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이 글은 유가의 공적과 우월함을 강조함으로써 유가의 부흥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유가에 대한 한유의 관점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한유는 이 글에서 유가 사상이야말로 도의 근원이고, 도가와 불가는 도의 실현에 방해되는 해로운 것이라며 극력 배척했다. 치밀한 구성과 힘찬 기세, 파격적 서술로 도가와 불가의 해악을 강조했다. 유가의 우월함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기보다는 도가와 불가를 비판하는 데만 치중했다는 비판도 있다. 글의 제목 ‘원도(原道)’는 ‘도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한유는 이 글 이외에 「원성(原性)」, 「원훼(原毁)」, 「원인(原人)」, 「원귀(原鬼)」를 썼다.
[고전본문]
노자(老子)가 인의(仁義)를 하찮게 여긴 것은 그것을 헐뜯은 것이 아니다. 그가 본 것이 작았기 때문이다.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 것은 하늘이 작아서가 아니다. 그는 자그마한 은혜를 인으로 여기고, 조그마한 선행을 의라 여겼으니 그것을 하찮게 여긴 것이 당연하다. 그가 말하는 도는 그가 도라고 여기는 바를 도라고 한 것이지 내가 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덕은 그가 덕이라고 여기는 바를 덕이라고 한 것이지 내가 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릇 내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 의를 합하여 말한 것으로서 천하에 공인된 견해이다. 노자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 의를 버리고 말한 것으로서, 개인의 사사로운 견해이다.
(…중략…)
[2] 군주는 명령을 내는 존재이다. 신하는 군주의 명령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존재이다. 백성은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는 존재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지 않으면 군주의 도리를 잃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의 명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않고, 백성이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고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불가에서는 반드시 그대들의 군신 관계를 버리고 부자 관계를 버리며, 서로 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금하여, 이른바 청정(淸淨)과 적멸(寂滅)의 경지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중략…)
[3] 공자가 『춘추』를 저술하실 때, 제후들이 오랑캐의 예를 사용하면 오랑캐로 간주하고, 오랑캐라도 중국의 예법에 나아가면 중국으로 간주하셨다. 『논어』에 이르기를, “오랑캐에게 군주가 있어도 중국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를 쳐부수세, 형(荊)나라와 서(舒)나라를 징벌하세.”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랑캐의 법(서역에서 온 불가를 가리킴)을 가져다가 선왕의 가르침 위에 놓으니, 온통 오랑캐가 될 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중략…)
[4] “그렇다면 어찌하면 되겠는가?” 대답한다.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고, 불가와 도가를 저지하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그들을 환속시키고, 그 서적들을 불태우며, 그들의 거처를 민가로 돌리고, 선왕의 도를 밝혀 그들을 인도하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무의탁 노인과 장애자와 병자를 봉양한다면, 역시 괜찮은 생각이다.”
「원도(原道)」 中에서
(…중략…)
[2] 군주는 명령을 내는 존재이다. 신하는 군주의 명령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존재이다. 백성은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는 존재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지 않으면 군주의 도리를 잃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의 명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않고, 백성이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고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불가에서는 반드시 그대들의 군신 관계를 버리고 부자 관계를 버리며, 서로 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금하여, 이른바 청정(淸淨)과 적멸(寂滅)의 경지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중략…)
[3] 공자가 『춘추』를 저술하실 때, 제후들이 오랑캐의 예를 사용하면 오랑캐로 간주하고, 오랑캐라도 중국의 예법에 나아가면 중국으로 간주하셨다. 『논어』에 이르기를, “오랑캐에게 군주가 있어도 중국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를 쳐부수세, 형(荊)나라와 서(舒)나라를 징벌하세.”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랑캐의 법(서역에서 온 불가를 가리킴)을 가져다가 선왕의 가르침 위에 놓으니, 온통 오랑캐가 될 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중략…)
[4] “그렇다면 어찌하면 되겠는가?” 대답한다.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고, 불가와 도가를 저지하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그들을 환속시키고, 그 서적들을 불태우며, 그들의 거처를 민가로 돌리고, 선왕의 도를 밝혀 그들을 인도하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무의탁 노인과 장애자와 병자를 봉양한다면, 역시 괜찮은 생각이다.”
「원도(原道)」 中에서
토론하기
(1) 작자가 노자의 사상에 반대한 근거를 찾아보자. 그 근거가 타당한가? 타당하다면 왜 그런지, 타당하지 않다면 왜 그런지 이야기해 보자.
