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기원전 100년 흉노와 한나라가 전쟁과 화친을 반복하던 즈음에 소무는 한나라와 흉노의 포로교환 특사로 임명되어 흉노를 방문한다. 이때 흉노 내부의 반란 음모에 소무의 아랫사람이 의도치 않게 연루되어 사신단 모두 처형의 위기에 처하지만 흉노의 수장인 선우는 처형 대신 이들을 전향시키기로 한다. 선우는 한인 투항자 위율을 시켜 소무를 설득하지만 소무는 자신의 떳떳함을 주장하며 이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급기야 자살을 시도한다.
고전본문
선우*가 위율로 하여금 소무(蘇武, 기원전 140~기원전 60)를 불러 심문하게 했다. 소무가 부하들에게 “절개를 꺾이고 황제의 명을 욕되게 했으니 목숨을 건진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한나라에 돌아가겠는가”라고 한 뒤에 칼을 뽑아 자신을 찔렀다. 깜짝 놀란 위율이 직접 소무를 안고 말을 달려 의원을 부르러 갔다.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불꽃이 꺼진 불을 넣은 뒤에 그 위를 덮고 소무를 엎드리게 하고는 등을 쓸며 어혈을 빼냈다. 소무는 기절했다가 반나절 만에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중략)
위율이 말했다.
“나리! 예전에 제가 한나라에 등을 돌려 흉노에 귀부하여 큰 은덕을 입었을 뿐 아니라 왕의 칭호까지 하사받았습니다. 수만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산을 덮을 만큼 많은 말과 가축들을 기르면서 대단한 부귀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항복하면 소군도 내일부터 그렇게 누릴 것입니다. 그 몸을 헛되이 초야의 거름이 되게 한들 누가 있어 알아주겠습니까?”
(중략)
끝내 소무를 협박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위율이 선우에게 사정을 보고했다. 선우는 그럴수록 소무를 더욱더 항복시키고 싶어서 큰 움 속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않았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자 소무는 누운 채로 눈을 씹어 가죽옷의 털과 함께 삼켰다.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자 흉노족들이 소무를 신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선우가 소무를 사람이 살지 않는 북해*변으로 옮겨 숫양을 기르게 하고는 그 숫양이 새끼를 낳고 젖이 나와야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소무의 부하 상혜 등은 각각 다른 곳에 두었다.
소무가 북해변에 도착했는데 흉노가 식량을 대주지 않아 들쥐들이 저장해 둔 풀씨를 파내서 먹었다. 소무는 한나라 조정의 부절을 지팡이 삼아 양을 쳤는데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손에 잡고 있었기 때문에 부절의 쇠꼬리 털이 다 떨어졌다.
*선우: 흉노의 군주를 일컫는 말
<한서-이광·소건전> 中에서
토론하기
1. 소무가 흉노에 투항하지 않고 바이칼 호숫가에서 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무가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2. 20세기 한국 현대사에서 소무처럼 자기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 유폐된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을 이해해보자. (신념의 내용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잠시 유보한다)
해설읽기
소무는 기원전 100년 한무제 조정에서 파견한 사신으로 흉노에 갔다. 흉노 내부의 모반사건에 함께 간 부하가 간접적으로 연루되면서, 사신단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소무는 자신에게도 위험이 닥칠 것을 예상하고 자결을 시도하지만 부하들의 만류로 그만둔다. 흉노의 선우는 소무와 한인 사신단을 죽이고자 했지만 마음을 바꿔 이들에게 항복을 받아내기로 한다. 위율이 소무를 만나 회유를 시도했지만, 소무는 순식간에 자신을 찔러 자결을 시도한다.
흉노 의원의 신묘한 치료법을 통해 살아난 소무의 기개를 높이 산 선우는 다시 위율을 보내 설득한다. 위율은 한나라를 배신하고 흉노에 전향하여 부귀를 누리고 왕도 되었다고 말하며, 소무에게 전향을 건의한다. 한나라를 위해 죽어도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느냐는 말도 덧붙인다. 위율은 흉노로 투항한 한인이다. 흉노인이었던 아버지가 한에 투항하여 위율은 한에서 성장하였지만 흉노에 사자로 갔을 때 투항하여 선우의 신임을 얻었다. 흉노인이 강고한 한인을 직접 설득하는 것보다는 한인이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선우는 위율에게 소무의 회유를 부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율의 설득은 소무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위무는 그의 언변의 설득에도 칼의 위협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무에게 위율은 “한나라의 신하가 되어서 은혜와 의리는 돌보지 않은 채 주군을 배반하고 부모를 등진” 사람이었다.
