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죄를 얻어 축출되었던 위나라 태자 괴외가 오랜 고생 끝에 돌아와서 자신을 대신해 위나라 군주가 된 아들 첩을 내쫓고 자신이 군위에 오르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묘사하고 있다.
고전본문
기원전 496년 위衛나라 태자 괴외蒯聵가 송나라 들판을 지날 때, 시골 사람들이 송나라 사람과 불륜 관계에 있다고 소문이 난 괴외의 계모인 남자南子를 풍자해 노래했다. “너의 암퇘지는 이미 안정되었는데, 어찌 우리 늙은 수퇘지를 돌려보내지 않느냐?” 이 노래를 들은 괴외는 치욕스러워 하며 자신의 가신家臣 희양속戲陽速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어머니를 뵈러갈 때 따라가서 내가 뒤를 돌아보면 곧장 남자를 죽여라.” 희양속은 그리 하겠다고 했다. 귀국하여 곧 두 사람이 함께 가서 부인을 찾아뵈었는데, 괴외가 세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희양속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때 부인이 태자의 얼굴을 보고서 사태를 파악해 울부짖으며 남편인 위령공衛靈公에게 달려가 말했다. “괴외가 나를 죽이려 합니다.” 괴외는 송나라로 달아났고, 위령공은 괴외 무리를 모두 축출했다. […]
기원전 493년 위령공이 세상을 떠나자 괴외의 아들 첩輒이 군위에 올랐다. 같은 해 6월, 진晉나라 대부 조앙趙鞅이 태자 괴외를 도와 그를 위나라 도성과 가까운 척戚 땅으로 들여보냈다. 조앙은 괴외에게 상복을 입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복을 입혀 위장시켰다. 이들은 문지기에게 거짓말로 상이 났다고 알리고 곡하며 들어가 마침내 척 땅에 거주했다. […]
이에 앞서 위나라 대부 공어孔圉가 괴외의 누이 백희伯姬를 부인으로 맞아 공회孔悝를 낳았다. 당시 공씨 집안의 노복 혼량부渾良夫가 키가 크고 잘생겼는데, 공어가 죽은 뒤에 백희와 간통했다. 괴외가 척 땅에 있을 때 백희는 혼량부를 괴외에게 심부름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 때 괴외가 혼량부에게 말했다. “만일 그대가 내가 위나라로 들어가 나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대를 대부로 삼아서 대부의 옷을 입게 하고 대부의 수레를 타게 할 것이다. 또 죽을 죄를 짓더라도 세 번은 용서할 것이다.” 혼량부는 괴외와 맹약하고, 백희에게 괴외를 돕자고 청했다. 기원전 480년 혼량부가 괴외와 함께 위나라 도성에 들어가서 공씨 집 밖에 있는 채마 밭에 머물렀다. 날이 어두워지자 두 사람은 여자 복장을 하고 수레에 올랐다. 시중드는 하인이 수레를 몰아 공씨 집으로 갔다. 공씨의 가신 난영欒寧이 누가 타고 있는지 묻자, 공씨 인척의 첩妾이라고 둘러대고는 들어가 백희에게로 갔다. 식사를 마친 뒤에 백희가 창을 쥐고 앞장서자, 괴외와 다섯 사람이 갑옷을 입고서 맹세할 때 희생으로 쓰기 위해 마련한 수퇘지를 수레에 싣고 뒤따랐다. 마침내 공회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자기들과 함께 할 것을 강요하고 그를 겁박하여 누대臺위로 올라갔다. 난영은 이때 막 술을 마시려다가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람을 보내 공자의 제자로서 공씨 집안의 가신으로 있는 자로子路에게 알렸다.
또 사람을 불러 위출공 첩의 수레를 몰게 했다. 수레 위에서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 난영이 위출공衛出公 첩輒을 데리고 도망쳐 나왔다. […]
이에 공회가 괴외를 군주로 세웠다.
토론하기
(1) 내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열한 후 각각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한국의 영화배우 중에 누구를 캐스팅하면 좋을지 얘기해보자.
(2) 위의 내용으로만 본다면, 괴외와 첩 둘 중에서 누가 더 문제적일까?
(3) 나는 아버지와 사회생활에서 특정한 목표를 두고 경쟁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예를 들어 기업에서 아버지 세대를 위해 정년을 연장하고 아들 세대를 위한 신규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아들 세대는 이 정책에 반대해야 할까, 찬성해야 할까?
