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광석, 두찬, 하원, 나는 1.4후퇴 때 배를 타고 피난하여 부산에서 지내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고향에 돌아가기를 고대했지만, 현실은 점점 더 고향에 돌아가기 어려워지고 이들 사이에서도 반목과 갈등이 생겨난다. 그러던 중 광석은 달리는 화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팔이 잘리고 그 상처로 죽음을 맞이한다.
고전본문
두찬이와 광석이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러나 두찬이 편이 네댓 살은 더 들어 보였다. 훤칠하게 큰 키에 알맞게 뚱뚱한 것이며, 검은 얼굴에 뒤룩뒤룩한 눈, 두꺼운 입술, 술 사발이나 들어가면 둔하게 왁자지껄하지만 여느 때는 통히 말이 없었다. 광석이는 키는 큰 편이나 조금 여위었고 까무잡잡한 바탕에 오뚝 선 콧대, 작은 눈, 엷은 입술에 쉴새없이 날름거리는 혓바닥하며, 홀가분한 걸음걸이, 진득한 데라고는 두 눈을 씻고 보자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원이는 나보다 한 살 밑이어서 열여덟 살이었다. 어디서나 입을 헤에 벌리고 있곤 했다.
중공군이 밀려내려온다는 바람에 무턱대고 배 위에 올라타긴 했으나, 도시 막막하던 판이라, 바다 위에서 우리 넷이 만났을 땐 사실 미칠 것처럼 반가웠다.
야하 너두 탔구나, 너두, 너두.
뱃간에서 하루인가 이틀 밤을 지나, 어느 날 이른 아침에는 부산 거리에 부리어졌다. 넷이 다 타향땅은 처음이라, 서로 마주 건너다보며 어리둥절했다. 마을 안에 있을 땐 이십 촌 안팎으로나마 서로 아접, 조카 집안끼리였다는 것이 이 부산 하늘 밑에선 새삼스러웠던 것이다.
“야하, 이제 우리 넷이 떨어지는 날은 죽는 날이다, 죽는 날이야.”
이럭저럭 한 달쯤 무사히 지나갔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은 갈수록 아득했다. 이 한달 사이에 두찬이는 두찬이대로, 광석이는 광석이대로 남 모르게 제각기 다른 배포가 서게 된 것은(배포랄것까지는 없지만) 그들을 탓할 수만 없는 일이었다. 쉽사리 고향으로 못 돌아갈 바에는 늘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달리 변통을 취해야겠다, 두찬이와 광석이는 나머지 셋 때문에 괜히 얽매여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자연 우리 사이는 차츰 데면데면해지고, 흘끔흘끔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끔 됐다.
광석이는 애당초가 조금 주책이 없다 할까, 주변이 있다 할까 엄벙덤벙 토박이 반원들과 얼려 막걸리 사발이나 얻어마시곤 했고, 구변 좋게 보탬을 해서 북쪽 얘기를 해쌓고, 이렇게 며칠이 지났을 땐 어느덧 반원들은, 나나 두찬이나 하원이와는 달리, 광석이만은 오래전부터 사귀어온 친구나처럼 손을 맞잡고는,
“나왔나!”
“오냐, 느 형님 여전하시다.”
“버르장머리 몬쓰겠다. 누구보꼬 형님이라카노.”
“자네 언제부터, 말버르장머리하곤, 허 요새 세상이 이래 노니.”
농담조로 수인사가 오락가락했으니, 나나 두찬이나 하원이는 광석이의 이런 꼴을 멀끔히 남 바라보듯 건너다봐야 했다. 광석이는 차츰 반원들과 얼려 왁자지껄하는 데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고, 날이 갈수록 자신만만해졌다.
그 꼴사나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더더구나 주변머리 없고 무뚝뚝하고 외양보다 실속만 자란 두찬이는 저대로 뒤틀리는 심사를 지닌 채 다른 궁리를 차리는 모양이었다. 사실 이즈음부터 두찬이는 부두 안에서 얌생이를 해도 다만 밥 두 끼 값이라도 골고루 나누어주는 법이 없이, 일판만 나오면 혼자 부두 앞 틈 사이 샛길을 허청허청 돌아다녔다. 이런 두찬이는 으레 술이 듬뿍 취해 화찻간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하원이는 자주 울먹거렸다.
“야하,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하고 애스럽게 지껄이곤 했다.
[출전] 이호철, <탈향>
토론하기
(1) 고향 사람이 아닌 피난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붙임성있게 잘 지내는 광석의 태도를 두찬이 꼴사납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2) 고향에서 먼 친척뻘로 친하게 지냈던 네 명은 예상보다 길어진 피난 살이에 서로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를 전쟁의 간접적인 폐해와 연관지어 설명해 보자.
