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중국 전국시대 때 제나라 재상으로서 식객을 많이 거느린 것으로 유명했던 맹상군과 그의 식객 풍훤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전본문
제나라에 풍훤(馮諼)*이란 자가 있었다. 가난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어, 맹상군에게 그 문하에서 기식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맹상군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오?”
“저는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대는 무엇에 능하오?”
“저는 능한 것이 없습니다.”
맹상군이 웃으며 수락하였다.
“좋소.”
주변에서는 맹상군이 풍훤을 좋지 않게 여길 것이라 생각해 거친 음식만을 주었다. 얼마 후 풍훤이 기둥에 기댄 채 자신의 칼을 치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식사하는데 생선 한 마리 없구나.”
주변에서 이를 고하자 맹상군이 말했다.
“생선을 먹여 주고, 문하의 객에 맞게 대우해 주거라.”
얼마 후, 다시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장협아, 돌아가자! 외출하는데 수레가 없구나.”
주변에서 모두 비웃으며 고하자 맹상군이 말했다.
“수레를 타게 해 주고 수레를 타는 상객과 같은 대우를 해 주어라.”
이에 풍훤이 수레를 타고 장검을 쳐들고는 친구들 옆을 지나며 말했다.
“맹상군이 나를 객례로 잘 대우해 주고 있다.”
얼마 후 다시 장검을 치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식구를 부양할 수 없구나.”
식객들이 모두 미워하여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여겼다. 맹상군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에게 어버이가 계시느냐?”
“노모가 계시다고 합니다.”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노모에게 먹을 것과 일용품을 제공하여 궁핍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제야 풍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어느 날 맹상군이 장부를 내놓고 문하의 식객들에게 물었다.
“회계에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누가 나를 위해 설(薛) 땅에 가서 빚을 받아오겠는가?”
“저 풍훤이 하겠습니다.”
“이게 누구인가?”
“바로 ‘장협아, 돌아가자’라고 노래 부르던 그 자입니다.”
“그대는 유능한 사람인데, 내가 잊고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소.”
맹상군이 그를 만나 사과했다.
“…선생이 나를 위해 설 땅에 가서 빚을 좀 받아 올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풍훤이 수레를 준비하고 행장을 꾸려 빚 문서를 싣고 떠나며 말했다.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가지고 돌아올까요?”
“우리 집에 부족해 보이는 것을 사가지고 오시오.”
풍훤이 수레를 몰아 설 땅으로 갔다. 도착하여 빚이 있는 자들을 모아 놓고 빚 문서의 내용이 맞는가를 확인하였다. 채권문서와 채무문서를 모두 대조하고 나서 맹상군의 이름으로 백성들의 빚을 탕감하고는 빚 문서를 불태웠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모두 놀라며 만세를 불렀다.
풍훤은 말을 달려 제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새벽인데도 맹상군 뵙기를 청하였다. 맹상군은 그가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여기면서 의관을 정제하고 만났다.
“빚은 모두 받았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소?”
“모두 받았습니다.”
“그래, 무얼 사 가지고 왔소?”
“군께서는 집에 부족해 보이는 것을 사 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니 군의 집에는 진귀한 보배가 가득 쌓여 있고, 개와 말은 마구간에 가득 차 있어 군의 집안에 부족한 것이라고는 바로 의로움(義)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군을 위해 의로움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의로움을 사오다니 무슨 말이오?”
“지금 군께서는 설 땅을 봉지로 갖고 계시면서 그곳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빌려주고 이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군의 명령을 가탁하여 백성들에게 그 빚을 모두 탕감하고 빚 문서를 불태우게 했더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것이 제가 군을 위해 사가지고 온 의로움입니다.”
맹상군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좋소. 선생은 가서 쉬시오.”
1년 후 [맹상군을 재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주변의 간계에 속아] 제나라 민왕(湣王)이 맹상군에게 말하였다.
“제 아버지의 신하를 저의 신하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맹상군은 자신의 봉지인 설 땅으로 가야 했다.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와 무거운 마음으로 설 땅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백리도 가지 않아 설 땅 백성들이 노약자들까지 부축하고 맹상군을 영접하러 나와 길을 메우고 있었다. 맹상군이 풍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선생께서 저를 위해 사온 의로움을 드디어 오늘 보았구려.”
