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생활을 하며 버티던 이릉은 한무제가 자신의 일가를 멸족했다는 소식을 듣고 차츰 흉노의 선우에게 타협한다.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흉노의 내란 사건에 간접적으로 휘말려 죽음의 직전까지 간 소무는 선우의 회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버티다 북해변 (지금의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양을 치며 힘겹게 살아간다. 이런 와중에 이릉이 소무를 방문한다.
고전본문
원래 소무(蘇武, 기원전 140~기원전 60)와 이릉(李陵, ?~기원전 74)은 함께 시중직에 있었다. 소무가 흉노에 사신으로 간 이듬해에 이릉이 항복했다. 이릉은 소무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참 지난 뒤에 선우가 이릉으로 하여금 북해 변으로 가서 소무에게 술자리를 베풀어 악공을 배치하여 연주하게 했다. 그 자리를 빌려 이릉이 소무에게 말했다.
“제가 그대와 평소에 아주 친했다는 사실을 들은 선우가 저 이릉을 보내 설득하게 했소. 선우는 교만하지 않게 그대를 대접하겠다고 했소. 끝내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무인지경에서 헛되이 고생해 봐야 누가 그대의 신의를 알아주겠소? (중략) 여기로 올 때 그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저 이릉이 양릉현에 가서 묻어 드렸소. 그대의 부인은 나이가 젊어 재가했다고 들었소. 누이동생 둘과 딸 둘, 아들 하나만이 남아 있을 텐데 다시 십여 년이 지났으니 생사를 알 수 없을 것이오. 인생이란 아침 이슬 마르듯이 짧기만 한데 왜 이렇게 오래도록 고생을 자처하는 것이오! 저 이릉도 투항했을 때 실의에 빠져 미칠 듯했소. 한나라를 배반해 스스로 마음이 아팠던 데다 노모마저 보궁 옥에 갇혀 계셨소. 자경이 항복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항복하지 않고 돌아가 노모를 구하고 싶었던 이 마음보다 더 애타지는 않을 것이오. 폐하께서 춘추가 높아 법을 법대로 적용하지 않아 아무 죄 없이 멸족당한 대신 집안이 수십 집이오. 이렇게 안위를 알 수 없는데 그대는 누구를 위하자는 것이오? 저의 계책을 따르고 다른 말은 하지 말기 바라오.”
소무가 말했다.
“저 소무는 부자지간에 공을 세우지도 못했고 덕도 없지만, 폐하께서 벼슬을 내려 주셔서 모두 장군의 반열에 올랐고 통후의 작위를 받았으며 형제들은 황상을 가까이에서 모셨소. 그 시절에는 늘 머리통이 깨지고 내장이 터져 그 피로 땅을 물들이고 싶었소. 지금 이 몸이 죽어서 충성을 다할 수 있다면 비록 부월형이나 탕확형을 받는다 해도 아주 기쁘겠소.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으니 자식이 아버지를 위해 죽는다 해도 한이 될 것이 없소.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셨으면 하오.”
이릉이 소무와 며칠 동안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저의 말 좀 들어요.”
그러자 소무가 말했다.
“저는 제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고 여기고 있소. 왕이 저 소무를 꼭 투항시키겠다면 즐거웠던 오늘 이 자리를 끝내는 지금 그대 앞에서 죽게 해 주시오.”
이릉은 그의 지극한 충성심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의사여! 이릉과 위율의 죄가 하늘에 닿으리라.”
눈물이 흘러 이릉의 옷깃을 적시는 가운데 이릉이 소무와 이별하고 떠났다.
이릉이 소무에게 직접 하사하자니 부끄러워서 자신의 아내를 시켜 소와 양 수십 마리를 내려 주었다. 그 뒤 이릉이 다시 북해 변에 이르러 소무에게 말했다.
“우탈에서 운중 사람을 산 채로 잡았는데 황상이 붕어하여 태수 이하 관리와 백성이 모두 소복을 입었다고 하오.”
소무가 그 말을 듣고 남쪽을 향해 호곡하며 피를 토했다. 그 뒤로 여러 달 동안 아침과 저녁에 곡을 했다.
<한서-이광·소건전> 中에서
토론하기
1. 이릉이 느끼는 부끄러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2. 이별 후 이릉이 소무에게 선물을 직접 주지 않고 아내를 시켜 준 까닭은 무엇일까?
