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송궁문(送窮文, 가난을 떠나보내는 글)」의 주된 내용은 한 주인이 가난을 가져오는 신인 궁귀(窮鬼)들을 떠나보내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항변에 설득되어 그들을 상좌에 모신다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궁귀는 모두 다섯인데, 저자는 이들을 각각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이라 명명했다. 이는 지혜, 학문, 문장을 추구하느라 궁핍할 수밖에 없고, 또한 운명과 교유에 있어서도 이기적이고 교활하게 처신하지 못하는 까닭에 궁핍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것이다.
고전본문
원화 6년 정월 을축일 그믐날 주인이 하인 성(星)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수레를 만들고 풀을 묶어 배를 만들어 식량을 싣고 소에 멍에를 메우고 돛을 당겨 돛대를 세워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이렇게 말했다.
“듣건대 그대가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하여 내가 감히 경로는 묻지 못하지만 직접 배와 수레를 마련하여 식량을 가득 실어 놓았소. 날이 길하여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다음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 곳을 떠나 새 곳으로 떠나시오.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바람 타고 배 몰아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그대에게는 굼뜨다는 허물이 없게 될 것이고, 내게는 노잣돈을 갖추어 전송한 은혜가 있게 될 것이니 그대들은 떠날 뜻이 있소?”
숨을 죽이고 몰래 들으니 말소리가 휘파람 소리처럼 흐느끼는 소리처럼 휘휘 흑흑 낮게 나니 털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서고 어깨를 으쓱 올리고 목을 움츠렸는데, 소리가 있는 것 같더니 없어졌다니 오랜 뒤에야 분명해졌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대와 함께 지낸 지 사십여 년이 되었다. 그대가 어렸을 때 나는 그대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고, 그대가 공부하고 밭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 오로지 그대를 따르며 초심을 바꾸지 않았다. 잡귀를 쫓는 문신(門神)들이 나를 꾸짖어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다른 데 뜻을 두지 않았다. 그대가 남쪽 변방으로 귀양 갔을 때 뜨겁고 덥고 습하며 나는 그 곳 출신이 아니라 여러 귀신들이 괴롭혔고, 태학에서 4년 동안 아침에는 무친 야채, 저녁에는 소금을 먹으며 지낼 때 오로지 나만이 그대를 보살펴주었고, 사람들이 모두 그대를 싫어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를 배반한 적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입으로는 떠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내가 가야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가? 이는 필시 그대가 모함하는 말을 믿고 내게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나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어찌 수레와 배를 쓰겠으며, 코로 냄새를 맡을 뿐이니 식량은 버려도 될 것이다.”
(… 중략 : 주인이 다섯 궁귀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이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성토하자 다섯 귀신이 맞받아친다. …)
“그대가 우리 이름과 모든 우리 행위를 알고 우리를 내쫓아 떠나라고 하니 작게는 교활한 것이고 크게는 바보스럽도다.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 얼마나 오래 살겠는가? 우리는 그대의 명성을 세워 백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는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오직 시대와 맞지 않아야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저 쌀겨와 죽을 흠모하는 격이다. 천하에서 그대를 앎에 있어 누가 우리보다 더 낫겠는가? 비록 배척받아 쫓겨나더라도 차마 그대를 소원하게 대하지 못하리니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청컨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의 내용을 가지고 검증해 보도록 하라.”