(2) 작자가 불가의 사상에 반대한 근거를 찾아보자. 그 근거가 타당한가? 타당하다면 왜 그런지, 타당하지 않다면 왜 그런지 이야기해 보자.
(3) 작자는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고, 불가와 도가를 저지하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불가와 도가의 수행자들을 환속시키고, 그들의 서적을 불태우고, 절과 도교 사찰을 민가로 돌릴 것을 주장한다. 작자의 주장과 해결 방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자.
해설읽기
작자가 노자의 사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락[1]에 보이며,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노자는 인의(仁義)를 하찮게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나의 사상은 천하에 공인된 견해인데 반해, 노자의 사상은 개인의 사사로운 견해이기 때문이다.
먼저, 작자는 도가의 시조인 노자가 인의의 개념을 편협한 관점을 가지고 잘못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자가 인의를 하찮게 여긴 것은 그가 본 것이 작았기 때문으로, 이는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는 자그마한 은혜를 인으로 여기고, 조그마한 선행을 의라 여겼다.’고 했다. 노자는 인위적인 것을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인간 행위에 대한 인위적 행동 규범으로서 인의에 반대했다. 그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인(仁)을 끊고 의(義)를 버리면 사람들이 효도와 자애를 되찾게 된다.”, “큰 도(道)가 사라지자 인의가 생겼다.”고 했다. 또, 노자의 영향을 받은 장자(莊子)는 「대종사(大宗師)」에서 허유(許由)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요임금이 인의를 가지고 얼굴에 글씨를 새기는 형벌을 가했다.”고 하여 인의를 형벌에 비유했다. 노장(老莊) 사상으로 대표되는 도가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따르는 것을 최고로 여겼는데 인의가 행위에 제약을 가하고 참된 본성을 속박해 오히려 천성을 왜곡하고 무위자연의 경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고 본 것이다.
또 도가에서는 부자(父子), 군신(君臣) 등 인간의 모든 차등적 관계로부터의 초월을 추구했다. 따라서 이러한 차등적 관계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인의보다는 천지만물에 대한 사사로움 없는 포용이 보다 높은 경지이며, 경계를 뛰어 넘는 이러한 경지를 추구하는 데 있어 인의는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된다. 도가의 관점에서 보면 유가의 인의는 인간을 구분 짓고 비교하는 가치 판단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사사로운 편애(偏愛)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노자가 인의를 부정한 데에는 나름의 사상적 근거가 있다. 그럼에도 작자는 노자의 관점이 어떤 점에서 편협한지 논하지 않고, 근거 없이 그것이 편협하다고 단정 지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작자는 ‘내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공인된 견해이고, 노자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견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나’는 유가를 대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언술을 요약하면 ‘유가의 도덕은 공인된 것이고 노자의 도덕은 사사로운 것이다’라는 주장이 된다. 그런데 작자는 여기에서도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작자가 노자의 사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락[2]와 [3]에 보이며,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군주, 신하, 백성에게는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이 있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각자의 도리를 잃게 되는데 불가에서는 군신(君臣) 관계와 부자(父子) 관계를 버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불가는 오랑캐의 법이기 때문이다. 유가의 대표 인물인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하여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한편, 불가에서는 세속의 번뇌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난 적멸(寂滅), 즉 열반의 경지를 추구하고, 내적 수행을 위해 인륜을 벗어나 출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작자는 불가가 인륜관계를 버리라고 한다는 점을 들어 불가를 비판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가, 내적 수행을 통해 적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정해진 답이 없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마다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끝으로 작자가 불가가 오랑캐의 법이기 때문에 비판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불가가 인도에서 전해져 왔고, 인도는 오랑캐의 땅이며, 오랑캐는 중화 민족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에 불가는 열등하다는 사유는 배타적 자문화중심주의인 중화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이 글에서 작자는 유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도가와 불가에 대한 심층적 이해 없이 그것들을 비판하는 배타적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인정하는 가치, 사상, 종교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그르다는 생각은 문화 발전의 중요한 기재인 문화 다양성을 해치는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가, 불가, 도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화 속에 공존해 왔으며, 모두 중국의 사상 체계를 풍부하게 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가운데 어떤 사상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그르다고 할 수 없고, 객관적인 우열을 따지기도 어렵다.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가치, 사상,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있어서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것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그르다는 배타주의를 버리고, 자신의 것과 다른 가치, 사상, 종교, 문화를 포용하고 그 장점을 인정할 수 있는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앞뒤 맥락]
이 글은 유가의 공적과 우월함을 강조함으로써 유가의 부흥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유가에 대한 한유의 관점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한유는 이 글에서 유가 사상이야말로 도의 근원이고, 도가와 불가는 도의 실현에 방해되는 해로운 것이라며 극력 배척했다. 치밀한 구성과 힘찬 기세, 파격적 서술로 도가와 불가의 해악을 강조했다. 유가의 우월함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기보다는 도가와 불가를 비판하는 데만 치중했다는 비판도 있다. 글의 제목 ‘원도(原道)’는 ‘도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한유는 이 글 이외에 「원성(原性)」, 「원훼(原毁)」, 「원인(原人)」, 「원귀(原鬼)」를 썼다.
