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한나라 무제(武帝, 기원전 141~기원전 87)는 흉노 정벌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며 수십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이릉의 집안은 할아버지 이광 때부터 흉노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운 무장 집안이다. 기원전 99년의 흉노 정벌에서 이릉은 수송 부대에 속했지만, 5천 보병을 이끌고 선우를 공격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제안하고 무제에게 허락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수행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선우의 군대와 마주해 포위된다. 패배를 예감하고 자결을 시도했으나 살아남아서 복수의 기회를 엿보자는 막료들의 제안으로 죽지 않고 포로가 된다.
고전본문
[흉노에 포로로 잡힌] 이릉(李陵, ?~기원전 74)이 흉노에 한 해 남짓 머물렀을 때였다. 황제가 인우장군 공손오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 땅 깊이 들어가 이릉을 맞이해 오게 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회군한 뒤에 공손오가 아뢰었다.
“사로잡은 포로가 말하기를 이릉이 선우에게 용병술을 가르쳐 한나라 군에 대비시켰다고 합니다. 신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가 이릉의 일가를 멸족시키기로 하고 어머니와 동생, 처자식을 모조리 주살했다. 이릉의 고향인 농서의 사대부들은 이릉이 절개를 지키지 않아 이씨 집안의 이름을 더럽힌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시간이 지나 한나라 조정에서 흉노에 사자를 보냈을 때 이릉이 사자에게 말했다.
“내가 한나라를 위해 보병 오천 명을 이끌고 흉노 땅을 가로질렀으나 구원병이 없어서 패배했소. 그런데 어찌하여 한나라를 배반했다 하며 우리 집안을 주살한 것이오?”
사자가 대답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그대가 흉노에게 용병술을 가르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이서가 한 일이지 내가 한 일이 아니오.”
이서는 본래 한나라 새외도위로서 해후성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흉노가 공격하자 항복했다. 선우가 이서를 예로서 대접한다며 늘 이릉의 윗자리에 앉혔다. 자신의 집안이 이서 때문에 주살당한 것을 가슴 아파하던 이릉이 사람을 시켜 이서를 찔러 죽였다. 선우의 어머니인 대연지가 이릉을 죽이려고 하자 선우가 이릉을 북쪽 지방에 숨겼다가 대연지가 죽은 뒤에 돌아오게 했다.
선우가 이릉을 장하게 여겨 자신의 딸을 주고 우교왕으로 세웠다. (중략) 이릉은 선우의 거처 밖에 살다가 큰일이 있으면 들어가 함께 의논하곤 했다.
<한서-이광·소건전> 中에서
토론하기
1. 이릉이 처한 절망적 상황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제시해보자.
2. 이릉이 처음에 포로가 되었을 때는 흉노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한나라에 있는 자신의 일가가 멸족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태도를 바꾼다. 다른 기록을 보면 나중에는 흉노 군대를 지휘하면서 한나라 군대와 맞서 싸우기까지 한다. 이릉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
3. 전쟁과 같은 극한적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를 달리해 서로를 적대하던 집단의 사람들이 상대편 집단으로 전향하는 경우 그 사람은 ‘배신자’일 수밖에 없을까?
해설읽기
외국인들이 중국 하면 떠올리는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방벽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15년 대규모 흉노 정벌을 거행해 흉노를 북쪽으로 쫓아내고 감숙성에서 시작해 황하를 따라 낙랑 조선에 이르기까지 4천 킬로미터의 장벽을 세웠다. 그렇지만 한나라에 들어와서도 흉노의 위협은 계속되었다. 한나라가 커지는 만큼 흉노도 세력을 확장했다. 이 때 중국 역사에서 두고두고 치욕적 사건으로 언급되는 ‘팽성의 치욕’이 발생한다. 한고조 유방이 흉노의 탁월한 묵돌 선우*의 전술에 휘말려 본진에서 떨어져 흉노 병사에게 포위되는 일이 있었다. 고조 일행이 흉노 정벌 전쟁 중에 고립되어 일주일을 보내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한 것이다. 선우 부인을 이용해 포위를 뚫고 나오기는 했으나, 이후 고조는 흉노와 화친조약을 맺고서 황실 여인과 공물을 흉노에 바쳐야 했다. 중국 통일제국 한나라의 치욕적 사건이었다.