해설읽기
<탈향>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인 광석, 두찬, 하원, 나는 고향에서 먼 일가 친척뻘이 되며, 아재나 조카로 불리는 관계이다. 이들은 1.4후퇴때 무작정 남쪽으로 향하는 배 위에 올라탔다가 우연히 서로를 만나 피난지이자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임시 거처를 함께 마련한다. 한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던 이들 네 명이 낯선 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부산 일터의 사람들도 이들을 사촌지간이라고 알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에서의 생활은 팍팍하고 힘들기만 하지만 조만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이들은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화차에서 동거생활을 한다. 하룻저녁에도 몇 번 이 화차 저 화차 자리를 옮겨 잡아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좋은 반찬이 있으며 서로에게 미루기도 하고 고향 얘기를 하면서 시름을 달랜다. “야하, 이제 우리 넷이 떨어지는 날은 죽는 날이다, 죽는 날이야.”라고 다짐하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그러나 피난생활이 길어지고 어쩌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싹튼다.
나이가 가장 어린 하원이는 일하는 것이 변변치 않고 매일 밤 고향생각을 하며 어리광이 심하다. 광석은 조금 주책이 없기도 하고, 주변머리가 좋은 광석이는 피난 생활에 잘 적응한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농담을 주고 받고 호형호제 하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광석에 대해 다른 세 사람은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친다. 부산에서 잘 지내는 것은 마치 고향에 대한 배신처럼 느끼는 것이다. 특히 광석과 나이가 같은 두찬은 광석을 광석이 타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에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한다. “두찬이처럼 심통 사납다거나, 광석이처럼 구변이 좋다거나, 하원이처럼 말이 많다거나” 하지 않다.
고향을 떠나왔다는 것은 공동체적 동질감이나 유대감, 따스함 등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공동체적 정서와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빛 바랜 것이지만,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또 현실의 고단함에 대한 반대급부라해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왔다는 것은 상실의 느낌이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떠나온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행여 쉽게 돌아갈 수 없다면 낯선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므로, 이곳에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불안정하다. 오늘 이곳에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 떠나온 과거의 그곳을 잊어버리는 일이 될까봐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광석이가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과 허물 없이 지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고향과 고향에 있는 사람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두찬의 넉살좋음에 어느 정도의 부러움도 담겨 있다. 당장 돌아갈 수 없다면 이곳에서 돈을 벌고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석의 방식은 아니지만 두찬 또한 자기 나름대로 살 길을 모색하면서 이전의경제 공동체를 깨기 시작했다. 벌어온 돈을 골고루 나누는 법 없이 없어진 것이다.
전쟁은 그 자체로 고통과 비극의 현장이지만, 전투가 일어나지 않은 후방에서의 삶 역시 만치 않다. 이 글은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기 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실향과 이산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절망과 폐허 위에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키워드
1.4 후퇴, 고향, 부산, 이산, 전쟁, 한국 전쟁, 화차
전후맥락
광석, 두찬, 하원, 나는 1.4후퇴 때 배를 타고 피난하여 부산에서 지내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고향에 돌아가기를 고대했지만, 현실은 점점 더 고향에 돌아가기 어려워지고 이들 사이에서도 반목과 갈등이 생겨난다. 그러던 중 광석은 달리는 화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팔이 잘리고 그 상처로 죽음을 맞이한다.
고전본문
두찬이와 광석이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러나 두찬이 편이 네댓 살은 더 들어 보였다. 훤칠하게 큰 키에 알맞게 뚱뚱한 것이며, 검은 얼굴에 뒤룩뒤룩한 눈, 두꺼운 입술, 술 사발이나 들어가면 둔하게 왁자지껄하지만 여느 때는 통히 말이 없었다. 광석이는 키는 큰 편이나 조금 여위었고 까무잡잡한 바탕에 오뚝 선 콧대, 작은 눈, 엷은 입술에 쉴새없이 날름거리는 혓바닥하며, 홀가분한 걸음걸이, 진득한 데라고는 두 눈을 씻고 보자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원이는 나보다 한 살 밑이어서 열여덟 살이었다. 어디서나 입을 헤에 벌리고 있곤 했다.
중공군이 밀려내려온다는 바람에 무턱대고 배 위에 올라타긴 했으나, 도시 막막하던 판이라, 바다 위에서 우리 넷이 만났을 땐 사실 미칠 것처럼 반가웠다.
야하 너두 탔구나, 너두, 너두.
뱃간에서 하루인가 이틀 밤을 지나, 어느 날 이른 아침에는 부산 거리에 부리어졌다. 넷이 다 타향땅은 처음이라, 서로 마주 건너다보며 어리둥절했다. 마을 안에 있을 땐 이십 촌 안팎으로나마 서로 아접, 조카 집안끼리였다는 것이 이 부산 하늘 밑에선 새삼스러웠던 것이다.
“야하, 이제 우리 넷이 떨어지는 날은 죽는 날이다, 죽는 날이야.”
이럭저럭 한 달쯤 무사히 지나갔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은 갈수록 아득했다. 이 한달 사이에 두찬이는 두찬이대로, 광석이는 광석이대로 남 모르게 제각기 다른 배포가 서게 된 것은(배포랄것까지는 없지만) 그들을 탓할 수만 없는 일이었다. 쉽사리 고향으로 못 돌아갈 바에는 늘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달리 변통을 취해야겠다, 두찬이와 광석이는 나머지 셋 때문에 괜히 얽매여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자연 우리 사이는 차츰 데면데면해지고, 흘끔흘끔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끔 됐다.
