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계모 여희의 계략으로 중이의 형 신생은 죽음에 이르고 중이는 19년의 망명생활을 거쳐 자신의 고국 진[晉]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된다. 자신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공정하게 표창하고 상을 주는 일은 고마움의 표시와 함께 향후 진나라의 기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앞 다투어 자기의 공로를 과시했는데, 이때 그런 풍토를 비판하며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지 않고 산으로 숨어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고전본문
진 문공文公 중이가 망명 시절 호종한 사람들에게 포상을 했다. 이 때 개자추*介之推는 포상을 청하지 않아 아무런 포상도 그에게 내려지지 않았다. 개자추가 말하였다.
“헌공의 아홉 아들 중에 오직 주군만이 살아 계신다. 혜공과 회공은 친한 이가 없어서 안팎에서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하늘은 진나라를 멸하지 않고 반드시 나라에 주인이 있게 했다. 진나라의 제사를 주재할 사람이 지금의 주군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지금의 주군을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공으로 여기니 이는 세상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탐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으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신하는 그 죄를 의롭게 여기고 군주는 그런 간사한 자들에게 포상하여 상하가 서로를 속이니, 나는 저들과 함께 하기 어렵다.”
개자추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너는 어째서 포상을 청하지 않느냐? 이대로 죽을 것이라면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허물로 여기면서 그것을 본받는다면 죄가 더욱 큽니다. 또 이미 군주를 원망하는 말을 했으니 다시 그가 주는 녹을 먹을 수 없습니다.”
“군주에게 너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은 몸을 꾸미는 장식과 같은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꾸민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너는 정말로 그렇게 하겠느냐? 그렇다면 나도 너와 함께 은거하겠다.”
마침내 개자추 모자는 숨어 지내다가 죽었다. 진문공 중이는 개자추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면상緜上(산서성 개휴현 남쪽) 땅을 그의 봉토로 삼게 하고 말하였다.
“이로써 나의 잘못을 기억하고, 또 선인善人을 기리고자 한다.”
*개자추는 <좌전>에서 개지추介之推로 나오지만, 통상적으로 익숙한 이름인 개자추로 표기하였다.
<춘추좌전> 희공 24년
토론하기
1. 개자추는 사람들의 어떤 모습이 싫어서 세상을 등지고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일까?
2. 내가 개자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3.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조직을 위해 뭔가를 기여했는데, 그에 대한 칭찬이나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말해보고,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일지 얘기해 보자.
해설읽기
오랜 망명길을 마치고 돌아와 새롭게 나라를 다스리려고 할 때 군주는 누구에게 상을 주고 누구에게 벌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고민은 군주의 몫만은 아니다. 군주를 보좌하거나 적대했던 신하들도 자신의 공적을 얼마큼 내세울 것인지, 혹은 잘못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에 부딪힌다. 객관적인 평가가 수반되겠지만, 외부의 평가가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여 자신만이 아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적극적으로 나의 공로나 허물을 내세워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물러서 있을 것인가?
특히 공로가 있는 경우, 나는 어떤 포상이나 이익을 바라고 그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한 일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뒤에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할 때에도 동기부여가 된다. 때문에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과 견주어서 명확히 평가받고 그에 맞는 상을 받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일은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일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면 그 자체가 보상이 되므로 다른 보상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은 공정한 평가와 그에 따른 포상을 선호할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개자추는 보통 사람들과 조금 생각이 다르다. 중이가 끝내 진문공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호언이나 조최와 같은 몇몇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 지금의 시대에는 익숙한 표현이 아니지만, 그의 성품과 자질, 그리고 주변의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이가 진나라 군주가 되는 필연적인 일이라는 말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중이의 곁을 지키며 중이와 함께 한 것은 하늘의 명을 따른 것이고 순리를 따른 것이지, 자신들의 행동과 조언이 중이에게 예정된 길을 바꿔놓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이와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고 공을 다투고 포상자의 맨 앞에 서기를 바라는 것은 하늘의 공을 훔쳐 자기의 공으로 삼는 도둑질과 같다고 냉정한 비판을 제기한다. [좌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개자추는 중이가 방랑생활 중 배를 곯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먹였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중이에게 충심을 다했던 사람이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1순위 포상자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그 모든 포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앞 다투어 자기 공을 내세우는 사람들 그것을 포상해주는 중이를 비난했다. 중이가 진문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늘과 많은 사람들이 도운 것은 진나라를 위해 좀 더 큰일을 제대로 하라고 한 것이었을 텐데, 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눠가지며 결속을 다지는 행태가 고깝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여기고 숨어살기로 결심한다.
