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서울을 떠나와 포천에 머무는 중에 동생이 주변에 기이한 폭포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날을 잡아 함께 찾아 나서기로 하고 계곡 입 구에서 그곳을 잘 아는 노인에게 폭포의 위치와 지름길을 자세히 전해 듣는다. 폭포를 찾아 나선 길이었지만, 폭포로 가는 길에서 만난 풍광들 또한 예상 밖으로 무척 아름다워 가던 길을 멈추고 자꾸 감상하게 된다. 정작 찾으려던 폭포는 찾지 못하고 해가 지기 시작한다. 일행과 헤어져 산등성이를 올라 폭포를 찾던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 주저하게 되는데, 이때 시내를 따라 갔던 동생이 돌아와 폭포를 봤는데 별거 없더라고 전한다. 미련 없이 포기하고 바위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 오는 길에 다시 노인을 만나니 노인은 내가 갔던 길처럼 산등성이 따라 계속 올라가는 게 맞고, 폭포는 볼만한 장관이라고 다시 말해준다. 그 말에 다음을 기약한다.
고전본문
풍패동 동쪽은 바로 늠암곡이다. 그 물이 서쪽으로 흘러 소월석 아래에 이르러 대천으로 들어간다. 우리 집에서 바라보면 아주 가깝지만 특별한 점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마을 주민 황씨가 자익(아우 김창흡)에게 골짜기 안에 있는 폭포가 몹시 기이하다고 말해주었다. 자익이 나에게 알려 주어 마침내 흔쾌히 함께 갔다. 대유(김창업), 조카 인상, 악상이 따라왔다. 우리 셋은 말을 타고 두 아이는 걸어갔다.
계곡 입구에 이르자 인가 서너 채가 보였다. 산을 등지고 물에 둘러싸여 있어 밭두둑과 울타리가 썰렁했다. 문을 두드리니 한 구부정한 노인이 나왔다. 수염과 눈썹이 온통 희어 칠팔십 세쯤 되어 보였다. 폭포가 어디에 있는지 묻자 지름길을 가리키며 들어가는 길을 아주 자세히 일러 주었다.
골 안으로 일 리쯤 들어가서는 말을 풀밭에 놓아두고 지팡이를 짚고 나아갔다. 얼마 안 있어 너럭바위 하나가 보이는데 비탈이 져서 앉을 만했다. 물이 그 위를 쟁글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소나무 두 그루가 이를 덮고 있어 기이하고 장한 데다 울창하게 가지가 뻗어 있었다. 곁에는 단풍 숲이 있는데 또한 높고 컸다. 잎이 한창 선홍빛이었으므로 동행들이 문득 몹시 기뻐하였다. 이 속에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오솔길이 굽이굽이 이어지면서 여러 차례 좋은 곳을 얻게 되니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 기뻐할 만했다. 하지만 폭포로 들어가는 길은 놓쳐서 찾지 못하고 그저 시내를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오륙 리쯤 갔는데도 폭포는 종내 찾을 수가 없었다. 지쳐서 바위 위에 앉아 산과일을 따서 먹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윗부리는 빙 둘러서고 산마루는 첩첩인데 계곡은 깊고도 그윽해 보이는 것은 온통 서리 맞은 숲의 붉고 누런 단풍뿐이었다. 동북쪽은 경계가 더욱 그윽이 빼어나 바라보니 은은하여 마치 신기한 것이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몹시 즐거웠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지만 폭포를 놓칠 수 없어 다시금 옛길을 따라서 내려가 비로소 한 갈래 좁은 길을 찾았다. 앞서 노인이 일러 준 것과 비슷해서 시험 삼아 그 길을 따라가 보았다. 얼마 못 가 바로 산등성이로 점점 올라가기만 했다. 마침내 폭포가 있는 곳은 알 수가 없었다. 얼마 후 골짜기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아우 자익이 먼저 시내로 내려갔다가 이곳에 이른 것이었다. 그의 말이 이미 폭포를 보았다 하므로 어찌 생겼더냐고 묻자 검은 바위가 드높게 겹겹이 포개져 있는데 약한 물줄기가 이를 덮어 조금도 볼만한 게 없다고 했다. 내가 아우 대유와 서로 보면서 입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 구경하자고 발품을 팔 필요가 있겠는가?”