해설읽기
괴외는 길을 가다 우연히 계모인 남자의 바르지 못한 행실을 듣게 되고, 이를 수치스러워 하여 암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고 발각되어 아버지에게 쫓겨난다. 3년 후 괴외의 아버지 위령공은 세상을 떠나고 계모의 친아들이 후사로 거론되었으나 사양하여 괴외의 아들 첩이 군주가 된다. 자기를 쫓아낸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괴외는 입국을 시도하지만 아들 첩의 방해로 실패하고,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여 위나라 도성 근처로 잠입해 들어가 거기서 오랜 기간 머물며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드디어 누이 백희와 그 집안사람들의 도움으로 자기 아들인 첩(=위출공)을 내쫓고 군주의 자리를 차지한다. 본문은 여기까지만 다루었지만, 이후에도 복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태자 괴외가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받아 망명 생활을 하다가 계략을 세워 다시 돌아와 군주가 되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 위령공과 아들 괴외, 그리고 아버지 괴외와 아들 첩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두 관계 모두 가족 질서 내에서는 부자관계이지만, 사회적 관계는 같지 않다. 위령공과 괴외는 군주와 태자의 관계이므로 권력 관계가 일방적이다. 괴외가 위령공에게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반면 괴외와 첩은 군위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이다. 한 쪽은 태자로서 군주가 될 뻔했지만 쫓겨났고 다른 한 쪽은 태손으로서 군주가 되었다. 한 쪽이 빼앗긴 것을 다른 한 쪽이 차지한 것이다. 또한 위령공과 괴외의 갈등은 나이 든 위령공의 죽음으로 쉽게 종식되었지만, 괴외와 첩의 갈등은 오랜 세월 지속되며 이 이야기의 중심 줄거리가 된다.
괴외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어 군위에 오르지 못했다면, 이를 대신해 괴외의 아들 첩이 군주가 되는 것은 정당할까? 어쩔 수 없이 아버지 괴외를 대신해 군주가 되었더라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아버지를 돌아오게 하고 군주 자리를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은 아닐까? 당시 사람들이 첩이 군주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괴외는 아버지에게 죄를 입은 상태이고, 첩은 적손이라 할아버지의 후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첩 또한 군주가 된 이후에 아버지의 귀국을 막았으므로 아버지에게 죄를 지은 셈이다.
당시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고 있어서, 제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이에 대해 명시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이름을 바로 잡는 것正名이 우선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이는 첩이 아버지가 있는데도 아버지로부터 군위를 물려받지 않고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호안국(胡安國, 1074~1138)이라는 학자는 괴외는 어머니를 살해하려 하다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첩은 나라를 차지하고서 아버지를 막았다는 점에서, 모두 아버지가 없는 자들이니 나라를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중 누가 군주가 되는 것이 더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이 군주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의 질문도 던진다. 첩이 처음 군주가 될 때는 아버지 괴외와 직접 권력 다툼을 하지 않았지만, 군주가 되고 나서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오랜 기간 대립해야 했고 마침내 아버지의 반란에 의해 축출된다. 그리고 이후 부자간에는 더 비극적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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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맥락
아버지에게 죄를 얻어 축출되었던 위나라 태자 괴외가 오랜 고생 끝에 돌아와서 자신을 대신해 위나라 군주가 된 아들 첩을 내쫓고 자신이 군위에 오르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묘사하고 있다.
고전본문
기원전 496년 위衛나라 태자 괴외蒯聵가 송나라 들판을 지날 때, 시골 사람들이 송나라 사람과 불륜 관계에 있다고 소문이 난 괴외의 계모인 남자南子를 풍자해 노래했다. “너의 암퇘지는 이미 안정되었는데, 어찌 우리 늙은 수퇘지를 돌려보내지 않느냐?” 이 노래를 들은 괴외는 치욕스러워 하며 자신의 가신家臣 희양속戲陽速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어머니를 뵈러갈 때 따라가서 내가 뒤를 돌아보면 곧장 남자를 죽여라.” 희양속은 그리 하겠다고 했다. 귀국하여 곧 두 사람이 함께 가서 부인을 찾아뵈었는데, 괴외가 세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희양속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때 부인이 태자의 얼굴을 보고서 사태를 파악해 울부짖으며 남편인 위령공衛靈公에게 달려가 말했다. “괴외가 나를 죽이려 합니다.” 괴외는 송나라로 달아났고, 위령공은 괴외 무리를 모두 축출했다. […]
기원전 493년 위령공이 세상을 떠나자 괴외의 아들 첩輒이 군위에 올랐다. 같은 해 6월, 진晉나라 대부 조앙趙鞅이 태자 괴외를 도와 그를 위나라 도성과 가까운 척戚 땅으로 들여보냈다. 조앙은 괴외에게 상복을 입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복을 입혀 위장시켰다. 이들은 문지기에게 거짓말로 상이 났다고 알리고 곡하며 들어가 마침내 척 땅에 거주했다. […]
이에 앞서 위나라 대부 공어孔圉가 괴외의 누이 백희伯姬를 부인으로 맞아 공회孔悝를 낳았다. 당시 공씨 집안의 노복 혼량부渾良夫가 키가 크고 잘생겼는데, 공어가 죽은 뒤에 백희와 간통했다. 괴외가 척 땅에 있을 때 백희는 혼량부를 괴외에게 심부름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 때 괴외가 혼량부에게 말했다. “만일 그대가 내가 위나라로 들어가 나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대를 대부로 삼아서 대부의 옷을 입게 하고 대부의 수레를 타게 할 것이다. 또 죽을 죄를 짓더라도 세 번은 용서할 것이다.” 혼량부는 괴외와 맹약하고, 백희에게 괴외를 돕자고 청했다. 기원전 480년 혼량부가 괴외와 함께 위나라 도성에 들어가서 공씨 집 밖에 있는 채마 밭에 머물렀다. 날이 어두워지자 두 사람은 여자 복장을 하고 수레에 올랐다. 시중드는 하인이 수레를 몰아 공씨 집으로 갔다. 공씨의 가신 난영欒寧이 누가 타고 있는지 묻자, 공씨 인척의 첩妾이라고 둘러대고는 들어가 백희에게로 갔다. 식사를 마친 뒤에 백희가 창을 쥐고 앞장서자, 괴외와 다섯 사람이 갑옷을 입고서 맹세할 때 희생으로 쓰기 위해 마련한 수퇘지를 수레에 싣고 뒤따랐다. 마침내 공회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자기들과 함께 할 것을 강요하고 그를 겁박하여 누대臺위로 올라갔다. 난영은 이때 막 술을 마시려다가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람을 보내 공자의 제자로서 공씨 집안의 가신으로 있는 자로子路에게 알렸다.
