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기원전 210년 10월 천하를 순행하던 도중에 사망한다. 황제의 수레와 옥새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 순행에 참여하였던 환관 조고는 당시 승상이었던 이사와 함께 일을 꾸민다. 그들은 진시황의 죽음을 숨기고 가짜 조서를 내려 맏아들 부소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어서 막내아들인 호해를 2세 황제로 만들어 가혹한 법과 형벌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는 이에 대해 간언할 길도 차츰 막아버린다. 이후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마저 모함해 처형당하게 만들고, 자신이 승상의 지위에 올라 궁중의 모든 일을 결정하게 된다. 지금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벌어진 일이다.
고전본문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죽고 2세 황제인 호해가 천하를 다스리던 때였다. 환관 조고는 난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신하들이 제 말에 따라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고는 먼저 꾀를 내었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바치고는 조고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저것은 말이옵니다.”
“승상이 착각한 듯하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지록위마,指鹿爲馬) 무슨 소리요?”
“아닙니다. 말이 틀림없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주변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저것은 사슴이지?”
몇몇의 신하들은 침묵하였다. 다른 몇몇은 조고에게 잘 보이기 위한 답을 내어놓았다. “저것은 말입니다.”
《史记·秦始皇本纪》:八月己亥, 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 曰:“馬也.” 二世笑曰:“丞相誤邪? 謂鹿爲馬.” 問左右, 左右或黙, 或言馬以阿順趙高. 或言鹿(者),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後群臣皆畏高.
《史记·李斯列傳》 二世拝趙高為中丞相, 事無大小輒決於高。高自知権重, 乃獻鹿, 謂之馬. 二世問左右:“此乃鹿也?” 左右皆曰:“馬也。” 二世驚, 自以為惑。
토론하기
(1) 이 이야기에서 조고가 신하들 앞에서 왕에게 사슴을 바치고 말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추측해봅시다.
(2)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치’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의 모습과 여러분이 규정하는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 간에 일치하는 부분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해설읽기
사슴을 말이라고 한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일까? 그렇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이름한 주체가 바로 한 국가의 정치 권력을 장악한 조고였기 때문이다. 때로 이름과 실상 간의 괴리는 정치적 의도나 권력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일부러 조장되기도 한다. 즉, 의도적으로 이름을 왜곡하여 적극적으로 현실을 조작하거나 은폐하려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같은 이름 왜곡은 우리로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잘잘못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 본문에서 살펴본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예 역시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2000년 전 중국에서뿐 아니라 훨씬 최근에도 의도적 이름 왜곡은 계속해서 이루어져 왔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는 유대인의 강제 수용 및 집단 학살을 가리키는 용어로 ‘대정착, 안락사, 최종 해결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하였다. 이는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대량 살상에 대한 그들의 정상적인 지식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각주 1). 시작은 사슴을 말이라고 부르는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어떤 이름의 왜곡은 히틀러의 언어규칙처럼 우리 사회의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끔찍한 폭력을 합리적 배려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숨겨져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논어』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을 것이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라는 공자의 유명한 정명론(正名論)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공자의 ’정명론(正名論)‘ 역시 위와 유사한 배경에서 출현하였던 부당한 정치 권력에 대한 대응 방식이었다.
정명론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권력자에 의해 현실이 왜곡되었던 공자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있다. 당시 공자가 머물고 있던 위나라는 출공 첩이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출공 첩은 자신의 부친이 선대왕이자 조부인 영공과의 갈등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대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영공이 사망한 이후에도 출공 첩은 부친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것을 막으면서 계속해서 왕위를 차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 한 명이 만일 출공 첩이 정치 자문을 구해 온다면 무슨 일을 가장 우선할 것이냐고 묻자, 공자는 ‘이름부터 바로잡을 것’이라는 정명론을 내어놓게 된 것이다. 지금 군주로 행세하는 자가 군주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충분한 자격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공자는 정명론을 통해 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권력자에 의해 왜곡된 이름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 지록위마를 닮은 수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정치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 의해 왜곡된 이름은 없는가? 지금 당장 바로잡아야 할 이름이 있다면 무엇일까?
