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의 나이에 하급 군인으로 명나라를 돕기 위해 명과 후금(청)의 전투에 파병된 김영철은 조선인 군대의 항복으로 포로 신세가 된다.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에 오랑캐 장수 아라나의 죽은 동생과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아라나의 집에 가서 그의 집안일을 돌본다.
고전본문
아라나는 영철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집 사람들은 영철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왔다고 여겼다. [함께 온] 중국인 투항자 중에 전유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명나라 등주 출신이었다. 지략이 뛰어나 투항한 이들이 존경하고 따르며 전백총이라 불렀다. 영철은 전유년과 함께 밤낮으로 천한 잡일을 했는데, 떠나오던 날 조부가 하신 말씀을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 아라나는 영철이 끝내 달아날 것이라 생각해, 그 마음을 돌리려고 자신의 제수를 영철과 혼인시켰다. … 영철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득북得北이라 지었고, 두 번째로 얻은 아들은 득건得建이라 지었다.
[…탈출에 성공한] 영철은 전유년과 함께 등주로 가 전유년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영철의 마음은 다시 우울해졌다. … 전유년의 부모는 마침내 딸을 영철의 아내로 주도록 허락했다. 전유년의 누이가 영철에게 말했다.
“남들은 모두 시부모님께 절을 하는데, 저는 그럴 수 없군요.”
그러더니 화공을 불러다가 영철의 부모님 얼굴을 그리게 하고 거기에 절을 하였다.
이웃에서는 잔치가 열리면 꼭 영철을 청하여 조선의 노래와 춤을 선보이게 했는데, 그때마다 모여 앉은 손님 모두가 칭찬하며 저마다 비단을 선물로 주고 갔다. 이 때문에 영철의 집은 차츰 부유해졌다. 그러는 사이 두 아들 득달得達과 득길得吉이 태어났다.
경오년(1630) 겨울 10월에 조선의 진하사 일행을 태운 배가 등주에 정박했는데, 뱃사공 이연생은 영철과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영철은 정박해 있는 배 가까이 갔다가 연생이 배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 연생은 처음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다가 자세히 보고 영철임을 알자 깜짝 놀랐다. 연생은 영철의 아버지가 안주에서 전사했고, 조부는 영화의 아들 이룡에게 의탁해 살며, 어머니는 소호의 외가에 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영철이 통곡하며 말했다.
“내가 오랑캐 땅에서 탈출해 만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서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건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네. 이제 하늘이 도와 친구를 만났으니 자네가 나를 좀 귀국시켜 주게.”
마침내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영철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영철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이듬해 봄, 사신 일행이 북경에서 등주로 다시 돌아와 날이 밝는 대로 조선을 향해 출발하려 했다. 이날 밤 영철의 아내는 등불을 환히 켜고 영철과 앉아 이야기하며 그 눈치를 살폈다. 영철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어.’
그러나 곁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돌아보니 차마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마음이 흔들려 어찌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영철은 술을 내오라고 해 몇 잔을 마시고 아내에게도 술을 권했다. 이윽고 아내가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집을 빠져나와 연생의 배로 갔다. 연생은 갑판의 판자를 뜯어내 영철을 그 아래에 숨기고는 다시 판자를 기워 못질을 했다.
새벽에 영철의 아내가 10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배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영철을 찾지 못했다. 배에 탄 사람들도 영철의 소재를 알 길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영철이 갑판 밑에서 소리를 지르자 배에 탄 사람들이 놀라 영철을 밖으로 꺼내 준 뒤 음식을 주고 옷을 갈아입혔다. 사흘 뒤에 배는 평양의 석다산에 도착했다.
마침내 영철이 옛날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니, 그곳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영철은 이룡의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영철의 조부 영가가 지팡이에 의지해 문밖에 서 있다가 뜻밖에 영철을 발견하고는 멍하니 입이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니 한참 뒤에야 외쳤다.
“영철아”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 끌어안고 통곡했다….
