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지식을 열심히 쌓는다. 여러 지식에 대한 수요 때문에 지식을 파는 사업이 번창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건을 쌓듯이 지식 창고에 잡다한 지식을 쌓는 우리의 세태를 한 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의 근대 지식인들은 인간의 지식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멋진 미래를 상상했다. 하지만 루소와 같이 당대 지식들의 낙관론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있었다. 중국의 노자도 지식이 늘어가는 것에 대해서 걱정했다. 지식의 발전과 확대는 분명 인간에게 유용하다. 하지만 많은 지식이 반드시 우리를 이롭게 하는지 동시에 생각해 보자.
노자(老子)는 주(周)나라의 왕실 도서관 관리였다. 그는 인(仁)과 예(禮)*와 같은 인위적인 덕목을 비판하면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다. 무위자연의 삶의 태도는 도(道)를 따르는 것으로, 도는 우주를 생성,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원리를 말한다. 아래 인용된 두 개의 장은 81개의 장으로 구성된 노자의 <도덕경>의 두 장이다. 여기서는 노자는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지식을 비우는 것, 행동하는 것보다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자(孔子)에 따르면 인(仁)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부모 형제를 사랑하는 것, 사적인 욕심을 이기고 예(禮)를 회복하는 것 등으로 정의된다. 예(禮)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외적인 형식으로 표현된 것을 말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인위적인 것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는 말로 도가(道家) 사상의 핵심 개념이다. 도가에서는 인간의 인위적 활동보다는 자연적 본성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한다. 이 말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말하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고전본문
앎의 길은 하루하루 더해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덜어 가는 것
덜고 또 덜어서
하지 않음(無爲)에 이르십시오
하지 않는 경지 이르면
모든 것은 저절로 되어 있습니다.
천하는 하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무언가 하려고 하면
천하를 다스리기에 부족합니다.
-『노자』48장-
옛날에 도(道)를 잘 행하는 사람은
백성들을 똑똑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어리석게 만들었습니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지식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그 나라에 해가 됩니다.
지식으로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의 복입니다.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은 곧 하늘의 법도를 아는 것입니다.
늘 하늘의 법도를 아는 것, 이것을 가리켜 신비스러운 덕이라고 합니다.
신비스러운 덕은 깊고 멀어서
사물의 질서에 반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큰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노자』65장-
토론하기
1. 노자가 말하는 지식은 어떤 성격의 지식입니까?
2. 노자는 지식을 비우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비워야 할 지식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3. 우리 사회는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고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매일 미디어를 통해 봅니다. 전문 지식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노자의 생각을 통해서 비판해 봅니다.
해설읽기
인간은 누구나 앎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사물의 이름들을 잘 물어본다. 이런 앎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이 자신의 속한 환경에 잘 적응해 가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성장하면서 점점 욕심에 지배를 쉽게 받게 된다. 이때부터 지식은 인간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말대로 ‘아는 것이 힘’이 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점점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시험을 통해 점수로 평가되다. 지식의 수준이 학교에서 학생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되어서도 지식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고급 지식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위의 글을 쓴 노자(老子)는 아주 오래전 지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 사람이다. 노자, 즉 늙은 사람답게 그는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는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한 사람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원래 본성에 따른다는 말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방해물이 있으면 피해간다. 바로 물과 같은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르는 삶이 이상적인 삶이다. 그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한다.