설득과 회유가 통하지 않으면 강압과 공포의 방법을 써서라도 선우는 소무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굴속에 소무를 가두고 먹을 것을 일체 주지 않았다. 소무는 옷의 털을 눈뭉치에 굴려 먹으면서 며칠을 버텼다. 강하고 힘 쌘 것이 최고의 가치인 흉노인의 세계에서 소무의 행동은 도무지 납득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권력의 힘에 압도되지 않고, 멀리 떨어진 한나라 군주에 대해 신의를 지키는 소무의 행동은 고결해 보였을 터이다.
결국 선우는 소무를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인 북해변, 지금의 바이칼 호숫가로 보낸다. 그리고는 숫양을 쳐서 숫양이 새끼를 낳아야 돌아올 수 있다고 하였다. 수컷이 새끼를 낳을 일은 없을 터이니, 결국 소무가 항복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추운 땅에서 홀로 살게 버려둘 것이라는 말이다. 처음에 이곳을 갔을 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들쥐를 잡아 그것들이 숨겨둔 열매를 먹고 굶주림을 견뎠다. 그러면서도 흉노에 사신 올 때 한나라 조정에서 준 부절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얼마나 그것을 꼭 쥐고 있었는지 거기에 달린 술 장식이 다 떨어져 없어져버릴 정도였다.
소무는 무엇 때문에 선우의 지극한 회유를 거부했을까? 그가 한무제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였을까? 그는 언젠가는 한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면, 그 때를 위해서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일까? 그러나 한나라는 자신을 구출해줄 기미가 없고, 자신은 혹한의 땅에서 홀로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계속 버텨야 하는 것일까? 한나라로 돌아가는 길이 요원하다면, 이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길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고, 대신 적당히 처신하면서 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흉노의 군주는 소무 자신에 매료되어 있는 상태이지 않은가!
우리 역사에도 비근한 예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어떤 이유에서든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와서 수감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전향서를 쓰면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끝내 전향서를 쓰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독립운동하다가 체포된 사람들이 일제의 고문을 받으면서 서약서를 쓰고 일제에 협력하면 고문과 감금이 중단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이 전향서를 쓰든 쓰지 않든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버틴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책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실은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부딪치는 문제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현실의 삶이 소중하므로, 이념이나 감정 같은 것들은 가뿐히 넘어설 것인가? 아니면 현실과 유리된 것에 몰두하여 현실의 삶을 포기할 것인가? 이천년도 더 된 소무의 이야기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이유이다.
키워드
바이칼, 배신, 북해, 선우, 소무, 절망, 절의, 흉노
전후맥락
기원전 100년 흉노와 한나라가 전쟁과 화친을 반복하던 즈음에 소무는 한나라와 흉노의 포로교환 특사로 임명되어 흉노를 방문한다. 이때 흉노 내부의 반란 음모에 소무의 아랫사람이 의도치 않게 연루되어 사신단 모두 처형의 위기에 처하지만 흉노의 수장인 선우는 처형 대신 이들을 전향시키기로 한다. 선우는 한인 투항자 위율을 시켜 소무를 설득하지만 소무는 자신의 떳떳함을 주장하며 이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급기야 자살을 시도한다.
고전본문
선우*가 위율로 하여금 소무(蘇武, 기원전 140~기원전 60)를 불러 심문하게 했다. 소무가 부하들에게 “절개를 꺾이고 황제의 명을 욕되게 했으니 목숨을 건진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한나라에 돌아가겠는가”라고 한 뒤에 칼을 뽑아 자신을 찔렀다. 깜짝 놀란 위율이 직접 소무를 안고 말을 달려 의원을 부르러 갔다.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불꽃이 꺼진 불을 넣은 뒤에 그 위를 덮고 소무를 엎드리게 하고는 등을 쓸며 어혈을 빼냈다. 소무는 기절했다가 반나절 만에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중략)
위율이 말했다.
“나리! 예전에 제가 한나라에 등을 돌려 흉노에 귀부하여 큰 은덕을 입었을 뿐 아니라 왕의 칭호까지 하사받았습니다. 수만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산을 덮을 만큼 많은 말과 가축들을 기르면서 대단한 부귀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 항복하면 소군도 내일부터 그렇게 누릴 것입니다. 그 몸을 헛되이 초야의 거름이 되게 한들 누가 있어 알아주겠습니까?”
(중략)
끝내 소무를 협박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위율이 선우에게 사정을 보고했다. 선우는 그럴수록 소무를 더욱더 항복시키고 싶어서 큰 움 속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않았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자 소무는 누운 채로 눈을 씹어 가죽옷의 털과 함께 삼켰다.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자 흉노족들이 소무를 신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선우가 소무를 사람이 살지 않는 북해*변으로 옮겨 숫양을 기르게 하고는 그 숫양이 새끼를 낳고 젖이 나와야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소무의 부하 상혜 등은 각각 다른 곳에 두었다.
