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법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원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상적인 사회로 갈 수록 법은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게 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는 법이 보편적인 규범으로서 작동하기보다 특정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거나, 문화나 지리, 기후 등 다른 요인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띄게 된다. 이 셀 묶음을 통해서 법에 대한 여러 관점을 여러 고전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 법의 이상에 대해서 성찰해 보자.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는 자신이 경험한 유토피아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우선 당대 영국 사회 현실을 고발한다. 라파엘은 왕이 철학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행복한 국가가 실현된다는 플라톤의 이상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왕의 욕망을 억제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래 본문은 왕의 재정 고문관들이 모여 왕의 재정을 늘리는 방법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한 고문관은 화폐 가치를 조작하자고 하고, 다른 고문관은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여 세금을 거두어 들이자고 말한다. 고문관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맞서 라파엘은 왕이 세워진 목적은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환기시킨다.
고전본문
다른 고문관은 오랫동안 실행되어오지 않는 낡고 사문화된 법을 기억하면서, 아무도 그 법들이 존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법들을 위반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법에 따른 벌금을 왕이 징수할 것을 권고합니다. 정의처럼 보이고 정의로 채색된 것만큼 이익이 되고 영예로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고문관은 큰 형벌과 벌금으로 많은 것을 금하도록 왕에게 권고합니다. 그러고 나서 돈을 받고 사면하라고 합니다.(중략) 이것으로 왕은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게 되고 이익은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다른 고문관은 왕에게 왕국의 재판관들이 왕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도록 압박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자기 편이 되게 됩니다. 그들은 왕의 권리를 놓고 논쟁을 벌여야 합니다. 재판관들은 왕궁으로 소환되어 왕이 있는 가운데 문제들을 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왕에게 부당하고 부정의한 일이 있다고 해도, 재판관 중 한두 사람은 옹호하거나 반대할 것이 있든지, 말하는 것이 부끄럽든지, 아니면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든지간에 문제를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재판관들이 명백한 일을 놓고 궁리하고 논의하는 동안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사이에 명백한 진실을 의심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 왕은 법을 그의 이익에 가장 이득이 되도록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때문에 모든 이가 동의하게 됩니다. 그러면 재판관들은 왕의 편에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출전]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토론하기
(1) 윗글에서 고문관들은 왕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 법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기술해 봅시다.
(2) 공동체 생활에서 어떤 규칙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아닌 특정 사람들을 위해 정해지는 경우가 있었다면 말해 봅시다.
(3) 모어가 왕정 시대에 일어난 일을 쓰고 있지만 위의 상황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위의 상황과 비슷한 경우들이 있다면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엘리네크(Jellinek)라는 법학자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널리 알려진 말을 남겼다. 도덕이 특수한 사람의 이익이 아닌 모든 사람 사이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은 법이 도덕을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근대적인 도덕률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법도 사회 일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 위 본문에서 왕이 지배하는 시절에 백성의 이익이 아닌 왕의 이익을 위해서 법이 제정되고 해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모어가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영국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세 번째 고문관은 정의를 위해서 법을 집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법에 대한 느슨해진 경각심을 이용해서 벌금을 징수하려는 목적으로 폐기되다시피 한 법을 부활시킨다. 이는 법이 정의의 수단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다. 네 번째 고문관은 과도한 형벌을 통해서 많은 벌금을 부과하고, 또한 형벌에 대해서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발행하여 두 배의 수입을 얻자고 제안한다. 법의 처벌이라는 것도 적당해야 정의로운 것인데 왕의 이익을 위해서 형벌의 강도를 조절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또한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은 오늘날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과 유사한데, 사면의 명분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될 때 허용되는 것이지 대통령 이익을 위해서 사면권이 행해져서는 안 된다. 다섯 번째 고문관은 법을 왕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같은 법률 문구라 하더라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특정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문구를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법률가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대 정치가들은 정의와 공정을 늘 이야기한다.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백성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왕의 사익을 위하는 경우들을 모어는 목격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분노를 모어는 위의 글에서 표현하고 있다. 왕이 왕 위에 있는 법에 복종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 수단으로서 법의 정신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왕의 권력의 증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볼 수 있다.
