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춘추시대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정장공 오생과 그의 아우 공숙단의 권력쟁투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과 비극을 기술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장남을 미워하고 차남을 편애한 어머니 무강과 장남 정장공 간의 갈등이 기저에 깔려 있다.
고전본문
정鄭나라 제2대 군주인 정무공(鄭武公, 기원전 770-744 재위)이 신申나라에서 무강武姜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무강은 정장공鄭莊公과 공숙단共叔段을 낳았는데 정장공이 태어날 때 거꾸로 나오는 바람에 무강이 크게 놀랐다. 이로 인해 정장공의 이름을 ‘오생寤生’이라 짓고 그를 미워했다. 무강은 공숙단을 더 아껴 그를 군주로 세우려고 여러 번 남편 정무공에게 청했지만 정무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정장공이 즉위하자 무강이 공숙단을 위해 제制 땅을 요구했다. 정장공이 말했다.
“제 땅은 지세가 험한 고을입니다. 다른 고을이라면 명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무강이 경京 땅을 요청하므로 공숙단을 그 땅에 살게 하고 그를 경성태숙京城太叔이라고 불렀다.
정나라 대부 채중祭仲이 말했다. […]
“무강의 욕심이 어찌 만족이 있겠습니까? 빨리 조치를 취해 세력이 확대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세력이 확대되면 일을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들풀도 무성해지면 제거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군주가 사랑하는 아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정장공이 말했다.
“옳지 않은 일을 많이 하면 반드시 저절로 망할 것이니, 그대는 잠시 기다려 보시오.”
[…공숙단이 계속 땅을 넓히고 세력을 확장함…]
공숙단이 성곽을 견고히 쌓고 군량을 모으며 갑옷과 병기를 수선하고 군사와 전차를 갖추어서 장차 정나라 수도를 습격하려 했다. 이에 어머니 무강이 성문을 열어주기로 약속했다. 정장공은 공숙단의 기습 날짜를 전해 듣고 말했다.
“이제 공숙단을 칠 때가 되었다.”
자봉子封에게 명하여 전차 2백 승乘(승은 전차의 단위이다. 1승에 갑사 3인과 보졸 72인을 배치한다)을 거느리고 가서 경 땅을 치게 했다. 경 땅 사람들이 공숙단을 배반하여 공숙단은 도망해 언鄢 땅으로 들어갔다. 정장공이 또 언 땅을 치자, 공숙단이 공共나라로 달아났다. […]
이후 정장공은 무강을 유폐하고서 이렇게 맹세했다.
“황천黃泉에 가기 전에는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후회했다. 당시 정나라 대부 중에 영고숙潁考叔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 정장공에게 선물을 헌상하는 기회를 만들어 정장공을 찾아뵈었다. 정장공이 영고숙에게 음식을 하사했을 때 영고숙이 고기를 먹지 않고 한 데 모아 놓자 정장공이 그 까닭을 물었다. 영고숙이 대답했다.
“소인에게는 어머니가 계신데 소인이 올리는 음식은 다 맛보았으나 군주가 드시는 이런 고깃국은 드셔보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이것을 어머니께 갖다드릴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대에게는 국을 가져다드릴 어머니가 계신데 나만 홀로 어머니가 없소!”
“감히 여쭙건대 무슨 말씀입니까?”
정장공은 그 연유를 이야기하며 지금은 뉘우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영고숙이 말했다.
“군주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만일 물이 나는 데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서 굴속에서 서로 만난다면 누가 황천黃泉에 가서야 만나겠다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정장공이 영고숙의 말을 좇았다. 정장공이 굴속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만난 뒤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
“큰 굴 안에 들어오니 즐거움에 화평하네.”
무강도 아들 정장공을 만나보고 밖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큰 굴 밖으로 나오니 즐거움에 날아갈 듯하네.”
토론하기
(1) 어린 시절 정장공이 어머니 무강에게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2) 내가 정장공이었다면 초기에 동생 공숙단이 하는 잘못을 꾸짖고 훈계해 바른 길로 인도했을까?
