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장자』는 총 33편 약 65,000자로 구성된 책이다. 33편의 글은 다시 크게 외편, 내편, 잡편의 세 파트로 나뉘는데, 지금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그 중 마지막 파트인 잡편에 실려 있는 글 중의 하나로, 공자의 제자인 원헌과 그를 찾아온 자공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 고대의 성인 공자에게는 삼천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72명의 제자가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이 글에 등장하는 원헌과 자공은 모두 공자의 칠십이 제자 중의 하나로 『논어』에도 여러 번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어느 날, 서로를 만난 자공과 원헌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들의 대화를 함께 살펴보자.
고전본문
공자의 제자 원헌이 노나라에 살고 있을 때였다. 그는 아주 작은 집에 살았는데, 지붕은 풀로 이었고 싸리문은 부서져 있었다. 뽕나무 줄기로 문지도리를 삼았고, 깨진 항아리 조각으로 창을 낸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칡베로 창을 가리고 있었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방바닥은 축축했지만, 원헌은 똑바로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그러던 때, 역시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이 원헌을 찾아왔다. 그는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있었고, 안에는 남색 옷을 밖에는 흰색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 커다란 수레는 원헌이 사는 집 골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공은 수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 원헌을 만났다. 이때에 원헌은 나무껍질로 만든 관을 쓰고 뒤축도 없는 신을 신은 채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문에 나가 자공을 마중하였다.
자공이 말했다.
“아이고, 선생께선 어찌 이리 괴롭게 사십니까?”
원헌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 하고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괴롭다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가난한 것이지 괴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자공이 주춤거리며 부끄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원헌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좋은 평판을 바라며 행동하는 것, 나와 의견이 같은 이들하고만 어울리는 것, 남에게 뽐내기 위해 학문을 하고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르치는 것, 인의를 내걸고 나쁜 짓을 하는 것, 수레와 말로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 이런 일들을 나는 차마 하지 못합니다.”
原憲居魯,環堵之室,茨以生草,蓬戶不完,桑以爲樞而甕牖,二室,褐以爲塞,上漏下溼,匡坐而弦。子貢乘大馬,中紺而表素,軒車不容巷,往見原憲。原憲華冠縰履,杖藜而應門。子貢曰:「嘻!先生何病?」原憲應之曰:「憲聞之:『無財謂之貧,學而不能行謂之病。』今憲,貧也,非病也。」子貢逡巡而有愧色。原憲笑曰:「夫希世而行,比周而友,學以爲人,教以爲己,仁義之慝,輿馬之飾,憲不忍爲也。」
토론하기
(1) 여러분이 생각하는 ‘나를 위한 공부’란 무엇인가요?
(2) 좋은 성적을 받고도 부끄러웠던 순간이 있나요?
해설읽기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보다 적게는 약 열 살에서 많게는 오십 살 가까이 어렸는데, 원헌은 공자보다 서른여섯 살이 적었다고 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원헌은 초야에 묻혀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자의 다른 제자 중 하나인 자공이 크고 화려한 수레를 타고 많은 시종을 거느린 채로 원헌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자공은 재상의 신분이었다. 원헌은 다 낡아서 해진 의관밖에는 없었지만 차림새를 단정히 하고 나와 자공을 만났다. 그런 원헌을 본 자공은 혀를 차며 왜 그렇게 힘들고 괴롭게 사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때 돌아온 원헌의 대답은 자공을 한 대 얻어맞은 듯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편치 못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난 자공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그날 했던 말을 부끄러워했다고 전한다.
