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은 도연명이 오류선생에 대해 쓴 전기(傳記)이다. 글에 나오는 오류선생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으나 도연명 자신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오류선생은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세속의 이해득실을 잊고서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가 좋아하는 일은 세 가지로, 독서, 음주, 글쓰기이다. 작자는 이 글에서 안분지족하며 타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피력했다. 발상이 참신하고 문장이 담백하며 간결하다.
고전본문
선생은 어느 지방 사람인지 알 수 없고, 그 성(姓)과 자(字)도 자세하지 않다. 집 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 그것으로 호(號)를 삼았다.
한가롭고 조용하며 말이 적었고,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았다. 책읽기를 좋아하나 지나치게 의미를 파헤치지는 않았으며, 매번 내용이 마음에 들면 기뻐서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나 집이 가난하여 항상 마실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그의 이 같은 사정을 알고 간혹 술을 차려놓고 불렀다. 가서 마시면 언제나 흥을 다하여 반드시 취하기를 바랐다. 취했으면 물러갔으니, 일찍이 물러가거나 머무르거나 하는 데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좁은 집은 텅 비어 있고 바람과 햇볕을 가리지 못했다. 짧은 베옷은 해진 곳을 기웠고 밥그릇과 표주박이 종종 비었지만 태연했다. 항상 글을 지어 스스로 즐기며 자못 자기의 뜻을 나타내고 이해득실을 잊은 채 이런 태도로 자신의 일생을 마쳤다.
[출전]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토론하기
(1) 오류선생의 삶의 태도에 대해 설명해 보자. 이를 현재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해 보자.
(2) 부귀와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유는 무엇인가? 이밖에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이야기해 보자.
(3) 자신의 삶을 소재로 짧은 전기를 지어보자.
해설읽기
이 글은 형식적으로는 전기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일반적인 전기문처럼 실존 인물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기보다 작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방식과 인생관을 제시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도입부에서 “선생은 어느 지방 사람인지 알 수 없고, 그 성(姓)과 자(字)도 자세하지 않다.”고 했기 때문에 도연명이 실제로 오류선생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기를 지은 것인지 혹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자전문(自傳文)을 지으면서 스스로를 오류선생이라 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작자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삶의 방식과 인생관이 이 작품에 보이는 오류선생의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글을 자전문으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저자가 자신에 대해 쓰면서도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고 한 것은 이름을 감추고 은자(隱者)로 살아가고자 했던 삶의 지향을 보여준다. 단지 집 주위에 버드나무가 다섯 그루 있어서 ‘오류선생’이라는 호를 지었다는 것 역시 저자가 이름과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을 암시한다. 저자가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가문과 출신을 중요하게 따졌다. 저자는 이러한 세속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이름, 신분, 출신 등에 초연한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이 글에 보이는 저자의 삶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그는 세속적 부귀와 명예를 탐하지 않는다. 이는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았다”, “좁은 집은 텅 비어 있고 바람과 햇볕을 가리지 못했다. 짧은 베옷은 해진 곳을 기웠고 밥그릇과 표주박이 종종 비었지만 태연했다”, “이해득실을 잊은 채 이런 태도로 자신의 일생을 마쳤다”고 한 것에 잘 드러난다.
다음으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순수하게 즐길 뿐 이를 이용해 다른 목적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책읽기를 좋아하나 지나치게 의미를 파헤치려 하지는 않는 것, 술자리에서 물러가거나 머무르거나 하는 데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글을 지어 스스로 즐기며 자못 자기의 뜻을 나타내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는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명예나 권위를 얻거나, 음주를 통해 교유를 넓히거나, 문장력으로 세상에 쓰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책을 읽을 때도 지나치게 천착하지 않고, 술을 마실 때도 기분 좋게 취하는 데서 그칠 뿐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며, 글을 쓸 때도 자신의 생각을 쓸 뿐 유력자의 뜻에 영합하려 하지 않는다.
이 글 뒤에는 다음과 같은 찬문(贊文: 인물의 공덕을 칭송할 때 쓰는 문장)이 있다. “제나라의 은사(隱士)인 금루(黔婁)에 대해 ‘빈천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부귀에 급급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바로 오류선생과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흥겹게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즐겼으니, 선생은 옛날 태평성대의 임금 무회씨(無懷氏)의 백성인가,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인가!” 역시 빈천하든 부귀하든 연연하지 않는 자세와 술 마시고 시 지으며 소박하게 즐기는 오류선생의 삶의 방식을 칭송했다. 또, 오류선생이 ‘태평성대의 백성이 아닌가?’라고 질문함으로써 고대의 질박한 삶에 대한 동경을 내비치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부귀공명 등 세속적 가치에 집착하는 당시 세태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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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맥락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은 도연명이 오류선생에 대해 쓴 전기(傳記)이다. 글에 나오는 오류선생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으나 도연명 자신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오류선생은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세속의 이해득실을 잊고서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가 좋아하는 일은 세 가지로, 독서, 음주, 글쓰기이다. 작자는 이 글에서 안분지족하며 타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피력했다. 발상이 참신하고 문장이 담백하며 간결하다.