토론하기
(1) 영철은 아라나 덕분에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또 아라나 집에 가서 살면서 아내까지 얻고 자식을 낳아 길렀다. 그런데도 아라나를 배신하고 도망한 김영철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2) 건주의 아라나 집에서 탈출한 영철은 전유년과 함께 등주로 가서 또 다시 전유년 동생과 결혼해서 자식 낳고 그곳에 정착한다. 아라나를 배신하고 도망했으면서도 결국 조선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등주에서 또 다른 가족을 이루고 사는 영철의 선택을 옹호해 줄 수 있을까?
(3) 고향에 돌아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두 번째 결혼한 명나라 여인과 그 사이에서 얻은 자식들을 두고 떠난 영철의 선택을 어떻게 봐야할까? 한국전쟁 이후에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찾아보자.
(4)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계신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 거기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비록 이국의 땅이지만 이곳의 아내와 자식들과 단란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영철 내부에서 공존했을 것이다. 영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혹은 어떤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해설읽기
아라나는 명나라 투항자 5명과 영철을 자신의 집에 데려가 가사를 돌보게 했다. 자신의 아우와 닮아서 데려간 것이기에 힘든 노역에 종사하지 않았을 터인데, 김영철은 아라나 집에서 탈출을 감행했다. 집안의 대가 끊어진다는 조부의 말이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붙잡혀 처음에는 왼쪽 발꿈치를, 두 번째는 오른 쪽 발꿈치를 잘리는 월형을 받았다. 당시 후금 법에는 세 번째 죄를 지었을 때는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어, 아라나는 김영철의 마음을 돌리려고 자신의 제수와 영철을 혼인시켰다. 영철은 비록 오랑캐 여인과의 혼인에서 두 아들을 얻었다.
아라나의 정성과 회유, 그리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꾸린 가정에도 불구하고 영철은 마음 한 구석이 늘 비어 있었다. 본문에는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철은 아라나와 전쟁터로 출정하기로 되어 있어, 함께 말을 기르던 중국인 포로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밝은 달을 보며 고향생각도 나고 또 다시 전쟁터에 나가야 하므로 마음에 울컥한 상태였다. 이때 중국인 포로 중에 있던 전유년이라는 사람의 고향이 등주인데, 이곳 건주에서 자신들이 기르던 말을 타고 달리면 4-5일이면 도착할 수 있으니 함께 도망갈 것을 제안했다. 또 조선의 사신들이 등주에서 북경으로 가니, 자신과 함께 가면 조선으로 돌아갈 길이 함께 열린다는 말에 영철도 귀가 솔깃했다.
탈출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파수병에게 발각되어 일행 네 명과 다섯 마리의 말이 늪에 빠져 죽었고, 먹을 것이 없어 주인 잃은 말을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도착해서도 오랑캐 복장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등주에 도착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만큼 조선으로 돌아갈 기회는 열리지 않았다. 결국 영철은 이곳에서 전유년의 누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 득달과 득길을 낳았다.
등주에서 꾸린 가정에 익숙해질 무렵, 1630년 초겨울, 조선의 사신을 태운 배가 등주에 정박한다. 뱃사공은 영철과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뱃사공 연생으로부터 아버지가 전사했고 조부와 어머니는 간신히 다른 친척에 의탁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오랑캐 땅을 탈출해 왔지만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통곡하자, 친구는 영철의 귀국을 돕기로 약속한다. 등주의 아내와 아이들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번이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영철은 가족이 잠든 틈을 타서 연생의 배로 갔다. 연생은 갑판의 판자를 뜯어내 영철을 숨겨주고 다시 그 위에 못질을 했다. 새벽에 아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배 안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등주 탈출 과정의 묘사는 건주 탈출 장면과 함께 『김영철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절대적인 과제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건주와 등주에서 가정을 꾸리고 정착하며 또 이들 가족을 떠날 때의 복잡한 심정을 내비치고 그리워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탈출과 귀환은 내적 갈등과 고민이 없는 유일무이한 선택지라기보다는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씩 매어다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건주와 등주의 가족은 나 몰라라 하고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읽을 수는 없다. 