원헌은 가난하게 사는 것과 괴롭게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가난함’이란 재산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만 ‘괴로움’이란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원헌은 자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헌이 삶에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일들은 바로 남들로부터 받게 될 좋은 평판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하는 것, 의견이 나와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 하는 것, 남한테 과시하려는 목적이나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 겉으로는 도덕적인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나쁜 행동을 하고 사치를 부리는 것 등이었다. 이런 것들을 하며 사는 삶은 원헌이 보기에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사는 삶’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칠십 제자 중 하나였던 만큼 원헌의 삶에서 배움 혹은 공부는 커다란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특히 인생의 스승이었던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더더욱 자신이 그동안 공부하고 배워왔던 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원헌에게 있어 열심히 공부해온 시간과 노력은 돈과 명예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초야에 묻혀 사는 그의 삶은 오히려 찢어지게 가난한 쪽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해온 공부가 돈도 명예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일까? 물리적인 보상이 담보되지도 않는데 열심히 공부하며 사는 삶이란 혹시 그저 괴롭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옛날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는지 공자는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다.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를 하는구나!” 공자가 말하는 ‘오늘날의 학자들’이란 바로 지금으로부터 이천여 년 전인 기원전 5~6세기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다른 많은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할 때 역시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은 우리의 모습은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듯하다.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은 그런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인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었다. 공자보다 약 250년 뒤의 시대를 살았던 순자는 ‘학문을 권장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권학편」이라는 글 속에서 위기지학을 하는 사람과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을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에 대응시킨다. 순자의 말에 따르면, 군자는 유익한 내용을 듣게 되면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가 행동으로 실천한다. 반면, 소인은 무언가 괜찮은 내용을 듣기만 하면 그것을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들 틈도 없이 곧바로 입으로 말해버린다. 위기지학을 하는 군자는 그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더 멋지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위인지학을 하는 소인은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며 그래서 실질적인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위인지학. 얼핏 좋아 보이고 마음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군자가 아닌 소인이 되는 것이라 해도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 길 끝에 결국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을 위해 하는 공부는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는 탄산음료와 같다. 어떤 일이든 내가 아닌 남에게 기준을 두는 순간 부와 명예는 계속 쌓일지 몰라도 마음은 쉽게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크고 화려한 수레를 타고 원헌을 찾아갔다가 평생 잊지 못할 부끄러운 마음만 안고 돌아온 자공의 이야기를 가끔 떠올려보자.
키워드
공부, 군자, 목적, 소인, 위기지학, 위인지학
전후맥락
『장자』는 총 33편 약 65,000자로 구성된 책이다. 33편의 글은 다시 크게 외편, 내편, 잡편의 세 파트로 나뉘는데, 지금부터 살펴볼 이야기는 그 중 마지막 파트인 잡편에 실려 있는 글 중의 하나로, 공자의 제자인 원헌과 그를 찾아온 자공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 고대의 성인 공자에게는 삼천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72명의 제자가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이 글에 등장하는 원헌과 자공은 모두 공자의 칠십이 제자 중의 하나로 『논어』에도 여러 번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어느 날, 서로를 만난 자공과 원헌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들의 대화를 함께 살펴보자.
고전본문
공자의 제자 원헌이 노나라에 살고 있을 때였다. 그는 아주 작은 집에 살았는데, 지붕은 풀로 이었고 싸리문은 부서져 있었다. 뽕나무 줄기로 문지도리를 삼았고, 깨진 항아리 조각으로 창을 낸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칡베로 창을 가리고 있었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방바닥은 축축했지만, 원헌은 똑바로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그러던 때, 역시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이 원헌을 찾아왔다. 그는 큰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있었고, 안에는 남색 옷을 밖에는 흰색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 커다란 수레는 원헌이 사는 집 골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공은 수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 원헌을 만났다. 이때에 원헌은 나무껍질로 만든 관을 쓰고 뒤축도 없는 신을 신은 채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문에 나가 자공을 마중하였다.
자공이 말했다.
“아이고, 선생께선 어찌 이리 괴롭게 사십니까?”
원헌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 하고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괴롭다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가난한 것이지 괴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자공이 주춤거리며 부끄러운 얼굴빛을 띠었다. 원헌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좋은 평판을 바라며 행동하는 것, 나와 의견이 같은 이들하고만 어울리는 것, 남에게 뽐내기 위해 학문을 하고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르치는 것, 인의를 내걸고 나쁜 짓을 하는 것, 수레와 말로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 이런 일들을 나는 차마 하지 못합니다.”