3. 소무의 행동은 절의, 이릉의 행동은 배신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릉을 변호해보자.
해설읽기
이릉과 소무는 한무제 시대에 태어나 한나라와 흉노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한나라 조정의 녹을 먹었다. 이릉은 5천의 보병을 가지고 흉노 땅 깊숙이 들어가 선우의 부대와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우에게 마음을 열고 선우를 돕는다.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흉노의 내분에 간접적으로 연루된 소무는 자결을 시도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나고 끝내 선우에게 투항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살지 않는 바이칼 호숫가에서 양을 치며 유형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무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선우*는 이릉에게 소무를 만나보도록 했다.
이릉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자신이 처음부터 흉노에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전투에 졌을 때 자결하고자 했고, 포로가 되어서도 선우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흉노와의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웠고 자신도 흉노를 척결하기 위해 무모한 작전도 불사했다. 이릉은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한나라를 ‘배신’하게 된 것은 가족의 몰살 소식을 듣고 난 이후였다. 비록 ‘배신’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명확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일가를 죽인 한무제에 대한 충성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자신과 같은 결단을 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무 앞에서는 왠지 자신이 작아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릉은 선우가 소무를 만나보라고 하기 전까지는 한나라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던 소무를 만나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무를 만난 이릉은 자신도 소무처럼 선우의 회유 노력에 저항하고 버텼지만, 한무제의 행동을 보고는 그를 위해 충성을 바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하며 소무에게도 자신의 길을 따르라며 간곡히 부탁한다. 그러나 소무는 충성을 다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도끼에 목이 베이거나 끓는 솥에 삶아지더라도 기쁘게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충성의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와 상관없이 자신은 주군과 신하의 관계로 구성된 봉건적 사회의 윤리를 충실히 수행할 뿐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런 절대 신념의 경지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작아지고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이릉의 마음은 착잡하고 양가적일 터이다. 소무가 미련하게 보이다가도 그에 대한 부러움이 생겨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자신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오랑캐의 옷을 입고 소무를 설득하는 자신이 문득 수치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소무를 부러워했다면, 그것은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켰다는 점 때문은 아닐 것이다. 소무에게는 자신과 같은 경험 즉 한무제에 의한 일가의 몰살이라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비록 몸은 힘들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갈 수 있었다는 것에 있을 터이다.
며칠간의 노력에도 설득되지 않는 소무를 남겨두고 그는 떠나왔다. 떠나오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무를 위해 수십 마리의 소와 양을 선물하지만 차마 자신이 주는 것으로 하지 않았다. 선우는 이릉에게 우교왕의 자리를 주었기 때문에 이릉이 소무에게 뭔가를 준다면 그것은 하사하는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혹은 그의 궁핍한 삶에 얼마의 부를 손쉽게 더해주는 것이 오히려 그의 삶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소무는 이런 극한의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갈아 먹어가며 몸소 보여주었다. 이릉도 그와 같은 삶을 추구했다가 이유야 어떠했든 중도에 그만 두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소무는 현재 이릉의 삶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불편하고 어려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릉은 소무를 피하지 않았고, 자신이 선택한 두 번째 삶에 충실을 다하며 소무를 설득했다. 소무가 거절했지만 끝까지 소무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이후 이릉은 소무를 두 번 더 만났다. 한 번은 한무제가 죽었을 때이다. 한무제에 대한 소무의 충성을 알기에 이 사실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책무감을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 한 번은 소무가 귀국할 때였다. 흉노과 한나라와의 친교를 회복하기 위해 소무를 귀환시키기로 하여 소무는 1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귀국을 앞 둔 소무를 만나 송별연을 마련하였다. 이릉이 일어나 춤을 추며 시를 읊조렸다.
만 리를 달리고 사막을 넘어
군대의 장수가 되어 흉노를 떨게 했네.
길이 막히고 화살과 칼이 부러져
군사는 다 없어지고 이름은 더럽혀졌네.
노모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은혜를 갚고자 해도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19년을 버틴 소무는 충성과 절의의 상징이 되어 명예롭게 고국으로 돌아갔다.