노자는 지식이 자연스러운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산다면 불필요한 지식도 많다. 자동차가 없었다면 교통 규칙이 필요 없을 것이다. 범죄자들이 없으면 두꺼운 법전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 교육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지식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아도 인간은 이미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지식을 더하는 것이 인간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배운 지식을 덜어내고 타고난 마음을 잘 가꾸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작은 규모로 모여 살면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영웅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전한다. 그는 사람들을 모으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시키려 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을 잃고 인위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노자는 ‘천하는 하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자(孔子)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공자가 노자에게서 배웠다는 이야기도 있다-공자에 따르면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마치 북극성에 비유할 수 있다. 북극성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많은 별들이 그것 주위로 모여든다.”(<논어>) 정치가가 사람들을 지식으로 다스리려 하면 무언가를 하려고 든다. 정치가가 무언가를 하려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하기 싫어진다. 왜냐하면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명한 정치인은 백성들을 지식으로 가르쳐 똑똑하게 만들기보다 어리석게 만든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말은 결코 바보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세상을 영악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꾸밈없이 사는 것을 말한다. 영악하게 욕심을 좇은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노자는 지식으로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에 유익이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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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는 주(周)나라의 왕실 도서관 관리였다. 그는 인(仁)과 예(禮)*와 같은 인위적인 덕목을 비판하면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다. 무위자연의 삶의 태도는 도(道)를 따르는 것으로, 도는 우주를 생성,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원리를 말한다. 아래 인용된 두 개의 장은 81개의 장으로 구성된 노자의 <도덕경>의 두 장이다. 여기서는 노자는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지식을 비우는 것, 행동하는 것보다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자(孔子)에 따르면 인(仁)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부모 형제를 사랑하는 것, 사적인 욕심을 이기고 예(禮)를 회복하는 것 등으로 정의된다. 예(禮)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외적인 형식으로 표현된 것을 말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인위적인 것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는 말로 도가(道家) 사상의 핵심 개념이다. 도가에서는 인간의 인위적 활동보다는 자연적 본성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한다. 이 말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말하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고전본문
앎의 길은 하루하루 더해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덜어 가는 것
덜고 또 덜어서
하지 않음(無爲)에 이르십시오
하지 않는 경지 이르면
모든 것은 저절로 되어 있습니다.
천하는 하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무언가 하려고 하면
천하를 다스리기에 부족합니다.
-『노자』48장-
옛날에 도(道)를 잘 행하는 사람은
백성들을 똑똑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어리석게 만들었습니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지식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그 나라에 해가 됩니다.
지식으로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의 복입니다.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은 곧 하늘의 법도를 아는 것입니다.
늘 하늘의 법도를 아는 것, 이것을 가리켜 신비스러운 덕이라고 합니다.
신비스러운 덕은 깊고 멀어서
사물의 질서에 반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큰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노자』65장-
토론하기
1. 노자가 말하는 지식은 어떤 성격의 지식입니까?
2. 노자는 지식을 비우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비워야 할 지식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3. 우리 사회는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고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매일 미디어를 통해 봅니다. 전문 지식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노자의 생각을 통해서 비판해 봅니다.
해설읽기
인간은 누구나 앎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사물의 이름들을 잘 물어본다. 이런 앎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이 자신의 속한 환경에 잘 적응해 가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성장하면서 점점 욕심에 지배를 쉽게 받게 된다. 이때부터 지식은 인간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말대로 ‘아는 것이 힘’이 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점점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시험을 통해 점수로 평가되다. 지식의 수준이 학교에서 학생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대학생이나 사회인이 되어서도 지식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고급 지식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위의 글을 쓴 노자(老子)는 아주 오래전 지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 사람이다. 노자, 즉 늙은 사람답게 그는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는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한 사람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원래 본성에 따른다는 말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방해물이 있으면 피해간다. 바로 물과 같은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르는 삶이 이상적인 삶이다. 그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한다.
노자는 지식이 자연스러운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산다면 불필요한 지식도 많다. 자동차가 없었다면 교통 규칙이 필요 없을 것이다. 범죄자들이 없으면 두꺼운 법전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 교육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지식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아도 인간은 이미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것과 같이 지식을 더하는 것이 인간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배운 지식을 덜어내고 타고난 마음을 잘 가꾸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작은 규모로 모여 살면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영웅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전한다. 그는 사람들을 모으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시키려 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을 잃고 인위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노자는 ‘천하는 하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자(孔子)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공자가 노자에게서 배웠다는 이야기도 있다-공자에 따르면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마치 북극성에 비유할 수 있다. 북극성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많은 별들이 그것 주위로 모여든다.”(<논어>) 정치가가 사람들을 지식으로 다스리려 하면 무언가를 하려고 든다. 정치가가 무언가를 하려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하기 싫어진다. 왜냐하면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명한 정치인은 백성들을 지식으로 가르쳐 똑똑하게 만들기보다 어리석게 만든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말은 결코 바보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세상을 영악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꾸밈없이 사는 것을 말한다. 영악하게 욕심을 좇은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노자는 지식으로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에 유익이 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