키워드
전후맥락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기원전 210년 10월 천하를 순행하던 도중에 사망한다. 황제의 수레와 옥새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 순행에 참여하였던 환관 조고는 당시 승상이었던 이사와 함께 일을 꾸민다. 그들은 진시황의 죽음을 숨기고 가짜 조서를 내려 맏아들 부소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어서 막내아들인 호해를 2세 황제로 만들어 가혹한 법과 형벌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는 이에 대해 간언할 길도 차츰 막아버린다. 이후 환관 조고는 승상 이사마저 모함해 처형당하게 만들고, 자신이 승상의 지위에 올라 궁중의 모든 일을 결정하게 된다. 지금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벌어진 일이다.
고전본문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죽고 2세 황제인 호해가 천하를 다스리던 때였다. 환관 조고는 난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신하들이 제 말에 따라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고는 먼저 꾀를 내었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바치고는 조고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저것은 말이옵니다.”
“승상이 착각한 듯하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지록위마,指鹿爲馬) 무슨 소리요?”
“아닙니다. 말이 틀림없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주변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저것은 사슴이지?”
몇몇의 신하들은 침묵하였다. 다른 몇몇은 조고에게 잘 보이기 위한 답을 내어놓았다. “저것은 말입니다.”
《史记·秦始皇本纪》:八月己亥, 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 曰:“馬也.” 二世笑曰:“丞相誤邪? 謂鹿爲馬.” 問左右, 左右或黙, 或言馬以阿順趙高. 或言鹿(者),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後群臣皆畏高.
《史记·李斯列傳》 二世拝趙高為中丞相, 事無大小輒決於高。高自知権重, 乃獻鹿, 謂之馬. 二世問左右:“此乃鹿也?” 左右皆曰:“馬也。” 二世驚, 自以為惑。
토론하기
(1) 이 이야기에서 조고가 신하들 앞에서 왕에게 사슴을 바치고 말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추측해봅시다.
(2)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치’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의 모습과 여러분이 규정하는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 간에 일치하는 부분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해설읽기
사슴을 말이라고 한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일까? 그렇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이름한 주체가 바로 한 국가의 정치 권력을 장악한 조고였기 때문이다. 때로 이름과 실상 간의 괴리는 정치적 의도나 권력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일부러 조장되기도 한다. 즉, 의도적으로 이름을 왜곡하여 적극적으로 현실을 조작하거나 은폐하려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같은 이름 왜곡은 우리로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잘잘못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 본문에서 살펴본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예 역시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2000년 전 중국에서뿐 아니라 훨씬 최근에도 의도적 이름 왜곡은 계속해서 이루어져 왔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는 유대인의 강제 수용 및 집단 학살을 가리키는 용어로 ‘대정착, 안락사, 최종 해결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하였다. 이는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대량 살상에 대한 그들의 정상적인 지식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각주 1). 시작은 사슴을 말이라고 부르는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어떤 이름의 왜곡은 히틀러의 언어규칙처럼 우리 사회의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끔찍한 폭력을 합리적 배려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숨겨져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논어』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을 것이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라는 공자의 유명한 정명론(正名論)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공자의 ’정명론(正名論)‘ 역시 위와 유사한 배경에서 출현하였던 부당한 정치 권력에 대한 대응 방식이었다.
정명론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권력자에 의해 현실이 왜곡되었던 공자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있다. 당시 공자가 머물고 있던 위나라는 출공 첩이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출공 첩은 자신의 부친이 선대왕이자 조부인 영공과의 갈등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대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영공이 사망한 이후에도 출공 첩은 부친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것을 막으면서 계속해서 왕위를 차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 한 명이 만일 출공 첩이 정치 자문을 구해 온다면 무슨 일을 가장 우선할 것이냐고 묻자, 공자는 ‘이름부터 바로잡을 것’이라는 정명론을 내어놓게 된 것이다. 지금 군주로 행세하는 자가 군주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충분한 자격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공자는 정명론을 통해 이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권력자에 의해 왜곡된 이름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 지록위마를 닮은 수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정치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 의해 왜곡된 이름은 없는가? 지금 당장 바로잡아야 할 이름이 있다면 무엇일까?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