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본문
집 아래에 밭이 있고 밭두둑에 덤불숲이 있다. 여자종이 그 아래에 호박을 심었는데, 덩굴이 뻗어 덤불숲 위를 덮었다. 호박이 열려 밖으로 드러난 것은 따서 주린 배를 채우거나 사람들이 따 가서 동이 났다. 그런 뒤에 다시 찾아보았으나, 덤불이 빽빽하게 우거진 까닭에 이리저리 헤치고 찾아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서리가 내려 호박 넝쿨이 시들고 덤불도 낙엽이 졌을 때 어린아이가 말하기를, “큰 놈이 덤불 속에서 누렇게 익었는데 이제야 보입니다.”라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 그것 참 당연한 일이다. 호박 넝쿨이 무성할 때는 덤불이 무성하고 풀이 빽빽하여 호박이 깊이 숨어 있어도 보지 못하니, 가을이 되어 낙엽이 지지 않으면 누가 그 속에 호박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선비가 초야에 묻혀 잡된 무리와 섞여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가문이 훌륭하거나 재주와 슬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덤불 밖으로 드러난 호박이고, 천하에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덤불을 헤치며 찾아보고 호박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고, 세상이 혼란할 때 절의나 재능으로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덤불 속에서 크게 자라 늙은 호박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찌 뒤웅박이랴? 어찌 가만히 매달린 채 먹히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 하셨는데, 당시에는 공자가 성인(聖人)임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닌 것은 은둔에 비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이처럼 탄식했으니, 더구나 그 자취를 감추고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호박을 보니 감회가 인다.
堂下有田 田畔有叢薄 女奴種胡瓠於其下 蔓延蒙於叢薄之上 其結實而外露者 摘以充飢 或爲人所取 旣盡而復索 則以其蒙密也 故披而覔之 無所得 及夫霜零蔓萎 叢薄亦濩落 童子報曰有大者老於其中 而今乃見之 余聞而歎曰 嗟夫此固然之勢也 方其蔓之盛也 叢茂草密 雖有深藏者 莫得而窺焉 苟非天以秋肅殺之 孰知其中之有無也 夫士隱淪於草萊之中 混跡於氄雜之類 則人不得知焉 其地處之閥閱 才諝之矜衒者 瓠之外露者也 謂天下無人者 披而覔之 以爲無者也 板蕩之時 或以節義 或以才能 不能不露見者 大而老於叢薄之中者也 夫子有言曰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方其時也 夫子之聖 人皆知之 轍環之行 非比隱遯 而猶且發此歎 况晦其迹而不衒者乎 吾於瓠而有感
토론하기
1. 어떤 필요한 물건을 찾아보다가 결국 찾지 못했지만, 나중에 갑자기 다른 곳에서 그 물건이 나타난 적이 있나요? 물건을 찾을 때는 왜 찾지 못했던 것이었을까요? 이런 경험이 자주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떠올려봅시다.
해설읽기
윤기가 덤불에 가려져 가을이 지나도록 드러나지 않다가 서리가 내린 후에야 사람들이 찾아낸 호박 이야기를 듣고 소회를 적은 글이다. 보통 호박은 4월 무렵에 심어서 6월부터 가을에 걸쳐 수확한다. 그런데 인용문에서의 호박은 크기가 컸지만 정작 사람들이 찾아내어 허기를 달랠 때는 보이지 않다가, 가을걷이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존재가 확인되었다. 상식적으로 호박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니, 사람들이 찾아낼 때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할 점은 사람들이 찾던 대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정작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호박을 찾아다니던 사람들 그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기가 지적했듯이 길가에서 쉽게 눈에 띄는 호박들은 진작에 사람들이 구해갔음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호박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서로 앞다투어 호박을 찾아다니며 구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중에 발견된 호박이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은, 호박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호박을 찾는 방법과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 또한 인용문과 유사한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한유는 사람들이 세상에 천리마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 천리마는 늘 있다고 하였다. 다만 좋은 말을 잘 알아보고 관리하는 백락(伯樂)같은 사람이 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타고나기를 천리마처럼 좋은 말이라도 관리를 받지 못하면 천리마처럼 달릴 수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리마에게 천리마다운 대접을 해주기는커녕, 천리마를 찾는다고 말만 하고 천리마같은 말을 찾아 관리하지는 않는다. 이는 세상에 좋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람들이 좋은 말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윤기가 인용한 공자(孔子) 또한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자는 그 나름의 비책을 가지고 중국 대륙을 두루 돌아다녔지만 끝내 등용되지 못했다. 그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춘추시대 인물들이 모두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결국 공자를 요직에 오랫동안 맡기지는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공자의 재주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공자와 같이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물도 방방곡곡을 다니며 유세했음에도 뜻을 펼치지 못했는데, 윤기 그 자신처럼 숨어지내며 재주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 재주를 알아주겠는가. 윤기의 자조와 탄식, 위안이 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능력자, 등용, 호박