한무제는 기원전 141년부터 54년간 재위하면서 한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황제이다. 무제가 12세의 나이에 즉위했을 때는 팽성의 치욕으로부터 약 6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무제는 한나라의 치욕을 갚고 흉노와 한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흉노 정벌을 준비했다. 즉위하고 10년도 되지 않아 30만 대군을 투입하는 등 쉼 없이 흉노에 대적하고 정벌을 감행했다. 위청과 곽거병이 이끄는 군대로 바이칼호 근처까지 진군하기도 했다. 40여 년간 노력했지만 흉노 정벌은 요원한 일이었다. 서역을 다녀온 장건이 준 정보에 따라 기마전투에 능한 한혈마를 얻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흉노 원정이 재개되었다.
기원전 99년 새롭게 펼쳐지는 흉노 정벌을 책임지는 사람은 이광리와 공손오였다. 이사장군 이광리는 3만 기병을 데리고 우현왕을 공격하고, 인우장군 공손오는 좌현왕을 공격한 후 선우의 본거지인 선우정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때 이광리 부대의 물자 운송 부대에 배속된 인물이 바로 이릉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궁술에 뛰어났다. 할아버지 이광은 한무제의 흉노 정벌 전쟁에 수십 차례 참여한 장군이었다. 20년 전 전투에서 이광은 선우의 군대와 직접 대적하고 싶어 대장군의 말을 듣지 않고 자의적으로 행동하다가 길을 잃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
이와 같은 집안의 내력을 가졌기에 이릉은 흉노를 정벌하여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전투 부대가 아닌 수송 부대에 속한 것에 실망했다. 무제에게 탄원하여 5천 보병으로 선우정을 공격하겠다고 약속하며 무제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무모한 계획이었다. 선우정 본진으로 곧장 공격하는 일은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고비 사막을 종단해야 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기병이 남아 있지 않아 보병으로만 이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애초의 출정계획이 무리였는데, 이에 더해 지원군 부대장인 노박덕이 무제에게 보낸 편지가 오해를 낳아 무제는 이릉에게 더욱 무리한 요구를 명령했다. 그렇지만 이릉은 5천 병사를 가지고 고비 사막 깊숙이 진군하여 무제의 명령을 이행했다. 이 와중에 흉노 선우가 이끄는 3만 기병에게 포위되었지만 포위를 뚫고 적을 물리치며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흉노에게 투항한 한군 병사가 이릉 부대의 상황을 폭로하는 일이 생겼다. 흉노는 총공격을 개시했고, 무기도 없이 산으로 숨어든 이릉의 군대는 결국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 이릉은 패배를 예감하고 자결을 시도했으나 부대원들에게 저지당하고, 살아남아서 복수를 다짐했다. 군대를 해산하고 각개 탈출을 명하고는 수천 명의 추격병을 뒤로 한 채 말을 달렸지만 이릉은 흉노군에게 생포되었다.
이릉의 애초 계획이 무리한 것이었음을 알았으면서도 허락하고, 또 지원군 부대의 장군이 보낸 편지 때문에 오해하여 지원병도 없이 이릉의 군대를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한 것에 대해 일말의 가책을 느꼈는지, 무제는 2년 후 흉노에 타격을 가하려는 목적으로 원정대를 파견하면서 공손오 장군에게 이릉을 구출해 오라는 임무도 맡겼다. 그러나 공손오는 이릉도 구하지 못하고, 원정도 실패한 채 돌아왔다. 할 말이 없는 공손오는 이때 이릉이 선우에게 용병술을 가르쳐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비겁하게 거짓말했다. 서역 원정을 통해 한혈마까지 손에 넣었지만 흉노 원정이 번번이 성공하지 못한 것이 이해되지 않던 무제는 대노하여 이릉의 어머니와 동생, 처와 자식 등 이릉 일가를 몰살했다. 이릉의 고향 사람들은 이릉이 절의를 지키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했다.
위의 인용문은 포로로 있던 이릉이 한나라 사신으로부터 자신의 일가가 멸족된 것이 자신이 흉노에게 군사 전술을 전해주었다는 오해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이서는 이릉처럼 한나라 출신으로 흉노의 공격 때 항복한 사람으로 일찌감치 선우에게 이런 저런 정보를 제공하던 사람이었다. 선우의 어머니 대연지와도 사적인 친분을 맺고 있는 상태인지라 이릉이 이서를 죽였을 때 이릉은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러나 선우는 이릉을 비호하여 멀리 보내고 어머니 대연지가 죽은 후에 돌아오게 했다.
