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본문
문·무과와 대·소과를 막론하고 과거란 과거는 모두 문란함과 부정행위가 요즘처럼 심한 적이 없고 또 바로잡을 방법도 없으니, 식자들의 근심과 탄식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 내가 생각해 보니, 이 일에는 상ㆍ중ㆍ하 세 가지 대책이 있다. 상책(上策)은 과거 시험을 완전히 혁파하는 것이니, 이것이 고금에 모두 합당하면서도 시속에 따라 일을 줄이는 가장 긴요한 방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 저 빈천한 선비들은 어려서부터 글을 읽고 인격을 수양해서 장성하여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갈고닦은 학문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빈한하게 살다가 죽어간다. 이런 자들은 과거에 급제해도 쓰이지를 못하니, 울분이 쌓여 화기(和氣)를 해치기에 딱 좋을 뿐이다. 이들은 과거 시험에 붙더라도 결국은 출사(出仕) 한번 못하고 늙어 죽는 백성이 되고 마니, 어찌 가련하고 애석하지 않은가? 공(公)의 아들이 공이 되고 경(卿)의 아들이 경이 되는 것으로 말하면 과거 시험으로 선발하지 않더라도 안 될 것이 없으니, 어찌 굳이 부정행위를 해가며 과거에서 선발한 뒤에야 현달하게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과거 제도가 있어도 귀한 집안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 시험을 통하지 않고 벼슬에 진출하여 내직으로는 고관ㆍ요직과 외직으로는 감사ㆍ수령을 모두 지내니, 지금 《진신안(縉紳案)》을 살펴보면 지방의 수령 자리가 거의 다 이런 자들로 채워져 있고 과거 시험을 통해 임용된 사람은 거의 없다.
(…) 과거 제도가 존재하는 한 선비들이 하는 공부는 모두 시험공부에 불과하니, 시험이 없다면 아마도 애써 독서에 열중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과거 제도가 없어지면 뜻있는 선비들이 틀림없이 독서와 농사를 병행하여 밤에도 불을 밝혀 공부할 것이다. 그들은 성리(性理)를 궁구하고 도덕(道德)을 강론하며 인의(仁義)를 품고 경륜을 쌓아서 위로는 주공(周公)과 공자의 가르침을 밝히고 아래로는 성세(聖世)의 교화를 도울 것이니, 어찌 이름은 과거 공부 하는 유생이지만 실상은 보잘것없는 요즘 선비들과 비교가 되겠는가? 과거 제도가 없던 옛날에도 선비들은 늘 글을 읽어 백성에게 은택을 끼쳤다. 당시에 글을 읽던 방법이 진정한 글 읽기였으니,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문장을 익히는 요즘 선비들의 공부보다 월등히 나았다.
(…) 무엇을 중책(中策)이라 하는가? 과거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상책임은 물론이지만, 과거 제도를 폐지할 생각은 없고 오직 부정행위를 막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라면 엄한 벌칙을 두는 것이 가장 좋다. 부정을 저지른 시험관과 막후에서 청탁을 넣은 응시자가 한 번이라도 발각되면 아무리 권세가라 해도 봐주지 말고 비록 오래전의 일이라 해도 용서하지 말아서 동일한 법을 적용해야 한다. 천하에 자기 자신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한 번 부정을 저질렀다가 평생 벼슬길이 막히게 된다면 누가 평생 버려지는 사태를 감수하면서까지 청탁을 들어주겠으며, 한 번 청탁을 넣었다가 종신토록 욕되게 된다면 누가 한 번의 과거 시험을 위해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망치려 하겠는가?
(…) 무엇을 하책(下策)이라고 하는가? 과거 제도를 혁파하지도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법을 적용하여 부정행위를 철저히 막지도 못한다면 지금처럼 과거 시험을 보일 수밖에 없으나, 반드시 면대(面對)하여 시험을 보여야 한다. (…) 만약 면대하여 시험을 보인다면 수고로이 여러 가지 금지 조항을 두지 않더라도 부정을 저지르는 자가 저절로 없어질 것이며 저 재능이 없는 자들은 상을 주며 들어오라고 해도 시험장에 아예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토론하기
1. 여러분은 학교의 시험이 개인의 전반적인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시험으로 드러나는 개인의 능력과 생활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개인의 능력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2. 시험이 개인의 역량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지 않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모두 동의할 수 있을 대안에 대해 토의해봅시다.