마침내 가지 않고 돌아와 비탈진 바위 위에서 밥을 먹었다. 자익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후로 마땅히 천하에 말만 번드레한 못 믿을 인사들이 더욱 싫어질 듯합니다.”
황 씨에게 속고 만 것을 유감스러워한 것이었다.
산을 내려온 뒤 길을 알려 준 노인을 만나 본 것을 얘기하자 노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 위에 진짜 폭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냇물을 따라 내려가면 길이 끊겨 도달할 수가 없습지요. 꼭 산등성이를 따라서 가야 이르러 굽어볼 수가 있답니다.”
그제야 내가 갔던 길이 바른 길인 줄을 알았다. 좀 더 애를 써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또한 폭포의 실상이 자익이 본 것 정도에 그치지 않음이 기뻤고, 잠시 남겨 두어 뒷날의 유람거리로 삼게 된 것이 더욱 여운이 있음을 깨달았다. 유람한 날은 신미년(1691년) 팔월 스무하룻날이고, 그 이튿날 이 글을 쓴다.
토론하기
(1) 폭포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그날의 여정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2)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을 얻게 되었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그때 나는 온전히 성취감과 충만함을 느꼈을까?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3)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을 얻지 못했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그때 나는 온전히 허무감, 상실감, 패배감만을 느꼈을까?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해설읽기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폭포를 찾아 나섰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온 어느 하루의 일을 쓴 글이다. 어느 하루의 에피소드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추구해 가던 인생의 어느 순간 혹은 인생 전체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어떤 세상이 있음을 소문으로 전해 듣고,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 그것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얻는 법(다다르는 법)을 전수 받거나 책을 통해 배운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길 위의 현실은 공부한 것과 다르다.
내가 찾아 나선 것은 명확히 ‘그것’이었지만, 그것에 도달하기 전에 만나는 것들 또한 신기하고 재미난 것투성이다. 애초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들이 너무 많다. 좀 더 나아가 본다. 동행했던 친구들과 길이 나뉘기도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는 다. 나 혼자라도 걷는 길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난 것들이 수두룩하다. 어느덧 떠나 온지 한참의 시간/세월이 지나, 계속 가야할지 되돌아 가야할지 앞에 놓인 길과 뒤에 놓은 길을 가늠하고 되짚어 본다. 이때 함께 길을 왔던 사람을 다시 만나 얘기를 듣는다. 가봤더니 별거 없더란다.
별거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은 묘하다. 내가 찾아 헤맸던 것이 별거 아니라니 라는 실망감과 함께, 이제 더 이상 힘들게 길을 가지 않고 여기서 멈춰도 되겠구나라는 안도감. 이 말을 전해준 사람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애초 명확히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부추긴 사람들을 탓한다. 이는 그들의 말만 믿고 길을 나선 자신들을 탓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온다. ‘그것/곳’을 나에게 가르쳐준 사람이 다시 말한다. 그것은 실재한다고, 당신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라고. 이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묘하게 양가적 생각이 스쳐간다. 나는 실패하고 돌아왔지만, 내가 애초에 찾으려 했던 것, 가려 했던 길이 별 볼일 없거나 허상이었던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다. 동시에 앞에 놓인 길과 뒤에 걸어온 길을 저울질하면서 머뭇거렸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애초에 자신이 가던 길이 옳았는데, 갈팡질팡하고 주저하고 또 가봤더니 별거 없더라는 다른 사람의 말에 혹했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결국, 한번 가 보았던 길이므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라도 희망도 생긴다. 가보지 못한 길은 이렇게 나에게 회한과 희망을 동시에 던져준다.