“교활한 토끼도 굴이 세 개는 있어야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군께서는 지금 겨우 굴 하나가 있을 뿐이니 아직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누울 수 있는 처지가 못 됩니다. 군을 위하여 두 개의 굴을 더 파 드리겠습니다.” …
풍훤(馮諼)*: 풍환(馮驩)이라고도 한다.
출전: <전국책> 11권
토론하기
- 맹상군이 자신을 찾아오는 인재들을 특별히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여 거처와 식사를 증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풍훤이란 사람이 맹상군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일에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현대의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에서는 맹상군과 풍훤의 관계가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해설읽기
이글은 중국 전국시대 사공자(四公子)의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맹상군(孟嘗君, ?∼ BC 279)과 그의 식객 풍훤(馮諼)에 관한 이야기이다. 맹상군과 관련하여 ‘계명구도(鷄鳴狗盜)’, ‘교토삼굴(狡免三窟)’, ‘명불허전(名不虛傳)’ 등의 고사가 전해지는데, 이는 그가 거느린 식객과 관련된 내용이다. 식객은 대갓집에 기거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대신 집안일을 보살피거나 주인을 보좌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전국시대에는 수천 명의 식객을 두는 집도 생겨났다. 중국 뿐 아니라 조선이나 일본에서도 권세 있는 집안이 식객을 두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수백, 수천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나라를 위해 뛰어난 인재를 대접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라에서 관직을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나라가 수용하지 못하는 인재를 사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사회적 평판과 위신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식객으로부터 조언을 받아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때문에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식객을 두고 그들을 활용하고자 했다.
두세 명의 식객을 두고 집안일을 처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딱히 필요도 없는 수백 명,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경제적인 일처럼 보인다. 식객 몇몇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다수는 자신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터인데 이들을 오래토록 먹이고 재우는 것은 주인의 재산을 탕진하는 일에 가깝다. 포틀래치*가 일종의 선물을 통한 명예 경쟁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식객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는가 또한 일종의 ‘증여’와 ‘접대’를 통한 위신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포틀래치가 부를 축적하지 않고 순환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식객을 두는 일 또한 권세 있는 대갓집의 부를 재능은 있지만 관직이 없는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효과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성장하는 지식인과 무인 계층을 흡수할 여력이 없는 국가 시스템을 대신하여 유력 가문에서 이들을 비공식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사회의 불안정을 흡수하고 이들의 재능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었다.
포틀래치가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 간의 자존심과 위신 경쟁인 것처럼 식객을 두는 문화에서도 주고받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숙식을 제공하는 권력자라고 해서 안하무인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으며, 제공받는 식객이라 해도 비굴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즉 주군이 당장의 이익과 쓸모를 따져 받아들일 식객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없으며, 식객 또한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통해 자신이 모시려는 주군의 덕을 빛내기 위해 이 집에 머무는 것이므로 당당해질 수 있었다.
이글에서 풍훤은 칼 한 자루를 차고 맹상군의 집에 찾아와 숙식을 의탁한다. 당시 맹상군은 식객을 세 등급으로 구분하여 상객은 자기와 같은 급으로 고기와 수레를 제공하고, 중객은 앞으로 임용 가능한 자로서 고기반찬을 주지만 수레는 제공하지 않으며, 하객은 먹여주고 거처를 제공해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무엇을 잘하냐는 물음에 자신은 잘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므로 별다른 재주가 없는 사람 같아 처음에 맹상군은 그를 하객으로 대우했다. 하릴 없이 지내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대접도 과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풍훤은 불만을 표출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소란을 피웠다. 결국 고기반찬과 수레까지 제공받는 상객으로 대우받고 또 노모의 봉양도 제공받았다.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는 경대부라는 위신과 명예는 아마 동렬의 경대부들을 향한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거느리는 식객들을 향해서도 ‘너그러움’과 같은 덕목을 시험해야 했다. 별 쓸모도 없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가 강력히 요구한다면 최상의 대우까지 해 줄 수 있는 포용력을 갖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대로 지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비록 아직 나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바램과 믿음이 있다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많은 것을 요구하여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린 풍훤이 맹상군을 위해 답례한 선물은 채권을 상환해 받은 돈이 아니었다. 오히려 받아와야 할 돈을 모두 포기하고 돌아와서 당당하게 말한다. 당신 집에 없는 의로움을 사가지고 왔다고.
