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본문
일러두기
– 원문과 해석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고전원문 및 고전번역 서비스를 참고하였다.
(신유한이 통역을 담당하던 일본인 우삼동(雨森東)에게 일본의 할복 문화에 대해 묻는 대목이다.)
나 : “일본의 풍속은 옛날부터 목숨을 가볍게 여겨서, 분노하면 반드시 스스로 그 목을 찌르고 그 배를 가르기 때문에 관아에서 볼기를 치거나 신문하는 법이 없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요?”
우삼동 : “살기를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 타고난 상정(常情)인데, 일본 사람이라고 어찌 유독 안 그렇겠습니까. 다만 사쓰마주(薩摩州) 사람들의 풍속은 달라서, 어떤 일을 마주하면 걸핏하면 죽어버립니다. 큰 죄가 있는 자는 관(官)에서 가두어 묶어두지 않고 그에게 ‘네 죄는 마땅히 너의 집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수긍하고 집에 돌아가 자살하는 것이 그 지시를 조금도 어김이 없어서 관에서도 믿고 의심하지 않으니, 대체로 일본 사람이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진실로 살마주 때문에 불리게 된 것입니다.”
나 : 그렇다면즉 이러한 풍속은 옛날 연나라와 조나라 등지에서 보이던 절개있고 협행을 행하던 사인(士人)들과 풍속이 같은데, 그 중 혹시 기개와 절개가 숭상할 만한 자가 있는지요?
우삼동 : 경전의 소위 살신성인과 사생취의는 군자도 어렵게 여기는 바인데, 사쓰마 주는 즉 모든 사람이 이와 같으니, 어찌 기개와 절개가 있다고 논할만한 자가 있겠습니까. 대개 그 주의 풍속이 기괴한 것입니다.
[고전원문]
余問雨森東曰, 日本民俗 自古輕生, 怒必自刎其頸, 自剖其腹, 所以官無箠楚訊刑之法云, 果然否.
東曰, 好生惡死, 人之情也. 日本人奚獨不然. 但薩摩州民俗自別, 遇事輒死. 其有大罪者, 自官不爲囚繫, 語之曰 汝罪當死於汝家云云, 則其人應諾而去, 至家自殺, 少無差違. 官亦信之不疑, 大抵日本輕生之說, 實爲薩摩州而得名矣.
曰, 然則此與燕趙間節俠同風, 其中或有氣節可尙者乎.
答曰, 傳所謂殺身成仁, 舍生就義, 君子之所難, 而薩摩州則人人如此, 豈有氣節之可論. 槪其土風奇怪云.
토론하기
1. 신유한이 일본 사람들은 쉽게 할복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삼동은 할복 문화가 사쓰마 주에서만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함으로써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2. 우삼동이 일본의 풍속을 언급할 때 관찰되는 그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타고난 상정(常情)을 지적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본성에 주목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는 일본 66주 중 한 곳인 사쓰마 주의 할복 풍습과 이 지역의 무사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데, 이 두 시각은 양립이 가능한 것일까요?
3. 새 학기를 맞아 처음 만나는 반 친구를 대한다고 상상해봅시다. 보통 새 친구를 대하며 무엇을 물어보나요? 친구와 대화하며 공통점을 찾으면 어떤 느낌이고, 차이점을 발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친구의 가치관이 자신과 매우 다를 경우, 어떻게 행동하나요?
