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계모 여희의 계략으로 중이의 형 신생은 죽음에 이르고 중이는 19년의 망명생활을 거쳐 자신의 고국 진[晉]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된다. 그러나 자신을 핍박했던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이 중이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런 때 과거 자기를 적대시하고 죽이려고도 했던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들을 엄하게 벌주어야 할까? 아니면 벌주지 말고 그냥 용서해도 되는 걸까?
고전본문
여생呂甥과 극예郤芮가 중이의 偪迫을 두려워하여 궁궐에 불을 질러 진 문공文公으로 등극한 중이를 죽이려 하였다. 환관 피披가 중이를 뵙기를 청하자 중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꾸짖고 접견을 거부하며 말하였다.
“네가 포성蒲城에서 나를 죽이려 할 때 헌공獻公께서는 이틀의 말미를 주셨는데 너는 그 날로 달려왔다. 그 뒤에도 내가 적狄나라 군주와 위수渭水 가에서 사냥할 때 너는 또 혜공惠公을 위해 나를 죽이려 왔다. 혜공은 그때 너에게 나흘의 시간을 주었는데 너는 사흘 만에 달려왔다. 아무리 군명君命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그렇게 빨리 왔느냐? 그때 너의 칼에 소매가 잘려나간 옷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네가 여기 있을 수 없지 않겠느냐?”
“신은 군께서 돌아오셨을 때는 당연히 군주의 도리를 아실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군주의 도리를 모르시니 다시 환란에 이를 것입니다. 군주의 명을 봉행할 때에는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니, 이것은 고래의 법도입니다.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제거할 때에는 오직 힘을 다 할 뿐이니 일개 포인蒲人과 적인狄人을 죽이는 것이 어찌 나의 안중에 있었겠습니까? 이제 군주께서 즉위하셨는데 어찌 또 다른 포인과 적인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관중이 화살로 자신의 허리띠 고리를 쐈던 일을 잊고서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환공과 달리 저와 있었던 일을 잊지 않으신 것이라면 저는 떠나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전에 진즉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떠나는 자가 매우 많을 것이니 어찌 저 한 사람만이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진문공 중이가 환관 피를 만나자 그는 여생과 극예의 음모를 알렸다. 3월에 진문공 중이가 은밀히 진[秦] 목공과 왕성王城(섬서성 대려현 동쪽)에서 회합하였다. 기축일 그믐에 궁궐에 불이 났다. 여생과 극예가 중이를 잡지 못한 채 황하 가에 이르렀는데, 진[秦] 목공이 그들을 유인해 죽였다.
<춘추좌전> 희공 24년
토론하기
1. 환관 피가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는가, 반대하는가? 그의 말에 모순이 있다면 무엇일까?
2. 중이가 환관 피를 용서하지 않고 보복했다면, 이후 중이가 진나라를 통치하는데 나쁘게 작용했을까? 더 좋게 작용했을까?
해설읽기
중이가 오랜 망명 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군주의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안정이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이가 19년간 외국에 있는 동안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진나라는 혜공이 10여 년을 통치해 왔다. 애초 중이를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도 중이의 망명 기간이 길어지면서, 중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고 혜공을 군주로 받아들이며 그 체제 안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드러내놓고 중이와 연락을 하거나 중이 일행을 돕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높은 관직을 차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혜공 이오의 아들로서 혜공 사후에 진나라 군주가 된 회공은 등극하자마자 밖에 있는 세력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금했다. 또한 중이와 함께 나가 있는 자들을 진나라로 돌아오게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엄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중이의 가장 가깝고도 중요한 참모인 호언의 아버지 호돌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금기시되던 중이 일행이 돌아왔을 때, 확실히 중이는 복잡한 심정이었겠지만 진나라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맘 편하게 환영할 수만은 없었다. 일단 중이에게 적대적이었던 진헌공과 여희의 수하에 있던 사람들과, 혜공과 회공의 측근 세력들은 중이가 입국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를 염려했을 것이다. 중이와 적대적인 관계였고 적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이의 귀국을 위해 애쓰지 않았던 사람들은 중이를 보고 뭔가 미안한 마음에 부채의식을 가질 것이다. 중이 또한 예전에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여전히 남아 있었을 것이고, 그들에게 어떻게 복수할까를 고민했을지 모른다. 또 자신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았어도 작은 도움도 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서운한 마음이 먼저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이때 환관 피가 먼저 찾아온다. 피는 아버지 헌공의 명을 받고 중이를 죽이려던 사람이었다. 다행히 그의 칼날이 옷소매만 스쳐서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는 자기를 죽이려던 사람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직접적으로 표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증오는 환관 피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피에 의해 소매가 베인 옷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런 피가 직접 찾아왔다고 했을 때는 괘씸함에 치를 떨고 곧장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종을 통해 전해들은 피의 말은 자신의 지난 행동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군주로서 중이의 태도에 대한 훈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환관으로서 자신은 군주의 명에 죽고 사는 사람이며, 그때 헌공이 죽이라고 명했으면 최선을 다해 그 명을 수행할 뿐이지 좌고우면하며 그 명에 토를 달거나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환관으로서 모시는 군주에게는 절대적 충성만을 바치는 것이 자기의 임무라는 것이다. 나이 어린 공자 중이라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군주가 된 중이가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난날의 원한 감정을 아직도 갖고 있느냐며 비난하고 있다. 더구나 제나라 환공이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 거의 죽일 뻔했던 관중을 용서하고 재상으로 등용하여 제나라를 패국으로 일으켰다는 사실의 지적은 중이로써는 뼈아픈 일침이었을 것이다.