고전본문
선생은 어느 지방 사람인지 알 수 없고, 그 성(姓)과 자(字)도 자세하지 않다. 집 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 그것으로 호(號)를 삼았다.
한가롭고 조용하며 말이 적었고,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았다. 책읽기를 좋아하나 지나치게 의미를 파헤치지는 않았으며, 매번 내용이 마음에 들면 기뻐서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나 집이 가난하여 항상 마실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그의 이 같은 사정을 알고 간혹 술을 차려놓고 불렀다. 가서 마시면 언제나 흥을 다하여 반드시 취하기를 바랐다. 취했으면 물러갔으니, 일찍이 물러가거나 머무르거나 하는 데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좁은 집은 텅 비어 있고 바람과 햇볕을 가리지 못했다. 짧은 베옷은 해진 곳을 기웠고 밥그릇과 표주박이 종종 비었지만 태연했다. 항상 글을 지어 스스로 즐기며 자못 자기의 뜻을 나타내고 이해득실을 잊은 채 이런 태도로 자신의 일생을 마쳤다.
[출전]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토론하기
(1) 오류선생의 삶의 태도에 대해 설명해 보자. 이를 현재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해 보자.
(2) 부귀와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유는 무엇인가? 이밖에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이야기해 보자.
(3) 자신의 삶을 소재로 짧은 전기를 지어보자.
해설읽기
이 글은 형식적으로는 전기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일반적인 전기문처럼 실존 인물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기보다 작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방식과 인생관을 제시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도입부에서 “선생은 어느 지방 사람인지 알 수 없고, 그 성(姓)과 자(字)도 자세하지 않다.”고 했기 때문에 도연명이 실제로 오류선생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기를 지은 것인지 혹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자전문(自傳文)을 지으면서 스스로를 오류선생이라 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작자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삶의 방식과 인생관이 이 작품에 보이는 오류선생의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글을 자전문으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저자가 자신에 대해 쓰면서도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고 한 것은 이름을 감추고 은자(隱者)로 살아가고자 했던 삶의 지향을 보여준다. 단지 집 주위에 버드나무가 다섯 그루 있어서 ‘오류선생’이라는 호를 지었다는 것 역시 저자가 이름과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을 암시한다. 저자가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가문과 출신을 중요하게 따졌다. 저자는 이러한 세속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이름, 신분, 출신 등에 초연한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이 글에 보이는 저자의 삶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그는 세속적 부귀와 명예를 탐하지 않는다. 이는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았다”, “좁은 집은 텅 비어 있고 바람과 햇볕을 가리지 못했다. 짧은 베옷은 해진 곳을 기웠고 밥그릇과 표주박이 종종 비었지만 태연했다”, “이해득실을 잊은 채 이런 태도로 자신의 일생을 마쳤다”고 한 것에 잘 드러난다.
다음으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순수하게 즐길 뿐 이를 이용해 다른 목적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책읽기를 좋아하나 지나치게 의미를 파헤치려 하지는 않는 것, 술자리에서 물러가거나 머무르거나 하는 데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글을 지어 스스로 즐기며 자못 자기의 뜻을 나타내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는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명예나 권위를 얻거나, 음주를 통해 교유를 넓히거나, 문장력으로 세상에 쓰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책을 읽을 때도 지나치게 천착하지 않고, 술을 마실 때도 기분 좋게 취하는 데서 그칠 뿐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며, 글을 쓸 때도 자신의 생각을 쓸 뿐 유력자의 뜻에 영합하려 하지 않는다.
이 글 뒤에는 다음과 같은 찬문(贊文: 인물의 공덕을 칭송할 때 쓰는 문장)이 있다. “제나라의 은사(隱士)인 금루(黔婁)에 대해 ‘빈천을 근심하지 아니하고, 부귀에 급급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바로 오류선생과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흥겹게 술을 마시고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즐겼으니, 선생은 옛날 태평성대의 임금 무회씨(無懷氏)의 백성인가,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인가!” 역시 빈천하든 부귀하든 연연하지 않는 자세와 술 마시고 시 지으며 소박하게 즐기는 오류선생의 삶의 방식을 칭송했다. 또, 오류선생이 ‘태평성대의 백성이 아닌가?’라고 질문함으로써 고대의 질박한 삶에 대한 동경을 내비치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부귀공명 등 세속적 가치에 집착하는 당시 세태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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