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본문
성진이 여덟 선녀를 본 후에 정신이 자못 황홀하여 마음에 생각하되,
‘남아(男兒)가 세상에 태어나 어려서는 공맹(孔孟)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만나, 나가면 장수(將帥)가 되고 들어오면 정승(政丞)이 되고, 비단옷을 입고 옥대(玉帶)를 두르고 옥궐(玉闕)에 조회(朝會)하고, 눈으로는 고운 빛을 보고 귀로는 좋은 소리를 듣고, 은택(恩澤)이 백성에게 미치고 공명이 후세에 드리움은 또한 대장부(大丈夫)의 일이라. 우리 부처의 법문(法門)은 한 바리 밥과 한 병 물과 두어 권 경문(經文)과 일백여덟 낱 염주(念珠) 뿐이라. 도덕이 비록 높고 아름다우나 적막하기 심하도다’
생각을 이리하고 저리하여 밤이 이미 깊었더니 문득 눈앞에 팔선녀가 섰거늘 놀라 고쳐 보니 이미 간 곳이 없더라.
토론하기
1. 불가에서는 현실을 전생과 현생, 내생의 인연이 모두 이어지는 하나의 장이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깨달음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가 항상 곁에 있기 때문에, 인생이 덧없다고 전제하고 외부적 욕망에 초연할 것을 주문합니다. 반면 유가에서는 신묘한 이치로 생명을 부여받아 현실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 성심으로 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 현실의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기본적으로 다양한 욕구를 타고나며, 살면서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존재임도 함께 생각해볼 때, 17세기 말 조선에서 사대부로 살았던 지은이가 불가의 승려를 주인공으로 삼아 유가의 이상적인 인물상을 꿈꾸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설읽기
성진이 자신의 선방에 돌아와 이른바 성공한 삶에 대해 상상하며 현재 자신이 위치한 절간에서의 삶과 비교하는 대목이다.
주지하다시피 『구운몽』은 불문에 머무는 젊은 승려가 속세의 부귀영화를 갈망하다가 꿈을 통해 인세의 덧없음을 깨닫고 불가의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내용의 소설로, 소설의 모티프와 구조, 서사, 상징 등에 대해 오랜 기간에 걸쳐 무수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다만 이 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세속적 욕망을 가장 멀리할 법한 승려를 지은이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소설의 작가는 일반적으로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대상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독자는 보통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해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상황을 감내하고 대리만족을 얻고 싶어하는데, 이러한 독자의 심리를 고려해야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도서구입이 활발하기를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한편 소설을 진행시키며 진행의 근거를 부여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두기 마련이다.
이 중에는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주인공의 초기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첩 소생으로 태어나 가족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어머니를 잃고 장님 아버지를 모시며 어렵게 사는 심청, 계모의 모략으로 원한을 품고 자살한 후 수령들에게 호소하지만 이들이 놀라 죽거나 달아나는 모습만 지켜보는 장화와 홍련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소위 “고구마”를 거쳐 어려움을 겪었던 주인공들은 스승, 기인 등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한계를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허락받고 율도국의 왕으로 지내게 되거나 심청이 왕비로 간택되고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모습, 장화와 홍련이 수령의 도움으로 원한을 풀고 환생해 행복하게 사는 결말 등이 바로 그러하다.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전개는 여전히 유행한다. 가문의 내분과 천하의 혼란 속에서 가족을 잃었지만 기인의 도움으로 천하제일인이 된다는 무협소설, 팍팍한 현실을 버티다가 판타지 세계에 환생해 부를 쌓고 유명인으로서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판타지소설 등이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나 지금이나 독자들은 이러한 소설들을 소비하며 ‘비참한 현실에서 탈출해 누구나 부러워할 법하게 잘 살고 싶은’ 욕망을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치게 재미와 “사이다”만을 중심으로 소설을 진행할 경우 오히려 재미가 반감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작가는 늘 작품의 개연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어느 작품이나 항상 결말에서 주인공들이 작품 초반부에 갈망하던 욕망들이 이루어지도록 설계하는 것 또한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왕노릇만하는 것이 결말이라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구운몽』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구운몽』의 지은이는 『구운몽』의 주인공을 승려로 두었다. 이렇게 설정함으로써 『구운몽』의 지은이는 유교경전을 공부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인용문에서 언급된 상상은 단지 양반만 하는 것일 뿐만이 아님을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이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출장입상과 입신양명, 아름다운 배우자를 맞는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설정에 지은이가 개연성이 있다고 여겼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워너비, 출세, 출장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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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이 여덟 선녀를 본 후에 정신이 자못 황홀하여 마음에 생각하되,
‘남아(男兒)가 세상에 태어나 어려서는 공맹(孔孟)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만나, 나가면 장수(將帥)가 되고 들어오면 정승(政丞)이 되고, 비단옷을 입고 옥대(玉帶)를 두르고 옥궐(玉闕)에 조회(朝會)하고, 눈으로는 고운 빛을 보고 귀로는 좋은 소리를 듣고, 은택(恩澤)이 백성에게 미치고 공명이 후세에 드리움은 또한 대장부(大丈夫)의 일이라. 우리 부처의 법문(法門)은 한 바리 밥과 한 병 물과 두어 권 경문(經文)과 일백여덟 낱 염주(念珠) 뿐이라. 도덕이 비록 높고 아름다우나 적막하기 심하도다’
생각을 이리하고 저리하여 밤이 이미 깊었더니 문득 눈앞에 팔선녀가 섰거늘 놀라 고쳐 보니 이미 간 곳이 없더라.
