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지금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불리는 齊, 楚, 燕, 韓, 趙, 魏, 秦 등 여러 제후국이 할거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국의 제후들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제자백가를 초빙하였으며, 맹자는 양 혜왕(梁 惠王), 제 선왕(齊 宣王) 등 여러 제후를 만나 인의(仁義)에 기반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펼칠 것을 설득한다. 그중에서도 끊임없는 전쟁과 재해로 백성들이 고통받던 상황 속에서 맹자가 가지고 있던 양민(養民) 정책에 대한 견해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고전본문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과인(寡人)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곳 백성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이주시키고 옮겨가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서는 곡식을 하내 지방으로 옮겨 구휼해 주며,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면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더 적어지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을 비유로 들겠습니다. 둥둥 북을 쳐서 싸움이 시작된 후에 한쪽이 불리하여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고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100보(步)를 도망간 뒤에 멈추고 어떤 자는 50보를 도망간 뒤에 멈추고서, 50보 도망간 자가 자신은 50보를 달아났다 하여 100보를 도망간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五十步百步]”
“안 되지요. 다만 100보를 도망가지 않았을 뿐이지 이 또한 도망간 것입니다.”
“왕께서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들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소서.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철을 놓치지 않게 하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알맞은 때에 산림(山林)을 베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고,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시작입니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어 구제할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라, 병기 탓이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흉년을 탓하지 않으시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위(魏)나라로 몰려올 것입니다.”
梁惠王曰:「寡人之於國也,盡心焉耳矣。河內凶,則移其民於河東,移其粟於河內。河東凶亦然。察鄰國之政,無如寡人之用心者。鄰國之民不加少,寡人之民不加多,何也?」 孟子對曰:「王好戰,請以戰喻。填然鼓之,兵刃既接,棄甲曳兵而走。或百步而後止,或五十步而後止。以五十步笑百步,則何如?」 曰:「不可,直不百步耳,是亦走也。」 曰:「王如知此,則無望民之多於鄰國也。不違農時,穀不可勝食也;數罟不入洿池,魚鼈不可勝食也;斧斤以時入山林,材木不可勝用也。穀與魚鼈不可勝食,材木不可勝用,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養生喪死無憾,王道之始也。(중략) 狗彘食人食而不知檢,塗有餓莩而不知發;人死,則曰:『非我也,歲也。』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非我也,兵也。』王無罪歲,斯天下之民至焉。」 『孟子』「梁惠王上」
토론하기
(1) 본문 속 이야기에서 백성들이 양나라로 모여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질병, 전쟁, 자연재해 등 다양한 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평소에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해설읽기
양나라 혜왕은 억울해한다. 흉년이 들자 거처를 옮길 만한 여력이 되는 백성들은 좀 더 먹고 살 만한 곳으로 이사를 보내주고, 이사 갈 힘조차 없는 백성들은 그들이 사는 곳으로 직접 먹을 것을 보내 살려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흉년이 들어 고생하는 백성들을 이만큼 챙겨주는 나라가 없는 것 같은데도 특별히 자신에게로 백성들이 더 모여들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해하는 왕에게 맹자는 그 유명한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이야기를 꺼낸다.
전쟁이 이미 시작되어 한창 싸우는 와중에 어떤 사람이 100보를 달아났다.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도망쳐 50보를 달아나던 사람이 100보를 달아나 있는 사람을 보고 비웃는다. 맹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왕에게 묻는다. 오십보나 백보나 달아난 것은 매한가지니 누가 더 낫다 할 수 없다고 답하는 왕에게 맹자는 여러 나라에 흉년이 든 지금의 상황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오십보백보 상황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백성들은 제때 농사를 짓지 못하여 가족 구성원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백성들의 생활을 평소에 제대로 살피지 못해 흉년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결국 견디지 못한 수많은 백성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이미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나은 대응을 했다고 생색을 내려 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상치 못한 국가적인 문제 상황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생기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여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평소에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양 혜왕이 아니라 그 어떤 뛰어난 인물이 군주의 위치에 있었다 하더라도 흉년이 드는 것 자체를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평소 곡식과 재목을 비축하는 데 힘써 두었다면 흉년이라는 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백성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거나 식량 지급을 기다리며 목숨을 연명하는 대신 그동안 대비하고 비축해둔 것들로 조금 더 단단히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양 혜왕은 여기에 실패했다. 따라서 그가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뒤늦게 한 노력들은 고통받는 백성들의 마음을 가져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처럼 이미 쓰러져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보며 그건 내 탓이 아니고 흉년 탓이라 말하며 뒤늦은 대응에 급급한 정치 권력은 오래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뒤늦은 대응은 결국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는 것과 오십보백보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 전쟁, 자연재해. 국가적 위기는 지금도 이름을 바꾸어가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중 일부는 이웃한 여러 나라가 다 함께 흉년을 겪었던 양 혜왕 당시의 경우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위기를 겪으면서 책임 전가를 하는 데 급급하고 더 못난 대응을 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는 데 바쁘다면 그 나라의 정치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키워드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왕도정치(王道政治), 위기 대응
전후맥락
지금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불리는 齊, 楚, 燕, 韓, 趙, 魏, 秦 등 여러 제후국이 할거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국의 제후들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제자백가를 초빙하였으며, 맹자는 양 혜왕(梁 惠王), 제 선왕(齊 宣王) 등 여러 제후를 만나 인의(仁義)에 기반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펼칠 것을 설득한다. 그중에서도 끊임없는 전쟁과 재해로 백성들이 고통받던 상황 속에서 맹자가 가지고 있던 양민(養民) 정책에 대한 견해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고전본문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과인(寡人)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곳 백성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이주시키고 옮겨가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서는 곡식을 하내 지방으로 옮겨 구휼해 주며,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면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더 적어지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을 비유로 들겠습니다. 둥둥 북을 쳐서 싸움이 시작된 후에 한쪽이 불리하여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고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100보(步)를 도망간 뒤에 멈추고 어떤 자는 50보를 도망간 뒤에 멈추고서, 50보 도망간 자가 자신은 50보를 달아났다 하여 100보를 도망간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五十步百步]”
“안 되지요. 다만 100보를 도망가지 않았을 뿐이지 이 또한 도망간 것입니다.”
