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광석, 두찬, 하원, 나는 1.4후퇴 때 배를 타고 피난하여 부산에서 지내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고향에 돌아가기를 고대했지만, 현실은 점점 더 고향에 돌아가기 어려워지고 이들 사이에서도 반목과 갈등이 생겨난다. 그러던 중 광석은 달리는 화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팔이 잘리고 그 상처로 죽음을 맞이한다. 두찬이마저 어디론가 사라진다. 결국 열여덟, 열아홉의 하원과 나만이 남았다. 하원은 마음에 들지 않던 두찬이 사라지자, 자기들끼리 잘 살아보자고 하고 생활의 의지를 불태운다.
고전본문
이튿날 아침 두찬이는 보이지 않았다. 부두 일판에 나가도 없었다.
사흘쯤 지난 뒤, 어두운 화찻간 속에서 하원이는 지껄였다.
“야하, 우리 이젠 꼽대가리 자꾸 해서 돈 좀 쥐자. 그러구 저기 염주동 산꼭대기에다 집 하나 짓자. 거기 집 제두 일없닝기더라야. 잉야 조카야, 흐흐흐 우습다. 진짜 우스워. 난 너두 두찬이 형처럼 그렇게 될까봐 얼마나 떨언 줄 안. 광석이 아제비두 맘은 좋은 폭 못 됐시야. 잉. 우린 동네 갈 젠 꼭 같이 가자. 돈 벌어서, 돈 벌문 말야. 시계부터 사자, 어부러서. 그까즌 거, 꼽대가리 대구 하지 머. 광석이 아저씨까 두찬이 형은 못 봤다구 글자마, 알거이 머야, 너까 나만 암말두 안 헌 담에야. 그저 대구 못 봤다구만 글자마. 낼부터 나 진짜 꼽대가리 할란다. 잉, 조카야 우습다. 잉? 이케 잠이 안 온다야. 우리 오늘밤, 그냥 밤새자. 술 마시까, 술?“
나는 그저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이 내리는 눈송이여, 아, 눈송이여.”
무엇인가 못 견디게 그리운 것처럼 애탔다. 그러나 누가 알랴! 지금 내 마음 밑 속에서 일어나는 돌개바람 같은 것을…… 아, 어머니! 이미 내 마음은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와락 하원이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두 볼에 흘러내렸다. 하원이는 흐흐흐 웃었다. 지껄였다.
“이 새끼 술도 안 먹구 취핸. 참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눈두. 이북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광석이 아제비네 움물 말이다. 야하, 굉장헌데. 새벽엔 까치가 울구, 그 상타무 있잖니. 장자골집 형수 원래 잘 웃잖니. 하하하 하구. 그 형수 꽤나 부지러했다. 가마이 보문, 언제나 새벽에 젤 먼저 물 푸러 오군 하는 게 그 형수더라, 잉. 야하, 눈 보구 싶다, 눈이.” (끝)
-이호철, 「탈향」 中
토론하기
(1) 피난민을 다룬 이 소설이 제목을 보다 일반적인 용어인 ‘실향이 아니라 탈향이라고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해설읽기
“아, 어머니! 이미 내 마음은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광석이가 우리가 아닌 부산 현지의 사람들과 친분을 두텁게 가졌지만 광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찬이는 돈벌이게 골몰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기 시작하고, 심지어 화차에서 떨어진 광석이를 본체만체 했다. 하원이가 그런 두찬이 곁을 떠나자고 나에게 조른다. 팔이 동강난 광석을 끝까지 옆에서 지켰다는 자부심을 가진 나는 결국 하원이를 데리고서는 여기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하원이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광석의 죽음이 이를 증폭시켰을 뿐 그가 죽기 전부터 각각은 서로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던 하원은 밤낮으로 일해 돈을 모아 집을 짓자고 말한다. 시계도 사자고 한다. 이제 부산에서의 생활이 적응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고향에 돌아갈 일이 한없이 유보된다는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나중에라도 고향 사람들을 만났을 때 광석과 두찬의 일이 걸리기는 하지만 못봤다고 하면 그만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과 이산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오고 가족과 헤어졌다는 문제 뿐 아니라, 삶의 거점을 상실했다는 실존적 문제에 직면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피치 못해 피난을 온 상황이었지만, 잠시 고향을 떠나온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고향으로부터 벗어남.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고향(적인 것, 관계)를 버려야지 살아 갈 수 있음을 절감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거이자 원형인 고향과 그 속에서의 관계들로부터 단절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가족과 고향에 대란 그리움까지 고향을 떠나와 머물게 된 타지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다. 실향민이 부딪치는 실존적 문제. 고향을 그리워하고 돌아가야 할 곳으로 상정하지만, 그것을 삶의 목표로 둔다면 현실을 살아갈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전쟁을 피해 도망나온 고향,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려 했으나 기대와 달리 돌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 삶을 지속하려면 고향을 버리고, 고향 사람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각.