그런데 만약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희망을 품지 못한 채 쓸 데 없이 시간만 낭비했다는 후회만이 남게 될까? 애초 목표했던 것은 찾지 못했지만, 길을 가는 도중에 예상치 못하게 만난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도 아무 것도 아닌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기쁨으로 남아 있다. 물론 집으로 돌아와 찾고자 했던 것을 찾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한동안 허우적거리겠지만 그때 내 눈과 귀를 빼앗던 것들의 기억은 나에게 또 다시 길을 찾아 나설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은 노인이 준 희망, 즉 기존의 세상과 지식이 알려준 희망이 아니라, 내가 두 발로 걸어서 만들어낸 희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키워드
목표, 실패, 아쉬움, 헤맴, 희망
전후맥락
서울을 떠나와 포천에 머무는 중에 동생이 주변에 기이한 폭포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날을 잡아 함께 찾아 나서기로 하고 계곡 입 구에서 그곳을 잘 아는 노인에게 폭포의 위치와 지름길을 자세히 전해 듣는다. 폭포를 찾아 나선 길이었지만, 폭포로 가는 길에서 만난 풍광들 또한 예상 밖으로 무척 아름다워 가던 길을 멈추고 자꾸 감상하게 된다. 정작 찾으려던 폭포는 찾지 못하고 해가 지기 시작한다. 일행과 헤어져 산등성이를 올라 폭포를 찾던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 주저하게 되는데, 이때 시내를 따라 갔던 동생이 돌아와 폭포를 봤는데 별거 없더라고 전한다. 미련 없이 포기하고 바위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 오는 길에 다시 노인을 만나니 노인은 내가 갔던 길처럼 산등성이 따라 계속 올라가는 게 맞고, 폭포는 볼만한 장관이라고 다시 말해준다. 그 말에 다음을 기약한다.
고전본문
풍패동 동쪽은 바로 늠암곡이다. 그 물이 서쪽으로 흘러 소월석 아래에 이르러 대천으로 들어간다. 우리 집에서 바라보면 아주 가깝지만 특별한 점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마을 주민 황씨가 자익(아우 김창흡)에게 골짜기 안에 있는 폭포가 몹시 기이하다고 말해주었다. 자익이 나에게 알려 주어 마침내 흔쾌히 함께 갔다. 대유(김창업), 조카 인상, 악상이 따라왔다. 우리 셋은 말을 타고 두 아이는 걸어갔다.
계곡 입구에 이르자 인가 서너 채가 보였다. 산을 등지고 물에 둘러싸여 있어 밭두둑과 울타리가 썰렁했다. 문을 두드리니 한 구부정한 노인이 나왔다. 수염과 눈썹이 온통 희어 칠팔십 세쯤 되어 보였다. 폭포가 어디에 있는지 묻자 지름길을 가리키며 들어가는 길을 아주 자세히 일러 주었다.
골 안으로 일 리쯤 들어가서는 말을 풀밭에 놓아두고 지팡이를 짚고 나아갔다. 얼마 안 있어 너럭바위 하나가 보이는데 비탈이 져서 앉을 만했다. 물이 그 위를 쟁글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소나무 두 그루가 이를 덮고 있어 기이하고 장한 데다 울창하게 가지가 뻗어 있었다. 곁에는 단풍 숲이 있는데 또한 높고 컸다. 잎이 한창 선홍빛이었으므로 동행들이 문득 몹시 기뻐하였다. 이 속에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오솔길이 굽이굽이 이어지면서 여러 차례 좋은 곳을 얻게 되니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더 기뻐할 만했다. 하지만 폭포로 들어가는 길은 놓쳐서 찾지 못하고 그저 시내를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오륙 리쯤 갔는데도 폭포는 종내 찾을 수가 없었다. 지쳐서 바위 위에 앉아 산과일을 따서 먹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윗부리는 빙 둘러서고 산마루는 첩첩인데 계곡은 깊고도 그윽해 보이는 것은 온통 서리 맞은 숲의 붉고 누런 단풍뿐이었다. 동북쪽은 경계가 더욱 그윽이 빼어나 바라보니 은은하여 마치 신기한 것이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몹시 즐거웠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지만 폭포를 놓칠 수 없어 다시금 옛길을 따라서 내려가 비로소 한 갈래 좁은 길을 찾았다. 앞서 노인이 일러 준 것과 비슷해서 시험 삼아 그 길을 따라가 보았다. 얼마 못 가 바로 산등성이로 점점 올라가기만 했다. 마침내 폭포가 있는 곳은 알 수가 없었다. 얼마 후 골짜기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아우 자익이 먼저 시내로 내려갔다가 이곳에 이른 것이었다. 그의 말이 이미 폭포를 보았다 하므로 어찌 생겼더냐고 묻자 검은 바위가 드높게 겹겹이 포개져 있는데 약한 물줄기가 이를 덮어 조금도 볼만한 게 없다고 했다. 내가 아우 대유와 서로 보면서 입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 구경하자고 발품을 팔 필요가 있겠는가?”