풍훤이 수년간 제공받은 거처와 음식, 수레 등은 그가 말한 의로움과 등가의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없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교환가치로 따지면 배은망덕하다고 비난받을 법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풍훤의 혜안은 빛을 발하였다. 그가 설 땅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선물’을 제공한 덕택으로 주변의 간계로 재상에서 물러난 맹상군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맹상군이 풍훤에게 준 선물이 한참을 지나 다른 형태로 보답된 것처럼, 풍훤이 맹상군의 이름을 빌려 설 땅 사람에게 제공한 부채탕감이라는 선물 또한 시간이 지나 환대라는 형태로 되돌아왔다.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말미에 나온 ‘교토삼굴’은 풍훤이 맹상군에게 답례한 또 다른 큰 선물이다.
풍훤에게든 설 땅 사람에게든 선물을 주었을 때는 보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며, 설사 기대했더라도 의무나 강제가 될 수 없다. 이것이 개인의 계약에 기초한 시장경제와의 차이이다. 누군가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한다면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 빚더미에 눌려 자살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것은 주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축적하기 위한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느냐 (다른 말로 하면 얼마나 많은 교환가치를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선물할 수 있느냐가 나의 존재감과 가치를 결정한다면, 사람들은 축적이 아니라 선물을 위한 경쟁을 할 것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 또한 지금 자신이 필요에 의해 받기는 하지만 선물의 교환 가치 그대로를 즉각 답례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에 기초해 부등가의 다른 가치로 답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간의 관계를 탄탄히 하면서 공동체의 재화를 필요에 맞게 순환시키는 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키워드
맹상군, 분권, 식객, 의, 재분배, 전국책, 포틀래치, 풍
전후맥락
중국 전국시대 때 제나라 재상으로서 식객을 많이 거느린 것으로 유명했던 맹상군과 그의 식객 풍훤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전본문
제나라에 풍훤(馮諼)*이란 자가 있었다. 가난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어, 맹상군에게 그 문하에서 기식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맹상군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오?”
“저는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대는 무엇에 능하오?”
“저는 능한 것이 없습니다.”
맹상군이 웃으며 수락하였다.
“좋소.”
주변에서는 맹상군이 풍훤을 좋지 않게 여길 것이라 생각해 거친 음식만을 주었다. 얼마 후 풍훤이 기둥에 기댄 채 자신의 칼을 치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식사하는데 생선 한 마리 없구나.”
주변에서 이를 고하자 맹상군이 말했다.
“생선을 먹여 주고, 문하의 객에 맞게 대우해 주거라.”
얼마 후, 다시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장협아, 돌아가자! 외출하는데 수레가 없구나.”
주변에서 모두 비웃으며 고하자 맹상군이 말했다.
“수레를 타게 해 주고 수레를 타는 상객과 같은 대우를 해 주어라.”
이에 풍훤이 수레를 타고 장검을 쳐들고는 친구들 옆을 지나며 말했다.
“맹상군이 나를 객례로 잘 대우해 주고 있다.”
얼마 후 다시 장검을 치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식구를 부양할 수 없구나.”
식객들이 모두 미워하여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여겼다. 맹상군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에게 어버이가 계시느냐?”
“노모가 계시다고 합니다.”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노모에게 먹을 것과 일용품을 제공하여 궁핍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제야 풍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어느 날 맹상군이 장부를 내놓고 문하의 식객들에게 물었다.
“회계에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누가 나를 위해 설(薛) 땅에 가서 빚을 받아오겠는가?”
“저 풍훤이 하겠습니다.”
“이게 누구인가?”
“바로 ‘장협아, 돌아가자’라고 노래 부르던 그 자입니다.”
“그대는 유능한 사람인데, 내가 잊고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소.”
