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웨이쭈앙[未莊]에 사는 아Q는 정해진 직업 없이 날품으로 먹고사는 무식한 막일꾼이다. 그는 소심하고 비굴하면서도 자존심이 세다. 왕털보와 가짜 양놈에게 얻어맞고도 잠시 후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실제로는 자기가 이긴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어느 날 아Q는 자신이 일하던 짜오 나리 댁의 하녀 우마에게 동침을 요구했다가 짜오 나리에게 얻어맞고 벌금을 물게 되고 이 사건 이후 날품팔이 일감이 끊긴 아큐는 성내에 들어가 도둑질에 동참했다가 운 좋게 장물을 얻어 마을로 돌아온다.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혁명당이 입성하자 아Q는 평소 권세를 휘두르던 유력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신이 나 혁명당에 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혁명당은 그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한다. 혁명의 어수선함 속에 짜오 나리 댁이 약탈꾼들에게 강도를 당하고, 아Q는 도난 혐의를 뒤집어쓰고 결국 처형된다.
고전본문
아Q는 또 몹시 자존심이 강했다. 웨이주앙의 주민이 전부 그의 눈에 차지 않았고, 심지어 두 분 ‘문동’(文童: 수재 시험을 준비하는 자)에 대해서도 일소(一笑)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기색이었다. 무릇 문동이란 장차 수재(秀才)라는 대단한 존재로 변할지도 모른다. 짜오(趙) 나리와 치엔(錢) 나리가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돈이 많다는 것 말고도 둘 다 문동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Q 혼자만은 정신상으로 특별한 존경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내 아들은 훨씬 더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중략…)
아Q는 “옛날에는 잘살았고” 견식이 높았으며 게다가 “정말 일을 잘했”으므로 원래는 거의 ‘완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결점이 있었다.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나두창(癩頭瘡)의 부스럼 자국이 몇 군데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그의 몸에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아Q의 생각을 살펴보면, 그것은 귀하지 못한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라이(癩)’ 및 ‘라이(賴)’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모든 말을 꺼렸고, 나중에는 더 확대하여 ‘빛나다(光)’도 꺼리고 ‘밝다(亮)’도 꺼리고, 더 나중에는 ‘등불(燈)’이나 ‘촛불(燭)’까지도 꺼렸다. 금기를 범하면, 알고 그랬건 모르고 그랬건, 아Q는 부스럼 자국을 온통 붉히며 화를 냈는데, 상대를 평가해보고서 어눌한 자 같으면 욕을 했고 힘이 약한 자 같으면 때렸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아Q가 손해를 보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츰 방침을 바꾸어 대개는 화난 눈으로 노려보기로 했다.
아Q가 노려보기주의(主義)를 채택한 뒤로 웨이주앙의 건달들이 더욱더 그를 놀려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만나기만 하면 그들은 일부러 놀라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와, 밝아졌다.”
아Q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화를 내며 노려보았다.
“원래 등불이 여기 있었군!” 그들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Q는 어쩔 수가 없었고, 그래서 따로 보복의 말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너 같은 놈한테는……” 그때 그의 머리에 있는 것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부스럼 자국이지 보통 부스럼 자국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아Q는 견식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금기’에 저촉될 뻔했다는 것을 얼른 알아차리고서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아Q정전」 中에서
토론하기
(1) 나두창은 머리에 부스럼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빠져 번들거리는 병증이다. 이 때문에 아Q는 ‘빛나다(光)’, ‘밝다(亮)’, ‘등불(燈)’, ‘촛불(燭)’과 같은 단어들이 자신의 부스럼 자국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해 그런 단어들까지도 꺼린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문동과 같은 인물들에게도 기가 죽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아Q가 나두창 자국에 대해서는 왜 이처럼 예민한 것일까?
(2) 아Q가 건달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해설읽기
아Q의 자존심과 외모 콤플렉스는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뿌리는 같다. 인용한 대목에서도 작자가 아Q의 강한 자존심에 관한 서술을 외모 콤플렉스에 관한 서술과 병치해 놓은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아Q의 자존심은 억지에 가까운 일종의 정신승리다. 그는 날품팔이를 해 먹고 사는 변변치 않은 처지인데도 학식과 재산을 갖춘 인물을 인정하지 않고, 문동을 자식으로 둔 마을 유지에 대해 존경심을 갖지 않는다. 이는 아Q가 학식이나 재산을 중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은 그들의 자식들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그들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처지를 보았을 때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는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과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내면의 성숙을 통해 얻게 되는 건강한 자존감과는 거리가 멀다.
아Q가 자신의 몸에 난 나두창 자국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은 이처럼 강한 자존심 때문이다. 자신에게 나두창 자국이 있다는 사실은 무슨 수를 써도 왜곡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도로서 나두창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임으로써 주위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상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Q가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있었다면 나두창 자국 역시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놀리는 이가 있더라도 그처럼 과민한 거부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Q는 건달들에게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다가 자신의 나두창 자국이 보통의 나두창 자국과는 다른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나두창 자국인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너한테는 이런 멋진 나두창 자국도 없지?’라고 말하려다가 그렇게 되면 자신이 금기시하는 ‘나두창’이라는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곧 입을 다문다. 아Q 생각에 그가 건달들에게 보복할 방법은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더 나은 점이 없기 때문에 급기야 그들에게는 없는 자신의 나두창 자국이 대단한 것 인양 느낀 것이다. 그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이상 잠깐이나마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의 이러한 심리 역시 강한 자존심 때문이다. 현실을 왜곡해서라도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취약한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타인에게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때 타인은 오히려 이를 대담한 용기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아Q가 자신의 나두창 자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혹 놀리는 이가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건달들은 그를 괴롭히는 재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전후맥락
웨이쭈앙[未莊]에 사는 아Q는 정해진 직업 없이 날품으로 먹고사는 무식한 막일꾼이다. 그는 소심하고 비굴하면서도 자존심이 세다. 왕털보와 가짜 양놈에게 얻어맞고도 잠시 후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실제로는 자기가 이긴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어느 날 아Q는 자신이 일하던 짜오 나리 댁의 하녀 우마에게 동침을 요구했다가 짜오 나리에게 얻어맞고 벌금을 물게 되고 이 사건 이후 날품팔이 일감이 끊긴 아큐는 성내에 들어가 도둑질에 동참했다가 운 좋게 장물을 얻어 마을로 돌아온다.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혁명당이 입성하자 아Q는 평소 권세를 휘두르던 유력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신이 나 혁명당에 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혁명당은 그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한다. 혁명의 어수선함 속에 짜오 나리 댁이 약탈꾼들에게 강도를 당하고, 아Q는 도난 혐의를 뒤집어쓰고 결국 처형된다.