해설읽기
모든 고전이 그러하지만, 옛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묻어나는 기록의 경우에는 더욱 당시의 사회상을 함께 고려해 읽을 필요가 있다. 서구화 이전의 동아시아에서 유학(儒學)은 마치 오늘날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가장 정합적이고 선진적인 패러다임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8세기 초반에 이르면 동아시아에서 유학의 정수를 체득하고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조선뿐이라는 의식이 조선의 사대부들 사이에 퍼지게 된다. 이때 중국에는 유목민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있었고, 일본에는 무사들이 세운 에도 바쿠후가 있었는데, 18세기 초의 조선 사람들은 이웃나라들이 문화적으로 유학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본문은 신유한이 일본인의 할복 풍습에 대해 묻고, 이에 대해 들은 답을 정리한 대목이다. 신유한은 할복을 일본 사람 모두의 특징으로 보고, 우삼동에게 일본 사람은 왜 그렇게 할복을 쉽게 여기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우삼동은 신유한의 질문이 전제부터 잘못된 것으로, 일본 사람도 조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이기 때문에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는 싫어한다고 답했다. 이어서 우삼동은 신유한의 질문이 나오게 된 근본, 즉 문화적으로 특이한 사쓰마 주를 일본 전체와 분명히 구분짓고 분리하는 태도를 취한다. 바로, 걸핏하면 할복하는 풍속은 일본의 일부분인 사쓰마 주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일본에서도 이러한 풍속을 본받을 게 없는, 기괴한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우삼동이 실제로 사쓰마 주의 풍속을 이상한 것으로 여겼는지와는 별개로, 그가 조선 사람들에게 사쓰마 주의 풍속을 기괴한 것으로 소개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호생(好生)’, 즉 살기/살리기/낳기를 좋아한다, 라는 말이 유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조선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이해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이는 자신의 몸과 생명을 부모님께 받았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꺼리는 것은 유학적 세계관의 전제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학에서는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원리가 우주의 탄생과 만물의 형성에 관여해왔다고 이해한다. 이 원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와 사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며, 이 세상에 속해 살아가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 살리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이 점을 함께 고려하면,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자살이라는 행위는 이 세상을 이루는 거대한 원칙 중 하나를 직접적이고 의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용인된 자살은 ‘호생’이라는 대원칙에 못지않은 별도의 대원칙, 예를 들면 義나 順, 을 실현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선 사람들에게는 감정의 기복, 혹은 상부로부터 “자결해라, OO”라고 명령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행하는 일본인들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즉, 신유한이 우삼동에게 물은, ‘일본 사람들은 쉽게 자살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은 당시 동아시아 보편 문명으로 작용하던 유학의 권역에 일본 사람들이 속해 있지 않다는 전제를 한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사람들이 ‘사람’으로 취급하는 부류 외에 그들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즉 일본 사람들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우삼동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사람 또한 조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본 또한 유학적 세계관에 속해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삼동은 본명이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로, 당시 일본 주자학의 대가였던 기노시타 준안(木下順庵. 1621~1698)에게 학문을 배우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당연히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특성은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진다고 보았던 유학의 전제를, 그 전제에서 파생되는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삼동은 통신사들을 대접하며 일본이 조선에 비해 유학적 소양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도 유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다는 점을 꾸준히 언급한다. 이는 조선에 비치는 일본의 이미지를 조선과 마찬가지로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유학적 세계관에 속하는 문명국의 하나로 그려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키워드
낯선 문화, 여행, 외국, 인성, 일본, 통신사, 할복
전후맥락
고전본문
일러두기
– 원문과 해석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고전원문 및 고전번역 서비스를 참고하였다.
(신유한이 통역을 담당하던 일본인 우삼동(雨森東)에게 일본의 할복 문화에 대해 묻는 대목이다.)
나 : “일본의 풍속은 옛날부터 목숨을 가볍게 여겨서, 분노하면 반드시 스스로 그 목을 찌르고 그 배를 가르기 때문에 관아에서 볼기를 치거나 신문하는 법이 없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요?”
우삼동 : “살기를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 타고난 상정(常情)인데, 일본 사람이라고 어찌 유독 안 그렇겠습니까. 다만 사쓰마주(薩摩州) 사람들의 풍속은 달라서, 어떤 일을 마주하면 걸핏하면 죽어버립니다. 큰 죄가 있는 자는 관(官)에서 가두어 묶어두지 않고 그에게 ‘네 죄는 마땅히 너의 집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수긍하고 집에 돌아가 자살하는 것이 그 지시를 조금도 어김이 없어서 관에서도 믿고 의심하지 않으니, 대체로 일본 사람이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은 진실로 살마주 때문에 불리게 된 것입니다.”
나 : 그렇다면즉 이러한 풍속은 옛날 연나라와 조나라 등지에서 보이던 절개있고 협행을 행하던 사인(士人)들과 풍속이 같은데, 그 중 혹시 기개와 절개가 숭상할 만한 자가 있는지요?
우삼동 : 경전의 소위 살신성인과 사생취의는 군자도 어렵게 여기는 바인데, 사쓰마 주는 즉 모든 사람이 이와 같으니, 어찌 기개와 절개가 있다고 논할만한 자가 있겠습니까. 대개 그 주의 풍속이 기괴한 것입니다.
[고전원문]
余問雨森東曰, 日本民俗 自古輕生, 怒必自刎其頸, 自剖其腹, 所以官無箠楚訊刑之法云, 果然否.
東曰, 好生惡死, 人之情也. 日本人奚獨不然. 但薩摩州民俗自別, 遇事輒死. 其有大罪者, 自官不爲囚繫, 語之曰 汝罪當死於汝家云云, 則其人應諾而去, 至家自殺, 少無差違. 官亦信之不疑, 大抵日本輕生之說, 實爲薩摩州而得名矣.
