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시에서 화자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시(挽歌詩)의 형식을 빌려 자신이 죽었을 때의 정경과 감회를 상상해 서술했다. 전체 세 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망에서 안장까지 이어지는 장례 절차에 따라 그 정경을 각 수에 나누어 담았다. 먼저 제1수에서는 죽음에서 입관까지의 과정과 빈소의 정경을, 제2수에서는 제사를 지낸 후 발인하기까지의 과정을, 제3수에서는 운구와 안장, 조문객들의 귀가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자신의 죽음을 다루고 있음에도 감정 표출에 치우치지 않고 절제된 표현 속에 죽음에 달관한 태도를 견지한 것이 특징적이다.
고전본문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기 마련
일찍 죽는다고 명이 짧아진 것은 아니다.
엊저녁만 해도 똑같이 산 사람이었는데
오늘 아침엔 귀신 명부에 이름 올랐구나.
혼백은 흩어져 어디로 가버렸나?
뻣뻣해진 육신 빈 관 속에 맡겨두고.
귀여운 아이는 아비 찾으며 울고
친한 친구는 날 어루만지며 곡하네.
이해득실 더 이상 알지 못하는데
시비를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
천 년 지나고 만 년 지난 후에
그 누가 나의 영욕을 알겠는가.
단지 유감인 것은 살아 있을 때
술을 만족스럽게 마시지 못한 것.
살아생전엔 마실 술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엔 비었던 잔이 넘친다.
봄 막걸리에 거품이 보글보글 일지만
언제 다시 이 술을 맛볼 수 있을까.
안주상이 내 앞에 가득 차려지고
친구들은 내 곁에서 통곡을 하네.
말하려 해도 입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보려고 해도 눈에 빛이 들어오지 않네.
생전엔 좋은 집에서 잠을 잤는데
오늘은 거친 들판에서 자는구나.
하루아침에 문을 나서 떠나니
돌아올 날 참으로 기약이 없지.
황량한 풀 어찌 그리 끝없이 무성한가.
백양나무도 바람에 우수수 소리를 낸다.
된서리 내리는 구월에
나를 전송하러 멀리 교외로 나가는데
사방에 인가는 없고
높은 무덤들만 우뚝 솟았네.
말은 하늘 쳐다보며 울고
바람도 혼자 쓸쓸히 분다.
무덤구덩이 한번 닫혀 버리면
천년 동안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으리.
천년 동안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음은
현달한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일.
앞서 나를 전송하러 왔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구나.
친척들은 어쩌면 슬픔이 남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벌써 노래를 하겠지.
이제 죽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몸을 맡겨 산언덕과 하나 되었는데.
[출전] 「挽歌詩」
토론하기
(1)이 시를 읽으면서 화자의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무덤덤하게 느껴지는가? 슬프게 느껴진다면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무덤덤하게 느껴진다면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이야기해 보자.
(2) 화자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신의 관점과 어떤 면이 같고 어떤 면이 다른가? 죽음을 염두에 두었을 때 나의 인생관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3)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혹은 자신이 죽은 후의 정경을 묘사하는 시를 지어 친구들과 함께 읽어 보자.
해설읽기
이 시는 세 수 전체에 걸쳐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서술한다는 독특한 발상으로 이루어졌다.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화두인 죽음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보여주고자 했다. 시에서 화자는 자신이 죽었을 때를 상상해 장례 정경을 묘사하고 감회를 서술하는 한편으로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시에서 묘사한 장례 정경은 사실적이긴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개략적이며, 이로 인해 시에서 다룬 죽음은 구체적 사건으로서 특정한 개인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죽음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시에서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점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유행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시인이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혼란한 정치와 잦은 전란과 기근 속에서 사대부들 사이에서 삶에 초연한 자세를 보여준 노장(老壯) 사상이 유행했고, 도가(道家)의 무위(無爲) 사상과 불가의 염세사상에 바탕을 둔 청담(淸談)이 성행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죽음을 소재로 한 시가 많이 창작되었고, 이 시 역시 그러한 영향 하에서 나온 것이다.