맹상군이 그를 만나 사과했다.
“…선생이 나를 위해 설 땅에 가서 빚을 좀 받아 올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풍훤이 수레를 준비하고 행장을 꾸려 빚 문서를 싣고 떠나며 말했다.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가지고 돌아올까요?”
“우리 집에 부족해 보이는 것을 사가지고 오시오.”
풍훤이 수레를 몰아 설 땅으로 갔다. 도착하여 빚이 있는 자들을 모아 놓고 빚 문서의 내용이 맞는가를 확인하였다. 채권문서와 채무문서를 모두 대조하고 나서 맹상군의 이름으로 백성들의 빚을 탕감하고는 빚 문서를 불태웠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모두 놀라며 만세를 불렀다.
풍훤은 말을 달려 제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새벽인데도 맹상군 뵙기를 청하였다. 맹상군은 그가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여기면서 의관을 정제하고 만났다.
“빚은 모두 받았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소?”
“모두 받았습니다.”
“그래, 무얼 사 가지고 왔소?”
“군께서는 집에 부족해 보이는 것을 사 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니 군의 집에는 진귀한 보배가 가득 쌓여 있고, 개와 말은 마구간에 가득 차 있어 군의 집안에 부족한 것이라고는 바로 의로움(義)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군을 위해 의로움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의로움을 사오다니 무슨 말이오?”
“지금 군께서는 설 땅을 봉지로 갖고 계시면서 그곳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빌려주고 이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군의 명령을 가탁하여 백성들에게 그 빚을 모두 탕감하고 빚 문서를 불태우게 했더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것이 제가 군을 위해 사가지고 온 의로움입니다.”
맹상군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좋소. 선생은 가서 쉬시오.”
1년 후 [맹상군을 재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주변의 간계에 속아] 제나라 민왕(湣王)이 맹상군에게 말하였다.
“제 아버지의 신하를 저의 신하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맹상군은 자신의 봉지인 설 땅으로 가야 했다.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와 무거운 마음으로 설 땅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백리도 가지 않아 설 땅 백성들이 노약자들까지 부축하고 맹상군을 영접하러 나와 길을 메우고 있었다. 맹상군이 풍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선생께서 저를 위해 사온 의로움을 드디어 오늘 보았구려.”
“교활한 토끼도 굴이 세 개는 있어야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군께서는 지금 겨우 굴 하나가 있을 뿐이니 아직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누울 수 있는 처지가 못 됩니다. 군을 위하여 두 개의 굴을 더 파 드리겠습니다.” …
풍훤(馮諼)*: 풍환(馮驩)이라고도 한다.
출전: <전국책> 11권
토론하기
- 맹상군이 자신을 찾아오는 인재들을 특별히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여 거처와 식사를 증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풍훤이란 사람이 맹상군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일에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현대의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에서는 맹상군과 풍훤의 관계가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해설읽기
이글은 중국 전국시대 사공자(四公子)의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맹상군(孟嘗君, ?∼ BC 279)과 그의 식객 풍훤(馮諼)에 관한 이야기이다. 맹상군과 관련하여 ‘계명구도(鷄鳴狗盜)’, ‘교토삼굴(狡免三窟)’, ‘명불허전(名不虛傳)’ 등의 고사가 전해지는데, 이는 그가 거느린 식객과 관련된 내용이다. 식객은 대갓집에 기거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대신 집안일을 보살피거나 주인을 보좌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전국시대에는 수천 명의 식객을 두는 집도 생겨났다. 중국 뿐 아니라 조선이나 일본에서도 권세 있는 집안이 식객을 두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수백, 수천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나라를 위해 뛰어난 인재를 대접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라에서 관직을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나라가 수용하지 못하는 인재를 사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사회적 평판과 위신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식객으로부터 조언을 받아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때문에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식객을 두고 그들을 활용하고자 했다.