(3) 부모님이 나를 나의 형제자매보다 덜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럴 때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생각해보고, 더 좋은 방식은 무엇이었을지 말해보자.
해설읽기
어머니 무강의 공숙단 편애는 정서적인 것을 넘어서 집요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장남 정장공을 제치고 동생 공숙단이 군위를 계승하도록 남편 정무공을 설득했다. 정장공이 군주가 된 이후에는 공숙단에게 좋은 땅을 주도록 요구하고 공숙단이 형에 대항해 세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공숙단이 형 정장공에 대항해 반란을 계획하자 기습하는 날 성문을 열어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란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공숙단은 도망자 신세가 되고 무강 자신은 유폐된다.
무강은 자신이 낳은 장남 정장공을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우선 오생寤生이라는 이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오寤’의 기본적 뜻은 ‘잠에서 깨다’ 이다. 산고 없이 잠자다가 아이를 낳고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자신이 아이를 낳은 것을 알았다면 매우 놀랄 수밖에 없고 자기가 낳은 아이 같지 않아 덜 사랑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 다른 추측은 ‘오寤’는 ‘거스르다’ ‘거꾸로 되다’는 뜻도 있는데 출산 때 아기가 머리부터 나오지 않고 다리부터 나와서 무강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죽을 뻔한 고통을 안겨준 정장공을 미워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하고 동생만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자라난 정장공은 어머니 무강과 동생 공숙단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우선 동생 공숙단이 땅을 넓히고 세력을 키우는 것에 대해 주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냥 두고 보자고 말한다. 동생이니까 참아주고 믿는다는 표시일 수 있고,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잘못된 일을 하면 스스로 망하게 되어 있으니 굳이 자신이 저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수 있다. 또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단해야 뒷말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적인 마음일 수도 있다. 공숙단과 무강의 반란 계획을 확인하고, 그때서야 ‘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공숙단의 잘못이 커지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장공이 어머니 무강에 대해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강에 대한 직접적인 원망과 불만은 본문에 보이지 않는다. 무강의 무리한 요구도 자식으로서는 정성껏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공숙단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무강이 무리수를 두기를 바란 것일 수 있다. 동생의 반란은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어머니가 동생을 도와 성문을 열어 주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이 반란 사건을 세상에 드러내고 진압할 수 있다면 자신을 미워하는 동생과 어머니를 모두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반란이 평정되었을 때 공숙단은 죽임을 당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무강은 유폐되는데 이때 정장공은 황천에 가기 전에는 결코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무강의 잘못이 크다 하더라도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유폐한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터이다. 이런 정장공의 심리를 잘 파악해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영고숙이다. 군주가 내려준 음식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생각나 음식을 남겨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고 싶다는 영고숙의 말은 자식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정장공은 죽기 전에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는 맹세를 후회하지만, 군주로서 맹세한 말이라 함부로 철회할 수도 없었다. 저승을 의미하는 황천에 가서야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말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는 말이다. 군주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영고숙이 발휘한 기지는 황천黃泉을 저승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누런 물이 나오는 샘으로 풀이하는 것이었다. 즉 정장공이 황톳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깊게 파서 땅굴 안에서 어머니와 상봉한다면, 황천에 가서야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맹세도 지키면서 어머니도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영고숙이 발휘한 기지도 재미있지만, 이런 다소 장난스러운 제안을 즉각 수용하며 어머니를 만난 정장공의 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부른 노래에 따르면 정장공은 굴 안에서 큰 행복감을 맛보았다. 굴 밖에서 정나라 군주로서 지냈던 시간동안 느끼지 못한 즐거움을 굴 안에서 어머니를 만나면서 느낀 것이다. 과거에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의 나라를 빼앗으려 해서 어머니를 유폐시켰지만, 자식이 어머니에 대해 갖는 애틋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영고숙의 고깃국 일화는 이런 마음의 한 끝을 건드려 준 것이었다.