광석이는 애당초가 조금 주책이 없다 할까, 주변이 있다 할까 엄벙덤벙 토박이 반원들과 얼려 막걸리 사발이나 얻어마시곤 했고, 구변 좋게 보탬을 해서 북쪽 얘기를 해쌓고, 이렇게 며칠이 지났을 땐 어느덧 반원들은, 나나 두찬이나 하원이와는 달리, 광석이만은 오래전부터 사귀어온 친구나처럼 손을 맞잡고는,
“나왔나!”
“오냐, 느 형님 여전하시다.”
“버르장머리 몬쓰겠다. 누구보꼬 형님이라카노.”
“자네 언제부터, 말버르장머리하곤, 허 요새 세상이 이래 노니.”
농담조로 수인사가 오락가락했으니, 나나 두찬이나 하원이는 광석이의 이런 꼴을 멀끔히 남 바라보듯 건너다봐야 했다. 광석이는 차츰 반원들과 얼려 왁자지껄하는 데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고, 날이 갈수록 자신만만해졌다.
그 꼴사나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더더구나 주변머리 없고 무뚝뚝하고 외양보다 실속만 자란 두찬이는 저대로 뒤틀리는 심사를 지닌 채 다른 궁리를 차리는 모양이었다. 사실 이즈음부터 두찬이는 부두 안에서 얌생이를 해도 다만 밥 두 끼 값이라도 골고루 나누어주는 법이 없이, 일판만 나오면 혼자 부두 앞 틈 사이 샛길을 허청허청 돌아다녔다. 이런 두찬이는 으레 술이 듬뿍 취해 화찻간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하원이는 자주 울먹거렸다.
“야하,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하고 애스럽게 지껄이곤 했다.
[출전] 이호철, <탈향>
토론하기
(1) 고향 사람이 아닌 피난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붙임성있게 잘 지내는 광석의 태도를 두찬이 꼴사납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2) 고향에서 먼 친척뻘로 친하게 지냈던 네 명은 예상보다 길어진 피난 살이에 서로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를 전쟁의 간접적인 폐해와 연관지어 설명해 보자.
해설읽기
<탈향>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인 광석, 두찬, 하원, 나는 고향에서 먼 일가 친척뻘이 되며, 아재나 조카로 불리는 관계이다. 이들은 1.4후퇴때 무작정 남쪽으로 향하는 배 위에 올라탔다가 우연히 서로를 만나 피난지이자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임시 거처를 함께 마련한다. 한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던 이들 네 명이 낯선 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부산 일터의 사람들도 이들을 사촌지간이라고 알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에서의 생활은 팍팍하고 힘들기만 하지만 조만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이들은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화차에서 동거생활을 한다. 하룻저녁에도 몇 번 이 화차 저 화차 자리를 옮겨 잡아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좋은 반찬이 있으며 서로에게 미루기도 하고 고향 얘기를 하면서 시름을 달랜다. “야하, 이제 우리 넷이 떨어지는 날은 죽는 날이다, 죽는 날이야.”라고 다짐하며 서로에게 의지한다. 그러나 피난생활이 길어지고 어쩌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싹튼다.
나이가 가장 어린 하원이는 일하는 것이 변변치 않고 매일 밤 고향생각을 하며 어리광이 심하다. 광석은 조금 주책이 없기도 하고, 주변머리가 좋은 광석이는 피난 생활에 잘 적응한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농담을 주고 받고 호형호제 하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광석에 대해 다른 세 사람은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친다. 부산에서 잘 지내는 것은 마치 고향에 대한 배신처럼 느끼는 것이다. 특히 광석과 나이가 같은 두찬은 광석을 광석이 타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에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한다. “두찬이처럼 심통 사납다거나, 광석이처럼 구변이 좋다거나, 하원이처럼 말이 많다거나” 하지 않다.
고향을 떠나왔다는 것은 공동체적 동질감이나 유대감, 따스함 등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공동체적 정서와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빛 바랜 것이지만,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또 현실의 고단함에 대한 반대급부라해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왔다는 것은 상실의 느낌이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떠나온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행여 쉽게 돌아갈 수 없다면 낯선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므로, 이곳에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불안정하다. 오늘 이곳에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 떠나온 과거의 그곳을 잊어버리는 일이 될까봐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광석이가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과 허물 없이 지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고향과 고향에 있는 사람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두찬의 넉살좋음에 어느 정도의 부러움도 담겨 있다. 당장 돌아갈 수 없다면 이곳에서 돈을 벌고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석의 방식은 아니지만 두찬 또한 자기 나름대로 살 길을 모색하면서 이전의경제 공동체를 깨기 시작했다. 벌어온 돈을 골고루 나누는 법 없이 없어진 것이다.
전쟁은 그 자체로 고통과 비극의 현장이지만, 전투가 일어나지 않은 후방에서의 삶 역시 만치 않다. 이 글은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기 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실향과 이산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절망과 폐허 위에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키워드
1.4 후퇴, 고향, 부산, 이산, 전쟁, 한국 전쟁, 화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