이 사건 이후부터 흉노의 선우에 대한 이릉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차적 이유는 한무제가 자기 일족을 멸한 것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릉의 할아버지 이광이 자결로써 생을 마감하기는 했으나 수십 차례의 흉노 전쟁에 참여하여 크고 작은 공을 세웠으며, 자신 또한 수송 부대 참여에 만족하지 않고 자원하여 5천 보병으로 고비사막을 건너 원정을 감행하고 무제의 명을 이행하고 몇 배나 많은 선우의 부대와 맞서 싸우며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에 밀고자가 생겨나고 지원군이 제대로 오지 않아 패배했지만, 이릉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흉노와 싸우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싶어 했다. 그런 자신을 믿지 못하고 흉노에게 한군의 기밀과 전술을 가르쳐주었다고 오해하고 자신의 가족을 몰살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한군 포로이지만 적극적으로 흉노를 도와 한군의 기밀을 알려준 이서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불만이 많았을 터에 이서의 행동이 자신의 행동으로 잘못 알려져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사실에 이릉은 이서를 죽였다. 당시 이서는 선우 뿐 아니라 선우 어머니와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었기에 이릉은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지만 선우는 이릉을 비호해주었다. 게다가 복수를 감행한 이릉을 훌륭하게 여겨 딸을 시집보내고 우교왕을 삼았다. 이릉이 선우에게 마음을 연 것은 그에게 부귀를 제공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아끼는 사람을 죽였지만 자신을 믿고 비호해주었고, 심지어 자신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한 행동까지 높이 평가해주고 이해해주는 선우에 대한 감사함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충심을 믿어주지 못하고 가족을 몰살한 한무제의 행동과 대비가 된다.
이릉은 5천 보병 부대의 장에서 포로가 되어 버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나라 포로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족 몰살이라는 비극 앞에서는 어찌 할 수 없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을 죽였다. 더 문제는 이제 이릉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랑캐에 회유되지 않고 기회를 틈타 한나라로 탈출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릉이 자기일가를 몰살한 한나라로 돌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 이릉의 항복을 받아내고 회유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했던 선우는 이릉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우의 도움을 받은 이릉이 선우에게 마음을 열고 전향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이릉이 연속되는 절망의 상황에서 결국 한나라를 버리고 흉노를 택했다. 그것이 한무제에 대한 서운함과 복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지만, 선우의 호의와 믿음에 대한 보답, 그리고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흉노의 풍습이 이릉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선우: 흉노의 군주를 일컫는 말
키워드
배신, 선우, 이릉, 이민족, 절망, 치욕, 한무제, 흉노
전후맥락
한나라 무제(武帝, 기원전 141~기원전 87)는 흉노 정벌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며 수십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이릉의 집안은 할아버지 이광 때부터 흉노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운 무장 집안이다. 기원전 99년의 흉노 정벌에서 이릉은 수송 부대에 속했지만, 5천 보병을 이끌고 선우를 공격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제안하고 무제에게 허락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수행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선우의 군대와 마주해 포위된다. 패배를 예감하고 자결을 시도했으나 살아남아서 복수의 기회를 엿보자는 막료들의 제안으로 죽지 않고 포로가 된다.
고전본문
[흉노에 포로로 잡힌] 이릉(李陵, ?~기원전 74)이 흉노에 한 해 남짓 머물렀을 때였다. 황제가 인우장군 공손오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 땅 깊이 들어가 이릉을 맞이해 오게 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회군한 뒤에 공손오가 아뢰었다.
“사로잡은 포로가 말하기를 이릉이 선우에게 용병술을 가르쳐 한나라 군에 대비시켰다고 합니다. 신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가 이릉의 일가를 멸족시키기로 하고 어머니와 동생, 처자식을 모조리 주살했다. 이릉의 고향인 농서의 사대부들은 이릉이 절개를 지키지 않아 이씨 집안의 이름을 더럽힌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시간이 지나 한나라 조정에서 흉노에 사자를 보냈을 때 이릉이 사자에게 말했다.
“내가 한나라를 위해 보병 오천 명을 이끌고 흉노 땅을 가로질렀으나 구원병이 없어서 패배했소. 그런데 어찌하여 한나라를 배반했다 하며 우리 집안을 주살한 것이오?”
사자가 대답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그대가 흉노에게 용병술을 가르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이서가 한 일이지 내가 한 일이 아니오.”
이서는 본래 한나라 새외도위로서 해후성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흉노가 공격하자 항복했다. 선우가 이서를 예로서 대접한다며 늘 이릉의 윗자리에 앉혔다. 자신의 집안이 이서 때문에 주살당한 것을 가슴 아파하던 이릉이 사람을 시켜 이서를 찔러 죽였다. 선우의 어머니인 대연지가 이릉을 죽이려고 하자 선우가 이릉을 북쪽 지방에 숨겼다가 대연지가 죽은 뒤에 돌아오게 했다.