소무가 북해변에 도착했는데 흉노가 식량을 대주지 않아 들쥐들이 저장해 둔 풀씨를 파내서 먹었다. 소무는 한나라 조정의 부절을 지팡이 삼아 양을 쳤는데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손에 잡고 있었기 때문에 부절의 쇠꼬리 털이 다 떨어졌다.
*선우: 흉노의 군주를 일컫는 말
<한서-이광·소건전> 中에서
토론하기
1. 소무가 흉노에 투항하지 않고 바이칼 호숫가에서 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무가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2. 20세기 한국 현대사에서 소무처럼 자기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 유폐된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을 이해해보자. (신념의 내용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잠시 유보한다)
해설읽기
소무는 기원전 100년 한무제 조정에서 파견한 사신으로 흉노에 갔다. 흉노 내부의 모반사건에 함께 간 부하가 간접적으로 연루되면서, 사신단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소무는 자신에게도 위험이 닥칠 것을 예상하고 자결을 시도하지만 부하들의 만류로 그만둔다. 흉노의 선우는 소무와 한인 사신단을 죽이고자 했지만 마음을 바꿔 이들에게 항복을 받아내기로 한다. 위율이 소무를 만나 회유를 시도했지만, 소무는 순식간에 자신을 찔러 자결을 시도한다.
흉노 의원의 신묘한 치료법을 통해 살아난 소무의 기개를 높이 산 선우는 다시 위율을 보내 설득한다. 위율은 한나라를 배신하고 흉노에 전향하여 부귀를 누리고 왕도 되었다고 말하며, 소무에게 전향을 건의한다. 한나라를 위해 죽어도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느냐는 말도 덧붙인다. 위율은 흉노로 투항한 한인이다. 흉노인이었던 아버지가 한에 투항하여 위율은 한에서 성장하였지만 흉노에 사자로 갔을 때 투항하여 선우의 신임을 얻었다. 흉노인이 강고한 한인을 직접 설득하는 것보다는 한인이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선우는 위율에게 소무의 회유를 부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율의 설득은 소무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위무는 그의 언변의 설득에도 칼의 위협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무에게 위율은 “한나라의 신하가 되어서 은혜와 의리는 돌보지 않은 채 주군을 배반하고 부모를 등진” 사람이었다.
설득과 회유가 통하지 않으면 강압과 공포의 방법을 써서라도 선우는 소무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굴속에 소무를 가두고 먹을 것을 일체 주지 않았다. 소무는 옷의 털을 눈뭉치에 굴려 먹으면서 며칠을 버텼다. 강하고 힘 쌘 것이 최고의 가치인 흉노인의 세계에서 소무의 행동은 도무지 납득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권력의 힘에 압도되지 않고, 멀리 떨어진 한나라 군주에 대해 신의를 지키는 소무의 행동은 고결해 보였을 터이다.
결국 선우는 소무를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인 북해변, 지금의 바이칼 호숫가로 보낸다. 그리고는 숫양을 쳐서 숫양이 새끼를 낳아야 돌아올 수 있다고 하였다. 수컷이 새끼를 낳을 일은 없을 터이니, 결국 소무가 항복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추운 땅에서 홀로 살게 버려둘 것이라는 말이다. 처음에 이곳을 갔을 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들쥐를 잡아 그것들이 숨겨둔 열매를 먹고 굶주림을 견뎠다. 그러면서도 흉노에 사신 올 때 한나라 조정에서 준 부절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얼마나 그것을 꼭 쥐고 있었는지 거기에 달린 술 장식이 다 떨어져 없어져버릴 정도였다.
소무는 무엇 때문에 선우의 지극한 회유를 거부했을까? 그가 한무제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였을까? 그는 언젠가는 한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면, 그 때를 위해서 자신을 더럽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일까? 그러나 한나라는 자신을 구출해줄 기미가 없고, 자신은 혹한의 땅에서 홀로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계속 버텨야 하는 것일까? 한나라로 돌아가는 길이 요원하다면, 이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길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고, 대신 적당히 처신하면서 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흉노의 군주는 소무 자신에 매료되어 있는 상태이지 않은가!
우리 역사에도 비근한 예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어떤 이유에서든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와서 수감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전향서를 쓰면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끝내 전향서를 쓰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독립운동하다가 체포된 사람들이 일제의 고문을 받으면서 서약서를 쓰고 일제에 협력하면 고문과 감금이 중단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이 전향서를 쓰든 쓰지 않든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버틴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책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실은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부딪치는 문제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현실의 삶이 소중하므로, 이념이나 감정 같은 것들은 가뿐히 넘어설 것인가? 아니면 현실과 유리된 것에 몰두하여 현실의 삶을 포기할 것인가? 이천년도 더 된 소무의 이야기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이유이다.
키워드
바이칼, 배신, 북해, 선우, 소무, 절망, 절의, 흉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