처음에 이들은 피난이라는 원치 않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상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살기 위해 고향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예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은 소극적인 실향이 아니라 적극적인 탈향이라고 붙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고향이란 눈오는날의 고향 풍경 같은 것만이 아니다. 고향으로 상징되는 따스한 공동체적이고 가족적인 관계들이 부정되고, 팍팍하고 차가운 도시의 이방인들과의 관계만이 남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그런 곳에서 뿌리 내리기가 가능할까?\
키워드
1.4 후퇴, 고향, 부산, 이산, 전쟁, 한국전쟁
전후맥락
광석, 두찬, 하원, 나는 1.4후퇴 때 배를 타고 피난하여 부산에서 지내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고향에 돌아가기를 고대했지만, 현실은 점점 더 고향에 돌아가기 어려워지고 이들 사이에서도 반목과 갈등이 생겨난다. 그러던 중 광석은 달리는 화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팔이 잘리고 그 상처로 죽음을 맞이한다. 두찬이마저 어디론가 사라진다. 결국 열여덟, 열아홉의 하원과 나만이 남았다. 하원은 마음에 들지 않던 두찬이 사라지자, 자기들끼리 잘 살아보자고 하고 생활의 의지를 불태운다.
고전본문
이튿날 아침 두찬이는 보이지 않았다. 부두 일판에 나가도 없었다.
사흘쯤 지난 뒤, 어두운 화찻간 속에서 하원이는 지껄였다.
“야하, 우리 이젠 꼽대가리 자꾸 해서 돈 좀 쥐자. 그러구 저기 염주동 산꼭대기에다 집 하나 짓자. 거기 집 제두 일없닝기더라야. 잉야 조카야, 흐흐흐 우습다. 진짜 우스워. 난 너두 두찬이 형처럼 그렇게 될까봐 얼마나 떨언 줄 안. 광석이 아제비두 맘은 좋은 폭 못 됐시야. 잉. 우린 동네 갈 젠 꼭 같이 가자. 돈 벌어서, 돈 벌문 말야. 시계부터 사자, 어부러서. 그까즌 거, 꼽대가리 대구 하지 머. 광석이 아저씨까 두찬이 형은 못 봤다구 글자마, 알거이 머야, 너까 나만 암말두 안 헌 담에야. 그저 대구 못 봤다구만 글자마. 낼부터 나 진짜 꼽대가리 할란다. 잉, 조카야 우습다. 잉? 이케 잠이 안 온다야. 우리 오늘밤, 그냥 밤새자. 술 마시까, 술?“
나는 그저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이 내리는 눈송이여, 아, 눈송이여.”
무엇인가 못 견디게 그리운 것처럼 애탔다. 그러나 누가 알랴! 지금 내 마음 밑 속에서 일어나는 돌개바람 같은 것을…… 아, 어머니! 이미 내 마음은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와락 하원이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두 볼에 흘러내렸다. 하원이는 흐흐흐 웃었다. 지껄였다.
“이 새끼 술도 안 먹구 취핸. 참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눈두. 이북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 광석이 아제비네 움물 말이다. 야하, 굉장헌데. 새벽엔 까치가 울구, 그 상타무 있잖니. 장자골집 형수 원래 잘 웃잖니. 하하하 하구. 그 형수 꽤나 부지러했다. 가마이 보문, 언제나 새벽에 젤 먼저 물 푸러 오군 하는 게 그 형수더라, 잉. 야하, 눈 보구 싶다, 눈이.” (끝)
-이호철, 「탈향」 中
토론하기
(1) 피난민을 다룬 이 소설이 제목을 보다 일반적인 용어인 ‘실향이 아니라 탈향이라고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해설읽기
“아, 어머니! 이미 내 마음은 하원이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광석이가 우리가 아닌 부산 현지의 사람들과 친분을 두텁게 가졌지만 광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두찬이는 돈벌이게 골몰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기 시작하고, 심지어 화차에서 떨어진 광석이를 본체만체 했다. 하원이가 그런 두찬이 곁을 떠나자고 나에게 조른다. 팔이 동강난 광석을 끝까지 옆에서 지켰다는 자부심을 가진 나는 결국 하원이를 데리고서는 여기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하원이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광석의 죽음이 이를 증폭시켰을 뿐 그가 죽기 전부터 각각은 서로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던 하원은 밤낮으로 일해 돈을 모아 집을 짓자고 말한다. 시계도 사자고 한다. 이제 부산에서의 생활이 적응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고향에 돌아갈 일이 한없이 유보된다는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나중에라도 고향 사람들을 만났을 때 광석과 두찬의 일이 걸리기는 하지만 못봤다고 하면 그만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과 이산의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오고 가족과 헤어졌다는 문제 뿐 아니라, 삶의 거점을 상실했다는 실존적 문제에 직면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피치 못해 피난을 온 상황이었지만, 잠시 고향을 떠나온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고향으로부터 벗어남.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고향(적인 것, 관계)를 버려야지 살아 갈 수 있음을 절감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거이자 원형인 고향과 그 속에서의 관계들로부터 단절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 문제부터 가족과 고향에 대란 그리움까지 고향을 떠나와 머물게 된 타지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다. 실향민이 부딪치는 실존적 문제. 고향을 그리워하고 돌아가야 할 곳으로 상정하지만, 그것을 삶의 목표로 둔다면 현실을 살아갈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전쟁을 피해 도망나온 고향,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려 했으나 기대와 달리 돌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 삶을 지속하려면 고향을 버리고, 고향 사람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각.
처음에 이들은 피난이라는 원치 않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상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살기 위해 고향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예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은 소극적인 실향이 아니라 적극적인 탈향이라고 붙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고향이란 눈오는날의 고향 풍경 같은 것만이 아니다. 고향으로 상징되는 따스한 공동체적이고 가족적인 관계들이 부정되고, 팍팍하고 차가운 도시의 이방인들과의 관계만이 남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그런 곳에서 뿌리 내리기가 가능할까?\
키워드
1.4 후퇴, 고향, 부산, 이산, 전쟁, 한국전쟁