해설읽기
인용문은 윤기가 과거시험의 폐해와 그 대안에 대해 정리한 글의 일부이다. 윤기는 과거를 준비하며 성균관 근처의 마을, 반촌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동안 여러 차례 낙방을 거듭했다. 이 와중에 그는 당시 그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과거 운영의 문제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문을 종합해 나름대로 과거 운영의 개선 방향은 이러해야 한다고 정리한 글을 종종 남겼는데, 이 글은 윤기의 산문을 모아둔 부분 중 앞부분에 위치한 것이다.
윤기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과거시험은 응시자의 실력 검증도 잘 못하고 다양한 배경에서 성장한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 기능도 못하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기가 제시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시험을 없애버리는 것이며, 그 다음은 부정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며, 하책은 시험을 직접 대면하여 시행하는 것이었다.
윤기는 과거시험이 국가적으로는 인력 낭비를 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교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라고 보았다. 우선 그는 당시의 여러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한다는 명목 하에 옛날 선비들이 공부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관직에 나아가야 했는데, 한미한 출신의 선비들이 관직에 나아가려면 과거에 합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부에 뜻이 없는 선비들은 과거공부를 한다는 명분으로 진정한 공부에 더욱 거리를 두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간혹 이 중에서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명문세가와 인연이 닿지 않는 한 요직에 나아가기 어려워 배운 공부를 사회에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경전을 읽고 자신을 수양하며 세상의 이치를 탐구함으로써 세상의 교화를 돕는 것이 일생의 이상이었는데, 윤기는 과거시험이 여기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키워드
공부, 과거, 부정행위, 시험, 인재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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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과와 대·소과를 막론하고 과거란 과거는 모두 문란함과 부정행위가 요즘처럼 심한 적이 없고 또 바로잡을 방법도 없으니, 식자들의 근심과 탄식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 내가 생각해 보니, 이 일에는 상ㆍ중ㆍ하 세 가지 대책이 있다. 상책(上策)은 과거 시험을 완전히 혁파하는 것이니, 이것이 고금에 모두 합당하면서도 시속에 따라 일을 줄이는 가장 긴요한 방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 저 빈천한 선비들은 어려서부터 글을 읽고 인격을 수양해서 장성하여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갈고닦은 학문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빈한하게 살다가 죽어간다. 이런 자들은 과거에 급제해도 쓰이지를 못하니, 울분이 쌓여 화기(和氣)를 해치기에 딱 좋을 뿐이다. 이들은 과거 시험에 붙더라도 결국은 출사(出仕) 한번 못하고 늙어 죽는 백성이 되고 마니, 어찌 가련하고 애석하지 않은가? 공(公)의 아들이 공이 되고 경(卿)의 아들이 경이 되는 것으로 말하면 과거 시험으로 선발하지 않더라도 안 될 것이 없으니, 어찌 굳이 부정행위를 해가며 과거에서 선발한 뒤에야 현달하게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과거 제도가 있어도 귀한 집안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 시험을 통하지 않고 벼슬에 진출하여 내직으로는 고관ㆍ요직과 외직으로는 감사ㆍ수령을 모두 지내니, 지금 《진신안(縉紳案)》을 살펴보면 지방의 수령 자리가 거의 다 이런 자들로 채워져 있고 과거 시험을 통해 임용된 사람은 거의 없다.