전후맥락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춘추시대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정장공 오생과 그의 아우 공숙단의 권력쟁투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과 비극을 기술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장남을 미워하고 차남을 편애한 어머니 무강과 장남 정장공 간의 갈등이 기저에 깔려 있다.
고전본문
정鄭나라 제2대 군주인 정무공(鄭武公, 기원전 770-744 재위)이 신申나라에서 무강武姜을 부인으로 맞이했다. 무강은 정장공鄭莊公과 공숙단共叔段을 낳았는데 정장공이 태어날 때 거꾸로 나오는 바람에 무강이 크게 놀랐다. 이로 인해 정장공의 이름을 ‘오생寤生’이라 짓고 그를 미워했다. 무강은 공숙단을 더 아껴 그를 군주로 세우려고 여러 번 남편 정무공에게 청했지만 정무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정장공이 즉위하자 무강이 공숙단을 위해 제制 땅을 요구했다. 정장공이 말했다.
“제 땅은 지세가 험한 고을입니다. 다른 고을이라면 명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무강이 경京 땅을 요청하므로 공숙단을 그 땅에 살게 하고 그를 경성태숙京城太叔이라고 불렀다.
정나라 대부 채중祭仲이 말했다. […]
“무강의 욕심이 어찌 만족이 있겠습니까? 빨리 조치를 취해 세력이 확대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세력이 확대되면 일을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들풀도 무성해지면 제거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군주가 사랑하는 아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정장공이 말했다.
“옳지 않은 일을 많이 하면 반드시 저절로 망할 것이니, 그대는 잠시 기다려 보시오.”
[…공숙단이 계속 땅을 넓히고 세력을 확장함…]
공숙단이 성곽을 견고히 쌓고 군량을 모으며 갑옷과 병기를 수선하고 군사와 전차를 갖추어서 장차 정나라 수도를 습격하려 했다. 이에 어머니 무강이 성문을 열어주기로 약속했다. 정장공은 공숙단의 기습 날짜를 전해 듣고 말했다.
“이제 공숙단을 칠 때가 되었다.”
자봉子封에게 명하여 전차 2백 승乘(승은 전차의 단위이다. 1승에 갑사 3인과 보졸 72인을 배치한다)을 거느리고 가서 경 땅을 치게 했다. 경 땅 사람들이 공숙단을 배반하여 공숙단은 도망해 언鄢 땅으로 들어갔다. 정장공이 또 언 땅을 치자, 공숙단이 공共나라로 달아났다. […]
이후 정장공은 무강을 유폐하고서 이렇게 맹세했다.
“황천黃泉에 가기 전에는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후회했다. 당시 정나라 대부 중에 영고숙潁考叔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 정장공에게 선물을 헌상하는 기회를 만들어 정장공을 찾아뵈었다. 정장공이 영고숙에게 음식을 하사했을 때 영고숙이 고기를 먹지 않고 한 데 모아 놓자 정장공이 그 까닭을 물었다. 영고숙이 대답했다.
“소인에게는 어머니가 계신데 소인이 올리는 음식은 다 맛보았으나 군주가 드시는 이런 고깃국은 드셔보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이것을 어머니께 갖다드릴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대에게는 국을 가져다드릴 어머니가 계신데 나만 홀로 어머니가 없소!”
“감히 여쭙건대 무슨 말씀입니까?”
정장공은 그 연유를 이야기하며 지금은 뉘우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영고숙이 말했다.
“군주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만일 물이 나는 데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서 굴속에서 서로 만난다면 누가 황천黃泉에 가서야 만나겠다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정장공이 영고숙의 말을 좇았다. 정장공이 굴속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만난 뒤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
“큰 굴 안에 들어오니 즐거움에 화평하네.”
무강도 아들 정장공을 만나보고 밖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큰 굴 밖으로 나오니 즐거움에 날아갈 듯하네.”
토론하기
(1) 어린 시절 정장공이 어머니 무강에게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2) 내가 정장공이었다면 초기에 동생 공숙단이 하는 잘못을 꾸짖고 훈계해 바른 길로 인도했을까?
