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북송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왕안석이 관직 사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선산을 찾은 후 회상 형식으로 쓴 여행기이다.
고전본문
포선산은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는데, 당나라 선사 혜포가 처음 이곳에 집을 지어 살다가 죽은 후 그곳에 묻혔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포선산이라고 불렀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혜공선원은 혜포의 무덤을 지키는 움막이다. 혜공선원에서 동쪽으로 5리쯤에 화양동(華陽洞)이 있는데 화산의 남쪽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화양동에서 100여 보 떨어진 곳에는 비석 하나가 길가에 누워 있다. 비문이 닳아 희미해져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화산(花山)’뿐이다.
지금 사람들이 ‘화(華)’자를 ‘화실(華實)’의 ‘화’처럼 읽는데, 아마 잘못 전해졌을 것이다. 그 아래는 평평하게 트여있고 옆으로 샘물이 솟아나온다. 이곳을 유람하고 시문을 지은 사람이 매우 많은데 바로 전동(前洞)이라는 곳이다. 산을 따라서 5,6리를 올라가면 동굴이 있고 깊고 고요하며, 들어가면 몹시 찬 기운이 느껴진다. 동굴의 깊이를 물어보니 유람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끝까지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이 후동(後洞)이다. 나와 네 사람이 횃불을 들고 동굴에 들어갔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나아가기 어려워졌지만 보이는 것들은 갈수록 기이했다. 일행 중 싫증을 내며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가 ‘지금 나가지 않으면 횃불이 곧 꺼질 것 같다’고 하여 결국 그와 함께 모두 나오고 말았다.
내가 갔던 곳은 유람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갔던 곳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주위 [동굴 벽]을 살펴보니 여기 와서 글을 쓴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대체로 동굴의 깊은 곳은 그곳에 이르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그때 나의 힘은 더 들어가기 충분했고 횃불도 불을 밝히기에 충분했다. 동굴을 나오고 나서 어떤 이가 먼저 나가자고 했던 사람을 탓했으며, 나 역시 그를 따라 나와 유람의 즐거움을 끝까지 누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리하여 나는 탄식한다. 옛사람들은 천지와 산천과 초목과 벌레와 물고기와 새와 짐승을 관찰하고 종종 터득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들이 탐구하는 것이 깊어서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평탄하고 가까운 곳은 유람하는 사람이 많고 험하고 먼 곳은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 세상에 기이하면서도 웅장하고 특이하면서도 진기하고 보통이 아닌 경관은 늘 험난하고 먼 곳에 있어 그곳까지 가는 사람이 적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곳에 이르지 못한다. 의지를 갖고 있으며 남을 따라 그만두지 않더라도 힘이 부족하다면 역시 그곳에 이를 수 없다. 의지와 힘이 있고 또 싫증내어 게으름피우는 사람을 따라 중단하지 않더라도 깊고 어두운 곳에 이르렀을 때 비춰 도와주는 물건이 없다면 역시 이를 수가 없다. 그러나 힘이 충분하여 이를 수 있는데도 이르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 받을 만하고 자신도 후회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를 다 불태우고도 이르지 못했다면 후회가 없을 것이며 누가 비웃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터득한 것이다.
나는 누워 있는 비석에 옛 사람의 글이 남아있지 않음을 슬퍼한다. 후세에 잘못 전해져서 이름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배우는 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함께 간 네 사람은 여릉 사람 소군규, 장락 사람 왕회, 아우 안국과 안상이다. 지화 원년 7월 모일에 임천 왕안석이 기를 지었다.
토론하기
(1) 왕안석이 정말로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
(2) 내가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면 왜 포기했는지 말해보자.
(3) 끝까지 했다는 것은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할까? 끝까지 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북송시대 정치가 왕안석은 서주 통판을 사직하고 돌아가는 길에 포선산을 유람했다. 몇 달 후 이때의 유람을 회상하며 글을 남긴다. 먼저 포선산의 이름의 유래와 주변 경관을 소개하고 일행과 동굴에 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던 경험을 말한다. 그 동굴은 끝까지 들어간 본 사람이 없어서 깊이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깊은 동굴이지만, 왕안석이 갔던 곳은 유람을 즐기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곳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은 짧은 구간이었다. 그렇게 빨리 동굴을 나온 이유는 동굴 탐사를 별로 내켜하지 않던 일행 중 한 명이 좀 더 나아가면 횃불이 꺼질 것이라고 핑계를 대었기 때문이다. 왕안석을 비롯해 일행은 더 이상 고수하지 못하고 동굴 탐험을 그만두고 그냥 밖으로 따라 나온다. 왕 본인은 체력도 남아 있었으며, 횃불도 충분했는데 중간에 그만두고 나왔던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남는다.