또 사람을 불러 위출공 첩의 수레를 몰게 했다. 수레 위에서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 난영이 위출공衛出公 첩輒을 데리고 도망쳐 나왔다. […]
이에 공회가 괴외를 군주로 세웠다.
토론하기
(1) 내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열한 후 각각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한국의 영화배우 중에 누구를 캐스팅하면 좋을지 얘기해보자.
(2) 위의 내용으로만 본다면, 괴외와 첩 둘 중에서 누가 더 문제적일까?
(3) 나는 아버지와 사회생활에서 특정한 목표를 두고 경쟁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예를 들어 기업에서 아버지 세대를 위해 정년을 연장하고 아들 세대를 위한 신규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아들 세대는 이 정책에 반대해야 할까, 찬성해야 할까?
해설읽기
괴외는 길을 가다 우연히 계모인 남자의 바르지 못한 행실을 듣게 되고, 이를 수치스러워 하여 암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고 발각되어 아버지에게 쫓겨난다. 3년 후 괴외의 아버지 위령공은 세상을 떠나고 계모의 친아들이 후사로 거론되었으나 사양하여 괴외의 아들 첩이 군주가 된다. 자기를 쫓아낸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괴외는 입국을 시도하지만 아들 첩의 방해로 실패하고,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여 위나라 도성 근처로 잠입해 들어가 거기서 오랜 기간 머물며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드디어 누이 백희와 그 집안사람들의 도움으로 자기 아들인 첩(=위출공)을 내쫓고 군주의 자리를 차지한다. 본문은 여기까지만 다루었지만, 이후에도 복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태자 괴외가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받아 망명 생활을 하다가 계략을 세워 다시 돌아와 군주가 되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 위령공과 아들 괴외, 그리고 아버지 괴외와 아들 첩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두 관계 모두 가족 질서 내에서는 부자관계이지만, 사회적 관계는 같지 않다. 위령공과 괴외는 군주와 태자의 관계이므로 권력 관계가 일방적이다. 괴외가 위령공에게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반면 괴외와 첩은 군위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이다. 한 쪽은 태자로서 군주가 될 뻔했지만 쫓겨났고 다른 한 쪽은 태손으로서 군주가 되었다. 한 쪽이 빼앗긴 것을 다른 한 쪽이 차지한 것이다. 또한 위령공과 괴외의 갈등은 나이 든 위령공의 죽음으로 쉽게 종식되었지만, 괴외와 첩의 갈등은 오랜 세월 지속되며 이 이야기의 중심 줄거리가 된다.
괴외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어 군위에 오르지 못했다면, 이를 대신해 괴외의 아들 첩이 군주가 되는 것은 정당할까? 어쩔 수 없이 아버지 괴외를 대신해 군주가 되었더라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아버지를 돌아오게 하고 군주 자리를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은 아닐까? 당시 사람들이 첩이 군주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괴외는 아버지에게 죄를 입은 상태이고, 첩은 적손이라 할아버지의 후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첩 또한 군주가 된 이후에 아버지의 귀국을 막았으므로 아버지에게 죄를 지은 셈이다.
당시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고 있어서, 제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이에 대해 명시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이름을 바로 잡는 것正名이 우선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이는 첩이 아버지가 있는데도 아버지로부터 군위를 물려받지 않고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호안국(胡安國, 1074~1138)이라는 학자는 괴외는 어머니를 살해하려 하다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첩은 나라를 차지하고서 아버지를 막았다는 점에서, 모두 아버지가 없는 자들이니 나라를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 중 누가 군주가 되는 것이 더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이 군주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의 질문도 던진다. 첩이 처음 군주가 될 때는 아버지 괴외와 직접 권력 다툼을 하지 않았지만, 군주가 되고 나서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오랜 기간 대립해야 했고 마침내 아버지의 반란에 의해 축출된다. 그리고 이후 부자간에는 더 비극적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