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백이 숙제(伯夷叔齊)의 이야기는 중국 역사 중 은나라(약 서기전 1600-1046)와 주나라(약 서기전 1046-256)의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중국 역사상 하나라의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병칭되는 사람이다. 당시 서백(西伯, 서쪽 제후들의 우두머리)이었던 주나라의 문왕(文王)은 동북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제후국이 은나라 주왕을 이반하려는 상황에서도 이들을 다독여 주왕을 섬겼다. 그러다가 마침내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 대에 이르러 주왕을 토벌하고 은나라를 멸망시키게 된다. 은나라 제후국 중 하나인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산속에 들어가 은거하였고, 끝내 굶어 죽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전본문
3000년 전 중국 은나라에는 여러 제후국들이 있었다. 그중 한 나라인 고죽국의 왕에게는 백이와 숙제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고죽국의 왕은 둘 중 아우인 숙제에게 자신의 뒤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왕위를 형 백이에게 양보하려 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며 이를 피해 달아나 버렸고, 숙제 역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달아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의 또 다른 제후국이었던 주나라의 문왕이 노인 봉양을 잘 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그를 찾아가 몸을 맡기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나라에 이르렀을 때 문왕은 이미 죽은 뒤였고, 그의 아들인 무왕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치러 가는 길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으며 간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 신분으로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무왕 곁에 있던 신하들이 백이와 숙제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이때 무왕의 재상이었던 강태공이 그들을 두둔하며 말했다.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그 말을 듣고 무왕은 백이와 숙제를 보호하여 무사히 떠나게 했다.
그 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혼란을 모두 평정하고 나자, 천하 제후국들은 주나라를 받들게 되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의(義)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살았다. 결국 두 사람은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고사리를 뜯었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씨, 요순시대, 하나라는 홀연히 사라졌으니/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아! 이제는 죽음뿐/운명도 다하였구나
(전략)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譲伯夷. 伯夷曰:「父命也.」遂逃去. 叔齊亦不肯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 盍往歸焉. 及至, 西伯卒,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曰:「父死不葬, 爰及幹戈, 可謂孝乎? 以臣弑君, 可謂仁乎?」左右欲兵之. 太公曰:「此義人也.」扶而去之.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隠於首陽山, 采薇而食之. 及餓且死, 作歌. 其辭曰:「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於嗟徂兮, 命之衰矣!」 (후략)


토론하기
(1) 백이 숙제는 왜 굶어 죽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백이 숙제의 입장이었다면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이야기해봅시다.
(2) 조국을 망하게 한 원수의 나라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백이 숙제의 이야기는 나라가 망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누군가는 망명을 하고,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국가에 협력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여러분은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나 죽음이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해설읽기
백이 숙제를 두고 유가의 성인인 공자는 ‘그들은 인(仁)을 추구하여 스스로 인할 수 있었는데 무엇을 원망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인(仁)’은 유가에서 추구하는 다양한 도덕적 가치를 포괄하는 커다란 개념으로, 다시 말해 곧 사람다움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인(仁)’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하는 인륜을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인(仁)’이라는 개념 안에는 ‘효(孝)’와 ‘충(忠)’을 비롯한 여러 가치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백이 숙제의 이야기는 특히 국가 공동체와 그 안에 속한 개인 간의 관계에서 논의되는 ‘충(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은나라를 정벌한 주나라의 곡식을 먹고 사는 대신 산속으로 들어가 굶어 죽는 길을 택한 백이 숙제의 행동과 그런 백이 숙제를 두고 내리는 ‘인(仁)’하다는 평가 속에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다양한 가치 중에서도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공적 윤리에 해당하는 ‘충(忠)’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담겨 있다.
‘충(忠)’은 본래 어떤 대상에게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한다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할 것인가? 전통 사회에서 충을 바칠 가장 중요한 대상은 자신이 속한 국가 공동체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이와 동일시되는 군주가 그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백이 숙제는 은나라에 충성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주나라 무왕의 길을 막고 간언을 했으며, 은나라가 결국 무너지게 되자 굶어 죽는 길을 택했다. 그렇다면 백이 숙제는 국가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사람들, 즉 ‘충(忠)’을 다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충성의 대상은 국가인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인가? 만일 국가를 이끄는 현재의 지도자가 부도덕하거나 무능력하더라도 끝까지 충성해야 할 것인가? 공자와 더불어 유가의 성인으로 칭송되는 맹자는 백이를 두고 ‘섬길 만한 올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백이 숙제가 추구했던 섬길 만한 올바른 임금의 조건이란 것은 과연 무엇이었기에 그들은 폭군 주왕을 토벌한 주나라 무왕을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굶어 죽는 길을 택했던 것일까?
