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글은 소식이 황주(黄州)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47세 때 황주 황강(黃岡)의 적벽을 유람하고 쓴 문장이다. 작품의 도입부에서는 밤중에 배를 타고 본 적벽의 풍경과 감회를 담았고, 중간부터는 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서술했다. 작자가 정치적으로 실권하여 정신적 고통이 컸던 시기에 쓴 글임에도 인생을 관조하는 달관적인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어느 가을날 나 소식(蘇軾)은 객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 아래를 유람하였다. 배 위에는 술상이 차려졌다. 나는 슬슬 술기운이 올라 노래 한 곡조를 뽑았고, 신선이 된 듯 들떴다. 객 가운데 퉁소를 부는 이가 있어 반주를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구슬프다.
고전본문
나 소식은 근심스런 얼굴로 옷깃을 바로하고 똑바로 앉아 객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구슬프오?”
객이 대답했다.
“(…중략…) 조맹덕(曹孟德)은 (…중략…) 진정 한시대의 영웅이었건만, 지금은 어디에 갔소?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 베며 물고기와 새우,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는 처지니 오죽하겠소. 일엽편주를 몰아 표주박 잔을 들고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인생을 천지에 맡기니 넓고 넓은 바다 속의 좁쌀처럼 보잘것없소. 우리 인생이 한순간임을 슬퍼하며 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하여, 나는 신선을 끼고 마음껏 노닐며 밝은 달을 끌어안고 오래 살려 하지요. 그러나 갑자기 그리될 수는 없음을 알아, 슬픈 바람에 여운을 맡기기 때문이지요.”
나 소식은 말했다.
“그대는 강물과 달에 대해 아시는지? 강물은 흘러가기는 저렇게 계속 흘러가지만 아주 가 버린 적은 없소. 달은 차고 기울기는 저렇게 계속 변하지만 끝내 완전히 커지거나 줄어들지는 않소.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단 한순간도 같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과 우리 모두가 끝이 없소. 그러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또 천지간에 만물은 모두 주인이 있지요. 만약 자기 것이 아니면 터럭 하나라도 가질 수 없소.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누구나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색깔이 된다오. 가진다고 해도 금지하는 이가 없고, 써도 다함이 없소. 이것이 조물주의 끝없이 쓸 수 있는 보물이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라오.”
객은 즐거워하며 웃고, 잔을 씻어 번갈아 따라 마셨다. 안주는 이미 바닥나고 술잔과 접시는 어지럽게 흩어졌다. 배 안에서 서로 베고 깔고 누웠으니, 동쪽이 이미 환해진 것도 몰랐다.
「전적벽부(前赤壁賦)」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소식의 말은 객의 우울함을 풀어 주었다. 소식이 제시한 인생관을 설명해 보자.
(2) 내가 객이라면 소식의 말에 동의했을까? 만약 동의한다면 어떤 점이 마음을 움직였는가?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점을 반박하고 싶은가?
(3)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개인은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과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소식의 관점을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감을 해결하는 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이 글에서 저자는 객과의 대화를 통해 초월적이고 달관적인 인생관을 제시했다. 이러한 인생관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견해를 곧바로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객과 대화를 나눈다는 상황을 설정해 먼저 객의 견해를 서술하고, 여기에 반박하는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다음 마지막에 객 역시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게 되었다는 구성을 취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저자의 관조적 인생관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먼저 객은 인간이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허무함과 비애를 토로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도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하물며 큰 업적도 못 이룰 나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나?’ 이는 현대인들도 누구나 한번쯤 해 봤을 고민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기 쉽고, 따라서 이처럼 인생무상에서 오는 허무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저자는 인생이 한순간일 뿐이며 인간은 좁쌀처럼 의미 없는 존재라는 객의 견해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들려준다. 그는 인생의 유한함과 세상의 빠른 변화에 대해 관점을 바꿔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면서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단 한순간도 같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과 우리 모두가 끝이 없다’고 말한다. 변한다는 측면에서는 인생을 포함해 모든 것이 변해서 결국 없어지고 말지만, 변하지 않는 측면을 본다면 영원히 그대로인 것들이 있다. 계절의 순환도 그렇다. 자연의 표면적인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그러한 계절의 순환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개인의 측면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해 결국 사멸에 이르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이 태어나 죽는다는 이치는 변하지 않고, 각 개개인의 삶도 그러한 영원한 이치 안에 존재한다. 이처럼 인간 역시 만물과 동등하게 영원한 이치 안에 존재하며, 한 개인의 삶도 전체 인간 집단의 영속성 안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거시적인 관점은 개인적 영달에 대한 집착이나 내적으로 침잠하는 허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전후맥락
이 글은 소식이 황주(黄州)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47세 때 황주 황강(黃岡)의 적벽을 유람하고 쓴 문장이다. 작품의 도입부에서는 밤중에 배를 타고 본 적벽의 풍경과 감회를 담았고, 중간부터는 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서술했다. 작자가 정치적으로 실권하여 정신적 고통이 컸던 시기에 쓴 글임에도 인생을 관조하는 달관적인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어느 가을날 나 소식(蘇軾)은 객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 아래를 유람하였다. 배 위에는 술상이 차려졌다. 나는 슬슬 술기운이 올라 노래 한 곡조를 뽑았고, 신선이 된 듯 들떴다. 객 가운데 퉁소를 부는 이가 있어 반주를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구슬프다.