*선우: 흉노의 군주를 일컫는 말
키워드
배신, 소무, 신념, 이릉, 흉노
전후맥락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생활을 하며 버티던 이릉은 한무제가 자신의 일가를 멸족했다는 소식을 듣고 차츰 흉노의 선우에게 타협한다.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흉노의 내란 사건에 간접적으로 휘말려 죽음의 직전까지 간 소무는 선우의 회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버티다 북해변 (지금의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양을 치며 힘겹게 살아간다. 이런 와중에 이릉이 소무를 방문한다.
고전본문
원래 소무(蘇武, 기원전 140~기원전 60)와 이릉(李陵, ?~기원전 74)은 함께 시중직에 있었다. 소무가 흉노에 사신으로 간 이듬해에 이릉이 항복했다. 이릉은 소무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참 지난 뒤에 선우가 이릉으로 하여금 북해 변으로 가서 소무에게 술자리를 베풀어 악공을 배치하여 연주하게 했다. 그 자리를 빌려 이릉이 소무에게 말했다.
“제가 그대와 평소에 아주 친했다는 사실을 들은 선우가 저 이릉을 보내 설득하게 했소. 선우는 교만하지 않게 그대를 대접하겠다고 했소. 끝내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무인지경에서 헛되이 고생해 봐야 누가 그대의 신의를 알아주겠소? (중략) 여기로 올 때 그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저 이릉이 양릉현에 가서 묻어 드렸소. 그대의 부인은 나이가 젊어 재가했다고 들었소. 누이동생 둘과 딸 둘, 아들 하나만이 남아 있을 텐데 다시 십여 년이 지났으니 생사를 알 수 없을 것이오. 인생이란 아침 이슬 마르듯이 짧기만 한데 왜 이렇게 오래도록 고생을 자처하는 것이오! 저 이릉도 투항했을 때 실의에 빠져 미칠 듯했소. 한나라를 배반해 스스로 마음이 아팠던 데다 노모마저 보궁 옥에 갇혀 계셨소. 자경이 항복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항복하지 않고 돌아가 노모를 구하고 싶었던 이 마음보다 더 애타지는 않을 것이오. 폐하께서 춘추가 높아 법을 법대로 적용하지 않아 아무 죄 없이 멸족당한 대신 집안이 수십 집이오. 이렇게 안위를 알 수 없는데 그대는 누구를 위하자는 것이오? 저의 계책을 따르고 다른 말은 하지 말기 바라오.”
소무가 말했다.
“저 소무는 부자지간에 공을 세우지도 못했고 덕도 없지만, 폐하께서 벼슬을 내려 주셔서 모두 장군의 반열에 올랐고 통후의 작위를 받았으며 형제들은 황상을 가까이에서 모셨소. 그 시절에는 늘 머리통이 깨지고 내장이 터져 그 피로 땅을 물들이고 싶었소. 지금 이 몸이 죽어서 충성을 다할 수 있다면 비록 부월형이나 탕확형을 받는다 해도 아주 기쁘겠소.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으니 자식이 아버지를 위해 죽는다 해도 한이 될 것이 없소.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셨으면 하오.”
이릉이 소무와 며칠 동안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저의 말 좀 들어요.”
그러자 소무가 말했다.
“저는 제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고 여기고 있소. 왕이 저 소무를 꼭 투항시키겠다면 즐거웠던 오늘 이 자리를 끝내는 지금 그대 앞에서 죽게 해 주시오.”
이릉은 그의 지극한 충성심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의사여! 이릉과 위율의 죄가 하늘에 닿으리라.”
눈물이 흘러 이릉의 옷깃을 적시는 가운데 이릉이 소무와 이별하고 떠났다.
이릉이 소무에게 직접 하사하자니 부끄러워서 자신의 아내를 시켜 소와 양 수십 마리를 내려 주었다. 그 뒤 이릉이 다시 북해 변에 이르러 소무에게 말했다.
“우탈에서 운중 사람을 산 채로 잡았는데 황상이 붕어하여 태수 이하 관리와 백성이 모두 소복을 입었다고 하오.”
소무가 그 말을 듣고 남쪽을 향해 호곡하며 피를 토했다. 그 뒤로 여러 달 동안 아침과 저녁에 곡을 했다.
<한서-이광·소건전> 中에서
토론하기
1. 이릉이 느끼는 부끄러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2. 이별 후 이릉이 소무에게 선물을 직접 주지 않고 아내를 시켜 준 까닭은 무엇일까?