전후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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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아래에 밭이 있고 밭두둑에 덤불숲이 있다. 여자종이 그 아래에 호박을 심었는데, 덩굴이 뻗어 덤불숲 위를 덮었다. 호박이 열려 밖으로 드러난 것은 따서 주린 배를 채우거나 사람들이 따 가서 동이 났다. 그런 뒤에 다시 찾아보았으나, 덤불이 빽빽하게 우거진 까닭에 이리저리 헤치고 찾아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서리가 내려 호박 넝쿨이 시들고 덤불도 낙엽이 졌을 때 어린아이가 말하기를, “큰 놈이 덤불 속에서 누렇게 익었는데 이제야 보입니다.”라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 그것 참 당연한 일이다. 호박 넝쿨이 무성할 때는 덤불이 무성하고 풀이 빽빽하여 호박이 깊이 숨어 있어도 보지 못하니, 가을이 되어 낙엽이 지지 않으면 누가 그 속에 호박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선비가 초야에 묻혀 잡된 무리와 섞여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가문이 훌륭하거나 재주와 슬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덤불 밖으로 드러난 호박이고, 천하에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덤불을 헤치며 찾아보고 호박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고, 세상이 혼란할 때 절의나 재능으로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덤불 속에서 크게 자라 늙은 호박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찌 뒤웅박이랴? 어찌 가만히 매달린 채 먹히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 하셨는데, 당시에는 공자가 성인(聖人)임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닌 것은 은둔에 비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이처럼 탄식했으니, 더구나 그 자취를 감추고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호박을 보니 감회가 인다.
堂下有田 田畔有叢薄 女奴種胡瓠於其下 蔓延蒙於叢薄之上 其結實而外露者 摘以充飢 或爲人所取 旣盡而復索 則以其蒙密也 故披而覔之 無所得 及夫霜零蔓萎 叢薄亦濩落 童子報曰有大者老於其中 而今乃見之 余聞而歎曰 嗟夫此固然之勢也 方其蔓之盛也 叢茂草密 雖有深藏者 莫得而窺焉 苟非天以秋肅殺之 孰知其中之有無也 夫士隱淪於草萊之中 混跡於氄雜之類 則人不得知焉 其地處之閥閱 才諝之矜衒者 瓠之外露者也 謂天下無人者 披而覔之 以爲無者也 板蕩之時 或以節義 或以才能 不能不露見者 大而老於叢薄之中者也 夫子有言曰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方其時也 夫子之聖 人皆知之 轍環之行 非比隱遯 而猶且發此歎 况晦其迹而不衒者乎 吾於瓠而有感
토론하기
1. 어떤 필요한 물건을 찾아보다가 결국 찾지 못했지만, 나중에 갑자기 다른 곳에서 그 물건이 나타난 적이 있나요? 물건을 찾을 때는 왜 찾지 못했던 것이었을까요? 이런 경험이 자주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떠올려봅시다.
해설읽기
윤기가 덤불에 가려져 가을이 지나도록 드러나지 않다가 서리가 내린 후에야 사람들이 찾아낸 호박 이야기를 듣고 소회를 적은 글이다. 보통 호박은 4월 무렵에 심어서 6월부터 가을에 걸쳐 수확한다. 그런데 인용문에서의 호박은 크기가 컸지만 정작 사람들이 찾아내어 허기를 달랠 때는 보이지 않다가, 가을걷이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존재가 확인되었다. 상식적으로 호박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니, 사람들이 찾아낼 때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할 점은 사람들이 찾던 대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정작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호박을 찾아다니던 사람들 그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기가 지적했듯이 길가에서 쉽게 눈에 띄는 호박들은 진작에 사람들이 구해갔음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호박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서로 앞다투어 호박을 찾아다니며 구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중에 발견된 호박이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은, 호박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호박을 찾는 방법과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 또한 인용문과 유사한 글을 남긴 적이 있다. 한유는 사람들이 세상에 천리마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 천리마는 늘 있다고 하였다. 다만 좋은 말을 잘 알아보고 관리하는 백락(伯樂)같은 사람이 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타고나기를 천리마처럼 좋은 말이라도 관리를 받지 못하면 천리마처럼 달릴 수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천리마에게 천리마다운 대접을 해주기는커녕, 천리마를 찾는다고 말만 하고 천리마같은 말을 찾아 관리하지는 않는다. 이는 세상에 좋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람들이 좋은 말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윤기가 인용한 공자(孔子) 또한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자는 그 나름의 비책을 가지고 중국 대륙을 두루 돌아다녔지만 끝내 등용되지 못했다. 그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춘추시대 인물들이 모두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결국 공자를 요직에 오랫동안 맡기지는 않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공자의 재주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공자와 같이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물도 방방곡곡을 다니며 유세했음에도 뜻을 펼치지 못했는데, 윤기 그 자신처럼 숨어지내며 재주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 재주를 알아주겠는가. 윤기의 자조와 탄식, 위안이 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능력자, 등용, 호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