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군주의 아들 주우와 대부 석작의 이야기이다. 위장공의 아들 주우는 자기 형 위환공을 시해하고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가 다른 나라에서 죽임을 당했다. 위장공은 주우를 특별히 총애하며 그의 교만하고 못된 태도를 방치하였고, 석작은 주우가 자기 형의 군위를 찬탈했을 때 계략을 세워 주우와 자신의 아들 석후를 죽게 만들었다.
고전본문
주우州吁는 위衛나라 군주 위장공(衛莊公, 기원전 757-735 재위)의 서자이다. 위장공은 주우의 어머니를 매우 아꼈다. 주우는 위장공의 총애를 받아서 병사놀이를 좋아했지만 위장공은 이를 금지하지 않았다. 위나라 대부 석작昔碏이 간했다.
“신이 듣건대 ‘자식을 사랑하되 바른 도리로 가르쳐 사악한 길로 들지 않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교만·사치·욕심·방종驕奢淫泆은 바로 사악함이 생겨나는 원인이고, 이 네 가지가 나오는 것은 총애와 봉록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우를 후사로 세우고자 하신다면 곧장 정하십시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우는 총애를 믿고 화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위장공은 석작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한편 석작은 자신의 아들 석후石厚가 주우와 함께 노는 것을 금지했지만 석후는 듣지 않았다. 위장공이 세상을 떠나고 주우의 이복형인 위환공衛桓公이 왕위에 오른 지 16년 되던 해에 주우가 위환공을 시해하고서 스스로 위나라 군주가 되었다. […] 주우가 백성을 화합시키지 못하자, 석후가 아버지 석작에게 군위君位를 안정시킬 방법을 물었다. 석작이 대답했다. “천자天子를 뵐 수 있다면 군위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천자를 조현할 수 있습니까?” “진陳나라 환공桓公이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데 지금 우리 위나라가 진나라와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다. 만약 주우가 진환공을 찾아가 천자를 찾아 뵐 수 있도록 부탁하면 천자를 조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석후는 주우와 함께 진나라로 갔다. 이때 석작이 진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알렸다. “우리 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다가 나는 이미 너무 늙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실로 우리 군주를 시해한 자들이니, 그들을 바로 처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나라 사람들이 석작의 말에 따라 그들을 잡아 가두고 위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어 오기를 청했다. 위나라 사람들이 대부 추醜를 보내 주우를 죽였다. 석작은 자기 가신家臣 누양견獳羊肩을 보내 아들 석후를 죽였다.
토론하기
(1) 주우의 반란은 아버지 위무공의 편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석작이 아들 석후를 용서하지 않고 죽게 한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석작이 석후를 죽이는 것 외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3) 아버지가 자식의 잘못을, 또는 자식이 아버지의 잘못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하는 것은 공정함의 관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일일까?
해설읽기
위무공이 주우를 총애했지만, 군위는 장남인 위환공에게 승계했다. 불만을 품었던 주우는 반란을 도모하여 형인 위환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주가 된다. 반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안정되지 않자 함께 반란을 도모한 석후가 자신의 아버지 석작에게 민심을 화합할 방법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석작은 이들을 처벌할 계략을 세워 실행한다. 결국 진나라의 도움을 받아 석작은 군주 주우와 자신의 아들 석후를 죽이게 된다.
이 이야기에는 두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특정 아들을 지나치게 총애한 아버지와, 아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가신을 통해 아들을 죽인 아버지. 정장공과 무강의 이야기에서 어머니 무강이 공숙단을 지나치게 아낀 것이 공숙단의 반란을 부추긴 것으로 묘사되었다면, 이 이야기에서는 아버지 위무공이 주우를 지나치게 총애한 것이 주우 반란의 발단이 된 것으로 암시된다. 위무공이 주우의 반란을 부추긴 것은 아니지만, 그가 주우를 대하는 방식은 반란의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부모가 특정 아이만 지나치게 총애하면 그 아이는 교만·사치·욕심·방종이 생겨나기 쉽고, 이는 사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지름길이 된다고 한 석작의 간언은 이것을 잘 보여주며, 마치 예언처럼 주우는 형의 군위를 찬탈하는 반란을 일으킨다.