주인은 이에 머리를 떨구고 기가 죽어 두 손을 들어 사죄한 다음 수레와 배를 태우고 그들을 상좌에 모셨다.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주인은 가난을 가져오는 궁귀를 쫓아내려고 하지만 궁귀는 주인에게 “우리는 그대의 명성을 세워 백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여기에서 백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명성을 위해 가난을 감내하고자 하는 저자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가난을 감내하고 추구할 만한 숭고한 삶의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2) 이 글을 모방하여 ‘송(送)〇〇’라는 제목의 글을 써 보자. 자신의 성격, 인간관계, 과거의 경험 등에서 마음의 장애물, 혹은 고난이라고 생각되는 것, 멀리 쫓아내고 싶은 것이나 잊고 싶은 것을 찾아내 의인화하고, 그것이 쫓겨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내용을 담아 보자. 이 글의 주인이 그랬듯이 우리도 결국 그것을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이 글은 한유가 한대(漢代) 작가 양웅(揚雄)의 「축빈부(逐貧賦)」의 발상을 모방하여 쓴 글로, 가난을 의인화한다는 기발한 착상에서 출발해 유희적 필치로 자신의 궁핍함을 자조하였다. 내용에 기복이 있어 예측할 수 없고 언어에 생동감이 넘쳐, 기발하면서도 빼어난 한유의 문풍을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표면적으로는 주인이 궁귀들에게 설득되어 그들을 떠나게 하지 못한다는 다소 유머러스한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을 안빈낙도할 줄 아는 군자(君子)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데서 엿보이는 저자의 자부심과, 동시에 자신처럼 지혜롭고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규탄과 오로지 부귀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궁귀(窮鬼)를 의인화하고 그들이 자신들을 쫓아내려는 주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는 내용을 통해 스스로 가난을 감내하는 삶을 선택했음을 보여주었다. 의인화한 궁귀가 하는 말 중에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는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오직 시대와 맞지 않아야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은 곧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소인들은 시대에 영합하여 부귀를 추구하는 반면 군자는 하늘의 뜻을 따르며 안빈낙도한다는 인생관을 담은 것이다. 또 궁귀는 주인이 자신들을 내쫓는다면 이는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저 쌀겨와 죽을 흠모하는 격”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름다운 옥”과 “기름지고 단 것”은 가난하지만 하늘의 도(道)를 따르는 삶을, “한 장의 양 가죽”과 “쌀겨와 죽”은 도를 버리고 맹목적으로 부귀영화만을 좇는 세속적 삶을 비유한다. 즉, 저자는 궁귀의 입을 빌려 자신은 비록 가난할지언정 하늘의 도를 따르는 군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생존의 필수 요건이 되면서 갈수록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난을 곧바로 무능, 실패, 불행, 재난과 연관 짓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부귀와 가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곧 정신적 풍요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신중히 선택해야만 한다. 가난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부귀와 가난 중에 가난을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부귀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한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부귀에 집착하지 않고 가난을 수용함으로써 가치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가난해질 것이 분명함에도 추구할 만한 인생의 가치를 탐색하면서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되돌아보고 삶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이 글의 제목은 “송궁문(送窮文)”이지만 내용을 보면 결국 궁귀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살다보면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있게 마련이고, 어떤 사람이나 기억을 떠나보내고 싶지만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학생들은 이 글을 모방하여 자신의 상황을 투영한 글을 씀으로써 장애물과 고난이 갖는 뜻밖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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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맥락
「송궁문(送窮文, 가난을 떠나보내는 글)」의 주된 내용은 한 주인이 가난을 가져오는 신인 궁귀(窮鬼)들을 떠나보내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항변에 설득되어 그들을 상좌에 모신다는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궁귀는 모두 다섯인데, 저자는 이들을 각각 “지궁(智窮)”, “학궁(學窮)”, “문궁(文窮)”, “명궁(命窮)”, “교궁(交窮)”이라 명명했다. 이는 지혜, 학문, 문장을 추구하느라 궁핍할 수밖에 없고, 또한 운명과 교유에 있어서도 이기적이고 교활하게 처신하지 못하는 까닭에 궁핍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것이다.
고전본문
원화 6년 정월 을축일 그믐날 주인이 하인 성(星)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수레를 만들고 풀을 묶어 배를 만들어 식량을 싣고 소에 멍에를 메우고 돛을 당겨 돛대를 세워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이렇게 말했다.
“듣건대 그대가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하여 내가 감히 경로는 묻지 못하지만 직접 배와 수레를 마련하여 식량을 가득 실어 놓았소. 날이 길하여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다음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 곳을 떠나 새 곳으로 떠나시오.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바람 타고 배 몰아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그대에게는 굼뜨다는 허물이 없게 될 것이고, 내게는 노잣돈을 갖추어 전송한 은혜가 있게 될 것이니 그대들은 떠날 뜻이 있소?”
숨을 죽이고 몰래 들으니 말소리가 휘파람 소리처럼 흐느끼는 소리처럼 휘휘 흑흑 낮게 나니 털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서고 어깨를 으쓱 올리고 목을 움츠렸는데, 소리가 있는 것 같더니 없어졌다니 오랜 뒤에야 분명해졌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대와 함께 지낸 지 사십여 년이 되었다. 그대가 어렸을 때 나는 그대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고, 그대가 공부하고 밭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 오로지 그대를 따르며 초심을 바꾸지 않았다. 잡귀를 쫓는 문신(門神)들이 나를 꾸짖어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다른 데 뜻을 두지 않았다. 그대가 남쪽 변방으로 귀양 갔을 때 뜨겁고 덥고 습하며 나는 그 곳 출신이 아니라 여러 귀신들이 괴롭혔고, 태학에서 4년 동안 아침에는 무친 야채, 저녁에는 소금을 먹으며 지낼 때 오로지 나만이 그대를 보살펴주었고, 사람들이 모두 그대를 싫어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를 배반한 적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입으로는 떠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내가 가야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가? 이는 필시 그대가 모함하는 말을 믿고 내게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나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어찌 수레와 배를 쓰겠으며, 코로 냄새를 맡을 뿐이니 식량은 버려도 될 것이다.”