백이 숙제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인(仁)’이라는 유가의 핵심 가치에 대하여, 특히 그중에서도 ‘충(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많은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재평가해보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키워드
강태공, 백이숙제, 사람다움, 수양산, 은 주왕, 은나라, 의, 인, 주 무왕, 주나라, 죽음, 충, 효후맥락
전후맥락
백이 숙제(伯夷叔齊)의 이야기는 중국 역사 중 은나라(약 서기전 1600-1046)와 주나라(약 서기전 1046-256)의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중국 역사상 하나라의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병칭되는 사람이다. 당시 서백(西伯, 서쪽 제후들의 우두머리)이었던 주나라의 문왕(文王)은 동북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제후국이 은나라 주왕을 이반하려는 상황에서도 이들을 다독여 주왕을 섬겼다. 그러다가 마침내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 대에 이르러 주왕을 토벌하고 은나라를 멸망시키게 된다. 은나라 제후국 중 하나인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산속에 들어가 은거하였고, 끝내 굶어 죽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전본문
3000년 전 중국 은나라에는 여러 제후국들이 있었다. 그중 한 나라인 고죽국의 왕에게는 백이와 숙제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고죽국의 왕은 둘 중 아우인 숙제에게 자신의 뒤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왕위를 형 백이에게 양보하려 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며 이를 피해 달아나 버렸고, 숙제 역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달아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의 또 다른 제후국이었던 주나라의 문왕이 노인 봉양을 잘 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그를 찾아가 몸을 맡기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나라에 이르렀을 때 문왕은 이미 죽은 뒤였고, 그의 아들인 무왕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치러 가는 길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으며 간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 신분으로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무왕 곁에 있던 신하들이 백이와 숙제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이때 무왕의 재상이었던 강태공이 그들을 두둔하며 말했다.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그 말을 듣고 무왕은 백이와 숙제를 보호하여 무사히 떠나게 했다.
그 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혼란을 모두 평정하고 나자, 천하 제후국들은 주나라를 받들게 되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의(義)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살았다. 결국 두 사람은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고사리를 뜯었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씨, 요순시대, 하나라는 홀연히 사라졌으니/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아! 이제는 죽음뿐/운명도 다하였구나
(전략)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譲伯夷. 伯夷曰:「父命也.」遂逃去. 叔齊亦不肯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 盍往歸焉. 及至, 西伯卒,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曰:「父死不葬, 爰及幹戈, 可謂孝乎? 以臣弑君, 可謂仁乎?」左右欲兵之. 太公曰:「此義人也.」扶而去之.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隠於首陽山, 采薇而食之. 及餓且死, 作歌. 其辭曰:「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於嗟徂兮, 命之衰矣!」 (후략)


토론하기
(1) 백이 숙제는 왜 굶어 죽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백이 숙제의 입장이었다면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이야기해봅시다.
(2) 조국을 망하게 한 원수의 나라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백이 숙제의 이야기는 나라가 망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누군가는 망명을 하고,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국가에 협력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여러분은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나 죽음이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해설읽기
백이 숙제를 두고 유가의 성인인 공자는 ‘그들은 인(仁)을 추구하여 스스로 인할 수 있었는데 무엇을 원망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인(仁)’은 유가에서 추구하는 다양한 도덕적 가치를 포괄하는 커다란 개념으로, 다시 말해 곧 사람다움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인(仁)’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하는 인륜을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인(仁)’이라는 개념 안에는 ‘효(孝)’와 ‘충(忠)’을 비롯한 여러 가치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백이 숙제의 이야기는 특히 국가 공동체와 그 안에 속한 개인 간의 관계에서 논의되는 ‘충(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은나라를 정벌한 주나라의 곡식을 먹고 사는 대신 산속으로 들어가 굶어 죽는 길을 택한 백이 숙제의 행동과 그런 백이 숙제를 두고 내리는 ‘인(仁)’하다는 평가 속에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다양한 가치 중에서도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공적 윤리에 해당하는 ‘충(忠)’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담겨 있다.
‘충(忠)’은 본래 어떤 대상에게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한다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할 것인가? 전통 사회에서 충을 바칠 가장 중요한 대상은 자신이 속한 국가 공동체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이와 동일시되는 군주가 그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백이 숙제는 은나라에 충성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주나라 무왕의 길을 막고 간언을 했으며, 은나라가 결국 무너지게 되자 굶어 죽는 길을 택했다. 그렇다면 백이 숙제는 국가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사람들, 즉 ‘충(忠)’을 다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충성의 대상은 국가인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인가? 만일 국가를 이끄는 현재의 지도자가 부도덕하거나 무능력하더라도 끝까지 충성해야 할 것인가? 공자와 더불어 유가의 성인으로 칭송되는 맹자는 백이를 두고 ‘섬길 만한 올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백이 숙제가 추구했던 섬길 만한 올바른 임금의 조건이란 것은 과연 무엇이었기에 그들은 폭군 주왕을 토벌한 주나라 무왕을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굶어 죽는 길을 택했던 것일까?
백이 숙제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인(仁)’이라는 유가의 핵심 가치에 대하여, 특히 그중에서도 ‘충(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많은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재평가해보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키워드
강태공, 백이숙제, 사람다움, 수양산, 은 주왕, 은나라, 의, 인, 주 무왕, 주나라, 죽음, 충, 효후맥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