석작은 주우의 위험성을 간파하여 자신의 아들 석후가 주우와 노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석후는 아버지의 만류를 듣지 않고, 계속 주우와 교유하며 반란을 함께 도모하는데 이른다. 석작의 계책으로 주우와 함께 제나라를 방문한 석후는 진나라에 사로잡히게 된다. 주우를 처단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마도 석작은 고심에 빠졌을 것이다. 반란의 주동자로서 군위를 찬탈한 주우는 죽어 마땅하겠지만, 옆에서 함께 한 자신의 아들 석후도 죽여야 하는지 말이다.
주우를 죽이는 데는 공적인 지위에 있는 대부 추를 보냈지만, 자신의 아들은 자기 집안에서 부리는 가신을 보내 죽였다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석작이 이 일을 주도적으로 계획했지만, 찬탈이라 하더라도 주우는 현재의 군주이므로 마음대로 죽일 수 없고 주우의 처리를 위나라 관료들과 상의해야 했을 것이다. 그 결과 대부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대표로 주우를 죽이러 파견된다. 석작에 대해서는 공식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기 집의 가신을 보낸다. 즉 석후를 처벌하는 것은 공적인 논의가 아니라, 순전히 석작 개인의 결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자기의 아들은 가신을 통해 죽임으로써 좀 더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하려는 아버지의 배려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배려라면 죽인 것으로 위장하고 실제로는 죽이지 않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요컨대 석작은 아들 석후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주우와 함께 죽였다. 위장공에게 자식들 간의 관계를 무시하고 주우만을 사사로이 총애해서는 안 된다고 간언했던 석작이다. 따라서 주우에 대해서만 엄격하고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사사로운 온정을 베풀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석작을 공사 구분을 엄격히 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아니면 자식에게 지나치게 공적인 잣대를 들이댄 냉정한 아버지라고 평가해야 할까? <춘추좌전>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석작은 충순한 신하이다. 주우를 미워하여 석후까지 죽였으니, 대의를 위해 육친을 돌아보지 않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전후맥락
위나라 군주의 아들 주우와 대부 석작의 이야기이다. 위장공의 아들 주우는 자기 형 위환공을 시해하고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가 다른 나라에서 죽임을 당했다. 위장공은 주우를 특별히 총애하며 그의 교만하고 못된 태도를 방치하였고, 석작은 주우가 자기 형의 군위를 찬탈했을 때 계략을 세워 주우와 자신의 아들 석후를 죽게 만들었다.
고전본문
주우州吁는 위衛나라 군주 위장공(衛莊公, 기원전 757-735 재위)의 서자이다. 위장공은 주우의 어머니를 매우 아꼈다. 주우는 위장공의 총애를 받아서 병사놀이를 좋아했지만 위장공은 이를 금지하지 않았다. 위나라 대부 석작昔碏이 간했다.
“신이 듣건대 ‘자식을 사랑하되 바른 도리로 가르쳐 사악한 길로 들지 않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교만·사치·욕심·방종驕奢淫泆은 바로 사악함이 생겨나는 원인이고, 이 네 가지가 나오는 것은 총애와 봉록이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우를 후사로 세우고자 하신다면 곧장 정하십시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우는 총애를 믿고 화란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위장공은 석작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한편 석작은 자신의 아들 석후石厚가 주우와 함께 노는 것을 금지했지만 석후는 듣지 않았다. 위장공이 세상을 떠나고 주우의 이복형인 위환공衛桓公이 왕위에 오른 지 16년 되던 해에 주우가 위환공을 시해하고서 스스로 위나라 군주가 되었다. […] 주우가 백성을 화합시키지 못하자, 석후가 아버지 석작에게 군위君位를 안정시킬 방법을 물었다. 석작이 대답했다. “천자天子를 뵐 수 있다면 군위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천자를 조현할 수 있습니까?” “진陳나라 환공桓公이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데 지금 우리 위나라가 진나라와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다. 만약 주우가 진환공을 찾아가 천자를 찾아 뵐 수 있도록 부탁하면 천자를 조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석후는 주우와 함께 진나라로 갔다. 이때 석작이 진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알렸다. “우리 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다가 나는 이미 너무 늙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실로 우리 군주를 시해한 자들이니, 그들을 바로 처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나라 사람들이 석작의 말에 따라 그들을 잡아 가두고 위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어 오기를 청했다. 위나라 사람들이 대부 추醜를 보내 주우를 죽였다. 석작은 자기 가신家臣 누양견獳羊肩을 보내 아들 석후를 죽였다.