고전본문
아Q는 또 몹시 자존심이 강했다. 웨이주앙의 주민이 전부 그의 눈에 차지 않았고, 심지어 두 분 ‘문동’(文童: 수재 시험을 준비하는 자)에 대해서도 일소(一笑)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기색이었다. 무릇 문동이란 장차 수재(秀才)라는 대단한 존재로 변할지도 모른다. 짜오(趙) 나리와 치엔(錢) 나리가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돈이 많다는 것 말고도 둘 다 문동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Q 혼자만은 정신상으로 특별한 존경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내 아들은 훨씬 더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중략…)
아Q는 “옛날에는 잘살았고” 견식이 높았으며 게다가 “정말 일을 잘했”으므로 원래는 거의 ‘완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결점이 있었다.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나두창(癩頭瘡)의 부스럼 자국이 몇 군데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그의 몸에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아Q의 생각을 살펴보면, 그것은 귀하지 못한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라이(癩)’ 및 ‘라이(賴)’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모든 말을 꺼렸고, 나중에는 더 확대하여 ‘빛나다(光)’도 꺼리고 ‘밝다(亮)’도 꺼리고, 더 나중에는 ‘등불(燈)’이나 ‘촛불(燭)’까지도 꺼렸다. 금기를 범하면, 알고 그랬건 모르고 그랬건, 아Q는 부스럼 자국을 온통 붉히며 화를 냈는데, 상대를 평가해보고서 어눌한 자 같으면 욕을 했고 힘이 약한 자 같으면 때렸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아Q가 손해를 보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츰 방침을 바꾸어 대개는 화난 눈으로 노려보기로 했다.
아Q가 노려보기주의(主義)를 채택한 뒤로 웨이주앙의 건달들이 더욱더 그를 놀려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만나기만 하면 그들은 일부러 놀라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와, 밝아졌다.”
아Q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화를 내며 노려보았다.
“원래 등불이 여기 있었군!” 그들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Q는 어쩔 수가 없었고, 그래서 따로 보복의 말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너 같은 놈한테는……” 그때 그의 머리에 있는 것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부스럼 자국이지 보통 부스럼 자국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아Q는 견식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금기’에 저촉될 뻔했다는 것을 얼른 알아차리고서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아Q정전」 中에서
토론하기
(1) 나두창은 머리에 부스럼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빠져 번들거리는 병증이다. 이 때문에 아Q는 ‘빛나다(光)’, ‘밝다(亮)’, ‘등불(燈)’, ‘촛불(燭)’과 같은 단어들이 자신의 부스럼 자국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해 그런 단어들까지도 꺼린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문동과 같은 인물들에게도 기가 죽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아Q가 나두창 자국에 대해서는 왜 이처럼 예민한 것일까?
(2) 아Q가 건달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해설읽기
아Q의 자존심과 외모 콤플렉스는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뿌리는 같다. 인용한 대목에서도 작자가 아Q의 강한 자존심에 관한 서술을 외모 콤플렉스에 관한 서술과 병치해 놓은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아Q의 자존심은 억지에 가까운 일종의 정신승리다. 그는 날품팔이를 해 먹고 사는 변변치 않은 처지인데도 학식과 재산을 갖춘 인물을 인정하지 않고, 문동을 자식으로 둔 마을 유지에 대해 존경심을 갖지 않는다. 이는 아Q가 학식이나 재산을 중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은 그들의 자식들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그들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처지를 보았을 때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는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과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내면의 성숙을 통해 얻게 되는 건강한 자존감과는 거리가 멀다.
아Q가 자신의 몸에 난 나두창 자국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은 이처럼 강한 자존심 때문이다. 자신에게 나두창 자국이 있다는 사실은 무슨 수를 써도 왜곡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도로서 나두창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임으로써 주위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상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Q가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있었다면 나두창 자국 역시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놀리는 이가 있더라도 그처럼 과민한 거부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Q는 건달들에게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다가 자신의 나두창 자국이 보통의 나두창 자국과는 다른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나두창 자국인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너한테는 이런 멋진 나두창 자국도 없지?’라고 말하려다가 그렇게 되면 자신이 금기시하는 ‘나두창’이라는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곧 입을 다문다. 아Q 생각에 그가 건달들에게 보복할 방법은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더 나은 점이 없기 때문에 급기야 그들에게는 없는 자신의 나두창 자국이 대단한 것 인양 느낀 것이다. 그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이상 잠깐이나마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의 이러한 심리 역시 강한 자존심 때문이다. 현실을 왜곡해서라도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취약한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타인에게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때 타인은 오히려 이를 대담한 용기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아Q가 자신의 나두창 자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혹 놀리는 이가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건달들은 그를 괴롭히는 재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