(…) 과거 제도가 존재하는 한 선비들이 하는 공부는 모두 시험공부에 불과하니, 시험이 없다면 아마도 애써 독서에 열중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과거 제도가 없어지면 뜻있는 선비들이 틀림없이 독서와 농사를 병행하여 밤에도 불을 밝혀 공부할 것이다. 그들은 성리(性理)를 궁구하고 도덕(道德)을 강론하며 인의(仁義)를 품고 경륜을 쌓아서 위로는 주공(周公)과 공자의 가르침을 밝히고 아래로는 성세(聖世)의 교화를 도울 것이니, 어찌 이름은 과거 공부 하는 유생이지만 실상은 보잘것없는 요즘 선비들과 비교가 되겠는가? 과거 제도가 없던 옛날에도 선비들은 늘 글을 읽어 백성에게 은택을 끼쳤다. 당시에 글을 읽던 방법이 진정한 글 읽기였으니,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문장을 익히는 요즘 선비들의 공부보다 월등히 나았다.
(…) 무엇을 중책(中策)이라 하는가? 과거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상책임은 물론이지만, 과거 제도를 폐지할 생각은 없고 오직 부정행위를 막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라면 엄한 벌칙을 두는 것이 가장 좋다. 부정을 저지른 시험관과 막후에서 청탁을 넣은 응시자가 한 번이라도 발각되면 아무리 권세가라 해도 봐주지 말고 비록 오래전의 일이라 해도 용서하지 말아서 동일한 법을 적용해야 한다. 천하에 자기 자신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한 번 부정을 저질렀다가 평생 벼슬길이 막히게 된다면 누가 평생 버려지는 사태를 감수하면서까지 청탁을 들어주겠으며, 한 번 청탁을 넣었다가 종신토록 욕되게 된다면 누가 한 번의 과거 시험을 위해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망치려 하겠는가?
(…) 무엇을 하책(下策)이라고 하는가? 과거 제도를 혁파하지도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법을 적용하여 부정행위를 철저히 막지도 못한다면 지금처럼 과거 시험을 보일 수밖에 없으나, 반드시 면대(面對)하여 시험을 보여야 한다. (…) 만약 면대하여 시험을 보인다면 수고로이 여러 가지 금지 조항을 두지 않더라도 부정을 저지르는 자가 저절로 없어질 것이며 저 재능이 없는 자들은 상을 주며 들어오라고 해도 시험장에 아예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토론하기
1. 여러분은 학교의 시험이 개인의 전반적인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시험으로 드러나는 개인의 능력과 생활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개인의 능력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2. 시험이 개인의 역량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지 않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모두 동의할 수 있을 대안에 대해 토의해봅시다.
해설읽기
인용문은 윤기가 과거시험의 폐해와 그 대안에 대해 정리한 글의 일부이다. 윤기는 과거를 준비하며 성균관 근처의 마을, 반촌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동안 여러 차례 낙방을 거듭했다. 이 와중에 그는 당시 그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과거 운영의 문제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문을 종합해 나름대로 과거 운영의 개선 방향은 이러해야 한다고 정리한 글을 종종 남겼는데, 이 글은 윤기의 산문을 모아둔 부분 중 앞부분에 위치한 것이다.
윤기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과거시험은 응시자의 실력 검증도 잘 못하고 다양한 배경에서 성장한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 기능도 못하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기가 제시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시험을 없애버리는 것이며, 그 다음은 부정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며, 하책은 시험을 직접 대면하여 시행하는 것이었다.
윤기는 과거시험이 국가적으로는 인력 낭비를 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교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라고 보았다. 우선 그는 당시의 여러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한다는 명목 하에 옛날 선비들이 공부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관직에 나아가야 했는데, 한미한 출신의 선비들이 관직에 나아가려면 과거에 합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부에 뜻이 없는 선비들은 과거공부를 한다는 명분으로 진정한 공부에 더욱 거리를 두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간혹 이 중에서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명문세가와 인연이 닿지 않는 한 요직에 나아가기 어려워 배운 공부를 사회에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경전을 읽고 자신을 수양하며 세상의 이치를 탐구함으로써 세상의 교화를 돕는 것이 일생의 이상이었는데, 윤기는 과거시험이 여기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키워드
공부, 과거, 부정행위, 시험, 인재 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