오랜 망명 생활 과정에서의 고난을 참고 견딘 것은 진나라에 돌아가서 중이의 통치 하에 진나라의 국정을 맡아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서 보니 사람들은 자기 공로를 내세워 잇속 챙기기에 바쁜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바랐던 진나라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고. 그러나 진나라 조정을 떠나기 전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자신이 오래 떠나 있는 동안 불효했으나 이제 돌아와서는 높은 관직에 오르고 효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개자추는 어머니와 일을 상의한다. 어머니는 일단 개자추에게 포상을 청하라고 하지만, 개자추는 자신이 옳지 못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똑같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다시 진문공 중이와 상의해 보라고도 제안하지만, 중이의 결심은 단호하다.
결국 개자추는 산속으로 들어가고 그의 어머니도 개자추와 뜻을 같이 하였다. 뒤늦게 개자추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중이는 그를 찾았지만 개자추는 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좌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기록에는 중이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산에 불을 놓았다. 불을 피해 내려 올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내려오지 않고, 산에서 타 죽었다.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위로하기 위해 이 날만은 불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지 못하게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한식寒食’이다.
진문공 중이가 개자추가 죽은 이후 그에게 봉토를 내리고 그를 기렸지만 훌륭한 신하 한명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이는 개자추의 일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19년의 망명생활 끝에 돌아와 군주가 되었으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꽃길만을 걸을거라는 기대를 했을지 모른다. 개자추의 죽음은 긴 망명생활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단지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과 재물과 관직을 나누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지금의 호사스런 환경에 눈이 멀어 원래 하려던 일들을 다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자신이 앞으로 진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죽음으로써 자기를 깨우쳐 주는 사람을 신하로 두었으니 진문공 중이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 인복이 많은 사람, 패자가 될 만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개자추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하늘이 중이를 진나라 군주로 세운 것이라는 개자추의 말을 증명해준다.
키워드
개자추, 방랑길, 상법, 중이, 중이의 오뒷세이아, 포상, 한식
전후맥락
계모 여희의 계략으로 중이의 형 신생은 죽음에 이르고 중이는 19년의 망명생활을 거쳐 자신의 고국 진[晉]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된다. 자신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던 사람들을 공정하게 표창하고 상을 주는 일은 고마움의 표시와 함께 향후 진나라의 기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앞 다투어 자기의 공로를 과시했는데, 이때 그런 풍토를 비판하며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지 않고 산으로 숨어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고전본문
진 문공文公 중이가 망명 시절 호종한 사람들에게 포상을 했다. 이 때 개자추*介之推는 포상을 청하지 않아 아무런 포상도 그에게 내려지지 않았다. 개자추가 말하였다.
“헌공의 아홉 아들 중에 오직 주군만이 살아 계신다. 혜공과 회공은 친한 이가 없어서 안팎에서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하늘은 진나라를 멸하지 않고 반드시 나라에 주인이 있게 했다. 진나라의 제사를 주재할 사람이 지금의 주군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지금의 주군을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공으로 여기니 이는 세상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탐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으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신하는 그 죄를 의롭게 여기고 군주는 그런 간사한 자들에게 포상하여 상하가 서로를 속이니, 나는 저들과 함께 하기 어렵다.”
개자추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너는 어째서 포상을 청하지 않느냐? 이대로 죽을 것이라면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허물로 여기면서 그것을 본받는다면 죄가 더욱 큽니다. 또 이미 군주를 원망하는 말을 했으니 다시 그가 주는 녹을 먹을 수 없습니다.”
“군주에게 너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은 몸을 꾸미는 장식과 같은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꾸민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너는 정말로 그렇게 하겠느냐? 그렇다면 나도 너와 함께 은거하겠다.”
마침내 개자추 모자는 숨어 지내다가 죽었다. 진문공 중이는 개자추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면상緜上(산서성 개휴현 남쪽) 땅을 그의 봉토로 삼게 하고 말하였다.
“이로써 나의 잘못을 기억하고, 또 선인善人을 기리고자 한다.”
*개자추는 <좌전>에서 개지추介之推로 나오지만, 통상적으로 익숙한 이름인 개자추로 표기하였다.