마침내 가지 않고 돌아와 비탈진 바위 위에서 밥을 먹었다. 자익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후로 마땅히 천하에 말만 번드레한 못 믿을 인사들이 더욱 싫어질 듯합니다.”
황 씨에게 속고 만 것을 유감스러워한 것이었다.
산을 내려온 뒤 길을 알려 준 노인을 만나 본 것을 얘기하자 노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 위에 진짜 폭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냇물을 따라 내려가면 길이 끊겨 도달할 수가 없습지요. 꼭 산등성이를 따라서 가야 이르러 굽어볼 수가 있답니다.”
그제야 내가 갔던 길이 바른 길인 줄을 알았다. 좀 더 애를 써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또한 폭포의 실상이 자익이 본 것 정도에 그치지 않음이 기뻤고, 잠시 남겨 두어 뒷날의 유람거리로 삼게 된 것이 더욱 여운이 있음을 깨달았다. 유람한 날은 신미년(1691년) 팔월 스무하룻날이고, 그 이튿날 이 글을 쓴다.
토론하기
(1) 폭포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그날의 여정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2)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을 얻게 되었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그때 나는 온전히 성취감과 충만함을 느꼈을까?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3)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을 얻지 못했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그때 나는 온전히 허무감, 상실감, 패배감만을 느꼈을까?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해설읽기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폭포를 찾아 나섰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온 어느 하루의 일을 쓴 글이다. 어느 하루의 에피소드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추구해 가던 인생의 어느 순간 혹은 인생 전체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어떤 세상이 있음을 소문으로 전해 듣고,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 그것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얻는 법(다다르는 법)을 전수 받거나 책을 통해 배운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길 위의 현실은 공부한 것과 다르다.
내가 찾아 나선 것은 명확히 ‘그것’이었지만, 그것에 도달하기 전에 만나는 것들 또한 신기하고 재미난 것투성이다. 애초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들이 너무 많다. 좀 더 나아가 본다. 동행했던 친구들과 길이 나뉘기도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는 다. 나 혼자라도 걷는 길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난 것들이 수두룩하다. 어느덧 떠나 온지 한참의 시간/세월이 지나, 계속 가야할지 되돌아 가야할지 앞에 놓인 길과 뒤에 놓은 길을 가늠하고 되짚어 본다. 이때 함께 길을 왔던 사람을 다시 만나 얘기를 듣는다. 가봤더니 별거 없더란다.
별거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은 묘하다. 내가 찾아 헤맸던 것이 별거 아니라니 라는 실망감과 함께, 이제 더 이상 힘들게 길을 가지 않고 여기서 멈춰도 되겠구나라는 안도감. 이 말을 전해준 사람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애초 명확히 확인되지도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부추긴 사람들을 탓한다. 이는 그들의 말만 믿고 길을 나선 자신들을 탓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온다. ‘그것/곳’을 나에게 가르쳐준 사람이 다시 말한다. 그것은 실재한다고, 당신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라고. 이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묘하게 양가적 생각이 스쳐간다. 나는 실패하고 돌아왔지만, 내가 애초에 찾으려 했던 것, 가려 했던 길이 별 볼일 없거나 허상이었던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다. 동시에 앞에 놓인 길과 뒤에 걸어온 길을 저울질하면서 머뭇거렸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애초에 자신이 가던 길이 옳았는데, 갈팡질팡하고 주저하고 또 가봤더니 별거 없더라는 다른 사람의 말에 혹했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결국, 한번 가 보았던 길이므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라도 희망도 생긴다. 가보지 못한 길은 이렇게 나에게 회한과 희망을 동시에 던져준다.
그런데 만약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희망을 품지 못한 채 쓸 데 없이 시간만 낭비했다는 후회만이 남게 될까? 애초 목표했던 것은 찾지 못했지만, 길을 가는 도중에 예상치 못하게 만난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도 아무 것도 아닌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기쁨으로 남아 있다. 물론 집으로 돌아와 찾고자 했던 것을 찾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한동안 허우적거리겠지만 그때 내 눈과 귀를 빼앗던 것들의 기억은 나에게 또 다시 길을 찾아 나설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은 노인이 준 희망, 즉 기존의 세상과 지식이 알려준 희망이 아니라, 내가 두 발로 걸어서 만들어낸 희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키워드
목표, 실패, 아쉬움, 헤맴,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