선우가 이릉을 장하게 여겨 자신의 딸을 주고 우교왕으로 세웠다. (중략) 이릉은 선우의 거처 밖에 살다가 큰일이 있으면 들어가 함께 의논하곤 했다.
<한서-이광·소건전> 中에서
토론하기
1. 이릉이 처한 절망적 상황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제시해보자.
2. 이릉이 처음에 포로가 되었을 때는 흉노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한나라에 있는 자신의 일가가 멸족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태도를 바꾼다. 다른 기록을 보면 나중에는 흉노 군대를 지휘하면서 한나라 군대와 맞서 싸우기까지 한다. 이릉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
3. 전쟁과 같은 극한적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를 달리해 서로를 적대하던 집단의 사람들이 상대편 집단으로 전향하는 경우 그 사람은 ‘배신자’일 수밖에 없을까?
해설읽기
외국인들이 중국 하면 떠올리는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방벽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15년 대규모 흉노 정벌을 거행해 흉노를 북쪽으로 쫓아내고 감숙성에서 시작해 황하를 따라 낙랑 조선에 이르기까지 4천 킬로미터의 장벽을 세웠다. 그렇지만 한나라에 들어와서도 흉노의 위협은 계속되었다. 한나라가 커지는 만큼 흉노도 세력을 확장했다. 이 때 중국 역사에서 두고두고 치욕적 사건으로 언급되는 ‘팽성의 치욕’이 발생한다. 한고조 유방이 흉노의 탁월한 묵돌 선우*의 전술에 휘말려 본진에서 떨어져 흉노 병사에게 포위되는 일이 있었다. 고조 일행이 흉노 정벌 전쟁 중에 고립되어 일주일을 보내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한 것이다. 선우 부인을 이용해 포위를 뚫고 나오기는 했으나, 이후 고조는 흉노와 화친조약을 맺고서 황실 여인과 공물을 흉노에 바쳐야 했다. 중국 통일제국 한나라의 치욕적 사건이었다.
한무제는 기원전 141년부터 54년간 재위하면서 한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황제이다. 무제가 12세의 나이에 즉위했을 때는 팽성의 치욕으로부터 약 6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무제는 한나라의 치욕을 갚고 흉노와 한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흉노 정벌을 준비했다. 즉위하고 10년도 되지 않아 30만 대군을 투입하는 등 쉼 없이 흉노에 대적하고 정벌을 감행했다. 위청과 곽거병이 이끄는 군대로 바이칼호 근처까지 진군하기도 했다. 40여 년간 노력했지만 흉노 정벌은 요원한 일이었다. 서역을 다녀온 장건이 준 정보에 따라 기마전투에 능한 한혈마를 얻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흉노 원정이 재개되었다.
기원전 99년 새롭게 펼쳐지는 흉노 정벌을 책임지는 사람은 이광리와 공손오였다. 이사장군 이광리는 3만 기병을 데리고 우현왕을 공격하고, 인우장군 공손오는 좌현왕을 공격한 후 선우의 본거지인 선우정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때 이광리 부대의 물자 운송 부대에 배속된 인물이 바로 이릉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궁술에 뛰어났다. 할아버지 이광은 한무제의 흉노 정벌 전쟁에 수십 차례 참여한 장군이었다. 20년 전 전투에서 이광은 선우의 군대와 직접 대적하고 싶어 대장군의 말을 듣지 않고 자의적으로 행동하다가 길을 잃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
이와 같은 집안의 내력을 가졌기에 이릉은 흉노를 정벌하여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전투 부대가 아닌 수송 부대에 속한 것에 실망했다. 무제에게 탄원하여 5천 보병으로 선우정을 공격하겠다고 약속하며 무제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무모한 계획이었다. 선우정 본진으로 곧장 공격하는 일은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고비 사막을 종단해야 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기병이 남아 있지 않아 보병으로만 이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애초의 출정계획이 무리였는데, 이에 더해 지원군 부대장인 노박덕이 무제에게 보낸 편지가 오해를 낳아 무제는 이릉에게 더욱 무리한 요구를 명령했다. 그렇지만 이릉은 5천 병사를 가지고 고비 사막 깊숙이 진군하여 무제의 명령을 이행했다. 이 와중에 흉노 선우가 이끄는 3만 기병에게 포위되었지만 포위를 뚫고 적을 물리치며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흉노에게 투항한 한군 병사가 이릉 부대의 상황을 폭로하는 일이 생겼다. 흉노는 총공격을 개시했고, 무기도 없이 산으로 숨어든 이릉의 군대는 결국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 이릉은 패배를 예감하고 자결을 시도했으나 부대원들에게 저지당하고, 살아남아서 복수를 다짐했다. 군대를 해산하고 각개 탈출을 명하고는 수천 명의 추격병을 뒤로 한 채 말을 달렸지만 이릉은 흉노군에게 생포되었다.
