 순임금은 훌륭한 군주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인 ‘성인聖人’의 면모를 갖춘 인물로 간주된다. 순임금이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지만 의연히 대처한 이야기, 생업에 종사하며 이웃들과 잘 지내고 공동체를 윤택하게 만든 이야기, 그로 인해 요임금으로부터 나라를 물려받은 이야기 등은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
순의 아버지 고수는 순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새 부인을 맞이했고 그 사이에 아들 상象을 낳았다. 고수가 새로 맞이한 가족은 순을 못살게 굴고 괴롭혔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순의 아버지 고수에 대한 다음처럼 쓰고 있다. “고수가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 흙을 바르게 하고 자신은 아래에서 불을 놓아 창고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순은 두 개의 삿갓으로 몸을 가리고 내려와 죽지 않았다. 그 후 또 고수가 순에게 우물을 파게 하니, 순은 우물을 파면서 옆으로 나올 수 있는 숨은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순이 깊이 들어가자 고수는 상과 함께 흙을 내리부어 우물을 메웠지만 순은 숨겨놓은 구멍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전처소생의 아들 순을 미워하여 두 번이나 죽이려 했던 고수는 그야말로 패륜적인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패악스런 행동을 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보통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순에 관한 여러 일화는 그런 경우에도 순이 지혜롭고 어질게 행동해 부자간의 의를 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버지가 나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에게 옳지 못한 일을 하여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이 문제와 관련해 맹자의 제자 도응은 순과 같은 성인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했을까를 스승 맹자에게 묻고 있다.
자기를 죽이려고도 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무 일 없는 듯 잘 지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런 아버지가 살인죄로 판결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버지를 위로하거나 재판관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일 아닐까? 도응은 당시 순이 군주의 지위에 있었으니 재판관이 법대로 처리하는 것을 막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특혜를 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판관 고요 또한 임금의 아버지에게 벌을 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맹자는 재판관 고요도, 임금 순도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임금이 공적인 군주로서 자신의 아버지에게만 사사로운 정을 베풀지 않고 모든 살인자에게 적용되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결정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대답은 전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순임금은 밤에 몰래 아버지를 업고 아는 사람이 없는 먼 곳으로 도망하여 살았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상의 설정이지만 여기서는 아버지가 죄를 지었지만 아버지를 처벌받아 죽게 둘 수 없다는 아들의 심정과, 법을 집행하는 재판관 고요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공적인 정의(公義)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군주의 태도가 충돌하고 있다. 아들의 심정을 사적 영역의 것, 군주의 태도를 공적 영역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적인 정을 위해 공적인 정의를 해쳐서는 안 되지만 한 개인에게 사적인 정이 공적인 정의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적인 정과 공적인 정의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맹자는 순임금이 군주로서의 지위를 버림으로써 사적인 정과 공적인 정의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과연 이런 선택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 밤에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갔다면 이것은 공적인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닌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 진정한 효라고 할 수 있나? 자기를 의지하는 신하들과 백성들을 놔두고 군주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그것은 책임 있는 군주의 모습인가? 등 여러 질문이 가능하다. 또한 맹자가 성인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대답한 당시와 오늘날과 책임윤리에 대한 인식이 같지 않다. 예컨대 현대 사회는 사적 영역보다 공적 영역에서의 윤리를 준수하는 데 더 엄격한 잣대를 세운다. 그러나 당시에 맹자는 사적인 부자간의 정을 지극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천리天理이며 공적인 것과 비교해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사적인 영역에서의 정과 도리를 잘 실천하여 그것을 점차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공적인 윤리가 안정적으로 확립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