(3) 부모님이 나를 나의 형제자매보다 덜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럴 때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생각해보고, 더 좋은 방식은 무엇이었을지 말해보자.
해설읽기
어머니 무강의 공숙단 편애는 정서적인 것을 넘어서 집요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장남 정장공을 제치고 동생 공숙단이 군위를 계승하도록 남편 정무공을 설득했다. 정장공이 군주가 된 이후에는 공숙단에게 좋은 땅을 주도록 요구하고 공숙단이 형에 대항해 세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공숙단이 형 정장공에 대항해 반란을 계획하자 기습하는 날 성문을 열어주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란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공숙단은 도망자 신세가 되고 무강 자신은 유폐된다.
무강은 자신이 낳은 장남 정장공을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우선 오생寤生이라는 이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오寤’의 기본적 뜻은 ‘잠에서 깨다’ 이다. 산고 없이 잠자다가 아이를 낳고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자신이 아이를 낳은 것을 알았다면 매우 놀랄 수밖에 없고 자기가 낳은 아이 같지 않아 덜 사랑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 다른 추측은 ‘오寤’는 ‘거스르다’ ‘거꾸로 되다’는 뜻도 있는데 출산 때 아기가 머리부터 나오지 않고 다리부터 나와서 무강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죽을 뻔한 고통을 안겨준 정장공을 미워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하고 동생만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자라난 정장공은 어머니 무강과 동생 공숙단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우선 동생 공숙단이 땅을 넓히고 세력을 키우는 것에 대해 주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냥 두고 보자고 말한다. 동생이니까 참아주고 믿는다는 표시일 수 있고,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잘못된 일을 하면 스스로 망하게 되어 있으니 굳이 자신이 저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수 있다. 또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단해야 뒷말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적인 마음일 수도 있다. 공숙단과 무강의 반란 계획을 확인하고, 그때서야 ‘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공숙단의 잘못이 커지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장공이 어머니 무강에 대해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강에 대한 직접적인 원망과 불만은 본문에 보이지 않는다. 무강의 무리한 요구도 자식으로서는 정성껏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공숙단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무강이 무리수를 두기를 바란 것일 수 있다. 동생의 반란은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어머니가 동생을 도와 성문을 열어 주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이 반란 사건을 세상에 드러내고 진압할 수 있다면 자신을 미워하는 동생과 어머니를 모두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반란이 평정되었을 때 공숙단은 죽임을 당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무강은 유폐되는데 이때 정장공은 황천에 가기 전에는 결코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무강의 잘못이 크다 하더라도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유폐한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터이다. 이런 정장공의 심리를 잘 파악해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영고숙이다. 군주가 내려준 음식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생각나 음식을 남겨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고 싶다는 영고숙의 말은 자식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정장공은 죽기 전에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는 맹세를 후회하지만, 군주로서 맹세한 말이라 함부로 철회할 수도 없었다. 저승을 의미하는 황천에 가서야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말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는 말이다. 군주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영고숙이 발휘한 기지는 황천黃泉을 저승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누런 물이 나오는 샘으로 풀이하는 것이었다. 즉 정장공이 황톳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깊게 파서 땅굴 안에서 어머니와 상봉한다면, 황천에 가서야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맹세도 지키면서 어머니도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영고숙이 발휘한 기지도 재미있지만, 이런 다소 장난스러운 제안을 즉각 수용하며 어머니를 만난 정장공의 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부른 노래에 따르면 정장공은 굴 안에서 큰 행복감을 맛보았다. 굴 밖에서 정나라 군주로서 지냈던 시간동안 느끼지 못한 즐거움을 굴 안에서 어머니를 만나면서 느낀 것이다. 과거에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의 나라를 빼앗으려 해서 어머니를 유폐시켰지만, 자식이 어머니에 대해 갖는 애틋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영고숙의 고깃국 일화는 이런 마음의 한 끝을 건드려 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