이릉의 애초 계획이 무리한 것이었음을 알았으면서도 허락하고, 또 지원군 부대의 장군이 보낸 편지 때문에 오해하여 지원병도 없이 이릉의 군대를 적진 깊숙이 들어가게 한 것에 대해 일말의 가책을 느꼈는지, 무제는 2년 후 흉노에 타격을 가하려는 목적으로 원정대를 파견하면서 공손오 장군에게 이릉을 구출해 오라는 임무도 맡겼다. 그러나 공손오는 이릉도 구하지 못하고, 원정도 실패한 채 돌아왔다. 할 말이 없는 공손오는 이때 이릉이 선우에게 용병술을 가르쳐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비겁하게 거짓말했다. 서역 원정을 통해 한혈마까지 손에 넣었지만 흉노 원정이 번번이 성공하지 못한 것이 이해되지 않던 무제는 대노하여 이릉의 어머니와 동생, 처와 자식 등 이릉 일가를 몰살했다. 이릉의 고향 사람들은 이릉이 절의를 지키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했다.
위의 인용문은 포로로 있던 이릉이 한나라 사신으로부터 자신의 일가가 멸족된 것이 자신이 흉노에게 군사 전술을 전해주었다는 오해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이서는 이릉처럼 한나라 출신으로 흉노의 공격 때 항복한 사람으로 일찌감치 선우에게 이런 저런 정보를 제공하던 사람이었다. 선우의 어머니 대연지와도 사적인 친분을 맺고 있는 상태인지라 이릉이 이서를 죽였을 때 이릉은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러나 선우는 이릉을 비호하여 멀리 보내고 어머니 대연지가 죽은 후에 돌아오게 했다.
이 사건 이후부터 흉노의 선우에 대한 이릉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차적 이유는 한무제가 자기 일족을 멸한 것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릉의 할아버지 이광이 자결로써 생을 마감하기는 했으나 수십 차례의 흉노 전쟁에 참여하여 크고 작은 공을 세웠으며, 자신 또한 수송 부대 참여에 만족하지 않고 자원하여 5천 보병으로 고비사막을 건너 원정을 감행하고 무제의 명을 이행하고 몇 배나 많은 선우의 부대와 맞서 싸우며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에 밀고자가 생겨나고 지원군이 제대로 오지 않아 패배했지만, 이릉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흉노와 싸우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싶어 했다. 그런 자신을 믿지 못하고 흉노에게 한군의 기밀과 전술을 가르쳐주었다고 오해하고 자신의 가족을 몰살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한군 포로이지만 적극적으로 흉노를 도와 한군의 기밀을 알려준 이서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불만이 많았을 터에 이서의 행동이 자신의 행동으로 잘못 알려져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사실에 이릉은 이서를 죽였다. 당시 이서는 선우 뿐 아니라 선우 어머니와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었기에 이릉은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지만 선우는 이릉을 비호해주었다. 게다가 복수를 감행한 이릉을 훌륭하게 여겨 딸을 시집보내고 우교왕을 삼았다. 이릉이 선우에게 마음을 연 것은 그에게 부귀를 제공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아끼는 사람을 죽였지만 자신을 믿고 비호해주었고, 심지어 자신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한 행동까지 높이 평가해주고 이해해주는 선우에 대한 감사함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충심을 믿어주지 못하고 가족을 몰살한 한무제의 행동과 대비가 된다.
이릉은 5천 보병 부대의 장에서 포로가 되어 버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나라 포로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족 몰살이라는 비극 앞에서는 어찌 할 수 없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을 죽였다. 더 문제는 이제 이릉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랑캐에 회유되지 않고 기회를 틈타 한나라로 탈출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릉이 자기일가를 몰살한 한나라로 돌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 이릉의 항복을 받아내고 회유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했던 선우는 이릉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우의 도움을 받은 이릉이 선우에게 마음을 열고 전향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이릉이 연속되는 절망의 상황에서 결국 한나라를 버리고 흉노를 택했다. 그것이 한무제에 대한 서운함과 복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지만, 선우의 호의와 믿음에 대한 보답, 그리고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흉노의 풍습이 이릉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선우: 흉노의 군주를 일컫는 말
키워드
배신, 선우, 이릉, 이민족, 절망, 치욕, 한무제, 흉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