[고전본문]
노자(老子)가 인의(仁義)를 하찮게 여긴 것은 그것을 헐뜯은 것이 아니다. 그가 본 것이 작았기 때문이다.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 것은 하늘이 작아서가 아니다. 그는 자그마한 은혜를 인으로 여기고, 조그마한 선행을 의라 여겼으니 그것을 하찮게 여긴 것이 당연하다. 그가 말하는 도는 그가 도라고 여기는 바를 도라고 한 것이지 내가 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덕은 그가 덕이라고 여기는 바를 덕이라고 한 것이지 내가 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릇 내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 의를 합하여 말한 것으로서 천하에 공인된 견해이다. 노자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 의를 버리고 말한 것으로서, 개인의 사사로운 견해이다.
(…중략…)
[2] 군주는 명령을 내는 존재이다. 신하는 군주의 명령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존재이다. 백성은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는 존재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지 않으면 군주의 도리를 잃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의 명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않고, 백성이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고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불가에서는 반드시 그대들의 군신 관계를 버리고 부자 관계를 버리며, 서로 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금하여, 이른바 청정(淸淨)과 적멸(寂滅)의 경지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중략…)
[3] 공자가 『춘추』를 저술하실 때, 제후들이 오랑캐의 예를 사용하면 오랑캐로 간주하고, 오랑캐라도 중국의 예법에 나아가면 중국으로 간주하셨다. 『논어』에 이르기를, “오랑캐에게 군주가 있어도 중국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를 쳐부수세, 형(荊)나라와 서(舒)나라를 징벌하세.”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랑캐의 법(서역에서 온 불가를 가리킴)을 가져다가 선왕의 가르침 위에 놓으니, 온통 오랑캐가 될 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중략…)
[4] “그렇다면 어찌하면 되겠는가?” 대답한다.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고, 불가와 도가를 저지하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그들을 환속시키고, 그 서적들을 불태우며, 그들의 거처를 민가로 돌리고, 선왕의 도를 밝혀 그들을 인도하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무의탁 노인과 장애자와 병자를 봉양한다면, 역시 괜찮은 생각이다.”
「원도(原道)」 中에서
(…중략…)
[2] 군주는 명령을 내는 존재이다. 신하는 군주의 명령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존재이다. 백성은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는 존재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지 않으면 군주의 도리를 잃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의 명을 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않고, 백성이 곡식과 직물을 생산하고 기물과 그릇을 만들고 재화를 유통시켜 군주를 섬기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지금 불가에서는 반드시 그대들의 군신 관계를 버리고 부자 관계를 버리며, 서로 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금하여, 이른바 청정(淸淨)과 적멸(寂滅)의 경지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중략…)
[3] 공자가 『춘추』를 저술하실 때, 제후들이 오랑캐의 예를 사용하면 오랑캐로 간주하고, 오랑캐라도 중국의 예법에 나아가면 중국으로 간주하셨다. 『논어』에 이르기를, “오랑캐에게 군주가 있어도 중국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를 쳐부수세, 형(荊)나라와 서(舒)나라를 징벌하세.”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랑캐의 법(서역에서 온 불가를 가리킴)을 가져다가 선왕의 가르침 위에 놓으니, 온통 오랑캐가 될 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중략…)
[4] “그렇다면 어찌하면 되겠는가?” 대답한다.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고, 불가와 도가를 저지하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그들을 환속시키고, 그 서적들을 불태우며, 그들의 거처를 민가로 돌리고, 선왕의 도를 밝혀 그들을 인도하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무의탁 노인과 장애자와 병자를 봉양한다면, 역시 괜찮은 생각이다.”
「원도(原道)」 中에서
토론하기
(1) 작자가 노자의 사상에 반대한 근거를 찾아보자. 그 근거가 타당한가? 타당하다면 왜 그런지, 타당하지 않다면 왜 그런지 이야기해 보자.