3. 소무의 행동은 절의, 이릉의 행동은 배신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릉을 변호해보자.
해설읽기
이릉과 소무는 한무제 시대에 태어나 한나라와 흉노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한나라 조정의 녹을 먹었다. 이릉은 5천의 보병을 가지고 흉노 땅 깊숙이 들어가 선우의 부대와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우에게 마음을 열고 선우를 돕는다.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흉노의 내분에 간접적으로 연루된 소무는 자결을 시도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나고 끝내 선우에게 투항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살지 않는 바이칼 호숫가에서 양을 치며 유형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무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선우*는 이릉에게 소무를 만나보도록 했다.
이릉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자신이 처음부터 흉노에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전투에 졌을 때 자결하고자 했고, 포로가 되어서도 선우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흉노와의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웠고 자신도 흉노를 척결하기 위해 무모한 작전도 불사했다. 이릉은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한나라를 ‘배신’하게 된 것은 가족의 몰살 소식을 듣고 난 이후였다. 비록 ‘배신’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명확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일가를 죽인 한무제에 대한 충성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자신과 같은 결단을 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무 앞에서는 왠지 자신이 작아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릉은 선우가 소무를 만나보라고 하기 전까지는 한나라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던 소무를 만나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무를 만난 이릉은 자신도 소무처럼 선우의 회유 노력에 저항하고 버텼지만, 한무제의 행동을 보고는 그를 위해 충성을 바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하며 소무에게도 자신의 길을 따르라며 간곡히 부탁한다. 그러나 소무는 충성을 다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도끼에 목이 베이거나 끓는 솥에 삶아지더라도 기쁘게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충성의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와 상관없이 자신은 주군과 신하의 관계로 구성된 봉건적 사회의 윤리를 충실히 수행할 뿐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런 절대 신념의 경지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작아지고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이릉의 마음은 착잡하고 양가적일 터이다. 소무가 미련하게 보이다가도 그에 대한 부러움이 생겨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자신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오랑캐의 옷을 입고 소무를 설득하는 자신이 문득 수치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소무를 부러워했다면, 그것은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켰다는 점 때문은 아닐 것이다. 소무에게는 자신과 같은 경험 즉 한무제에 의한 일가의 몰살이라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비록 몸은 힘들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갈 수 있었다는 것에 있을 터이다.
며칠간의 노력에도 설득되지 않는 소무를 남겨두고 그는 떠나왔다. 떠나오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무를 위해 수십 마리의 소와 양을 선물하지만 차마 자신이 주는 것으로 하지 않았다. 선우는 이릉에게 우교왕의 자리를 주었기 때문에 이릉이 소무에게 뭔가를 준다면 그것은 하사하는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혹은 그의 궁핍한 삶에 얼마의 부를 손쉽게 더해주는 것이 오히려 그의 삶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소무는 이런 극한의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갈아 먹어가며 몸소 보여주었다. 이릉도 그와 같은 삶을 추구했다가 이유야 어떠했든 중도에 그만 두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소무는 현재 이릉의 삶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불편하고 어려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릉은 소무를 피하지 않았고, 자신이 선택한 두 번째 삶에 충실을 다하며 소무를 설득했다. 소무가 거절했지만 끝까지 소무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이후 이릉은 소무를 두 번 더 만났다. 한 번은 한무제가 죽었을 때이다. 한무제에 대한 소무의 충성을 알기에 이 사실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책무감을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 한 번은 소무가 귀국할 때였다. 흉노과 한나라와의 친교를 회복하기 위해 소무를 귀환시키기로 하여 소무는 1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귀국을 앞 둔 소무를 만나 송별연을 마련하였다. 이릉이 일어나 춤을 추며 시를 읊조렸다.
만 리를 달리고 사막을 넘어
군대의 장수가 되어 흉노를 떨게 했네.
길이 막히고 화살과 칼이 부러져
군사는 다 없어지고 이름은 더럽혀졌네.
노모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은혜를 갚고자 해도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19년을 버틴 소무는 충성과 절의의 상징이 되어 명예롭게 고국으로 돌아갔다.
*선우: 흉노의 군주를 일컫는 말
키워드
배신, 소무, 신념, 이릉, 흉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