키워드
도덕, 법, 정의, 형벌
전후맥락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는 자신이 경험한 유토피아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우선 당대 영국 사회 현실을 고발한다. 라파엘은 왕이 철학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행복한 국가가 실현된다는 플라톤의 이상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왕의 욕망을 억제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래 본문은 왕의 재정 고문관들이 모여 왕의 재정을 늘리는 방법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한 고문관은 화폐 가치를 조작하자고 하고, 다른 고문관은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여 세금을 거두어 들이자고 말한다. 고문관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맞서 라파엘은 왕이 세워진 목적은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환기시킨다.
고전본문
다른 고문관은 오랫동안 실행되어오지 않는 낡고 사문화된 법을 기억하면서, 아무도 그 법들이 존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법들을 위반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법에 따른 벌금을 왕이 징수할 것을 권고합니다. 정의처럼 보이고 정의로 채색된 것만큼 이익이 되고 영예로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고문관은 큰 형벌과 벌금으로 많은 것을 금하도록 왕에게 권고합니다. 그러고 나서 돈을 받고 사면하라고 합니다.(중략) 이것으로 왕은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게 되고 이익은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다른 고문관은 왕에게 왕국의 재판관들이 왕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도록 압박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자기 편이 되게 됩니다. 그들은 왕의 권리를 놓고 논쟁을 벌여야 합니다. 재판관들은 왕궁으로 소환되어 왕이 있는 가운데 문제들을 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왕에게 부당하고 부정의한 일이 있다고 해도, 재판관 중 한두 사람은 옹호하거나 반대할 것이 있든지, 말하는 것이 부끄럽든지, 아니면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든지간에 문제를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재판관들이 명백한 일을 놓고 궁리하고 논의하는 동안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사이에 명백한 진실을 의심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 왕은 법을 그의 이익에 가장 이득이 되도록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때문에 모든 이가 동의하게 됩니다. 그러면 재판관들은 왕의 편에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출전]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토론하기
(1) 윗글에서 고문관들은 왕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 법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기술해 봅시다.
(2) 공동체 생활에서 어떤 규칙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아닌 특정 사람들을 위해 정해지는 경우가 있었다면 말해 봅시다.
(3) 모어가 왕정 시대에 일어난 일을 쓰고 있지만 위의 상황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위의 상황과 비슷한 경우들이 있다면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엘리네크(Jellinek)라는 법학자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널리 알려진 말을 남겼다. 도덕이 특수한 사람의 이익이 아닌 모든 사람 사이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은 법이 도덕을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근대적인 도덕률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법도 사회 일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 위 본문에서 왕이 지배하는 시절에 백성의 이익이 아닌 왕의 이익을 위해서 법이 제정되고 해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모어가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영국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세 번째 고문관은 정의를 위해서 법을 집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법에 대한 느슨해진 경각심을 이용해서 벌금을 징수하려는 목적으로 폐기되다시피 한 법을 부활시킨다. 이는 법이 정의의 수단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다. 네 번째 고문관은 과도한 형벌을 통해서 많은 벌금을 부과하고, 또한 형벌에 대해서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발행하여 두 배의 수입을 얻자고 제안한다. 법의 처벌이라는 것도 적당해야 정의로운 것인데 왕의 이익을 위해서 형벌의 강도를 조절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또한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은 오늘날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과 유사한데, 사면의 명분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될 때 허용되는 것이지 대통령 이익을 위해서 사면권이 행해져서는 안 된다. 다섯 번째 고문관은 법을 왕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같은 법률 문구라 하더라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특정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문구를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법률가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대 정치가들은 정의와 공정을 늘 이야기한다.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백성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왕의 사익을 위하는 경우들을 모어는 목격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분노를 모어는 위의 글에서 표현하고 있다. 왕이 왕 위에 있는 법에 복종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 수단으로서 법의 정신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왕의 권력의 증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