집에 돌아와 그때의 일을 생각해보니, 그 때의 중도 포기는 여행 중에 어딘가를 찾아갈 때만 겪는 일이 아니라 살면서 늘 겪게 되는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길이 험하지 않고 멀지 않은 여행지는 늘 사람이 북적이지만, 길이 험해 가기 어려운 곳은 아무리 경관이 좋아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곳의 멋진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여정이 너무 힘이 들면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곳에 꼭 도착해서 경치를 감상하겠다는 강한의지를 갖지 못한다면 대개는 포기하게 된다. 나의 의지박약 뿐 아니라, 주변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쉽다. 그러나 강한 의지만으로는 안 될 때도 많다. 튼튼한 두 다리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포기하게 된다. 강한 의지, 강한 체력이 있어도 며칠씩 걸려 도달하는 곳이라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 한다. 즉 의지(志), 체력(力), 장비·재력(物)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끝까지 가기 어렵다.
왕이 이 글을 쓴 것은 마음에 남는 것이 있어서이다. 당시 그에게는 체력도 남아 있고 횃불도 넉넉히 남았는데, 주변 사람의 말에 부화뇌동하여 그냥 중간에서 멈추고 끝까지 나아가지 않았던 것에 후회이다. 만약 그때 자신의 체력과 횃불이 다 소진될 때까지 나아갔더라면 실제로 는 동굴의 끝에 다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즉 동굴의 끝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 힘이 남았는데도 주변 사람의 말 때문에 의지를 쉽게 꺾은 일이 후회로 남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여행할 때만 겪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일을 착수하거나 목표한 일을 향해 나아갈 때 대개 이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일을 완수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는 힘과 에너지를 비축하고 필요한 도구와 장비도 마련한다. 그 일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도 크다. 그렇지만 중간쯤 가다 보면, 이 일을 꼭 해야 하는지의 의심, 애초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다른 새로운 일을 하자는 주변의 유혹, 다른 사람은 안하고도 잘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 등이 들면서 나는 초심을 잃고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생각한다. 힘이 부족해서도, 환경이 어려워져서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런 핑계를 대지만 대부분은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그만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후회가 남는다. 왕안석은 이런 후회를 포선산을 유람하고 돌아와 썼다. 포선산 유람기이지만 어쩌면 그가 지방관으로서 일하면서 느낀 후회가 배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키워드
동굴, 목표, 유람, 유혹, 의지, 후회
전후맥락
북송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왕안석이 관직 사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선산을 찾은 후 회상 형식으로 쓴 여행기이다.
고전본문
포선산은 화산(華山)이라고도 하는데, 당나라 선사 혜포가 처음 이곳에 집을 지어 살다가 죽은 후 그곳에 묻혔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포선산이라고 불렀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혜공선원은 혜포의 무덤을 지키는 움막이다. 혜공선원에서 동쪽으로 5리쯤에 화양동(華陽洞)이 있는데 화산의 남쪽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화양동에서 100여 보 떨어진 곳에는 비석 하나가 길가에 누워 있다. 비문이 닳아 희미해져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화산(花山)’뿐이다.
지금 사람들이 ‘화(華)’자를 ‘화실(華實)’의 ‘화’처럼 읽는데, 아마 잘못 전해졌을 것이다. 그 아래는 평평하게 트여있고 옆으로 샘물이 솟아나온다. 이곳을 유람하고 시문을 지은 사람이 매우 많은데 바로 전동(前洞)이라는 곳이다. 산을 따라서 5,6리를 올라가면 동굴이 있고 깊고 고요하며, 들어가면 몹시 찬 기운이 느껴진다. 동굴의 깊이를 물어보니 유람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끝까지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이 후동(後洞)이다. 나와 네 사람이 횃불을 들고 동굴에 들어갔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나아가기 어려워졌지만 보이는 것들은 갈수록 기이했다. 일행 중 싫증을 내며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가 ‘지금 나가지 않으면 횃불이 곧 꺼질 것 같다’고 하여 결국 그와 함께 모두 나오고 말았다.