原憲居魯,環堵之室,茨以生草,蓬戶不完,桑以爲樞而甕牖,二室,褐以爲塞,上漏下溼,匡坐而弦。子貢乘大馬,中紺而表素,軒車不容巷,往見原憲。原憲華冠縰履,杖藜而應門。子貢曰:「嘻!先生何病?」原憲應之曰:「憲聞之:『無財謂之貧,學而不能行謂之病。』今憲,貧也,非病也。」子貢逡巡而有愧色。原憲笑曰:「夫希世而行,比周而友,學以爲人,教以爲己,仁義之慝,輿馬之飾,憲不忍爲也。」
토론하기
(1) 여러분이 생각하는 ‘나를 위한 공부’란 무엇인가요?
(2) 좋은 성적을 받고도 부끄러웠던 순간이 있나요?
해설읽기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보다 적게는 약 열 살에서 많게는 오십 살 가까이 어렸는데, 원헌은 공자보다 서른여섯 살이 적었다고 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원헌은 초야에 묻혀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자의 다른 제자 중 하나인 자공이 크고 화려한 수레를 타고 많은 시종을 거느린 채로 원헌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자공은 재상의 신분이었다. 원헌은 다 낡아서 해진 의관밖에는 없었지만 차림새를 단정히 하고 나와 자공을 만났다. 그런 원헌을 본 자공은 혀를 차며 왜 그렇게 힘들고 괴롭게 사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때 돌아온 원헌의 대답은 자공을 한 대 얻어맞은 듯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편치 못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난 자공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그날 했던 말을 부끄러워했다고 전한다.
원헌은 가난하게 사는 것과 괴롭게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가난함’이란 재산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만 ‘괴로움’이란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원헌은 자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헌이 삶에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일들은 바로 남들로부터 받게 될 좋은 평판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하는 것, 의견이 나와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 하는 것, 남한테 과시하려는 목적이나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 겉으로는 도덕적인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나쁜 행동을 하고 사치를 부리는 것 등이었다. 이런 것들을 하며 사는 삶은 원헌이 보기에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사는 삶’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칠십 제자 중 하나였던 만큼 원헌의 삶에서 배움 혹은 공부는 커다란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특히 인생의 스승이었던 공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더더욱 자신이 그동안 공부하고 배워왔던 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원헌에게 있어 열심히 공부해온 시간과 노력은 돈과 명예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초야에 묻혀 사는 그의 삶은 오히려 찢어지게 가난한 쪽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해온 공부가 돈도 명예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일까? 물리적인 보상이 담보되지도 않는데 열심히 공부하며 사는 삶이란 혹시 그저 괴롭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옛날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는지 공자는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다.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를 하는구나!” 공자가 말하는 ‘오늘날의 학자들’이란 바로 지금으로부터 이천여 년 전인 기원전 5~6세기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다른 많은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할 때 역시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은 우리의 모습은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듯하다.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은 그런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인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었다. 공자보다 약 250년 뒤의 시대를 살았던 순자는 ‘학문을 권장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권학편」이라는 글 속에서 위기지학을 하는 사람과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을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에 대응시킨다. 순자의 말에 따르면, 군자는 유익한 내용을 듣게 되면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가 행동으로 실천한다. 반면, 소인은 무언가 괜찮은 내용을 듣기만 하면 그것을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들 틈도 없이 곧바로 입으로 말해버린다. 위기지학을 하는 군자는 그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더 멋지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위인지학을 하는 소인은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며 그래서 실질적인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위인지학. 얼핏 좋아 보이고 마음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군자가 아닌 소인이 되는 것이라 해도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 길 끝에 결국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을 위해 하는 공부는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나는 탄산음료와 같다. 어떤 일이든 내가 아닌 남에게 기준을 두는 순간 부와 명예는 계속 쌓일지 몰라도 마음은 쉽게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크고 화려한 수레를 타고 원헌을 찾아갔다가 평생 잊지 못할 부끄러운 마음만 안고 돌아온 자공의 이야기를 가끔 떠올려보자.
키워드
공부, 군자, 목적, 소인, 위기지학, 위인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