영철은 곳곳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건주의 아내도 그랬지만, 등주의 아내는 특히 영철에게 지극정성을 보였고 조선인 배가 왔을 때 영철이 떠날까 불안해하고 배를 뒤지기까지 했다. 영철이 귀환한 이후에도 등주의 가족은 조선 배가 들어오면 영철의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비록 오랑캐이고 이국의 아내이지만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1618년 조선을 떠나오면서 할아버지로부터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당부의 말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너무나 무모한 탈출을 감행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래의 가족을 위해 현재의 가족을 버려야 했다. 건주와 등주에 두고 온 처자식이 있는 한 ‘완전한’ 귀환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읽는 이들은 영철이 말을 타고 건주를 탈출할 때, 또 배를 타고 등주를 탈출할 때 영철의 무사귀환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걱정과 의문을 품을 것이다. 집으로, 가족으로 돌아왔지만, 동시에 집과 가족을 떠나 온 것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집에 돌아가 대를 이으라는 할아버지의 당부를 수행하려는 그의 귀환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거나 혹은 잘못 설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13년 내내 고국으로 돌아갈 것만을 다짐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처음 ‘오랑캐 땅’ 건주에서는 귀국만을 꿈꾸었고 그래서 두 번의 탈출을 감행하여 월형까지 당했지만, 이후 아라나의 주선으로 결혼해 정착하고 나서는 포기하고 그곳에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가 건주를 떠난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깝다. 달 밝은 밤에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회식 자리가 모처럼 보름이었고, 자연스레 사람들과 고향 얘기를 하면서 울컥한 것이다. 전쟁에 나가서 죽을 바에야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정착한 등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떠나온 전유년의 누이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면서, 더구나 이들은 오랑캐도 아니고 중국인이다, 마음을 이곳에 붙였을 것이다. 장사도 잘 되어 집의 재산도 불어나고 모든 것이 안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그 마을에 조선 사신의 배가 정박하게 되고, 거기서 고향사람을 만나 가족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는 전사하셨고,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흩어져 살고 있다는 말에 자기 혼자 여기서 잘 살고 있는 것이 괜찮은가라는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고향 사람의 도움을 받아 떠난다. 요컨대, 김영철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일관된 목표가 아니라, 정착 과정에서 우연한 요소들이 그의 마음에 잠자고 있던 조부모와 부모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이어지면서 충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키워드
가족, 건주, 귀환, 김영철, 등주, 아라나, 이산, 전유년, 탈출
전후맥락
19세의 나이에 하급 군인으로 명나라를 돕기 위해 명과 후금(청)의 전투에 파병된 김영철은 조선인 군대의 항복으로 포로 신세가 된다.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에 오랑캐 장수 아라나의 죽은 동생과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아라나의 집에 가서 그의 집안일을 돌본다.
고전본문
아라나는 영철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집 사람들은 영철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왔다고 여겼다. [함께 온] 중국인 투항자 중에 전유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명나라 등주 출신이었다. 지략이 뛰어나 투항한 이들이 존경하고 따르며 전백총이라 불렀다. 영철은 전유년과 함께 밤낮으로 천한 잡일을 했는데, 떠나오던 날 조부가 하신 말씀을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 아라나는 영철이 끝내 달아날 것이라 생각해, 그 마음을 돌리려고 자신의 제수를 영철과 혼인시켰다. … 영철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득북得北이라 지었고, 두 번째로 얻은 아들은 득건得建이라 지었다.
[…탈출에 성공한] 영철은 전유년과 함께 등주로 가 전유년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영철의 마음은 다시 우울해졌다. … 전유년의 부모는 마침내 딸을 영철의 아내로 주도록 허락했다. 전유년의 누이가 영철에게 말했다.
“남들은 모두 시부모님께 절을 하는데, 저는 그럴 수 없군요.”
그러더니 화공을 불러다가 영철의 부모님 얼굴을 그리게 하고 거기에 절을 하였다.
이웃에서는 잔치가 열리면 꼭 영철을 청하여 조선의 노래와 춤을 선보이게 했는데, 그때마다 모여 앉은 손님 모두가 칭찬하며 저마다 비단을 선물로 주고 갔다. 이 때문에 영철의 집은 차츰 부유해졌다. 그러는 사이 두 아들 득달得達과 득길得吉이 태어났다.