고전본문
나 소식은 근심스런 얼굴로 옷깃을 바로하고 똑바로 앉아 객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구슬프오?”
객이 대답했다.
“(…중략…) 조맹덕(曹孟德)은 (…중략…) 진정 한시대의 영웅이었건만, 지금은 어디에 갔소?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 베며 물고기와 새우,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는 처지니 오죽하겠소. 일엽편주를 몰아 표주박 잔을 들고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인생을 천지에 맡기니 넓고 넓은 바다 속의 좁쌀처럼 보잘것없소. 우리 인생이 한순간임을 슬퍼하며 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하여, 나는 신선을 끼고 마음껏 노닐며 밝은 달을 끌어안고 오래 살려 하지요. 그러나 갑자기 그리될 수는 없음을 알아, 슬픈 바람에 여운을 맡기기 때문이지요.”
나 소식은 말했다.
“그대는 강물과 달에 대해 아시는지? 강물은 흘러가기는 저렇게 계속 흘러가지만 아주 가 버린 적은 없소. 달은 차고 기울기는 저렇게 계속 변하지만 끝내 완전히 커지거나 줄어들지는 않소.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단 한순간도 같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과 우리 모두가 끝이 없소. 그러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또 천지간에 만물은 모두 주인이 있지요. 만약 자기 것이 아니면 터럭 하나라도 가질 수 없소.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누구나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색깔이 된다오. 가진다고 해도 금지하는 이가 없고, 써도 다함이 없소. 이것이 조물주의 끝없이 쓸 수 있는 보물이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라오.”
객은 즐거워하며 웃고, 잔을 씻어 번갈아 따라 마셨다. 안주는 이미 바닥나고 술잔과 접시는 어지럽게 흩어졌다. 배 안에서 서로 베고 깔고 누웠으니, 동쪽이 이미 환해진 것도 몰랐다.
「전적벽부(前赤壁賦)」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소식의 말은 객의 우울함을 풀어 주었다. 소식이 제시한 인생관을 설명해 보자.
(2) 내가 객이라면 소식의 말에 동의했을까? 만약 동의한다면 어떤 점이 마음을 움직였는가?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점을 반박하고 싶은가?
(3)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개인은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과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소식의 관점을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감을 해결하는 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이 글에서 저자는 객과의 대화를 통해 초월적이고 달관적인 인생관을 제시했다. 이러한 인생관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견해를 곧바로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객과 대화를 나눈다는 상황을 설정해 먼저 객의 견해를 서술하고, 여기에 반박하는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다음 마지막에 객 역시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게 되었다는 구성을 취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저자의 관조적 인생관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먼저 객은 인간이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허무함과 비애를 토로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도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하물며 큰 업적도 못 이룰 나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나?’ 이는 현대인들도 누구나 한번쯤 해 봤을 고민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기 쉽고, 따라서 이처럼 인생무상에서 오는 허무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저자는 인생이 한순간일 뿐이며 인간은 좁쌀처럼 의미 없는 존재라는 객의 견해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들려준다. 그는 인생의 유한함과 세상의 빠른 변화에 대해 관점을 바꿔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면서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단 한순간도 같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과 우리 모두가 끝이 없다’고 말한다. 변한다는 측면에서는 인생을 포함해 모든 것이 변해서 결국 없어지고 말지만, 변하지 않는 측면을 본다면 영원히 그대로인 것들이 있다. 계절의 순환도 그렇다. 자연의 표면적인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그러한 계절의 순환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개인의 측면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해 결국 사멸에 이르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이 태어나 죽는다는 이치는 변하지 않고, 각 개개인의 삶도 그러한 영원한 이치 안에 존재한다. 이처럼 인간 역시 만물과 동등하게 영원한 이치 안에 존재하며, 한 개인의 삶도 전체 인간 집단의 영속성 안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거시적인 관점은 개인적 영달에 대한 집착이나 내적으로 침잠하는 허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