화자는 비록 절제된 모습이기는 하나 세상과의 이별에 따른 비통함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망자(亡者)의 외로움을 토로했다. 비통한 감정은 “귀여운 아이는 아비 찾으며 울고, 친한 친구는 날 어루만지며 곡하네.”, “친구들은 내 곁에서 통곡을 하네.”, “말하려 해도 입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보려고 해도 눈에 빛이 들어오지 않네.” 등의 구절에서 느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망자의 외로움은 “하루아침에 문을 나서 떠나니 돌아올 날 참으로 기약이 없지.”, “말은 하늘 쳐다보며 울고 바람도 혼자 쓸쓸히 분다.”, “앞서 나를 전송하러 왔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구나.” 등의 구절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화자는 비애의 색채가 짙은 정경과 감회를 서술하면서도 극적인 감정 표출을 절제하고 마치 자신과 관련이 없는 제3자의 죽음을 다루듯 담담한 태도를 견지한다. 그에게 죽음이란 인간의 당연한 숙명이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생사관은 시의 도입부에서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기 마련, 일찍 죽는다고 명이 짧아진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나 마지막에 “이제 죽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몸을 맡겨 산언덕과 하나 되었는데.”라고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초연한 태도와 담담한 어조를 통해 시인은 인간이란 자연 속에서 살아가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순응자연의 사상을 드러냈다.
죽음에 대한 달관은 그대로 삶에 대한 달관으로 이어진다. 화자는 “이해득실 더 이상 알지 못하는데 시비를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 “천 년 지나고 만 년 지난 후에 그 누가 나의 영욕을 알겠는가.”라는 구절을 통해 죽음을 통해 얻게 될, 삶의 이해득실과 시비, 영욕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드러냈다. 또, 제1수의 마지막에 “단지 유감인 것은 살아 있을 때 술을 만족스럽게 마시지 못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익과 영예를 더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술을 더 못 마신 것이 아쉽다는 말에서 삶에 대한 집착과 회한으로부터 초탈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달관의 경지는 죽음을 객관화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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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맥락
이 시에서 화자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시(挽歌詩)의 형식을 빌려 자신이 죽었을 때의 정경과 감회를 상상해 서술했다. 전체 세 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망에서 안장까지 이어지는 장례 절차에 따라 그 정경을 각 수에 나누어 담았다. 먼저 제1수에서는 죽음에서 입관까지의 과정과 빈소의 정경을, 제2수에서는 제사를 지낸 후 발인하기까지의 과정을, 제3수에서는 운구와 안장, 조문객들의 귀가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자신의 죽음을 다루고 있음에도 감정 표출에 치우치지 않고 절제된 표현 속에 죽음에 달관한 태도를 견지한 것이 특징적이다.
고전본문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기 마련
일찍 죽는다고 명이 짧아진 것은 아니다.
엊저녁만 해도 똑같이 산 사람이었는데
오늘 아침엔 귀신 명부에 이름 올랐구나.
혼백은 흩어져 어디로 가버렸나?
뻣뻣해진 육신 빈 관 속에 맡겨두고.
귀여운 아이는 아비 찾으며 울고
친한 친구는 날 어루만지며 곡하네.
이해득실 더 이상 알지 못하는데
시비를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
천 년 지나고 만 년 지난 후에
그 누가 나의 영욕을 알겠는가.
단지 유감인 것은 살아 있을 때
술을 만족스럽게 마시지 못한 것.
살아생전엔 마실 술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엔 비었던 잔이 넘친다.
봄 막걸리에 거품이 보글보글 일지만
언제 다시 이 술을 맛볼 수 있을까.
안주상이 내 앞에 가득 차려지고
친구들은 내 곁에서 통곡을 하네.
말하려 해도 입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보려고 해도 눈에 빛이 들어오지 않네.
생전엔 좋은 집에서 잠을 잤는데
오늘은 거친 들판에서 자는구나.
하루아침에 문을 나서 떠나니
돌아올 날 참으로 기약이 없지.
황량한 풀 어찌 그리 끝없이 무성한가.