경오년(1630) 겨울 10월에 조선의 진하사 일행을 태운 배가 등주에 정박했는데, 뱃사공 이연생은 영철과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영철은 정박해 있는 배 가까이 갔다가 연생이 배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 연생은 처음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다가 자세히 보고 영철임을 알자 깜짝 놀랐다. 연생은 영철의 아버지가 안주에서 전사했고, 조부는 영화의 아들 이룡에게 의탁해 살며, 어머니는 소호의 외가에 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영철이 통곡하며 말했다.
“내가 오랑캐 땅에서 탈출해 만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서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건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네. 이제 하늘이 도와 친구를 만났으니 자네가 나를 좀 귀국시켜 주게.”
마침내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영철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영철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이듬해 봄, 사신 일행이 북경에서 등주로 다시 돌아와 날이 밝는 대로 조선을 향해 출발하려 했다. 이날 밤 영철의 아내는 등불을 환히 켜고 영철과 앉아 이야기하며 그 눈치를 살폈다. 영철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어.’
그러나 곁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돌아보니 차마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마음이 흔들려 어찌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영철은 술을 내오라고 해 몇 잔을 마시고 아내에게도 술을 권했다. 이윽고 아내가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집을 빠져나와 연생의 배로 갔다. 연생은 갑판의 판자를 뜯어내 영철을 그 아래에 숨기고는 다시 판자를 기워 못질을 했다.
새벽에 영철의 아내가 10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배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영철을 찾지 못했다. 배에 탄 사람들도 영철의 소재를 알 길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영철이 갑판 밑에서 소리를 지르자 배에 탄 사람들이 놀라 영철을 밖으로 꺼내 준 뒤 음식을 주고 옷을 갈아입혔다. 사흘 뒤에 배는 평양의 석다산에 도착했다.
마침내 영철이 옛날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니, 그곳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영철은 이룡의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영철의 조부 영가가 지팡이에 의지해 문밖에 서 있다가 뜻밖에 영철을 발견하고는 멍하니 입이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니 한참 뒤에야 외쳤다.
“영철아”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 끌어안고 통곡했다….
토론하기
(1) 영철은 아라나 덕분에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또 아라나 집에 가서 살면서 아내까지 얻고 자식을 낳아 길렀다. 그런데도 아라나를 배신하고 도망한 김영철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2) 건주의 아라나 집에서 탈출한 영철은 전유년과 함께 등주로 가서 또 다시 전유년 동생과 결혼해서 자식 낳고 그곳에 정착한다. 아라나를 배신하고 도망했으면서도 결국 조선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등주에서 또 다른 가족을 이루고 사는 영철의 선택을 옹호해 줄 수 있을까?
(3) 고향에 돌아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두 번째 결혼한 명나라 여인과 그 사이에서 얻은 자식들을 두고 떠난 영철의 선택을 어떻게 봐야할까? 한국전쟁 이후에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찾아보자.
(4)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계신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 거기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비록 이국의 땅이지만 이곳의 아내와 자식들과 단란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영철 내부에서 공존했을 것이다. 영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혹은 어떤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해설읽기
아라나는 명나라 투항자 5명과 영철을 자신의 집에 데려가 가사를 돌보게 했다. 자신의 아우와 닮아서 데려간 것이기에 힘든 노역에 종사하지 않았을 터인데, 김영철은 아라나 집에서 탈출을 감행했다. 집안의 대가 끊어진다는 조부의 말이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붙잡혀 처음에는 왼쪽 발꿈치를, 두 번째는 오른 쪽 발꿈치를 잘리는 월형을 받았다. 당시 후금 법에는 세 번째 죄를 지었을 때는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어, 아라나는 김영철의 마음을 돌리려고 자신의 제수와 영철을 혼인시켰다. 영철은 비록 오랑캐 여인과의 혼인에서 두 아들을 얻었다.
아라나의 정성과 회유, 그리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꾸린 가정에도 불구하고 영철은 마음 한 구석이 늘 비어 있었다. 본문에는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철은 아라나와 전쟁터로 출정하기로 되어 있어, 함께 말을 기르던 중국인 포로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때 밝은 달을 보며 고향생각도 나고 또 다시 전쟁터에 나가야 하므로 마음에 울컥한 상태였다. 이때 중국인 포로 중에 있던 전유년이라는 사람의 고향이 등주인데, 이곳 건주에서 자신들이 기르던 말을 타고 달리면 4-5일이면 도착할 수 있으니 함께 도망갈 것을 제안했다. 또 조선의 사신들이 등주에서 북경으로 가니, 자신과 함께 가면 조선으로 돌아갈 길이 함께 열린다는 말에 영철도 귀가 솔깃했다.