늘 제나라 환공을 동경하면서도 제환공과 같은 포용력과 대범함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중이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것이다. 중이는 지난 날 자신을 고통에 빠뜨렸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했을 것이다. 더 큰 현실적인 문제는 피의 말대로, 자신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증오의 감정을 계속 유지한다면 진나라에 남아 있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19년의 방랑길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국에 돌아가면 좋은 군주가 되어 진나라를 강성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희망이었을 터인데, 정작 돌아와서는 사람들이 과거의 일 때문에 화합하지 못하고 적대와 반목을 되풀이한다면 자신이 고생 끝에 돌아와 군주가 된 보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중이는 결단을 해야 했다. 자기와 적대하고 심지어 죽이려 했던 사람들도 진나라를 위해 크게 쓰일 수 있다면 적극 등용하고 함께 하겠다고. 마침내 중이는 피를 만났고, 이 자리에서 피는 중이를 두려워 하는 세력들이 반란을 도모해 모월 모시에 궁궐에 불을 지를 것이라는 1급 기밀을 알려준다. 이로부터 중이는 위험을 모면하고 진나라를 안정과 부강을 도모하는 일로 성큼 나아갈 수 있었다.
키워드
용서, 원한, 중이, 환관, 피
전후맥락
계모 여희의 계략으로 중이의 형 신생은 죽음에 이르고 중이는 19년의 망명생활을 거쳐 자신의 고국 진[晉]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된다. 그러나 자신을 핍박했던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이 중이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런 때 과거 자기를 적대시하고 죽이려고도 했던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들을 엄하게 벌주어야 할까? 아니면 벌주지 말고 그냥 용서해도 되는 걸까?
고전본문
여생呂甥과 극예郤芮가 중이의 偪迫을 두려워하여 궁궐에 불을 질러 진 문공文公으로 등극한 중이를 죽이려 하였다. 환관 피披가 중이를 뵙기를 청하자 중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꾸짖고 접견을 거부하며 말하였다.
“네가 포성蒲城에서 나를 죽이려 할 때 헌공獻公께서는 이틀의 말미를 주셨는데 너는 그 날로 달려왔다. 그 뒤에도 내가 적狄나라 군주와 위수渭水 가에서 사냥할 때 너는 또 혜공惠公을 위해 나를 죽이려 왔다. 혜공은 그때 너에게 나흘의 시간을 주었는데 너는 사흘 만에 달려왔다. 아무리 군명君命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그렇게 빨리 왔느냐? 그때 너의 칼에 소매가 잘려나간 옷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네가 여기 있을 수 없지 않겠느냐?”
“신은 군께서 돌아오셨을 때는 당연히 군주의 도리를 아실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군주의 도리를 모르시니 다시 환란에 이를 것입니다. 군주의 명을 봉행할 때에는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니, 이것은 고래의 법도입니다.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제거할 때에는 오직 힘을 다 할 뿐이니 일개 포인蒲人과 적인狄人을 죽이는 것이 어찌 나의 안중에 있었겠습니까? 이제 군주께서 즉위하셨는데 어찌 또 다른 포인과 적인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관중이 화살로 자신의 허리띠 고리를 쐈던 일을 잊고서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환공과 달리 저와 있었던 일을 잊지 않으신 것이라면 저는 떠나라는 명이 내려지기도 전에 진즉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떠나는 자가 매우 많을 것이니 어찌 저 한 사람만이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진문공 중이가 환관 피를 만나자 그는 여생과 극예의 음모를 알렸다. 3월에 진문공 중이가 은밀히 진[秦] 목공과 왕성王城(섬서성 대려현 동쪽)에서 회합하였다. 기축일 그믐에 궁궐에 불이 났다. 여생과 극예가 중이를 잡지 못한 채 황하 가에 이르렀는데, 진[秦] 목공이 그들을 유인해 죽였다.