토론하기
1. 불가에서는 현실을 전생과 현생, 내생의 인연이 모두 이어지는 하나의 장이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깨달음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가 항상 곁에 있기 때문에, 인생이 덧없다고 전제하고 외부적 욕망에 초연할 것을 주문합니다. 반면 유가에서는 신묘한 이치로 생명을 부여받아 현실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 성심으로 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 현실의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기본적으로 다양한 욕구를 타고나며, 살면서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존재임도 함께 생각해볼 때, 17세기 말 조선에서 사대부로 살았던 지은이가 불가의 승려를 주인공으로 삼아 유가의 이상적인 인물상을 꿈꾸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설읽기
성진이 자신의 선방에 돌아와 이른바 성공한 삶에 대해 상상하며 현재 자신이 위치한 절간에서의 삶과 비교하는 대목이다.
주지하다시피 『구운몽』은 불문에 머무는 젊은 승려가 속세의 부귀영화를 갈망하다가 꿈을 통해 인세의 덧없음을 깨닫고 불가의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내용의 소설로, 소설의 모티프와 구조, 서사, 상징 등에 대해 오랜 기간에 걸쳐 무수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다만 이 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세속적 욕망을 가장 멀리할 법한 승려를 지은이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소설의 작가는 일반적으로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대상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독자는 보통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해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상황을 감내하고 대리만족을 얻고 싶어하는데, 이러한 독자의 심리를 고려해야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도서구입이 활발하기를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한편 소설을 진행시키며 진행의 근거를 부여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두기 마련이다.
이 중에는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주인공의 초기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첩 소생으로 태어나 가족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어머니를 잃고 장님 아버지를 모시며 어렵게 사는 심청, 계모의 모략으로 원한을 품고 자살한 후 수령들에게 호소하지만 이들이 놀라 죽거나 달아나는 모습만 지켜보는 장화와 홍련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소위 “고구마”를 거쳐 어려움을 겪었던 주인공들은 스승, 기인 등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한계를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허락받고 율도국의 왕으로 지내게 되거나 심청이 왕비로 간택되고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모습, 장화와 홍련이 수령의 도움으로 원한을 풀고 환생해 행복하게 사는 결말 등이 바로 그러하다.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전개는 여전히 유행한다. 가문의 내분과 천하의 혼란 속에서 가족을 잃었지만 기인의 도움으로 천하제일인이 된다는 무협소설, 팍팍한 현실을 버티다가 판타지 세계에 환생해 부를 쌓고 유명인으로서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판타지소설 등이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나 지금이나 독자들은 이러한 소설들을 소비하며 ‘비참한 현실에서 탈출해 누구나 부러워할 법하게 잘 살고 싶은’ 욕망을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치게 재미와 “사이다”만을 중심으로 소설을 진행할 경우 오히려 재미가 반감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작가는 늘 작품의 개연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어느 작품이나 항상 결말에서 주인공들이 작품 초반부에 갈망하던 욕망들이 이루어지도록 설계하는 것 또한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왕노릇만하는 것이 결말이라면,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구운몽』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구운몽』의 지은이는 『구운몽』의 주인공을 승려로 두었다. 이렇게 설정함으로써 『구운몽』의 지은이는 유교경전을 공부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인용문에서 언급된 상상은 단지 양반만 하는 것일 뿐만이 아님을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이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출장입상과 입신양명, 아름다운 배우자를 맞는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라는 설정에 지은이가 개연성이 있다고 여겼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워너비, 출세, 출장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