탈출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파수병에게 발각되어 일행 네 명과 다섯 마리의 말이 늪에 빠져 죽었고, 먹을 것이 없어 주인 잃은 말을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도착해서도 오랑캐 복장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등주에 도착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만큼 조선으로 돌아갈 기회는 열리지 않았다. 결국 영철은 이곳에서 전유년의 누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 득달과 득길을 낳았다.
등주에서 꾸린 가정에 익숙해질 무렵, 1630년 초겨울, 조선의 사신을 태운 배가 등주에 정박한다. 뱃사공은 영철과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뱃사공 연생으로부터 아버지가 전사했고 조부와 어머니는 간신히 다른 친척에 의탁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오랑캐 땅을 탈출해 왔지만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통곡하자, 친구는 영철의 귀국을 돕기로 약속한다. 등주의 아내와 아이들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번이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영철은 가족이 잠든 틈을 타서 연생의 배로 갔다. 연생은 갑판의 판자를 뜯어내 영철을 숨겨주고 다시 그 위에 못질을 했다. 새벽에 아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배 안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등주 탈출 과정의 묘사는 건주 탈출 장면과 함께 『김영철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절대적인 과제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건주와 등주에서 가정을 꾸리고 정착하며 또 이들 가족을 떠날 때의 복잡한 심정을 내비치고 그리워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탈출과 귀환은 내적 갈등과 고민이 없는 유일무이한 선택지라기보다는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씩 매어다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건주와 등주의 가족은 나 몰라라 하고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읽을 수는 없다. 영철은 곳곳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건주의 아내도 그랬지만, 등주의 아내는 특히 영철에게 지극정성을 보였고 조선인 배가 왔을 때 영철이 떠날까 불안해하고 배를 뒤지기까지 했다. 영철이 귀환한 이후에도 등주의 가족은 조선 배가 들어오면 영철의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비록 오랑캐이고 이국의 아내이지만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1618년 조선을 떠나오면서 할아버지로부터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당부의 말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너무나 무모한 탈출을 감행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래의 가족을 위해 현재의 가족을 버려야 했다. 건주와 등주에 두고 온 처자식이 있는 한 ‘완전한’ 귀환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읽는 이들은 영철이 말을 타고 건주를 탈출할 때, 또 배를 타고 등주를 탈출할 때 영철의 무사귀환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걱정과 의문을 품을 것이다. 집으로, 가족으로 돌아왔지만, 동시에 집과 가족을 떠나 온 것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집에 돌아가 대를 이으라는 할아버지의 당부를 수행하려는 그의 귀환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거나 혹은 잘못 설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13년 내내 고국으로 돌아갈 것만을 다짐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처음 ‘오랑캐 땅’ 건주에서는 귀국만을 꿈꾸었고 그래서 두 번의 탈출을 감행하여 월형까지 당했지만, 이후 아라나의 주선으로 결혼해 정착하고 나서는 포기하고 그곳에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가 건주를 떠난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깝다. 달 밝은 밤에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회식 자리가 모처럼 보름이었고, 자연스레 사람들과 고향 얘기를 하면서 울컥한 것이다. 전쟁에 나가서 죽을 바에야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정착한 등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떠나온 전유년의 누이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면서, 더구나 이들은 오랑캐도 아니고 중국인이다, 마음을 이곳에 붙였을 것이다. 장사도 잘 되어 집의 재산도 불어나고 모든 것이 안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그 마을에 조선 사신의 배가 정박하게 되고, 거기서 고향사람을 만나 가족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는 전사하셨고,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흩어져 살고 있다는 말에 자기 혼자 여기서 잘 살고 있는 것이 괜찮은가라는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고향 사람의 도움을 받아 떠난다. 요컨대, 김영철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일관된 목표가 아니라, 정착 과정에서 우연한 요소들이 그의 마음에 잠자고 있던 조부모와 부모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이어지면서 충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키워드
가족, 건주, 귀환, 김영철, 등주, 아라나, 이산, 전유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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