曰, 然則此與燕趙間節俠同風, 其中或有氣節可尙者乎.
答曰, 傳所謂殺身成仁, 舍生就義, 君子之所難, 而薩摩州則人人如此, 豈有氣節之可論. 槪其土風奇怪云.
토론하기
1. 신유한이 일본 사람들은 쉽게 할복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삼동은 할복 문화가 사쓰마 주에서만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함으로써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2. 우삼동이 일본의 풍속을 언급할 때 관찰되는 그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타고난 상정(常情)을 지적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본성에 주목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는 일본 66주 중 한 곳인 사쓰마 주의 할복 풍습과 이 지역의 무사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데, 이 두 시각은 양립이 가능한 것일까요?
3. 새 학기를 맞아 처음 만나는 반 친구를 대한다고 상상해봅시다. 보통 새 친구를 대하며 무엇을 물어보나요? 친구와 대화하며 공통점을 찾으면 어떤 느낌이고, 차이점을 발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친구의 가치관이 자신과 매우 다를 경우, 어떻게 행동하나요?
해설읽기
모든 고전이 그러하지만, 옛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묻어나는 기록의 경우에는 더욱 당시의 사회상을 함께 고려해 읽을 필요가 있다. 서구화 이전의 동아시아에서 유학(儒學)은 마치 오늘날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가장 정합적이고 선진적인 패러다임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8세기 초반에 이르면 동아시아에서 유학의 정수를 체득하고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조선뿐이라는 의식이 조선의 사대부들 사이에 퍼지게 된다. 이때 중국에는 유목민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있었고, 일본에는 무사들이 세운 에도 바쿠후가 있었는데, 18세기 초의 조선 사람들은 이웃나라들이 문화적으로 유학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본문은 신유한이 일본인의 할복 풍습에 대해 묻고, 이에 대해 들은 답을 정리한 대목이다. 신유한은 할복을 일본 사람 모두의 특징으로 보고, 우삼동에게 일본 사람은 왜 그렇게 할복을 쉽게 여기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우삼동은 신유한의 질문이 전제부터 잘못된 것으로, 일본 사람도 조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이기 때문에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는 싫어한다고 답했다. 이어서 우삼동은 신유한의 질문이 나오게 된 근본, 즉 문화적으로 특이한 사쓰마 주를 일본 전체와 분명히 구분짓고 분리하는 태도를 취한다. 바로, 걸핏하면 할복하는 풍속은 일본의 일부분인 사쓰마 주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일본에서도 이러한 풍속을 본받을 게 없는, 기괴한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우삼동이 실제로 사쓰마 주의 풍속을 이상한 것으로 여겼는지와는 별개로, 그가 조선 사람들에게 사쓰마 주의 풍속을 기괴한 것으로 소개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호생(好生)’, 즉 살기/살리기/낳기를 좋아한다, 라는 말이 유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조선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이해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이는 자신의 몸과 생명을 부모님께 받았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꺼리는 것은 유학적 세계관의 전제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학에서는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원리가 우주의 탄생과 만물의 형성에 관여해왔다고 이해한다. 이 원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와 사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며, 이 세상에 속해 살아가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 살리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이 점을 함께 고려하면,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자살이라는 행위는 이 세상을 이루는 거대한 원칙 중 하나를 직접적이고 의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용인된 자살은 ‘호생’이라는 대원칙에 못지않은 별도의 대원칙, 예를 들면 義나 順, 을 실현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선 사람들에게는 감정의 기복, 혹은 상부로부터 “자결해라, OO”라고 명령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행하는 일본인들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즉, 신유한이 우삼동에게 물은, ‘일본 사람들은 쉽게 자살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은 당시 동아시아 보편 문명으로 작용하던 유학의 권역에 일본 사람들이 속해 있지 않다는 전제를 한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사람들이 ‘사람’으로 취급하는 부류 외에 그들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즉 일본 사람들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우삼동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사람 또한 조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본 또한 유학적 세계관에 속해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삼동은 본명이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로, 당시 일본 주자학의 대가였던 기노시타 준안(木下順庵. 1621~1698)에게 학문을 배우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당연히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특성은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진다고 보았던 유학의 전제를, 그 전제에서 파생되는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삼동은 통신사들을 대접하며 일본이 조선에 비해 유학적 소양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도 유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다는 점을 꾸준히 언급한다. 이는 조선에 비치는 일본의 이미지를 조선과 마찬가지로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유학적 세계관에 속하는 문명국의 하나로 그려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키워드
낯선 문화, 여행, 외국, 인성, 일본, 통신사, 할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