(2) 작자가 불가의 사상에 반대한 근거를 찾아보자. 그 근거가 타당한가? 타당하다면 왜 그런지, 타당하지 않다면 왜 그런지 이야기해 보자.
(3) 작자는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전해지지 못하고, 불가와 도가를 저지하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불가와 도가의 수행자들을 환속시키고, 그들의 서적을 불태우고, 절과 도교 사찰을 민가로 돌릴 것을 주장한다. 작자의 주장과 해결 방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자.
해설읽기
작자가 노자의 사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락[1]에 보이며,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노자는 인의(仁義)를 하찮게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나의 사상은 천하에 공인된 견해인데 반해, 노자의 사상은 개인의 사사로운 견해이기 때문이다.
먼저, 작자는 도가의 시조인 노자가 인의의 개념을 편협한 관점을 가지고 잘못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자가 인의를 하찮게 여긴 것은 그가 본 것이 작았기 때문으로, 이는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는 자그마한 은혜를 인으로 여기고, 조그마한 선행을 의라 여겼다.’고 했다. 노자는 인위적인 것을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인간 행위에 대한 인위적 행동 규범으로서 인의에 반대했다. 그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인(仁)을 끊고 의(義)를 버리면 사람들이 효도와 자애를 되찾게 된다.”, “큰 도(道)가 사라지자 인의가 생겼다.”고 했다. 또, 노자의 영향을 받은 장자(莊子)는 「대종사(大宗師)」에서 허유(許由)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요임금이 인의를 가지고 얼굴에 글씨를 새기는 형벌을 가했다.”고 하여 인의를 형벌에 비유했다. 노장(老莊) 사상으로 대표되는 도가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따르는 것을 최고로 여겼는데 인의가 행위에 제약을 가하고 참된 본성을 속박해 오히려 천성을 왜곡하고 무위자연의 경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고 본 것이다.
또 도가에서는 부자(父子), 군신(君臣) 등 인간의 모든 차등적 관계로부터의 초월을 추구했다. 따라서 이러한 차등적 관계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인의보다는 천지만물에 대한 사사로움 없는 포용이 보다 높은 경지이며, 경계를 뛰어 넘는 이러한 경지를 추구하는 데 있어 인의는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된다. 도가의 관점에서 보면 유가의 인의는 인간을 구분 짓고 비교하는 가치 판단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사사로운 편애(偏愛)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노자가 인의를 부정한 데에는 나름의 사상적 근거가 있다. 그럼에도 작자는 노자의 관점이 어떤 점에서 편협한지 논하지 않고, 근거 없이 그것이 편협하다고 단정 지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작자는 ‘내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공인된 견해이고, 노자가 도와 덕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견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나’는 유가를 대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언술을 요약하면 ‘유가의 도덕은 공인된 것이고 노자의 도덕은 사사로운 것이다’라는 주장이 된다. 그런데 작자는 여기에서도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작자가 노자의 사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락[2]와 [3]에 보이며,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군주, 신하, 백성에게는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이 있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각자의 도리를 잃게 되는데 불가에서는 군신(君臣) 관계와 부자(父子) 관계를 버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불가는 오랑캐의 법이기 때문이다. 유가의 대표 인물인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하여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한편, 불가에서는 세속의 번뇌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난 적멸(寂滅), 즉 열반의 경지를 추구하고, 내적 수행을 위해 인륜을 벗어나 출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작자는 불가가 인륜관계를 버리라고 한다는 점을 들어 불가를 비판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가, 내적 수행을 통해 적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정해진 답이 없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마다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끝으로 작자가 불가가 오랑캐의 법이기 때문에 비판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불가가 인도에서 전해져 왔고, 인도는 오랑캐의 땅이며, 오랑캐는 중화 민족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에 불가는 열등하다는 사유는 배타적 자문화중심주의인 중화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이 글에서 작자는 유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도가와 불가에 대한 심층적 이해 없이 그것들을 비판하는 배타적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인정하는 가치, 사상, 종교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그르다는 생각은 문화 발전의 중요한 기재인 문화 다양성을 해치는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가, 불가, 도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화 속에 공존해 왔으며, 모두 중국의 사상 체계를 풍부하게 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가운데 어떤 사상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그르다고 할 수 없고, 객관적인 우열을 따지기도 어렵다.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가치, 사상,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있어서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것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그르다는 배타주의를 버리고, 자신의 것과 다른 가치, 사상, 종교, 문화를 포용하고 그 장점을 인정할 수 있는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