<춘추좌전> 희공 24년
토론하기
1. 개자추는 사람들의 어떤 모습이 싫어서 세상을 등지고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일까?
2. 내가 개자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3.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조직을 위해 뭔가를 기여했는데, 그에 대한 칭찬이나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말해보고,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일지 얘기해 보자.
해설읽기
오랜 망명길을 마치고 돌아와 새롭게 나라를 다스리려고 할 때 군주는 누구에게 상을 주고 누구에게 벌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고민은 군주의 몫만은 아니다. 군주를 보좌하거나 적대했던 신하들도 자신의 공적을 얼마큼 내세울 것인지, 혹은 잘못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에 부딪힌다. 객관적인 평가가 수반되겠지만, 외부의 평가가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여 자신만이 아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적극적으로 나의 공로나 허물을 내세워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물러서 있을 것인가?
특히 공로가 있는 경우, 나는 어떤 포상이나 이익을 바라고 그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한 일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뒤에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할 때에도 동기부여가 된다. 때문에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과 견주어서 명확히 평가받고 그에 맞는 상을 받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일은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일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면 그 자체가 보상이 되므로 다른 보상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은 공정한 평가와 그에 따른 포상을 선호할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개자추는 보통 사람들과 조금 생각이 다르다. 중이가 끝내 진문공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호언이나 조최와 같은 몇몇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 지금의 시대에는 익숙한 표현이 아니지만, 그의 성품과 자질, 그리고 주변의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이가 진나라 군주가 되는 필연적인 일이라는 말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중이의 곁을 지키며 중이와 함께 한 것은 하늘의 명을 따른 것이고 순리를 따른 것이지, 자신들의 행동과 조언이 중이에게 예정된 길을 바꿔놓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이와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고 공을 다투고 포상자의 맨 앞에 서기를 바라는 것은 하늘의 공을 훔쳐 자기의 공으로 삼는 도둑질과 같다고 냉정한 비판을 제기한다. [좌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개자추는 중이가 방랑생활 중 배를 곯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먹였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중이에게 충심을 다했던 사람이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1순위 포상자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그 모든 포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앞 다투어 자기 공을 내세우는 사람들 그것을 포상해주는 중이를 비난했다. 중이가 진문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늘과 많은 사람들이 도운 것은 진나라를 위해 좀 더 큰일을 제대로 하라고 한 것이었을 텐데, 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눠가지며 결속을 다지는 행태가 고깝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여기고 숨어살기로 결심한다.
오랜 망명 생활 과정에서의 고난을 참고 견딘 것은 진나라에 돌아가서 중이의 통치 하에 진나라의 국정을 맡아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서 보니 사람들은 자기 공로를 내세워 잇속 챙기기에 바쁜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바랐던 진나라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고. 그러나 진나라 조정을 떠나기 전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자신이 오래 떠나 있는 동안 불효했으나 이제 돌아와서는 높은 관직에 오르고 효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개자추는 어머니와 일을 상의한다. 어머니는 일단 개자추에게 포상을 청하라고 하지만, 개자추는 자신이 옳지 못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똑같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다시 진문공 중이와 상의해 보라고도 제안하지만, 중이의 결심은 단호하다.
결국 개자추는 산속으로 들어가고 그의 어머니도 개자추와 뜻을 같이 하였다. 뒤늦게 개자추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중이는 그를 찾았지만 개자추는 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좌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기록에는 중이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산에 불을 놓았다. 불을 피해 내려 올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내려오지 않고, 산에서 타 죽었다.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위로하기 위해 이 날만은 불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지 못하게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한식寒食’이다.
진문공 중이가 개자추가 죽은 이후 그에게 봉토를 내리고 그를 기렸지만 훌륭한 신하 한명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이는 개자추의 일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19년의 망명생활 끝에 돌아와 군주가 되었으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꽃길만을 걸을거라는 기대를 했을지 모른다. 개자추의 죽음은 긴 망명생활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단지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과 재물과 관직을 나누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지금의 호사스런 환경에 눈이 멀어 원래 하려던 일들을 다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자신이 앞으로 진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죽음으로써 자기를 깨우쳐 주는 사람을 신하로 두었으니 진문공 중이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 인복이 많은 사람, 패자가 될 만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개자추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하늘이 중이를 진나라 군주로 세운 것이라는 개자추의 말을 증명해준다.
키워드
개자추, 방랑길, 상법, 중이, 중이의 오뒷세이아, 포상, 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