(… 중략 : 주인이 다섯 궁귀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이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성토하자 다섯 귀신이 맞받아친다. …)
“그대가 우리 이름과 모든 우리 행위를 알고 우리를 내쫓아 떠나라고 하니 작게는 교활한 것이고 크게는 바보스럽도다.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 얼마나 오래 살겠는가? 우리는 그대의 명성을 세워 백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는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오직 시대와 맞지 않아야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저 쌀겨와 죽을 흠모하는 격이다. 천하에서 그대를 앎에 있어 누가 우리보다 더 낫겠는가? 비록 배척받아 쫓겨나더라도 차마 그대를 소원하게 대하지 못하리니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청컨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의 내용을 가지고 검증해 보도록 하라.”
주인은 이에 머리를 떨구고 기가 죽어 두 손을 들어 사죄한 다음 수레와 배를 태우고 그들을 상좌에 모셨다.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주인은 가난을 가져오는 궁귀를 쫓아내려고 하지만 궁귀는 주인에게 “우리는 그대의 명성을 세워 백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여기에서 백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명성을 위해 가난을 감내하고자 하는 저자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가난을 감내하고 추구할 만한 숭고한 삶의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2) 이 글을 모방하여 ‘송(送)〇〇’라는 제목의 글을 써 보자. 자신의 성격, 인간관계, 과거의 경험 등에서 마음의 장애물, 혹은 고난이라고 생각되는 것, 멀리 쫓아내고 싶은 것이나 잊고 싶은 것을 찾아내 의인화하고, 그것이 쫓겨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내용을 담아 보자. 이 글의 주인이 그랬듯이 우리도 결국 그것을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이 글은 한유가 한대(漢代) 작가 양웅(揚雄)의 「축빈부(逐貧賦)」의 발상을 모방하여 쓴 글로, 가난을 의인화한다는 기발한 착상에서 출발해 유희적 필치로 자신의 궁핍함을 자조하였다. 내용에 기복이 있어 예측할 수 없고 언어에 생동감이 넘쳐, 기발하면서도 빼어난 한유의 문풍을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표면적으로는 주인이 궁귀들에게 설득되어 그들을 떠나게 하지 못한다는 다소 유머러스한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을 안빈낙도할 줄 아는 군자(君子)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데서 엿보이는 저자의 자부심과, 동시에 자신처럼 지혜롭고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규탄과 오로지 부귀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궁귀(窮鬼)를 의인화하고 그들이 자신들을 쫓아내려는 주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는 내용을 통해 스스로 가난을 감내하는 삶을 선택했음을 보여주었다. 의인화한 궁귀가 하는 말 중에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는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오직 시대와 맞지 않아야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은 곧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소인들은 시대에 영합하여 부귀를 추구하는 반면 군자는 하늘의 뜻을 따르며 안빈낙도한다는 인생관을 담은 것이다. 또 궁귀는 주인이 자신들을 내쫓는다면 이는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저 쌀겨와 죽을 흠모하는 격”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름다운 옥”과 “기름지고 단 것”은 가난하지만 하늘의 도(道)를 따르는 삶을, “한 장의 양 가죽”과 “쌀겨와 죽”은 도를 버리고 맹목적으로 부귀영화만을 좇는 세속적 삶을 비유한다. 즉, 저자는 궁귀의 입을 빌려 자신은 비록 가난할지언정 하늘의 도를 따르는 군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생존의 필수 요건이 되면서 갈수록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난을 곧바로 무능, 실패, 불행, 재난과 연관 짓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부귀와 가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곧 정신적 풍요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신중히 선택해야만 한다. 가난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부귀와 가난 중에 가난을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부귀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한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부귀에 집착하지 않고 가난을 수용함으로써 가치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가난해질 것이 분명함에도 추구할 만한 인생의 가치를 탐색하면서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되돌아보고 삶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이 글의 제목은 “송궁문(送窮文)”이지만 내용을 보면 결국 궁귀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살다보면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있게 마련이고, 어떤 사람이나 기억을 떠나보내고 싶지만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학생들은 이 글을 모방하여 자신의 상황을 투영한 글을 씀으로써 장애물과 고난이 갖는 뜻밖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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