<춘추좌전> 희공 24년
토론하기
1. 환관 피가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는가, 반대하는가? 그의 말에 모순이 있다면 무엇일까?
2. 중이가 환관 피를 용서하지 않고 보복했다면, 이후 중이가 진나라를 통치하는데 나쁘게 작용했을까? 더 좋게 작용했을까?
해설읽기
중이가 오랜 망명 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군주의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안정이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이가 19년간 외국에 있는 동안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진나라는 혜공이 10여 년을 통치해 왔다. 애초 중이를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도 중이의 망명 기간이 길어지면서, 중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고 혜공을 군주로 받아들이며 그 체제 안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드러내놓고 중이와 연락을 하거나 중이 일행을 돕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높은 관직을 차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혜공 이오의 아들로서 혜공 사후에 진나라 군주가 된 회공은 등극하자마자 밖에 있는 세력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금했다. 또한 중이와 함께 나가 있는 자들을 진나라로 돌아오게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엄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중이의 가장 가깝고도 중요한 참모인 호언의 아버지 호돌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 금기시되던 중이 일행이 돌아왔을 때, 확실히 중이는 복잡한 심정이었겠지만 진나라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맘 편하게 환영할 수만은 없었다. 일단 중이에게 적대적이었던 진헌공과 여희의 수하에 있던 사람들과, 혜공과 회공의 측근 세력들은 중이가 입국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를 염려했을 것이다. 중이와 적대적인 관계였고 적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이의 귀국을 위해 애쓰지 않았던 사람들은 중이를 보고 뭔가 미안한 마음에 부채의식을 가질 것이다. 중이 또한 예전에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여전히 남아 있었을 것이고, 그들에게 어떻게 복수할까를 고민했을지 모른다. 또 자신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았어도 작은 도움도 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서운한 마음이 먼저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이때 환관 피가 먼저 찾아온다. 피는 아버지 헌공의 명을 받고 중이를 죽이려던 사람이었다. 다행히 그의 칼날이 옷소매만 스쳐서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는 자기를 죽이려던 사람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직접적으로 표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증오는 환관 피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피에 의해 소매가 베인 옷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런 피가 직접 찾아왔다고 했을 때는 괘씸함에 치를 떨고 곧장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종을 통해 전해들은 피의 말은 자신의 지난 행동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군주로서 중이의 태도에 대한 훈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환관으로서 자신은 군주의 명에 죽고 사는 사람이며, 그때 헌공이 죽이라고 명했으면 최선을 다해 그 명을 수행할 뿐이지 좌고우면하며 그 명에 토를 달거나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환관으로서 모시는 군주에게는 절대적 충성만을 바치는 것이 자기의 임무라는 것이다. 나이 어린 공자 중이라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군주가 된 중이가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난날의 원한 감정을 아직도 갖고 있느냐며 비난하고 있다. 더구나 제나라 환공이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 거의 죽일 뻔했던 관중을 용서하고 재상으로 등용하여 제나라를 패국으로 일으켰다는 사실의 지적은 중이로써는 뼈아픈 일침이었을 것이다.
늘 제나라 환공을 동경하면서도 제환공과 같은 포용력과 대범함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중이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것이다. 중이는 지난 날 자신을 고통에 빠뜨렸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했을 것이다. 더 큰 현실적인 문제는 피의 말대로, 자신이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증오의 감정을 계속 유지한다면 진나라에 남아 있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19년의 방랑길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국에 돌아가면 좋은 군주가 되어 진나라를 강성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희망이었을 터인데, 정작 돌아와서는 사람들이 과거의 일 때문에 화합하지 못하고 적대와 반목을 되풀이한다면 자신이 고생 끝에 돌아와 군주가 된 보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중이는 결단을 해야 했다. 자기와 적대하고 심지어 죽이려 했던 사람들도 진나라를 위해 크게 쓰일 수 있다면 적극 등용하고 함께 하겠다고. 마침내 중이는 피를 만났고, 이 자리에서 피는 중이를 두려워 하는 세력들이 반란을 도모해 모월 모시에 궁궐에 불을 지를 것이라는 1급 기밀을 알려준다. 이로부터 중이는 위험을 모면하고 진나라를 안정과 부강을 도모하는 일로 성큼 나아갈 수 있었다.
키워드
용서, 원한, 중이, 환관,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