내가 갔던 곳은 유람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갔던 곳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주위 [동굴 벽]을 살펴보니 여기 와서 글을 쓴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대체로 동굴의 깊은 곳은 그곳에 이르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그때 나의 힘은 더 들어가기 충분했고 횃불도 불을 밝히기에 충분했다. 동굴을 나오고 나서 어떤 이가 먼저 나가자고 했던 사람을 탓했으며, 나 역시 그를 따라 나와 유람의 즐거움을 끝까지 누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리하여 나는 탄식한다. 옛사람들은 천지와 산천과 초목과 벌레와 물고기와 새와 짐승을 관찰하고 종종 터득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들이 탐구하는 것이 깊어서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평탄하고 가까운 곳은 유람하는 사람이 많고 험하고 먼 곳은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 세상에 기이하면서도 웅장하고 특이하면서도 진기하고 보통이 아닌 경관은 늘 험난하고 먼 곳에 있어 그곳까지 가는 사람이 적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곳에 이르지 못한다. 의지를 갖고 있으며 남을 따라 그만두지 않더라도 힘이 부족하다면 역시 그곳에 이를 수 없다. 의지와 힘이 있고 또 싫증내어 게으름피우는 사람을 따라 중단하지 않더라도 깊고 어두운 곳에 이르렀을 때 비춰 도와주는 물건이 없다면 역시 이를 수가 없다. 그러나 힘이 충분하여 이를 수 있는데도 이르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 받을 만하고 자신도 후회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를 다 불태우고도 이르지 못했다면 후회가 없을 것이며 누가 비웃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터득한 것이다.
나는 누워 있는 비석에 옛 사람의 글이 남아있지 않음을 슬퍼한다. 후세에 잘못 전해져서 이름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배우는 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함께 간 네 사람은 여릉 사람 소군규, 장락 사람 왕회, 아우 안국과 안상이다. 지화 원년 7월 모일에 임천 왕안석이 기를 지었다.
토론하기
(1) 왕안석이 정말로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
(2) 내가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면 왜 포기했는지 말해보자.
(3) 끝까지 했다는 것은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할까? 끝까지 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북송시대 정치가 왕안석은 서주 통판을 사직하고 돌아가는 길에 포선산을 유람했다. 몇 달 후 이때의 유람을 회상하며 글을 남긴다. 먼저 포선산의 이름의 유래와 주변 경관을 소개하고 일행과 동굴에 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던 경험을 말한다. 그 동굴은 끝까지 들어간 본 사람이 없어서 깊이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깊은 동굴이지만, 왕안석이 갔던 곳은 유람을 즐기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곳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은 짧은 구간이었다. 그렇게 빨리 동굴을 나온 이유는 동굴 탐사를 별로 내켜하지 않던 일행 중 한 명이 좀 더 나아가면 횃불이 꺼질 것이라고 핑계를 대었기 때문이다. 왕안석을 비롯해 일행은 더 이상 고수하지 못하고 동굴 탐험을 그만두고 그냥 밖으로 따라 나온다. 왕 본인은 체력도 남아 있었으며, 횃불도 충분했는데 중간에 그만두고 나왔던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남는다.
집에 돌아와 그때의 일을 생각해보니, 그 때의 중도 포기는 여행 중에 어딘가를 찾아갈 때만 겪는 일이 아니라 살면서 늘 겪게 되는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길이 험하지 않고 멀지 않은 여행지는 늘 사람이 북적이지만, 길이 험해 가기 어려운 곳은 아무리 경관이 좋아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곳의 멋진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여정이 너무 힘이 들면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곳에 꼭 도착해서 경치를 감상하겠다는 강한의지를 갖지 못한다면 대개는 포기하게 된다. 나의 의지박약 뿐 아니라, 주변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쉽다. 그러나 강한 의지만으로는 안 될 때도 많다. 튼튼한 두 다리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포기하게 된다. 강한 의지, 강한 체력이 있어도 며칠씩 걸려 도달하는 곳이라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 한다. 즉 의지(志), 체력(力), 장비·재력(物)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끝까지 가기 어렵다.
왕이 이 글을 쓴 것은 마음에 남는 것이 있어서이다. 당시 그에게는 체력도 남아 있고 횃불도 넉넉히 남았는데, 주변 사람의 말에 부화뇌동하여 그냥 중간에서 멈추고 끝까지 나아가지 않았던 것에 후회이다. 만약 그때 자신의 체력과 횃불이 다 소진될 때까지 나아갔더라면 실제로 는 동굴의 끝에 다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즉 동굴의 끝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 힘이 남았는데도 주변 사람의 말 때문에 의지를 쉽게 꺾은 일이 후회로 남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여행할 때만 겪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일을 착수하거나 목표한 일을 향해 나아갈 때 대개 이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일을 완수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는 힘과 에너지를 비축하고 필요한 도구와 장비도 마련한다. 그 일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도 크다. 그렇지만 중간쯤 가다 보면, 이 일을 꼭 해야 하는지의 의심, 애초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다른 새로운 일을 하자는 주변의 유혹, 다른 사람은 안하고도 잘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 등이 들면서 나는 초심을 잃고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생각한다. 힘이 부족해서도, 환경이 어려워져서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런 핑계를 대지만 대부분은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그만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후회가 남는다. 왕안석은 이런 후회를 포선산을 유람하고 돌아와 썼다. 포선산 유람기이지만 어쩌면 그가 지방관으로서 일하면서 느낀 후회가 배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키워드
동굴, 목표, 유람, 유혹, 의지,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