두세 명의 식객을 두고 집안일을 처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딱히 필요도 없는 수백 명,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경제적인 일처럼 보인다. 식객 몇몇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다수는 자신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터인데 이들을 오래토록 먹이고 재우는 것은 주인의 재산을 탕진하는 일에 가깝다. 포틀래치*가 일종의 선물을 통한 명예 경쟁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식객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는가 또한 일종의 ‘증여’와 ‘접대’를 통한 위신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포틀래치가 부를 축적하지 않고 순환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식객을 두는 일 또한 권세 있는 대갓집의 부를 재능은 있지만 관직이 없는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효과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성장하는 지식인과 무인 계층을 흡수할 여력이 없는 국가 시스템을 대신하여 유력 가문에서 이들을 비공식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사회의 불안정을 흡수하고 이들의 재능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었다.
포틀래치가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 간의 자존심과 위신 경쟁인 것처럼 식객을 두는 문화에서도 주고받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숙식을 제공하는 권력자라고 해서 안하무인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으며, 제공받는 식객이라 해도 비굴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즉 주군이 당장의 이익과 쓸모를 따져 받아들일 식객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없으며, 식객 또한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통해 자신이 모시려는 주군의 덕을 빛내기 위해 이 집에 머무는 것이므로 당당해질 수 있었다.
이글에서 풍훤은 칼 한 자루를 차고 맹상군의 집에 찾아와 숙식을 의탁한다. 당시 맹상군은 식객을 세 등급으로 구분하여 상객은 자기와 같은 급으로 고기와 수레를 제공하고, 중객은 앞으로 임용 가능한 자로서 고기반찬을 주지만 수레는 제공하지 않으며, 하객은 먹여주고 거처를 제공해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무엇을 잘하냐는 물음에 자신은 잘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므로 별다른 재주가 없는 사람 같아 처음에 맹상군은 그를 하객으로 대우했다. 하릴 없이 지내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대접도 과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풍훤은 불만을 표출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소란을 피웠다. 결국 고기반찬과 수레까지 제공받는 상객으로 대우받고 또 노모의 봉양도 제공받았다.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는 경대부라는 위신과 명예는 아마 동렬의 경대부들을 향한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거느리는 식객들을 향해서도 ‘너그러움’과 같은 덕목을 시험해야 했다. 별 쓸모도 없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가 강력히 요구한다면 최상의 대우까지 해 줄 수 있는 포용력을 갖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대로 지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비록 아직 나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바램과 믿음이 있다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많은 것을 요구하여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린 풍훤이 맹상군을 위해 답례한 선물은 채권을 상환해 받은 돈이 아니었다. 오히려 받아와야 할 돈을 모두 포기하고 돌아와서 당당하게 말한다. 당신 집에 없는 의로움을 사가지고 왔다고.
풍훤이 수년간 제공받은 거처와 음식, 수레 등은 그가 말한 의로움과 등가의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없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교환가치로 따지면 배은망덕하다고 비난받을 법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풍훤의 혜안은 빛을 발하였다. 그가 설 땅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선물’을 제공한 덕택으로 주변의 간계로 재상에서 물러난 맹상군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맹상군이 풍훤에게 준 선물이 한참을 지나 다른 형태로 보답된 것처럼, 풍훤이 맹상군의 이름을 빌려 설 땅 사람에게 제공한 부채탕감이라는 선물 또한 시간이 지나 환대라는 형태로 되돌아왔다.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말미에 나온 ‘교토삼굴’은 풍훤이 맹상군에게 답례한 또 다른 큰 선물이다.
풍훤에게든 설 땅 사람에게든 선물을 주었을 때는 보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며, 설사 기대했더라도 의무나 강제가 될 수 없다. 이것이 개인의 계약에 기초한 시장경제와의 차이이다. 누군가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한다면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 빚더미에 눌려 자살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것은 주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축적하기 위한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느냐 (다른 말로 하면 얼마나 많은 교환가치를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선물할 수 있느냐가 나의 존재감과 가치를 결정한다면, 사람들은 축적이 아니라 선물을 위한 경쟁을 할 것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 또한 지금 자신이 필요에 의해 받기는 하지만 선물의 교환 가치 그대로를 즉각 답례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에 기초해 부등가의 다른 가치로 답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간의 관계를 탄탄히 하면서 공동체의 재화를 필요에 맞게 순환시키는 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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