토론하기
(1) 주우의 반란은 아버지 위무공의 편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석작이 아들 석후를 용서하지 않고 죽게 한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석작이 석후를 죽이는 것 외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3) 아버지가 자식의 잘못을, 또는 자식이 아버지의 잘못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하는 것은 공정함의 관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일일까?
해설읽기
위무공이 주우를 총애했지만, 군위는 장남인 위환공에게 승계했다. 불만을 품었던 주우는 반란을 도모하여 형인 위환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주가 된다. 반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안정되지 않자 함께 반란을 도모한 석후가 자신의 아버지 석작에게 민심을 화합할 방법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석작은 이들을 처벌할 계략을 세워 실행한다. 결국 진나라의 도움을 받아 석작은 군주 주우와 자신의 아들 석후를 죽이게 된다.
이 이야기에는 두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특정 아들을 지나치게 총애한 아버지와, 아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가신을 통해 아들을 죽인 아버지. 정장공과 무강의 이야기에서 어머니 무강이 공숙단을 지나치게 아낀 것이 공숙단의 반란을 부추긴 것으로 묘사되었다면, 이 이야기에서는 아버지 위무공이 주우를 지나치게 총애한 것이 주우 반란의 발단이 된 것으로 암시된다. 위무공이 주우의 반란을 부추긴 것은 아니지만, 그가 주우를 대하는 방식은 반란의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부모가 특정 아이만 지나치게 총애하면 그 아이는 교만·사치·욕심·방종이 생겨나기 쉽고, 이는 사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지름길이 된다고 한 석작의 간언은 이것을 잘 보여주며, 마치 예언처럼 주우는 형의 군위를 찬탈하는 반란을 일으킨다.
석작은 주우의 위험성을 간파하여 자신의 아들 석후가 주우와 노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석후는 아버지의 만류를 듣지 않고, 계속 주우와 교유하며 반란을 함께 도모하는데 이른다. 석작의 계책으로 주우와 함께 제나라를 방문한 석후는 진나라에 사로잡히게 된다. 주우를 처단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마도 석작은 고심에 빠졌을 것이다. 반란의 주동자로서 군위를 찬탈한 주우는 죽어 마땅하겠지만, 옆에서 함께 한 자신의 아들 석후도 죽여야 하는지 말이다.
주우를 죽이는 데는 공적인 지위에 있는 대부 추를 보냈지만, 자신의 아들은 자기 집안에서 부리는 가신을 보내 죽였다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석작이 이 일을 주도적으로 계획했지만, 찬탈이라 하더라도 주우는 현재의 군주이므로 마음대로 죽일 수 없고 주우의 처리를 위나라 관료들과 상의해야 했을 것이다. 그 결과 대부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대표로 주우를 죽이러 파견된다. 석작에 대해서는 공식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기 집의 가신을 보낸다. 즉 석후를 처벌하는 것은 공적인 논의가 아니라, 순전히 석작 개인의 결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자기의 아들은 가신을 통해 죽임으로써 좀 더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하려는 아버지의 배려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배려라면 죽인 것으로 위장하고 실제로는 죽이지 않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요컨대 석작은 아들 석후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주우와 함께 죽였다. 위장공에게 자식들 간의 관계를 무시하고 주우만을 사사로이 총애해서는 안 된다고 간언했던 석작이다. 따라서 주우에 대해서만 엄격하고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사사로운 온정을 베풀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석작을 공사 구분을 엄격히 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아니면 자식에게 지나치게 공적인 잣대를 들이댄 냉정한 아버지라고 평가해야 할까? <춘추좌전>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석작은 충순한 신하이다. 주우를 미워하여 석후까지 죽였으니, 대의를 위해 육친을 돌아보지 않는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