“왕께서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들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소서.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철을 놓치지 않게 하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알맞은 때에 산림(山林)을 베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고,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시작입니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어 구제할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라, 병기 탓이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흉년을 탓하지 않으시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위(魏)나라로 몰려올 것입니다.”
梁惠王曰:「寡人之於國也,盡心焉耳矣。河內凶,則移其民於河東,移其粟於河內。河東凶亦然。察鄰國之政,無如寡人之用心者。鄰國之民不加少,寡人之民不加多,何也?」 孟子對曰:「王好戰,請以戰喻。填然鼓之,兵刃既接,棄甲曳兵而走。或百步而後止,或五十步而後止。以五十步笑百步,則何如?」 曰:「不可,直不百步耳,是亦走也。」 曰:「王如知此,則無望民之多於鄰國也。不違農時,穀不可勝食也;數罟不入洿池,魚鼈不可勝食也;斧斤以時入山林,材木不可勝用也。穀與魚鼈不可勝食,材木不可勝用,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養生喪死無憾,王道之始也。(중략) 狗彘食人食而不知檢,塗有餓莩而不知發;人死,則曰:『非我也,歲也。』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非我也,兵也。』王無罪歲,斯天下之民至焉。」 『孟子』「梁惠王上」
토론하기
(1) 본문 속 이야기에서 백성들이 양나라로 모여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질병, 전쟁, 자연재해 등 다양한 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평소에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해설읽기
양나라 혜왕은 억울해한다. 흉년이 들자 거처를 옮길 만한 여력이 되는 백성들은 좀 더 먹고 살 만한 곳으로 이사를 보내주고, 이사 갈 힘조차 없는 백성들은 그들이 사는 곳으로 직접 먹을 것을 보내 살려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흉년이 들어 고생하는 백성들을 이만큼 챙겨주는 나라가 없는 것 같은데도 특별히 자신에게로 백성들이 더 모여들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해하는 왕에게 맹자는 그 유명한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이야기를 꺼낸다.
전쟁이 이미 시작되어 한창 싸우는 와중에 어떤 사람이 100보를 달아났다.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도망쳐 50보를 달아나던 사람이 100보를 달아나 있는 사람을 보고 비웃는다. 맹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왕에게 묻는다. 오십보나 백보나 달아난 것은 매한가지니 누가 더 낫다 할 수 없다고 답하는 왕에게 맹자는 여러 나라에 흉년이 든 지금의 상황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오십보백보 상황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백성들은 제때 농사를 짓지 못하여 가족 구성원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백성들의 생활을 평소에 제대로 살피지 못해 흉년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결국 견디지 못한 수많은 백성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이미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나은 대응을 했다고 생색을 내려 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상치 못한 국가적인 문제 상황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생기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여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평소에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양 혜왕이 아니라 그 어떤 뛰어난 인물이 군주의 위치에 있었다 하더라도 흉년이 드는 것 자체를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평소 곡식과 재목을 비축하는 데 힘써 두었다면 흉년이라는 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백성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거나 식량 지급을 기다리며 목숨을 연명하는 대신 그동안 대비하고 비축해둔 것들로 조금 더 단단히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양 혜왕은 여기에 실패했다. 따라서 그가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뒤늦게 한 노력들은 고통받는 백성들의 마음을 가져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처럼 이미 쓰러져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보며 그건 내 탓이 아니고 흉년 탓이라 말하며 뒤늦은 대응에 급급한 정치 권력은 오래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뒤늦은 대응은 결국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는 것과 오십보백보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 전쟁, 자연재해. 국가적 위기는 지금도 이름을 바꾸어가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중 일부는 이웃한 여러 나라가 다 함께 흉년을 겪었던 양 혜왕 당시의 경우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위기를 겪으면서 책임 전가를 하는 데 급급하고 더 못난 대응을 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는 데 바쁘다면 그 나라의 정치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키워드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왕도정치(王道政治), 위기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