백양나무도 바람에 우수수 소리를 낸다.
된서리 내리는 구월에
나를 전송하러 멀리 교외로 나가는데
사방에 인가는 없고
높은 무덤들만 우뚝 솟았네.
말은 하늘 쳐다보며 울고
바람도 혼자 쓸쓸히 분다.
무덤구덩이 한번 닫혀 버리면
천년 동안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으리.
천년 동안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음은
현달한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일.
앞서 나를 전송하러 왔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구나.
친척들은 어쩌면 슬픔이 남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벌써 노래를 하겠지.
이제 죽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몸을 맡겨 산언덕과 하나 되었는데.
[출전] 「挽歌詩」
토론하기
(1)이 시를 읽으면서 화자의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무덤덤하게 느껴지는가? 슬프게 느껴진다면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무덤덤하게 느껴진다면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이야기해 보자.
(2) 화자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신의 관점과 어떤 면이 같고 어떤 면이 다른가? 죽음을 염두에 두었을 때 나의 인생관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3)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혹은 자신이 죽은 후의 정경을 묘사하는 시를 지어 친구들과 함께 읽어 보자.
해설읽기
이 시는 세 수 전체에 걸쳐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서술한다는 독특한 발상으로 이루어졌다.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화두인 죽음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보여주고자 했다. 시에서 화자는 자신이 죽었을 때를 상상해 장례 정경을 묘사하고 감회를 서술하는 한편으로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시에서 묘사한 장례 정경은 사실적이긴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개략적이며, 이로 인해 시에서 다룬 죽음은 구체적 사건으로서 특정한 개인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죽음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시에서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점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유행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시인이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혼란한 정치와 잦은 전란과 기근 속에서 사대부들 사이에서 삶에 초연한 자세를 보여준 노장(老壯) 사상이 유행했고, 도가(道家)의 무위(無爲) 사상과 불가의 염세사상에 바탕을 둔 청담(淸談)이 성행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죽음을 소재로 한 시가 많이 창작되었고, 이 시 역시 그러한 영향 하에서 나온 것이다.
화자는 비록 절제된 모습이기는 하나 세상과의 이별에 따른 비통함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망자(亡者)의 외로움을 토로했다. 비통한 감정은 “귀여운 아이는 아비 찾으며 울고, 친한 친구는 날 어루만지며 곡하네.”, “친구들은 내 곁에서 통곡을 하네.”, “말하려 해도 입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보려고 해도 눈에 빛이 들어오지 않네.” 등의 구절에서 느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망자의 외로움은 “하루아침에 문을 나서 떠나니 돌아올 날 참으로 기약이 없지.”, “말은 하늘 쳐다보며 울고 바람도 혼자 쓸쓸히 분다.”, “앞서 나를 전송하러 왔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구나.” 등의 구절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화자는 비애의 색채가 짙은 정경과 감회를 서술하면서도 극적인 감정 표출을 절제하고 마치 자신과 관련이 없는 제3자의 죽음을 다루듯 담담한 태도를 견지한다. 그에게 죽음이란 인간의 당연한 숙명이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생사관은 시의 도입부에서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기 마련, 일찍 죽는다고 명이 짧아진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나 마지막에 “이제 죽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몸을 맡겨 산언덕과 하나 되었는데.”라고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초연한 태도와 담담한 어조를 통해 시인은 인간이란 자연 속에서 살아가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순응자연의 사상을 드러냈다.
죽음에 대한 달관은 그대로 삶에 대한 달관으로 이어진다. 화자는 “이해득실 더 이상 알지 못하는데 시비를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 “천 년 지나고 만 년 지난 후에 그 누가 나의 영욕을 알겠는가.”라는 구절을 통해 죽음을 통해 얻게 될, 삶의 이해득실과 시비, 영욕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드러냈다. 또, 제1수의 마지막에 “단지 유감인 것은 살아 있을 때 술을 만족스럽게 마시지 못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익과 영예를 더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술을 더 못 마신 것이 아쉽다는 말에서 삶에 대한 집착과 회한으로부터 초탈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달관의 경지는 죽음을 객관화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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